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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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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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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4. 손님맞이 1

DUMMY

1.


“그래, 그럼 내가 너희들을 믿겠다.”


운천은 제자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유정은 180cm가 넘는 거구이다.


그런 그가 스승의 손길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지 연신 허리를 굽힌다.


상체가 흔들릴 때마다 진한 눈썹과 두툼한 입술도 덩달아 꿈틀댔다.


만봉도 감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정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인 만봉.


오늘따라 그의 검은 피부가 탄력을 받아 반짝였다.


펑-!

퍼벙-!


하늘을 보며 수인을 맺은 유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그 옆에 서 있던 만봉의 모습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이어서 창공을 솟아오르는 두 마리의 송골매가 보였다.


올 때는 작은 새였지만 돌아갈 때는 큰 새라!


지금 상황이 급하고 위중하니 빨리 돌아가서 손을 쓰겠다는 의지였다.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청운당의 소란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스승 운천.


그런 그에게 둘의 이런 모습은 만족스럽고 대견스러울 것이다.


운천은 두 제자가 멀어져가는 걸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운천과는 달리 그 옆에선 정철은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저들이 과연 일성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아까부터 차오른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유정이나 만봉, 둘 중 하나만 보내면 버겁겠지만, 둘을 같이 보내면 해볼만 할 것이다.’


정철은 아까 운천이 넌지시 언급했던 게 다시 떠올랐다.


그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글쎄···.’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불편한 경쟁자인 일성!


어린 시절부터 함께 도술을 익히면서 봐온 그의 잠재력!


거친 도술 스타일!


또 간혹 감정을 자제 못 하고 힘을 감당 못 해 터져 나오던 무시무시한 파괴력!


그런 일성이 나중에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상상하며 소름 끼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승 운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잠재력이 품고 있는 씨앗은 다름 아닌 ‘살기’라는 걸.


상대를 압도하는 걸 넘어서, 압박하고, 해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무시무시한 기운.


스승 운천이 어느 순간부터 일성보단 정철 자신에게 더 관심을 두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테다.


조직의 구성원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가 반드시 좋은 리더가 되는 건 아니다!


누구나 후계자를 고민해야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승도 일성과 정철 자신의 차이를 헤아리고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영력을 제어하면서 도술을 쓰는 제자와 그렇지 못한 제자의 차이를.


그리고 또 하나.


언젠가는 일성의 파괴력이 정철의 자제력을 찢어발기는 날이 온다는 것도.


또 스승을 짓밟고, 어쩌면 청운당까지 짓밟으리라는 것도.


사실, 스승이 조금 전처럼 솔선하여 일성과 맞서려 했던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정철은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수선한 표정을 계속해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들이 만약 일성을 잡는 데 실패하면 그때는 어쩐단 말인가?”



2.


명선봉과 토끼봉이 보이자 유정이 갑자기 속력을 줄였다.


“우리 좀 쉬었다 갑시다. 한쪽 날개가 뻐근하오. 무슨 맞바람이 이리 거세단 말이오.”


날개가 아프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만봉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작은 새도 아니고 송골매로 변한 마당에 이 정도 맞바람 가지고 뻐근하다니.


‘또 어디 내려앉아서 노가리를 풀고 싶은가 보지.’


속셈을 간파한 만봉은 유정을 슬쩍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유정과 만봉은 동향이고, 청운당에도 거의 같은 때 들어온 사이다.


게다가 나이까지 같고, 성격도 비슷하니 항상 붙어 다닐 때가 많았다.


이처럼 형제처럼 의지하며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니, 척하면 척!


서로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하나의 차이라면 유정이 주변 일에 관심이 많은 반면, 만봉은 그저 자기 앞만 보고 사는 스타일.


계곡 한구석으로 만봉을 이끈 유정은 바로 회복술을 펼쳤다.


펑!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유정이 괜스레 팔이 아픈 시늉을 하며 계곡물에 입을 댔다.


펑!


뒤따라 내려와 회복한 만봉은 조금 거리를 두고 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계곡물을 벌컥대며 들이켠 유정은 요란하게 물을 튀기며 세수까지 해댔다.


“아이고, 시원해라!”


유정은 내친김에 법복 안으로도 물을 끼얹었다.


다시 몸을 세운 그는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한 몰골로 타박타박 걸어왔다.


“잠시 쉬기도 하고, 자네하고 얘기가 좀 하고 싶어서 말일세.”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속셈을 드러낸다.


“이보시오 유정, 지금 상황이 엄중한 걸 모르시오? 일성 법사가 미쳐 날뛰고 있고, 송담과 영일 법사까지 저리되었소이다.”


만봉은 다그치던 스승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유정을 채근했다.


하지만 유정은 태연하기만 하다.


“에헤이··· 이 사람, 명선봉과 토끼봉이 보이는 곳까지 왔으면 거의 다 온 거나 마찬가지 아니오? 여기서 힘을 좀 채우고, 작전도 좀 세우고 그래야 일성을 맞서지 않겠소이까?”


말은 청산유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일성과 맞서기 위해 작전을 세우는 자의 결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어 던지는 말이 좀 뜬금없었다.


“이보시오, 만봉! 청운당이 앞으로 어찌 될 것 같소이까?”


의도를 알 수 없는 물음에 만봉의 눈이 가늘어졌다.


“게 무슨 소리요?”

“하하··· 아니, 이 사람!”


유정은 먼 산을 보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뗐다.


“정말 모르는 거요, 아니면 원래 그리 둔한 거요?”

“······.”


씨익 웃다가 다시 굳은 얼굴이 된 유정이 만봉을 노려보았다.


“청운당의 법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소이다. 일이 이리된 건 일성 때문이 아니라는 걸.”


만봉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소리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않는 유정은 만봉의 낯빛을 계속 살폈다.


“이게 다 스승님 때문이란 말이오! 모르셨소이까?”

“아니,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요?”


두 사람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자 분위기가 사뭇 어색해졌다.


유정은 만봉을 달래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풀어놓는다.


“일성이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니었소. 기억 못 하시오?”


유정은 스승 운천이 청운당의 후계자를 넌지시 비쳤을 때를 말하고 있었다.


만봉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다들 일성을 꼽고 있었는데, 스승은 애매하게 정철인 듯한 암시를 줬던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란!


돌이켜 보건대, 그때부터 일성이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다른 법사들은 다들 예견하고 있었소이다. 조만간 청운당에 큰 변고가 생길 거란 걸. 이건 건우, 그 조무래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오.”


만봉은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보시오! 일성이 왜 송담을 죽이고 영일을 저리 만들었다고 생각하시오?”


이어지는 유정의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스승님을 떠나오기 전까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사실이 있다면 또 심란할 테니까.


“다른 이들은 모르겠는데, 송담과 영일은 정철과 가까운 이들이라오.”


아, 역시나···.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때의 그 일이 있고 나서, 청운당은 한때 술렁였었다.


일성으로 기울어졌던 구도가 한순간에 뒤집히자, 정철과 가까이 지내려는 이들이 늘었고.


어느 순간 5대5의 구도가 되었다가, 이제는 정철을 따르는 이가 더 많아진 상황.


후계자니 뭐니 하는, 그런 정치적인 일은 속세의 영역이라 멀리했었는데.


속세나 여기나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였다.


“만봉! 나는 돌아가서 일성과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을 거요.”

“무··· 무슨,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눈앞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에 만봉은 정신이 잠시 혼미해졌다.


“어허! 나를 따라나설 때 대충 분위기 파악하고 있는 줄 알았구먼, 아니었나 보네···.”

“분위기 파악이라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유정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만봉을 응시했다.


알 수 없는 그의 얼굴만큼 그의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어느 쪽에도 붙지 않는다는 말이외다.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만봉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할 말을 잃은 표정이 이어지자 유정이 다시 말했다.


“후계자가 정철로 굳어질지, 다시 일성으로 뒤집힐지 모르니 섣부르게 척지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만봉은 벌어졌던 입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입은 힘겹게 겨우 움직였다.


“그럼 양쪽에는 각각 뭐라 하려고 그러는 게요?”


유정이 빙그레 웃었다.


“만봉 법사는 참 답답하시오. 생각해 보시구려. 아까 우리가 스승과 정철을 대신해서 일성과 맞서겠다고 나섰으니, 저들은 우리를 같은 편이라 생각할 거요.”


만봉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일성을 만나서도 싸우기를 포기하고 적의를 거둘 것이오. 그럼, 일성과도 무난한 사이가 되는 거요. 적어도 죽이지는 않을 거란 말이오. 송담 같은 죽음은 개죽음이 아니오?”


만봉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머릿속도 마구 헝클어져서 정신이 없었다.


“두고 보시오. 청운당의 새 주인이 확실히 정해질 때까지 이런 혼란은 이어질 테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요.”



3.


청운당 주변을 두르는 여러 겹의 방어진이 완성되었다.


진입로 초입에서 청운당 앞까지 영력을 불어넣은 나뭇잎도 다수 뿌려놓았다.


무언가가 그것들을 스치기만 해도 날카롭게 바스러지는 소리가 일성의 귓전을 울릴 것이다.


오전부터 시작하여 점심이 훌쩍 지나 끝이 났으니 꽤 공을 들인 셈이다.


일성은 자기 작품을 돌아보며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다.


‘방어진에 걸리면 모든 걸 잊고 잃을 것이다. 시간개념도 잊고, 공간개념도 잊고, 또 힘도 잃고···. 설령 뚫고 들어온다 해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부적을 쓴 후 삶아 먹은 닭의 뼈가 마당에서 뒹굴고 있었다.


일성은 입맛을 다시면서 몸을 일으켰다.


한 손의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공중으로 들어 올리자 흩어져 있던 닭 뼈가 붕 떠올랐다.


이어서 일성의 입에서 굵고 짧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하압!”


닭 뼈는 마치 조립식 로봇이 합체되는 것처럼 서로 달라붙더니 닭의 형체를 이루었다.


삐거덕- 삐거덕-


합체된 닭 뼈는 지면에 발을 디디자마자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닭처럼.


부리로 바닥도 쪼고.


날갯짓도 하면서.


“술과 고기라더니, 술과는 또 다른 별천지의 맛이로구나!”


제대로 된 육식이란 걸 사실상 처음 경험한 일성은 몹시 속이 상했다.


“이 좋은 걸 수련에 방해된다고 금하다니···.”


혹시, 운천은 우리들 몰래 고기를 챙겨 먹어왔던 건 아닐까?


아이처럼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묘한 쓴웃음이 돌았다.


사실, 자신들의 이런 모습 자체가 웃기지 않은가?


청운당은 등록된 절도 아닐뿐더러, 자신에게 승적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승려 차림을 한 자들이 무슨 머리를 이렇게 기르고 도술까지 배우나?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한 점은 고맙다만···.


일성은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품었던 의문들을 하나하나 다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운천 스승님··· 몰래 여자라도 숨겨 놓고 사시는 건 아닌가? 후훗!’


그때였다.


탕-!


하는 총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일성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렵꾼인가?”


보통 동절기가 사냥 시즌일 텐데 의외였다.


일성은 머리가 갸우뚱 기울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일성은 순간 멈칫하더니 눈이 커졌다.


“아니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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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7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5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46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24.01.19 21 1 11쪽
45 045. 안 보이나 느껴지는 2 24.01.18 21 1 12쪽
44 044. 안 보이나 느껴지는 1 24.01.17 20 1 11쪽
43 043. 차가운 남풍 3 24.01.16 21 1 11쪽
42 042. 차가운 남풍 2 24.01.15 16 1 12쪽
41 041. 차가운 남풍 1 24.01.13 18 1 12쪽
40 040. 인사발령 2 24.01.12 16 1 11쪽
39 039. 인사발령 1 24.01.11 21 1 11쪽
38 038. 악귀나찰 2 24.01.10 18 1 12쪽
37 037. 악귀나찰 1 24.01.09 25 1 11쪽
36 036. 잠입 2 24.01.08 26 1 11쪽
35 035. 잠입 1 24.01.06 23 1 11쪽
34 034. 로드매니저, 건우 3 24.01.05 23 1 12쪽
33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24.01.04 27 1 12쪽
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8 1 12쪽
31 031. 방어진 4 24.01.01 28 1 11쪽
30 030. 방어진 3 23.12.30 32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33 1 11쪽
28 028. 방어진 1 23.12.28 36 1 11쪽
27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4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8 1 11쪽
25 025. 손님맞이 2 23.12.25 50 1 11쪽
» 024. 손님맞이 1 23.12.23 40 1 12쪽
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9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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