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친구의 연애
[띠링]
한창 TV로 못 본 드라마를 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시간상 찬영이 이제 온다는 톡일 게 분명했다.
“제발 못 온다는 톡이어라···”
난 TV에 눈을 고정시킨 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 찬영 : 떡볶이 사가는데 괜찮?? ]
“음?! 갑자기 뭔 떡볶이를 사온다는 거지??”
찬영과 난 지금까지 떡볶이를 같이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대뜸 떡볶이를 사온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 때였다.
찬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상한데 이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어. 야, 갑자기 무슨 떡···”
- 야야, 떡볶이 먹을거지?!
“아니, 갑자기 무슨 떡볶인데??”
순간 한 여자의 목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언뜻 들리기로 매운 거 잘 먹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 먹는 걸로 하고. 근데 너 매운 거는 잘 먹었던가??
“그냥 살짝?? 근데 같이 오는 사람 있냐??”
- 오케이. 잠시만.
찬영이 뭐라고 얘기하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 여보세요??
“어. 뭔데??”
- 이거 포장해서 가면 20분 정도 뒤에 도착할 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누가 같이 오냐니까??”
- 어어. 아무튼 이따가 갈게.
찬영은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고 끊었다.
어차피 짐작은 갔기 때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됐다.
“역시···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네. 아니지. 같이 온다는 거 보면 사귀는 사인가?!”
마음 속으로 은근히 부러웠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 만나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연애를 한다는 건 부러운 일이었다.
일단 내 집 상태부터 체크했다.
거실 테이블도 한 번 닦고, 거실에서 봤을 때 주방이 깔끔해 보이는지도 확인했다.
잠시 찬영과 같이 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잠깐만···”
화장실도 깔끔한 지 들여다보던 중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내 집에 여자라고는 어머니와 가스 점검하러 오시는 아주머니 외에는 들인 적이 없었다.
“세 번째로 내 집에 방문하는 여자가 내 여친도 아니고 친구의 여친이라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는 상황이라 구석구석 살폈다.
아무래도 남자의 눈보다 여자의 눈이 더 예리해서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잘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내 나름대로 단점이 없는 집처럼 보이고 싶었다.
정확하게 20분 후.
[띵동~]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누군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문을 열었다.
“자!!”
찬영이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찬영의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인사를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찬영에게 봉투를 받아 들고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 오늘은 집 좀 깔끔한데??”
“뭐래. 저번에 너 술 마시고 나한테 한 얘기 기억 안 나냐??”
“내가 뭔??”
찬영과 같이 온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와 찬영을 번갈아 봤다.
“내 집에 오는 이유가 다른 애들 집보다 깔끔해서 오는 거라면서.”
“아아, 솔직히 그건 인정. 아무튼!! 이 쪽은 내 여자친구.”
찬영이 몸을 살짝 틀어 소개했다.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조금 전에 현관에서 두 사람이 손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확신에 찼었다.
“안녕하세요. 저 한아름이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전 이진우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학원에서도 그렇고 여기 오면서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그래요?? 99%가 제 욕이었을 거 같은데···”
내가 찬영을 바라보자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찬영이에 대해서 말씀 많이 드릴···”
“자아~ 손부터 씻읍시다~”
찬영이 아름과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외투를 소파 한 쪽에 던져두고 같이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야, 화장실 좁은데??”
“괜찮다~”
[탁!]
“그냥 번갈아 손 씻으면 되지. 그리고 화장실 문은 또 왜 닫는거야?!”
씁쓸한 기분과 함께 찬영이 사 온 떡볶이를 세팅했다.
동그랗고 하얀 뚜껑을 여니 김이 확 올라왔다.
“오···”
내 식욕도 같이 확 올라왔다.
사리는 어떤 걸 추가했는지 눈대중으로 살폈다.
모차렐라 치즈에 분모자, 중국당면이 보였다.
“떡볶이 생각도 읽어보려고?!”
그 때 찬영이 큰일 날 소리를 해버렸다.
“어···?!”
나와 찬영이 동시에 아름의 눈치를 살폈다.
아름은 웃으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진짜 오늘 저녁만큼은 두 사람의 생각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뱉은 건지 찬영의 눈을 응시했다.
찬영도 내가 생각을 읽으려는 걸 알아챘는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방심··· 미안··· 죄송··· 송구··· 대역죄인··· 변명거리···
내가 눈썹을 살짝 까딱이며 빨리 변명하라고 신호를 줬다.
“아··· 아니.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표현을 내가 한 번씩 이렇게 하잖냐.”
나름 그럴싸한 변명이라 생각했다.
“빨리 앉기나 해.”
찬영이 아름을 챙기며 거실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나무젓가락을 하나씩 돌리고 음료수를 땄다.
“아, 컵을 안 가져왔네.”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컵이 있는 찬장에 집중을 했다.
“어흠!!!”
갑자기 찬영이 헛기침을 했다.
내가 돌아보니 찬영이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생각을 읽어보라는 뜻 같았다.
‘아··· 맞다!!’
찬영의 눈빛을 통해 지금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컵을 가져오면서 작은 앞접시도 챙겼다.
‘와··· 진심 큰일날 뻔했네.’
“근데 뉴스 봤냐??”
“무슨 뉴스??”
“옆 동네에서 사람 하나 또 사라졌다고 하던데.”
기분이 쎄했다.
“설마 그 연쇄살인이랑 연관 있을까···??”
“경찰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는 것 같던데??”
“야, 됐고. 빨리 먹기나 하자. 다 퍼지겠다.”
사온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먼저 덜어가라고 기다렸다.
찬영은 아름이 먼저 덜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살짝 주저하면서 찬영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아~”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왜?? 뭐 필요한 거 있냐??”
다시 돌아오는 찬영의 손에 집게와 숟가락이 들려 있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집에 손님이 찾아올 일이 잘 없었어서···”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덜어 먹는 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 괜찮아요. 저도 잘 까먹어서 누가 먼저 챙겨 주기도 해요.”
“그게 바로 나지.”
찬영이 아름의 앞접시에 덜어주며 말했다.
은근 둘이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근데 누가 먼저 고백했어요??”
아름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가 먼저···”
내가 찬영을 쳐다보자 입에 떡볶이를 넣으며 또 다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름이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오빠, 머리 아파??”
“어···어?? 아, 아니. 그냥 간지러웠어서.”
순간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꾹 참았다.
저렇게 당황해 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름이 다시 떡볶이에 집중할 때 난 찬영의 눈빛에 집중했다.
‘여친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읽어보라고···??’
찬영과 따로 얘기할 필요가 있었다.
“아, 맞다. 너 휴대폰 충전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냐??”
찬영이 눈치껏 잘 따라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맞다. 충전기 네 방에 있던가??”
다행히 찬영도 따라 일어났다.
“오빠.”
갑자기 아름이 찬영을 불러 세웠다.
“어?!”
“오빠, 휴대폰 안 가져가??”
아름이 바닥에서 찬영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아아, 난 충전기 들고 나오려고 했었거든.”
진짜 그렇게 생각한 건지 아니면 순발력인 건지 모르겠지만 잘 받아쳤다.
내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아무 서랍이나 열었다.
일부러 우리 대화소리가 안 들리게 덜그럭거리며 휘저었다.
“야, 이건 아니다.”
“아, 왜?! 그냥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봐주면 되잖아??”
“사랑은 스스로 개척해야지 나한테 그러면 되겠냐??”
“개척도 혼자보다 둘이면 더 잘 될 수도 있지!!”
“그리고 남의 사생활 엿보는 느낌 들어서 별로야.”
“놀고 있네··· 사람 눈만 보면 다 읽어제끼면서.”
“야, 아니거든?? 이제 컨트롤 가능하거든?? 독서로 따지면 속독하듯 보면 안 보이고, 정독하듯이보면 보이는··· 내가 왜 이런 걸 말해주고 있지. 아무튼 안돼.”
“진짜 부탁 한 번만 하자. 친구가 연애사업 좀 잘 해보겠다는데 그걸 못 들어주냐??”
“어, 못 들어줌. 그리고 네 여친도 마음이 있으니까 사귀겠지.”
난 침대 옆에 꽂혀 있던 콘센트에서 충전기를 뽑았다.
“아~ 여기 있었네~”
더 이상 내 방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거실에 있는 아름이 들리게끔 크게 말했다.
그리고 찬영에게 나가자는 표정을 지었다.
찬영이 뚱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보나마나 또 속으로 욕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을 읽을 때마다 일방적으로 욕을 보고 듣고 느끼던 입장이었어서 이번에는 잔머리를 굴렸다.
난 눈을 감아 보이며 손가락 욕을 날리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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