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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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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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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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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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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87화

DUMMY

“거짓말하지 마.”


태강이 말했다. 두 사람을 데리고 나온 그는 어디로 피신해야 좋을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충동적으로 이곳을 택하고 말았다. 도망쳐서 이들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지금의 심정으로 미루어 보아 또다시 눌러앉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방황을 적당히 멈추면서도 권기현에게서 나나와 도진을 안전하게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곳으로 그는 이 씨의 서점 건너편의 거리를 택했다. 순전히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거짓말은 아니에요.”


태강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소리로 받아들이자 나나는 침착하게 그의 대응을 부정했다.


“그래.”


태강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뒤돌아섰다. 이 세상 모든 행운의 무게를 짊어진 그의 어깨가 한없이 가라앉으려는 것처럼 처량해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이라고 어떻게 단정을 짓겠어? 백면도 저번에 백나나 네 꿈에 나와서 달이 어쩌니저쩌니 그런 소리만 했다며.”

“그랬죠.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이상하고 뜬금없으니까요.”

“백면이 뒤로 별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거기서 끝이라는 거야.”


나나가 곧 입을 다물었다. 이미 태강은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 둘 중에 누가 고집을 피우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만, 확실한 건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꽤 설득력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도진이 말했다.


“저 역시 최근에 와서 줄곧 느끼고 있었고요.”

“그저 느낌만으로?”


그제야 두 사람을 마주한 태강이 시무룩한 눈빛으로 여름 풍경 한가운데에 섰다. 자신이 객쩍게 굴고 있단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는 좀처럼 태도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쉽지 않을 일을 어렵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게 잘못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천규가 뭔가를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어?”

“그거야 저도 모르죠.”

“그렇다면 아닌 거지. 게다가 천규는 이 일과 전혀 관계가 없어. 천규는 그저 천규일 뿐이라고. 복잡하게 백면의 일에 끼게 하지 마.”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 거잖아요. 그리고 백면에게 있었던 일도 다 모르면서 어떻게 단언할 수가 있어요?”


기껏 등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건만 따져 묻는 나나의 기세에 태강은 도로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거야······ 우리는 하나의 존재는 아니니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태강은 딴청을 피우려고 건너편에 자리한 이 씨의 서점을 바라보았다. 안에는 손님도 없이 고요한 광경이지만, 오로지 이 씨만은 분주한 모습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시선을 빼앗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나나가 무어라 말을 더 이으려고 하다가 태강이 자신이 아닌 딴 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똑같이 따라 돌아보았다. 서점 안에는 이 씨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연스레 그 옆쪽으로도 눈길을 주었다. 그 이름 모르는 화가의 작업실 말이다. 일을 하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들던 터라, 집중하여서 이젤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서는 나나의 정신이 잠시 멍해졌다.


“잠시 나를 따라와 봐.”


나나와 태강이 아마득한 것에 홀린 것처럼 대화의 맥을 끊어버린 차에 도진이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난감해하니 갑자기 태강이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나의 손목을 붙잡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뭐예요?”


자신 역시 정신을 가다듬고 있지 못했기에 불평을 토할 수가 없어 그저 나나가 질문만을 하니 이번에는 태강에게서 아무 말이 없다. 뒤에서는 도진이 영문을 모르면서도 순순히 태강의 뒤를 따라 서점 문까지 따라왔다.


“백면의 시집 말이야.”


알아들을 수 없는 서두를 시작으로 태강은 서점의 문을 열어버렸다. 가까워진 발소리에 계산대 아래를 정리하고 있던 이 씨가 화색을 표하며 허리를 폈다. 그런데 본 적이 있는 손님들이 이곳에 온 까닭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고, 반대로 처음 보는 손님이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자 그는 퍽 당황하고 말았다.


“어, 어서 오십시오.”


고객을 응대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일인데도 사뭇 삭막한 얼굴을 대하면서 그런 반복적인 인사를 건네는 것은 난감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이 씨가 말을 더듬자 태강은 더욱 그늘이 져버린 낯빛으로 엄숙하게 나나의 손목을 놓았다.


“『거울 나라』.”

“예?”


대뜸 시집의 이름을 말하니 도통 그게 무슨 소린지를 모르는 이 씨가 살짝 숙인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되물었다.


“오늘 받은 시집 말이야.”


확실히 젊어 보이는 청년에게서 난데없이 반말을 듣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이 씨는 막상 불쾌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오늘 자신이 수수께끼의 인물로부터 더욱 내막을 모르는 시집을 건네받았다는 것을 이 청년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단 말인가.

물론 그는 태강이 자신이 계산대 밑을 정리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오늘 받은 책에 대해 한 생각을 읽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공기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한 실내인데도 등골이 오싹해진 이 씨는 함부로 입을 열 수 없게 되었다.


“그러지 말고 말해. 오늘 받은 『거울 나라』의 원본. 그거 어디에 있어?”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라고 잡아뗄 생각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자신이 시집을 받았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인정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절대로 정 교수님이 아니라면 책의 존재조차도 내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한 그는 강력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그렇다면 정안수한테는 내가 줄게. 그러니까 그걸 나한테 먼저 넘겨.”

“뭐라고요?”


이 청년은 도대체 누구이길래 마치 자신의 사고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곧바로 정 교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린단 말인가.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도움을 받기 위해 나나와 도진에게로 이 씨가 눈짓을 보냈지만, 이들마저도 놀란 얼굴을 하고는 있으나 남자를 말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나한테 주라니까? 내가 그걸 정안수한테 주면 되는 거잖아. 나 도둑질 같은 거 하지 않아. 그 정도로 철없지는 않다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교수님한테 대신 전해드릴 것도 약속드릴 수 있으니까요.”


여전히 알아듣기 힘든 소리만을 하는 청년의 옆에서 도진이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얼굴색이 파리해진 이 씨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은 아찔한 느낌에 잠시 눈을 아래로 깔고 찡그렸다.


“혹시 그 노인이 이야기를 전한 겁니까?”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에서 가장 확률이 높고 이론적으로도 이해하기 쉬운 쪽을 택해서 이 씨가 물었다.


“아니. 안 그래도 그걸 누구한테 받았는지 물으려던 참이었는데, 노인이라고? 그 노인이 누군지 알아?”


손님을 접대한다 생각하고 꿋꿋하게 말을 길게 하는 자신과 다르게 태강은 눈치도 없이 반말로 자신의 대답을 재촉한다. 이 상황이 괴상하고 묘하게 못마땅하여서 이 씨는 얼마간 말이 없었다.


“이름은 들었어? 아니면 자기에 대해서 뭘 말한 게 있거나.”


하지만 태강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모릅니다. 시집을 전하고서 그냥 나가셨으니 알 리가 없지요.”


돌아오는 대답이 시원치 않자 눈썹을 팔자로 굽히며 태강은 실망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었다. 그래도 지친 모습은 금방 회복되어서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선 그 시집을 좀 줘. 어차피 정안수는 오늘 여기 올 생각도 안 했으니까.”

“댁이 누구신 줄 알고 내가 그런 물건을 막 넘긴단 말입니까?”

“나?”


태강은 삿대질로 자신을 가리키며 양옆에 있는 나나와 도진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나야······ 나는 말이지.”


정체를 밝혀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던 그가 뜸을 들인다. 하지만 좋은 수가 떠올랐다는 듯이 태강은 입꼬리를 아주 명랑하게 올렸다.


“나는 조카거든.”

“조카라고요? 조카가 삼촌의 이름을 그리 함부로 막 부릅니까?”

“응. 원래 워낙 편한 사이라서. 그러니까 그걸 줘. 당신, 이 애들도 모르지 않을 거 아니야.”


그러면서 태강은 다시금 나나와 도진을 번갈아 보며 턱짓으로 두 사람을 가리켰다. 그야 그것은 사실이기에 이 씨는 수상히 여기면서도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시선으로 태강을 대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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