32. 붙임성
나리는 작은 검사실에 홀로 누워있었다.
[똑똑]
“네!”
나리의 대답에 아담한 키를 한 간호사가 들어왔다.
“박나리 님 맞으시죠~?”
“네. 근데 검사하면 몇 분 정도 걸려요??”
간호사는 영어로 된 버튼이 가득한 기계를 다루며 대답했다.
“오래 안 걸려요. 15분 내외 정도면 되구요~ 신경전도검사도 하고 혹시 근육에도 손상이 있는 걸 수도 있어서 근전도검사도 같이 할게요~”
“아, 네. 근데 있잖아요···??”
나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까 옷 갈아 입는데 보니까 캐비닛 문을 못 잠그던데··· 괜찮아요···??”
“아~ 어차피 한 사람씩만 탈의실 이용하게끔 시행하고 있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데스크 바로 앞이라 환자분 이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저희가 통제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나름대로 그에 대한 규정이 있었고 간호사의 말투에서 믿음이 느껴졌다.
덕분에 나리의 마음이 놓였다.
“그럼 이제 검사 시작해도 될까요~?”
“네.”
나리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왼쪽 팔 소매를 최대한 걷어 올렸다.
***
“아니, 그렇게 매웠어?!”
“진짜 엄청 맵던데?! 속 괜찮아?!”
“남자가 그렇게 매운 걸 못 먹어서 어떡하냐?!”
“매운 거랑 남자인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맵찔이었어, 맵찔이~”
떡볶이 집에서 나오자마자 나보고 매운 거 못 먹는다고 놀려댔다.
매워서 정신없었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건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제일 관심있는 부분을 물어볼 때가 되었다.
“아, 참. 근데 넌 3차 접종 언제 맞으려고?? 아까 듣기론 2개월 정도 지난 거 같던데. 빨리 맞아야 되는 거 아니야??”
추가 접종 후, 나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지가 내 최대의 관심사였다.
솔직히 현주가 3차 접종을 맞는 게 좋겠다는 대답을 하길 바랐다.
현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었다.
옆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글쎄··· 나 1차랑 2차 둘 다 접종하고 나서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좀 고민되긴 하네.”
떡볶이 집에서도 얘기하기를, 두 번의 접종 모두 사흘 동안 엄청 아팠다고 했었다.
그 때 옆에 아무도 없었다는 게 서글펐다는 얘기까지도 곁들였었다.
“근데 아나필락시스 반응까지는 없었지 않아···??”
“딱히?? 이 때까지 예방 접종하면서 특별히 이상 반응 나타난 적도 없었고. 넌 3차 맞았어??”
“나?!”
떡볶이 먹을 땐 본인 얘기하기 바빠서 물어보지 않던 걸 갑자기 물어왔다.
“난 벌써 맞았지.”
“아, 그래?? 부작용 없었어??”
“그냥 뭐··· 남들처럼 열 좀 나고 몸살기 있고 그랬지···??”
“와··· 별 다른 증상없이 잘 넘어갔나 보네.”
현주가 살짝 부러운 듯 말했다.
“근데 3차 때는 원래 맞던 용량대로 다 안 맞잖아. 절반만 맞아서 그런가 부작용도 그렇게 안 심하던데??”
“아, 그렇겠네?! 그럼 나도 빨리 맞을까?!”
현주는 어떤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낫지. 전문가들은 전염 통제 수단을 갖췄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이제 바이러스 ‘종식’이라는 단어는 못 쓸 것 같고··· 우리가 항체를 잘 갖고 있는 게 낫지.”
“그건 그래. 오~ 우리 맵찔이 똘똘하네~”
현주가 내 오른쪽 팔을 쿡쿡 찌르면서 놀리듯 칭찬했다.
난 신경쓰지 않고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그래서··· 언제 맞으려고??”
주사 맞는 시기를 알면 언제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나와 같은 능력이 생겼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오래 끌 것도 없이 집 가서 예약해보고 되는 날 바로 맞으려고. 왜?? 같이 가주게??”
“내가?? 왜??”
현주의 부작용에만 관심만 있었지 같이 가주는 것까지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싫음 말아라?! 난 편의점 갔다가 갈 거니까 먼저 가.”
쿨한 척하는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느껴졌다.
현주는 좌우를 대충 살피고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오늘 같이 있으면서 단 한 번이라도 현주의 눈빛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조금 전 그 순간만큼은 눈빛을 읽어보고 싶었다.
‘진짜 같이 가주길 바란 거야··· 아님 그냥 해본 소리야···??’
현주가 편의점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나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서는데 길 한 가운데에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먹을 게 있는지 연신 바닥을 쪼으고 있었다.
난 신경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비둘기와 나의 거리가 좁혀졌다.
두 걸음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졌을 때였다.
비둘기가 도망갈 것처럼 몇 발자국 걷다가 다시 있던 자리도 돌아왔다.
도망가려고 했으면 발이 아니라 날개를 썼을 것이다.
‘요새 비둘기는 날개가 퇴화한 게 확실해···’
내가 지나가도 비둘기는 같은 자리에서 바닥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아아앙]
그 때 골목 안쪽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한 어르신이 느긋하게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와 비둘기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난 고개를 돌려 비둘기를 확인했다.
역시나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설마 오토바이도 안 피하는 건 아니겠지···’
아직 거리가 있었지만 어르신은 따로 핸들을 돌리지 않아도 비둘기가 알아서 피할 거라 생각하고 계신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정도로 정직하게 비둘기가 있는 곳으로 달릴 순 없을 것 같았다.
간혹 로드킬 당한 동물들 중에 비둘기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저 비둘기도 그런 일을 당할까봐 신경쓰였다.
잠시 길가 쪽에 서서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
‘진짜 위험할 때는 날아서 도망치겠지···??’
[바아아앙]
오토바이 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렸다.
역시나 어르신은 비둘기를 들이받을 것처럼 무조건 직진만 하고 계셨다.
‘아, 설마···’
괜히 내가 더 긴장되었다.
비둘기는 여전히 바닥만 쪼으고 있었다.
오토바이와 비둘기가 부딪치는 건 이제 몇 초 남지 않았다.
[뛰뛰!!]
어르신이 경적을 울렸다.
그럼에도 비둘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토바이와 비둘기 사이의 거리가 1m 남짓할 때였다.
고개를 숙인 채 곁눈질로 비둘기를 주시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고 있던 한 쪽 손을 까딱였다.
[푸드드득!!]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오토바이를 피해서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구르면서 놀랐는지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바아아앙]
예상대로 어르신은 직진만 하셨다.
비둘기는 그제서야 퇴화 직전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갔다.
‘와··· 내가 간섭 안 했으면 비둘기는 로드킬에, 어르신도 다치셨겠네···’
상황 정리가 됐다는 생각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가려던 순간이었다.
[푸드드득]
뒤에서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머리에 있는 무늬를 보니 조금 전에 내가 공기로 후려친 그 비둘기였다.
다시 날아온 자리도 같은 자리였다.
‘다음엔 나도 못 살려준다···’
이제 진짜 집으로 가려는데 이번엔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야, 아직 안 갔어?!”
현주였다.
“아···”
현주의 손에는 흰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살짝 비치는 걸로 유추해볼 때 캔맥주였다.
“여기서 뭐해?!”
현주가 지나가는데도 비둘기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냥··· 저 비둘기 본다고···”
“비둘기?!”
내가 가리키는 비둘기를 향해 현주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 마술 연습할 비둘기 찾는 중이었어?!”
“어?!”
예상치 못한 멘트에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저런 비둘기는 세균도 많고 지저분해서 안 돼. 지지, 지지.”
현주가 놀고 있는 한 손의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길 한가운데에 있길래 위험할까봐 보고 있었지.”
“아, 그런 거였어?! 그럼···”
현주는 비둘기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봉투를 휘둘렀다.
그러자 비둘기가 다시 날아올랐다.
“됐지?!”
무슨 큰 문제 하나 해결한 것 마냥 으쓱해보였다.
‘그래도 다시 날아올 녀석인데···’
난 날아간 비둘기를 찾으려 하늘을 둘러봤다.
“뭐야?! 날려보내려는 게 목적 아니였어?? 왜 찾는 거지?!”
현주는 약간 과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놀릴거리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거든?!”
한 마디 대답과 함께 집 가는 방향이 아닌 현주가 걸어온 방향으로 향했다.
“어디가??”
집에 가던 사람이 갑자기 발걸음을 돌린 게 이상했던지 현주가 물었다.
난 현주가 들고 있는 봉투를 가리키며 답했다.
“나도 캔맥주나 좀 사서 들어가려고.”
“오~ 우리 맵찔이 술은 좀 마시나?? 같이 가 줄까??”
“됐네요~”
“아, 왜!!”
뒤에서 현주의 목소리와 함께 발소리도 가까워졌다.
“이럴 거면 왜 물어봤냐?? 완전 답정너네···”
“어?! 어떻게 알았어?! 답은 정확하게 들었지만 너 따라 갈래!!”
“······말을 말자···”
단언컨대, 현주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에 붙임성 하나는 최고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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