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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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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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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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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2. 야반도주 2

DUMMY

3.


쉬지 않고 내달리던 건우가 마침내 속도를 줄였다.


“아이고··· 나 죽네··· 헥헥···.”


겨우 멈춰서서 양 무릎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이자 머리가 핑 돌았다.


가랑이 사이로 미끄러지듯 지나온 골짜기의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턱까지 찬 숨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얼굴 주위를 맴돌다 입안으로 날아든 날파리까지 호흡을 더욱 괴롭게 하고 있었다.


짜증 섞인 손부채질로 날파리를 쫓으며 애써 숨을 고르자 좀 진정이 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거친 맥박은 여전히 몸 구석구석까지 울리고 있었다.


건우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보았다.


장시간 어둠에 눈이 익어서인지 주변 사물은 분간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제법 실한 나뭇등걸이 보였다.


얼른 그 위에 걸터앉자 양 허벅지에서 뻐근함이 올라왔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뛴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허벅지를 열심히 주무르다가 여전히 열기로 후끈한 얼굴에 손이 갔다.


여드름이 오른 양 볼엔 땀이 흥건했다.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치켜들자 더벅머리에서도 땀이 흘렀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과 달이 드문드문 보였다.


지리산 중턱의 빽빽한 나무숲이 이제 제법 옅어져서일까.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길이라도 잃은 줄 알았던 근심은 금세 잦아들었다.


거친 숨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건우는 배낭 안에서 물병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에이씨, 물은 이따가···.”


건우는 물보다도 핸드폰이 더 급했다.


전화는 고사하고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


푸세식 화장실에 수도도 없어서 폭포수를 길어 써야 하고.


장작을 패서 밥을 짓고 난방도 해야 하는 곳.


인터넷? 와이파이?


그런 건 꿈같은 소리이던 도사들만의 은둔지, 바로 청운당!


그런 끔찍한 오지에서 일 년도 넘게 갇혀 있었다니···.


건우가 누구인가?


해가 뜨면 걸그룹 <아이러브>의 스케줄을 밀착 마크하고···.


해가 지면 SNS, 블로그, 또 게시판 여기저기를 들쑤시면서 살아온 만랩 사생팬이 아니던가?


사생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생은 어엿한 상위문화··· 탄압하지 마라!


사생은 팬덤 한류! 이를 산업으로 인정하라!


그의 이런 신념을 <사생의 길>과 <사생 매뉴얼 101>이란 연재 글로 담아내기까지 했던 건우.


그의 말과 글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바로 여론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한동안 온라인과 단절된 채로 살았으니.


뭐, 물론···!


건우가 지금 이렇게 된 건 당시 아버지에게 신뢰감을 안겨드리지 못했기 때문인 건 맞다.


세상 그 어느 아버지라도 집요함을 넘어 정신병적으로 사생질을 하는 고3 아들을 곱게 봐줄 리 만무한 법이니까.


결국, 아버지는 그런 문제의 아들을 ‘치유’라는 명목으로 지인이 있는 청운당에 은밀히 보내버렸다.


치유라, 훗! 뭐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시점에서 건우에게 통신 욕구가 간절한 건 너무도 당연하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손에 쥐자 가슴이 두근대는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변했을까. 아, 그리고 우리 아이러브는···.”


전원 버튼을 누른 후 화면이 뜨기까지가 꽤 길게 느껴졌다.


통신사 로고가 반짝이는 걸 지켜보는 건우.


순간 이틀 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 혹시 몰라서 몰래 충전을 해둔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매달 한 번, 생필품을 사러 아랫마을에 다녀오는 일성 법사!


후훗-! 웬일로 그날따라 들고 올 게 많다며 날 데리고 가더니.


슈퍼에서 몰래 산 술을 마시고 취해서 그대로 길바닥에 널브러질 줄이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가져가길 잘했지.


덕분에 그가 깨어날 때까지 슈퍼에서 몰래 두어 시간 정도를 충전하지 않았던가.


평소 답답할 정도로 어리숙하고 순박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만은 없는 사람!


일성은 그날 그렇게 충전할 기회를 준 것 외에도 건우 자신과 꽤 살갑게 지내던 사이였다.


다소 냉랭한 다른 도사들과는 달리 말동무도 자주 되어주고.


슈퍼에서 장을 봐올 때마다 맛난 군것질거리도 몰래 사다 주고.


또 심지어는 재미있는 도술을 몰래 까지 가르쳐주기까지···.


“일성 법사님! 이게 다 법사님 덕분입니다. 후후훗!”


핸드폰 화면이 밝아지자 건우의 주변도 환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통화권 밖인지 핸드폰은 어떤 신호도 잡지 못한다.


“하아··· 좀 더 내려가야 하나?”


건우는 그제야 곁에 세워둔 물병을 집어 입에 댄다.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소리가 꽤 우렁차게 울렸다.


바싹 마른 흙에 묻혀있던 뿌리가 수분에 반응하듯 물을 흡수한 건우의 몸은 금세 활기를 찾는다.


끙- 소리와 함께 다시 몸을 일으키는데 열린 배낭 사이로 부적 뭉치가 보였다.


건우는 내디디려던 발을 잠시 멈칫한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그래, 아무래도 작업을 좀 해 놓는 게 안전하겠지···.”


그렇다!


건우는 지금 법사들의 추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 그가 이렇게 판단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새벽기도를 준비하는 정철 법사가 눈치챘을 것이다.


게다가 부적까지 전부 사라진 걸 확인했다면···.


스승 운천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테고, 그러면 그다음은 안 봐도 뻔하다.


산속에서 수십 년을 산 법사들이다.


이 정도 거리는 따라잡는데 대충 한 시간이면 족할 것이다.


만에 하나, 그렇게 다시 잡혀서 아빠한테까지 이 얘기가 들어가면···.


그땐 정말이지 영영 다시 못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이번에는 어쩌면 아예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불길한 생각이 극단까지 치닫자 건우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배낭을 쑤신 손이 부적 다섯 장을 냉큼 뽑아 들었다.


건우는 그것들은 주변의 굵직한 나무와 큼지막한 바위에 하나씩 붙였다.


두 장의 부적은 다가오는 자를 미혹시키는 성질의 것.


또 다른 두 장의 부적은 나무와 사람을 혼동시키는 것이었다.


정신을 모은 건우는 양손 엄지와 검지를 뻗어 수인을 맺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기백을 불어넣었다.


부적이 붙은 바위가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어서 나무의 줄기와 바닥에 드러난 뿌리가 서로를 당기며 얽히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몇 걸음 떨어져서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얽힌 나무가 바위에 기대어진 게 사람이 바위에 걸터앉은 것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건우는 다음으로 서 있던 자리를 발로 한 번 힘껏 굴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희멀건 안개가 땅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바닥을 휩쓸고 다니던 안개는 순식간에 건우의 가슴 부분까지 차올랐다.


단단한 방어진이 제법 근사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시도치고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 생각했던 걸까.


“후훗! 아주, 아주, 아주 마음에 들어!”


건우는 웃으면서 배낭을 어깨에 둘렀다.


손에 쥔 마지막 남은 부적은 공중으로 던졌다.


새소리 비슷한 주문을 읊자 가벼운 파열음이 울렸다.


펑-!


아직은 어두운 숲길.


그 어둠만큼이나 검은빛의 큰 독수리 한 마리가 거친 날갯짓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이고···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 걷겠다. 이 정도 떨어진 거리면 도술을 쓴 걸 못 알아채겠지?”


익숙하지 않은 날갯짓에 독수리로 변한 건우의 몸이 자꾸만 곤두박질치려 했다.


그때마다 나뭇가지에 날개를 부딪쳤고, 몇 번을 그러고 나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지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저 멀리서부터 새벽하늘이 번지고 있었다.


건우는 그곳을 바라보며 힘껏 날개를 퍼득댔다.



4.


천장이 열린 부가티 베이런 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이 상쾌했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


서울 공기에는 이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다.


이런 화창한 날에는 도심을 운전하는 누구라도 잠시 차창 밖으로 한 손을 내밀고 싶을 것이다.


“흐음··· 오늘은 날씨가 완전히 샌프란시스코네!”


모닝 드라이브 마치고 귀가 중인 이는 한류스타 줄리 한이다.


줄리 한은 아침 태양이 솟는 걸 보면서 한 손으로 선글라스를 썼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다른 때도 아니고 그녀가 유독 이 시간에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유랄까.


그건 다름 아니라, 그녀가 탄 슈퍼카가 제 속도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가 바로 지금 새벽 무렵이기 때문이다.


저녁 시간에는 돈 자랑으로 주접떠는 추한 졸부들이 너무 많아서 패스.


아침에는 출근한답시고 꾸역꾸역 밀려 나와 온 도로를 점령하는 서민들 때문에 패스.


낮 동안은 어딜 가나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패스.


그러다 보니 남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새벽 시간뿐.


공연차 해외에 머물 때는 속도 무제한 하이웨이에서라도 맘껏 달려보지만···.


이곳 한국에선 이렇게 가끔 차를 몰 고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무척 답답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핸들을 꺾어 자택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환하던 줄리의 얼굴엔 조금씩 아쉬움이 번졌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에서의 드라이빙 시간은 너무 짧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짧아서일까?


그 어떤 나라에서의 드라이빙보다도 짜릿한 매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루도 끊을 수 없을 만큼.


차고에 차를 집어넣으며 시무룩하던 줄리는 뭐가 또 생각났는지 다시 표정이 밝아진다.


차고 벽에 차 키를 대충 걸어놓고 후다닥하니 2층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선 경쾌함마저 느껴졌다.


자택 2층은 대형 바스룸과 파우더룸이 있는 곳.


그렇다! 히노끼 욕조···!


그간 얼마나 바빴던지 줄리는 새로 구입한 히노끼 욕조를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써보게 된 거다.


줄리의 두 뺨은 벌써 기대감으로 발그레해져 있다.


바스룸 문을 밀어 열자 향긋한 목재 향이 그녀를 반겼다.


대여섯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욕조.


부드러운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고급스럽게 마감된 욕조 안에는 더운물이 가득 차 있었다.


줄리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욕조 안을 들여다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역시, 윤 집사···!”


어젯밤 잠들기 전 윤 집사에게 욕조를 써보고 싶다고 슬쩍 흘리면서 말했던 것 같은데.


항상 꼼꼼한 윤 집사는 그걸 잊지 않았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줄리는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욕조 안에 들어가 몸을 뉘었다.


나른한 쾌감이 온몸을 감싸자 물에 닿은 세포 하나하나가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세상 다 가진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줄리는 행복한 상상이 차오르자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마지막으로 따스한 욕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 게 언제쯤이던가?


한 손을 밖으로 뻗어 사이드 테이블 위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OPEN’이라고 적힌 둥근 버튼을 누르자 바스룸의 유리 천장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열렸다.


바스룸을 가득 채우고 있던 더운 수증기가 열린 천장을 통해 서서히 빠져나갔다.


줄리는 점점 맑게 드러나는 푸른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


서울 상공 어딘가를 날고 있던 건우.


“끄아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갑자기 급강하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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