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23 21:1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3,040
추천수 :
58
글자수 :
634,660

작성
23.12.21 18:10
조회
37
추천
1
글자
11쪽

022. 사라진 것들 1

DUMMY

1.


김 지배인의 집.


“오늘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쉬려고요.”


김 지배인은 컨디션이 나쁜 척 목소리를 깔았다.


평소 연기가 서툰 그는 조마조마했다.


혹시나 상대가 꾀병인 걸 눈치채면 어쩌나 해서였다.


- 그러세요.


하지만 수화기 너머 들리는 인사팀장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조만간 문 닫는 호텔에서 근태 관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김 지배인은 상대의 음성에서 그런 생각을 읽었나 보다.


안심하며 전화를 끊는 게 자신만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쥐고 있던 핸드폰을 벗어둔 옷 위에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뻐근하게 아팠다.


어젯밤 갑자기 너무 묵직한 것을 들어서 그런 걸까.


김 지배인은 눅눅한 매트리스에서 천천히 몸을 빼면서 담배를 집어 들었다.


매일 아침, 항상 이 시간만 되면 죽을 맛이던 김 지배인.


“내가 죽지 못해 산다.”


이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며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말라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오늘 아침은 이상하게도 그가 활짝 웃고 있다.


누가 보면 원래 저렇게 웃음이 헤픈 사람인가 하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라이터를 찾아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김 지배인은 담배 연기를 깊이 한번 빨았다가 내뱉었다.


어기적어기적 무릎걸음으로 옷걸이 옆까지 걸어간 그가 뭔가를 쓰다듬었다.


어젯밤 들고 온 사과박스들이었다.


그의 입가에 다시 함지박만 한 웃음이 걸렸다.


어젯밤 세어봤을 때 분명, 삼십억이었다.


십억씩 세 박스!


삼십억이라!


십 년째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김 지배인이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번 것에다 앞으로 벌 걸 한 푼도 안 쓰고 다 더해도 모을 수 없는 돈!


이 돈이면 아침마다 쌍욕을 하면서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


덜덜 소리가 나는 위험한 똥차, YF 소나타를 더는 몰지 않아도 되고.


관리비가 하루만 늦어도 집주인이 지랄하는 원룸에서 나올 수도 있다.


점심때마다 김밥천국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부하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비싼 안주도 시켜줄 수 있고.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더 좋은 병원에 모실 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번 다시 미연이 같은 여자를 돈 많은 놈한테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


미연과는 블루호텔 입사 동기이자 사내 커플이었다.


관계가 무르익어 결혼 얘기가 나올 때쯤이었을 것이다.


한 유명 엔터 회사 PD가 행사차 호텔에 방문해서 미연에게 추근대며 접근했는데···.


미연이 거기에 넘어가 버렸다.


한 PD라는 자!


젊고, 잘생기고, 돈 많고, 학벌 좋고, 매너 있고, 유머 감각까지 갖춘 그런 놈!


김 지배인은 화가 났어야 정상인데, 그러지 못했다.


뼈를 때리는 현타 때문이었다.


전셋집 하나 못 구해 빌빌대는 앞날이 캄캄한 자신과 모든 게 완벽한 상대.


이후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과연 미연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결국 김 지배인은 미연이 헤어지자 했을 때 잡을 수가 없었다.


김 지배인은 과거 불행했던 연애사가 불쑥 떠오르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사과박스 안에서 스멀스멀 밀려 나오는 돈 냄새를 맡자 뒤숭숭하던 감정은 다시 진정되었다.


김 지배인은 박스에서 돈다발 하나를 집어 올리더니 가만히 뺨에 대어보았다.


그러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이런 거구나.


이래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들 하는구나.


하늘이 도와주신 거야.


이렇게 지금까지 고생만 하고 살아온 나를 드디어 보상해 주시는 거야.


당연히 그럴 자격이 되는 놈이지···.


“그래! 나는 그럴 자격이 되는 놈이야···.”


김 지배인은 생각을 주문처럼 말로 중얼거렸다.


돈다발을 도로 박스에 담았다.


다시 짱짱해진 박스 표면을 어루만지자 입꼬리가 솟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젯밤 집에 들어오면서 했던 걱정이 다시 살아났다.


가진 게 많으면 근심도 늘어만 간다더니.


역시나···.


한순간에 많은 걸 가지게 되니까 순식간에 불안도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돈일까?


누가 놓고 간 걸까?


혹시 범죄와 관련된 돈이라면?


에이, 잘 숨겨서 안 걸리면 되지.


어제 분명, 본 사람은 없었다.


호텔 CCTV는 폐업 직전이라 이미 다 철거된 상태였고.


차에 싣고 귀가할 때도 따라오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집 앞에 차를 댈 때도 일부러 공용 CCTV 사각지대에서 댔다.


집 주변에 주차된 차도 없었다.


아마도 트렁크를 열고 물건을 내리는 모습은 블랙박스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김 지배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휴우우우···.”


긴 숨을 내쉰 그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2.


서울 외곽 어딘가.


검은 세단의 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가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전,


“어제오늘 있었던 일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알지? 그리고 다시 정 의원님 뵐 때는 평소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오케이?”


차 안에서 살벌한 톤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손이 뒤로 묶이고 눈이 가려진 두 남자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세단의 문이 닫히더니 부릉- 하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차가 멀어지는 소리도 이어졌다.


잠시 후 두 남자는 서로의 등을 맞대고 앉았다.


어떻게든 묶인 손을 서로 풀어주려는 몸부림이 십여 분간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 다 손이 자유로워졌고, 답답하던 시야도 환해졌다.


“퉷-! 아니, 씨발··· 여기가 대체 어디야?”


스나이퍼 박이 입에 든 모래를 뱉어내면서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낯선 곳에 지도도 없이 떨어진 여행객 같았다.


“저기 저쪽에 아파트 건물이 보이네요. 저쪽으로 일단 가죠!”


눈을 비비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신 기자가 뒤쪽 대각선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나이퍼 박이 뒤로 돌아 신 기자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찡그렸다.


두 사람은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야산과 평지의 중간 정도 되는 비포장도로길.


아파트가 보이는 곳까지는 도보로 대충 20여 분 정도면 닿을 듯싶었다.


현 위치는 서울 외곽의 어디쯤으로 대충 짐작이 되었다.


“미치겠네! 진짜··· 어제부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신 기자는 뒷머리를 마사지하면서 중얼거렸다.


어제 횡단보도 앞에서 뭔가에 강하게 얻어맞은 게 아직까지 아픈 모양이다.


머리는 아프고 온몸은 만신창이였지만, 그래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신 기자는 이건 누군가의 치밀한 작업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밀하고도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어떻게 된 게 줄리 한을 만나 몇 마디 나눈 그다음부터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스나이퍼 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챕터의 절반이 사라진 책처럼 하루 중 절반의 기억이 날아가 버리다니.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써도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신 기자는 김 지배인을 떠올렸다.


그 친구가 거기 돈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누군가 뒤를 봐주는 놈이 있는 걸까?


꽤 오래 봐 온 사람이라 그간 의심 없이 그를 대해왔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이제는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정 의원이 사람을 풀어 놈을 찾는다고는 했다.


하지만 만약 놈이 가지고 달아난 돈을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자칫, 상황이 또 골 때리게 될 수 있다.


돈을 못 받아 챙긴 건 받는 쪽 사정이다.


대충 이런 선에서 마무리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테다.


적어도 몸은 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혹시라도 그 돈이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기라도 하면···.


그러면 그땐 단순히 돈을 못 받는 걸 넘어서는 문제가 된다.


별 핑계와 구실을 다 대며 결국 책임을 이쪽으로 떠넘기겠지.


어쩌면 그 전에 관련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땐 자칫,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세 의원은 전직 깡패들이다.


신 기자는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바로, 사진!


의원들은 아직 사진이 사라졌는지 모르고 있다.


도저히 그 상황에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진이 없어졌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대뜸,


“그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렇게 우릴 속여서 돈만 먹고 튀려고?”


라며 바로 사시미 칼로 배를 찌르겠지.


그리고 조용히 땅에 묻힐 것이다.


신 기자는 어제 땅에 묻힌 채 석양을 바라보며 사색이 되었던 그 공포의 시간이 생각났다.


몸이 저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 사진은 도대체 어떻게 사라진 걸까.


PC가 초기화가 되어버렸고, USB 스틱도 보이지 않고, 또 스나이퍼 박의 드론도 사라졌다.


이 모든 일이 어젯밤에 한꺼번에 일어났다.


도대체 누굴까?


돈을 사라지게 하고, 사진도 사라지게 하고, 기억도 사라지게 한 놈들.


도대체 어떤 놈들일까?


이렇게 사진이 다 사라진 와중에 다음 주 화요일은 어떻게 준비하나?


돈이 사라진 지금, 외상으론 일을 못 한다고 하고 발을 빼버릴 걸 그랬나?


아니다···.


그랬다간 다시,


“이 새끼들이 수상한 김 지배인 그놈하고 짜고서 지랄하네!”


라며 또 사시미 칼로 배를 찌르겠지.


그리고 토막 난 몸은 사과박스에 담겨 땅에 묻힐 것이다.


“아, 뭘 해도 ‘기-승-전-사시미’ 라니···.”


신 기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사진, 어떡하죠?”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같이 고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신 기자의 얼굴에서 큰 기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스나이퍼 박은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다.


간혹 아파트 쪽을 보다가 또 땅을 봤고,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석양이었다.


어제는 그렇게 끔찍하고 무섭더니만, 지금 보이는 석양은 아름답기만 했다.


신 기자는 그래도 얼굴에 딸기잼이 발리던 순간이 자꾸 생각나는지 몸서리를 쳤다.


“아!”


갑자기 스나이퍼 박이 걸음을 멈췄다.


신 기자는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그를 돌아보았다.


스나이퍼 박은 석양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메신저 가방!”


신 기자는 멍한 표정에 입까지 벌어졌다.


이게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이해 못 할 일이 연속해서 일어나서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뭐라고요?”


신 기자의 목소리에서 의아함과 황당함이 묻어났다.


“정 의원 만나러 사무실 찾아갔을 때 사진을 A3 사이즈로 한 장 출력해서 메신저 가방에 담아 갔었잖아. 어떤 놈인지 모르겠는데 놈이 그건 건드리지 않았을 거야.”


고개를 돌려 신 기자를 바라보는 스나이퍼 박.


아직 포도잼이 덕지덕지 눌어붙은 그의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지금 그의 확신에 찬 눈은 석양보다도 더 이글댔다.


신 기자는 그의 눈 안에서 불사조를 보았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감동을 넘어서는 환희의 눈물이.


하지만 신 기자는 꾸욱 눌러 참았다.


일단은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


“서두르자고!”


스나이퍼 박은 발걸음에 힘을 더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발걸음이 뜀박질로 바뀌었다.


석양을 바라보며 달리는 스나이퍼 박을 따라 신 기자도 힘을 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보도사 나가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24.01.04 25 1 12쪽
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7 1 12쪽
31 031. 방어진 4 24.01.01 26 1 11쪽
30 030. 방어진 3 23.12.30 29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29 1 11쪽
28 028. 방어진 1 23.12.28 35 1 11쪽
27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3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6 1 11쪽
25 025. 손님맞이 2 23.12.25 48 1 11쪽
24 024. 손님맞이 1 23.12.23 36 1 12쪽
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7 1 11쪽
»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38 1 11쪽
21 021. 봉인술 2 23.12.20 38 1 12쪽
20 020. 봉인술 1 23.12.19 43 1 11쪽
19 019. 딸기잼, 포도잼 2 23.12.18 36 1 11쪽
18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43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44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49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46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48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49 1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56 1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56 1 11쪽
10 010. 일거양득 1 23.12.08 62 1 11쪽
9 009. 건우, 드디어 2 23.12.07 69 1 11쪽
8 008. 건우, 드디어 1 23.12.06 74 1 11쪽
7 007. 추적 3 23.12.05 76 1 11쪽
6 006. 추적 2 23.12.04 84 1 12쪽
5 005. 추적 1 23.12.03 91 1 11쪽
4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23.12.02 119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