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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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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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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4. 협상 1

DUMMY

1.


줄리의 집, 파우더룸.


통화가 끝났다.


파우더룸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건우는 앙드레와 줄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누가 먼저 뭐라고 얘기를 해주길 바랐다.


먼저 입을 연 건 줄리였다.


“잘됐어! 나도 같이 가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겠어.”


앙드레는 그런 줄리의 말과 용기에 내심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미안한 건 사실이었다.


상대가 줄리까지 불러 내리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사진사와 동행하라고 요청한 것에 대한 대응조치일까.


단순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역으로 이쪽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워낙에 교활하고 사악하기로 유명한 놈이기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당사자인 줄리가 이렇게 직접 움직이는 건 위험한 일이다.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설마··· 놈이 현장에다가 몰래카메라 같은 걸 설치하거나 하는 건 아니야?’


앙드레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전 내일 먼저 가서 숨어있을게요.”


앙드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별안간 건우를 돌아보았다.


“아니, 혼자 가지 말고 윤 집사님하고 같이 가.”

“네에? 왜요? 혼자 가서 다 할 수 있는데요···.”


입을 삐죽 내민 건우를 보고 줄리도 거들고 나섰다.


“그래, 믿을 수 없는 놈들이라고! 앙드레 말대로 윤 집사님하고 같이 가는 게 좋겠어.”


앙드레와 줄리는 일이 틀어져서 낭패를 볼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건우의 신변도 걱정하는 듯했다.


열아홉이긴 해도 아직은 미성년자.


그들 눈에는 사회 경험 없는 건우가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게 당연했다.


“윤 집사님! 쟤랑 같이 두 시간 정도 일찍 현장에 가서 상황 파악 좀 해주세요.”


윤 집사는 얼떨결에 현장에 강제로 투입된 CIA 행정직원이라도 된 듯 당황한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상황 파악이요?”

“네, 구석구석 몰래 사람을 숨겨놨을 수 있거든요. 한번 휘 둘러보세요. 그리고···.”

“······.”

“현장에 몰카나 녹음기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요. 있을 만한 곳 좀 뒤져보세요.”


윤 집사는 양팔을 벌린 채 어깨를 으쓱하며 제가 과연 도움이 될까요,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앙드레는 별문제 없고 당연히 도움이 된다는 눈짓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저 친구가 한다는 거··· 도술인가 뭔가··· 그거··· 도와주시고요.”


윤 집사는 그러겠다고 답은 했지만, 황당할 뿐이었다.


자기 같은 늙은이가 과연 그런 기도비닉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도술을 부리는 걸 도와주라니···.


일흔 넘게 살아왔고,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왔고, 집사로도 꽤 오래 일해왔건만···.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청소도 아니고, 빨래도 아니고, 요리도 아니고, 정원 일도 아니고···.


“잠복에··· 도술이라···.”


윤 집사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2.


다음 날 저녁 7시.


블루 호텔 로비에 들어선 윤 집사와 건우는 좀 당황스러웠다.


혹시 몰라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까지 푹 숙인 채 들어왔건만.


로비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폐업 직전의 호텔이라더니.’


건우는 모자챙을 들어 올리면서 로비를 둘러보았다.


허름한 건물 벽에 듬성듬성 박혀있는 조명들이 로비를 겨우 밝히고 있었다.


프런트 데스크에도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앞에는 큼지막한 현수막 하나가 걸려있었다.


「고용 승계 보장하라!」


대충 분위기 파악을 한 두 사람은 로비를 가로질러 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5층 복도는 로비보다도 더 어두웠다.


안내판의 표시대로 우측 윙을 따라 들어갔다.


커피숍에 도착할 때까지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매장 앞에는 「CLOSED」라는 표지가 붙은 굵은 사슬이 드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레 그 사슬을 넘어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비상구 표시등과 새끼손톱만 한 미등만 켜져 있는 캄캄한 커피숍 업장.


영업을 하지 않는데도 집기들은 전부 그대로 놓여있었다.


덕분에 숨을 만한 곳은 넉넉했다.


두 사람은 업장 내부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앙드레가 말한 미리 심어 놓은 스파이 같은 놈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또 몰래카메라와 도청 장치가 있을 만한 곳도 샅샅이 훑어보았다.


손바닥에 먼지만 잔뜩 묻었을 뿐 그런 것들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윤 집사와 건우는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한데.”

“네, 깨끗하네요. 그럼 우리 숨을 데를 찾아볼까요?”


업장을 다시 천천히 둘러본 건우는 바 스탠드 쪽을 가리켰다.


해안가처럼 굴곡진 곡면 테이블의 뒤로 작은 출입구가 보였다.


“여기가 좋겠는데요.”


건우가 윤 집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일단 손님용 테이블에서 떨어진 거리가 적당했다.


게다가 스탠드 아래쪽에 운동화 상자 크기의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다.


아마 전선과 업무용 케이블을 뽑는 공간인 듯싶었다.


건우는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 작은 구멍에 얼굴을 바짝 대자 매장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히죽, 하고 절로 웃음이 터졌다.


“이야··· 딱 좋아!”


건우는 다시 윤 집사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 옆에 함께 쪼그리고 앉은 윤 집사는 핸드폰을 꺼내 카톡 창을 열었다.


앙드레에게 보고하는 내용은 한 줄로 간결했다.


[도착. 깨끗함. 우린 바 스탠드 뒤에.]


‘오케이’라는 답장을 확인한 윤 집사는 핸드폰을 다시 바지 주머니 안에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은 구멍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작전 개시 시간까지는 삼십 분도 더 넘게 남아 있었다.


나이 차이도 두 세대나 나는 할아버지뻘의 윤 집사를 이렇게 가까이서···.


그것도 아무 말 없이 대하고 있으니 뻘쭘하기 그지없었다.


어둠침침한 공간에서 눈만 깜빡대며 눈치를 보던 건우가 뭐라도 막 말을 걸려던 순간이었다.


윤 집사가 주머니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아까 허겁지겁 나오느라 저녁을 제대로 못 먹었지?”


어둠 속에서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윤 집사의 얼굴이 얼핏 드러났다.


그걸 보니 어색하던 분위기가 확 누그러졌다.


건우는 초코바를 받아 껍질을 벗기면서 멋쩍게 웃었다.


한 입 와락 베어 물더니 그간 궁금했던 걸 조용히 물어본다.


“집사님은 언제부터 그 집에서 일하시게 된 건가요?”


어두운 공간이어서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윤 집사는 웃는 것 같았다.


“꽤 됐지···.”


잠시 뜸을 들이는 윤 집사는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원래 와이프랑 같이 줄리 옷 수선을 전담하는 수선 샵을 했었어.”


뜻밖의 말에 건우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런데 화재로 샵이 싹 타버리고 아내도 그때 죽었지.”


한마디 한마디 쉬었다 내뱉는 말이 너무 극적으로 이어져서일까.


건우는 그저 숨을 죽인 채 윤 집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진 거라곤 그 샵 하나인데··· 전 재산이 그렇게 날아가 버리고, 의지하며 살던 아내까지 그렇게 가버리니 막막하더군···.”


건우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깊이 감정이입을 한 듯, 어느새 호흡까지 윤 집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때 줄리가 나를 받아줬어. 너무나 고맙게도 말이야···.”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화면에서 보면 차갑고 냉정한 도시 여자 같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아가씨지··· 우리 줄리 말이야!”


건우는 어둠 속에서 줄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윤 집사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집사님··· 만난 지 얼마 안 된 놈한테 그런 속 깊은 얘길 다 해주셔서··· 고마워요.”


건우의 말에 윤 집사가 껄껄 웃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말이야··· 시력은 흐릿해지는데, 대신 사람 보는 눈은 선명해지지. 난 알아! 네가 나쁜 놈이 아니라는 걸···.”


건우도 어둠 속에서 빙긋 웃었다.



3.


작전 개시 시각인 저녁 9시가 되었다.


그때까지 어둑하던 복도에 불이 들어왔다.


밝은 조명은 아니었지만, 주변을 분간할 정도의 불빛.


그 빛에 눈이 조금씩 익어가자 건우와 윤 집사는 서서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복도 끝에서부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오나 보네요.”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이었다.


갑자기 업장까지 환하게 밝아졌고 소음이 더 가까워졌다.


“미리 청소라도 해둘 걸 그랬나 봅니다.”

“청소는 무슨··· 아니야.”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김 지배인, 고마워! 내가 술 한 잔 살게.”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신 기자 쪽이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건우는 바 스탠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두 사람의 발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한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두런대며 주고받는 말이 흐릿하게 들렸다.


그리고 오 분 정도 후.


복도의 반대 방향에서 줄리와 앙드레가 나타났다.


건우에게는 미리 말했었다.


혹시 몰라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것이라고.


줄리와 앙드레의 발걸음 소리도 가까워져 왔다.


긴장감이 조금씩 고조되고 있었다.


몸을 숨기고 있는 건우는 보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건우의 옆에 붙어 앉은 윤 집사도 당연히 긴장했을 것이다.


숨을 가늘고 짧게 내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네 사람이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그리고 한 삼십여 초간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불편함과 적대감, 그리고 놀라움과 흐뭇함이 한 대 뒤섞인 묘한 침묵이었다.


신 기자가 먼저 입을 열어 침묵을 깨뜨렸다.


“이야, 이렇게 직접 뵈니까 정말 미인이시네요!”


기자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가 날로 드러났다.


앙드레의 표정이 즉시 일그러졌다.


작전 계획을 세울 때 수도 없이 다짐했었다.


상대의 도발에 절대 말려들지 않겠다고.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겠다고.


이런 기 싸움에서는 감정적으로 휘둘리면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맞닥뜨리니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고맙습니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줄리가 앙드레 앞으로 나서며 신 기자의 말을 받았다.


“일단 앉으시지요!”


오히려 침착한 건 당사자인 줄리였다.


줄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에선 두 사람을 보고 웃었다.


자리를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신 기자는 자신의 의도적인 도발이 무위로 돌아가자 살짝 실망한 모양이다.


입가에 물린 썩은 웃음이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들쑤실 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듯 물러설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신 기자는 줄리의 위아래를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마치 뭐 또 뜯어먹을 게 없나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


굶주린 듯하면서도 음산한, 묘하게 기분 나쁘기만 한 눈빛은 반짝이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줄리는 여전히 부처님 같은 온화한 미소로 신 기자를 바라본다.


이대로라면 극락왕생이라도 할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나이퍼 박이 끼어들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나은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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