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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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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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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3. 떨어진 곳이 하필 1

DUMMY

1.


“이런, 망할···.”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눈꺼풀이 무겁더니만.


급기야는 아슬아슬 짊어지고 있던 배낭을 떨어뜨렸고···.


그걸 잡으려 팔을 뻗다가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건우는 총알처럼 떨어지는 배낭을 보면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순간 허우적대며 중심을 잡아보려 애쓰지만, 자꾸 몸은 비틀리기만 했다.


엎치락뒤치락 몸을 가눌수록 점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는 건우.


건우는 떨어지는 배낭을 보며 연신 비명을 질러댄다.


게다가 갑자기 퍼덕대서 그런 걸까.


몸에 붙어있던 깃털 수십 개가 빠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기까지 했다.


바스룸에 가득하던 수증기가 거의 다 걷히자 줄리는 하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청명한 하늘이었다.


하나 가득 물감을 풀어 멋진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을 정도로.


줄리는 LA 야외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하던 자신의 모습을 저 푸른 하늘에 그려보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상상의 붓을 들어 시작점을 막 찍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시야에 작은 점 두 개가 들어오더니 점점 커지면서 다가왔다.


“으응?! 저게 뭐지?”


줄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일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버렸다.


촤~아아아아아엄~~~벙······쿠웅!!!!!!!!!!!!!!!!!!!!!


요란한 물보라에 이은 강렬한 부딪침.


이건, 실로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격하게 비명이라도 질러야 마땅한 상황이 바로 이와 같을까?


하지만 너무 놀라 완전히 얼이 빠진 줄리.


입을 벌린 채 감전된 물고기처럼 미세하게 파닥거리기만 한다.


벌어진 줄리의 입안으로 허우적대는 그 무언가가 일으키는 물방울이 튕겨 들어왔다.


“어푸~ 어푸~ 에고오오.”


몸에 물이 닿자마자 도력이 풀려버린 걸까.


건우는 다시 사람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오! 머리야··· 나 죽네!”


욕조 안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건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떨어지면서 단단한 바닥에 정수리 부분을 찧을 것 같은데 심상치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손으로 더듬어 보니 작은 혹이 하나 만져졌다.


“이런, 이게 뭐야?”


그래도 피가 만져지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본능적인 공포는 사그라들었다.


건우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공간이었다.


바로 앞에는 웬 여자가 헐벗은 채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망함에 얼른 시선을 돌렸으나, 건우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인 걸 확인한다.


“으··· 허어어억!”


건우는 괴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옆에 둥둥 떠 있는 배낭을 잡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이런 낭패가··· 도력이 풀렸을 때 외는 주문을 일성 법사가 가르쳐 준 것도 같은데. 그게 뭐였더라?’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린 건우는 벌게진 얼굴로 눈앞의 여자를 힐끔거렸다.


낭패감, 민망함, 무엇보다도 기가 막힌 상황.


그런데 이런 복잡한 심경도 잠시···.


건우는 힐끔댈 때마다 망막에 퍼즐 조각처럼 들어와 맺히는 여자의 얼굴에 자꾸만 신경 쓰였다.


매끄러운 얼굴선.


보기 좋게 돋은 이마 하며.


텅 빈 듯 가득 찬 듯 가늠하기 힘든 눈동자.


또 그사이를 흘러내리듯 가르고 내려와 얼굴의 중앙에 자리 잡고 앉은 콧날···.


그러나 무엇보다도 압권은 삐딱하게 비틀어 문 빨간 입술이었다.


그 탐스러운 입술이 씰룩일 때마다 흰 이가 슬쩍 드러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을 비웃는 듯 도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남성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했다.


건우는 기억 속에서 어떤 낯익은 얼굴 하나를 끄집어내려 애를 썼다.


‘저 여자, 분명 어디서 봤는데!’



2.


줄리는 기가 막혔다.


열린 유리 천장을 통해 떨어진 괴물체라니.


욕조에 담긴 물을 절반 이상이나 날려버린 건 그렇다 치자.


오늘 개시하는 히노끼 욕조 바닥에 감히 구멍을 내다니.


정신이 돌아온 줄리는 물이 조금씩 새고 있는 깨진 바닥 부분을 발끝으로 더듬거렸다.


그러면서 그 괴물체를 노려보았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저렇게 홀딱 벗고 있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황당함이 가라앉자 분노가 스멀스멀 치고 올라왔다.


줄리의 매끄러운 얼굴 근육이 거칠게 꿈틀댔다.


꿈틀거림은 바로 탐스러운 입술로까지 전해졌다.


“다, 당신···!”


차갑게 쏘는 줄리의 말투와 시선이 건우에게로 날아들었다.


건우는 움찔대며 줄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오래 머물지 못하는 그의 시선.


곧 다른 곳으로 돌아가 버린다.


어느새 줄리의 가슴 부분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깨진 욕조 바닥 새로 물이 빠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건우의 민망한 반응에 당황한 줄리는 얼른 사이드 테이블 위에 있던 바스 타올을 집어 들었다.


“당신, 뭐야? 도대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둘 사이의 어색함을 가르는 줄리의 외침이 바스룸을 울렸다.


‘아, 어떻게 말해야 하지?’


눈으로는 힐끔, 입으로는 씰룩.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건우는 속이 타들어 갔다.


“경찰에 신고할 거야!”


잔뜩 힘이 들어간 위협적인 그녀의 말이었다.


건우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경찰! 경찰이 들이닥치면, 아빠가 알게 되고, 그러면 난···!’


건우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면서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지금 이건 현행범으로 꼼짝없이 쇠고랑 차는 상황이 아닌가.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아까 도력이 풀려 다시 사람의 몸이 된 걸 제대로 지켜본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사실대로 모든 걸 다 말하면 과연 얼마나 믿어줄까?


건우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동안 건우와 줄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건우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청운당이란 법당에서··· 도술을 익히는 법사입니다.”

“······?!”

“독수리로 변해 하늘을 날다가 배낭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것을 잡으려다가 이렇게 그만···.”

“······?!”

“경찰에는 제발 알리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


크게 벌어진 줄리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줄리는 한동안 이 허무맹랑하고, 어이없으면서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남자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물에 젖었음에도 여전히 삐죽대는 더벅머리.


군데군데 드러난 여드름과 주근깨.


제법 많은 눈물을 담아낼 것만 같은 눈 하며.


아기 손가락만 한 크기의 콧날.


그리고 그 아래 수박빛의 입술까지.


좀 어려 보이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정신세계만큼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남자.


이렇게 자신만의 평온한 아침을 무자비하게 뒤엎어 버린 외계인 같은 남자.


줄리는 인상을 쓴 채로 그를 계속 노려보았다.


그 사이 욕조 안의 물은 훌쩍 더 줄어들어 있었다.



3.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위윙~ 위이이잉~ 위이이잉~


원격 촬영을 마친 드론이 크게 선회하더니 방향을 틀었다.


제법 날렵한 모양새의 작은 비행체가 창공을 가르는 모습은 우아하기만 하다.


소음도, 바람도, 그림자도 흘리지 않는 드론.


드론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 쪽을 향해 날아갔다.


으슥한 야산 공터의 한구석.


원격 모니터 화면으로 촬영된 사진을 보고 있던 스나이퍼 박이 헤벌쭉 웃었다.


“우~하하하핫! 이거 완전 대박인데!”


두 팔까지 번쩍 치켜드는 게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 같다.


그는 전율이 느껴지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주로 유명인들의 은밀한 사생활과 치부를 몰래 찍어 폭로 매체에 파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남자.


스나이퍼 박!


원 샷! 원 킬!


그의 이름처럼 그가 찍은 사진들은 전부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그에게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에 연예계를 영원히 떠나버린 연기자며 가수들이 벌써 몇 명째인가.


사진이 찍힌 후, 그가 제시한 협상에 응하지 않아 정계 은퇴 기자회견까지 한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은 또 어떻고.


여고생과 키스하는 장면을 찍힌 노년의 원로배우 이영길.


식당에서 술에 취해 오줌을 싸다 촬영 당한 민국당 총재 윤지석.


새벽에 여대 캠퍼스에서 나체인 채로 조깅하다 딱 걸린 영장전담 판사 김복성.


팬들과 함께 대마 연기로 도넛 만들기 내기를 하다 잡힌 아이돌 그룹 글리세린은 또 어떻고.


그뿐인가?


한 학부모와 바람이 나 한강 둔치에서 카섹스를 벌이다 찍힌 수능 일타강사 권철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 재벌총수에게 성 상납을 하고 나오다 잡힌 국민 여동생 김주희에 비할까?


아, 끝이 없다.


물론 유명인들에게 그는 저승사자처럼 끔찍한 괴물일 것이다.


하지만 폭로로 먹고사는 매체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는 달콤한 설탕물과도 같은 사람.


이놈 저놈이 쓴 기사를 긁어모아 짜깁기 신공으로 근근이 연명하던 듣보잡 찌라시들.


존재감도 미미하던 것들이 어느 날 그의 사진 한 장으로 연일 포털 조회 탑을 찍기도 했고.


순식간에 파워 매체로 도약한 곳도 여럿 된다.


한 문화평론가는 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연예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은 BW, JM, YUP와 같은 연예기획사가 아니라 바로 폭로 매체라고.


아, 그런··· 스나이퍼 박!


그가 오늘도 달콤한 한 건을 올렸는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떨리는 그의 몸은 드론이 가까이 다가오자 발작으로 오해받을 만큼 격렬해진다.


뒤로 묶은 말총머리 위로 푹 눌러 쓴 벙거지를 벗어들자 선글라스를 쓴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며칠 지난 식빵처럼 푸석해진 얼굴에 간혹 보이는 잔주름들.


건조하게 갈라진 입술과 군데군데 하얀 선인장 같은 턱수염까지.


사십 대 후반인 그의 나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세월의 흔적들이다.


잠시 후 드론이 바닥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호쾌하게 외쳐댔다.


“넌 이제 끝났어! 그렇게 잘난 척 튕기면서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더니 말이야··· 아이고 고소해라, 우하하핫!”


검은 선글라스 안에서 뱀처럼 웃고 있는 눈이 꿈틀댔다.


“널 몰래 추적한 지가 벌써 일 년 반인데 이제야 만족할 만한 결실을 보는구나··· 하하하하하핫”


스나이퍼 박은 핸드폰의 주소록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누군가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투박한 손과 굵은 손가락이었지만, 움직임만은 단호하고 민첩했다.


신호음이 꽤 오래 이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통화가 연결되었다.


“신 기자!”


쩌렁쩌렁한 스나이퍼 박의 목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그는 상대의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거추장스러운지 중간에 말을 끊어버렸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본론을 꺼내놓았다.


“이봐, 내가 달콤한 거 하나 건졌어. 내가 방금 누굴 찍었는지 알아? 들으면 바로 기절할걸. 이거 말이야··· 한 장당 적어도 일억은 줘야 할 거야.”


‘일억’을 발음할 때 그의 목소리에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니, 일억이 뭐야? 십억은 받아야겠어!”


계속 버럭대는 외침이 공터를 울렸다.


바닥을 쪼던 비둘기 몇 마리가 놀랐는지 퍼덕 날갯짓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스나이퍼 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큰소리로 입을 놀려댔다.


“십억이라고··· 십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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