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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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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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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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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DUMMY

4.


흥분한 스나이퍼 박의 외침이 수화기를 통해 울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깜짝 놀랐을 법도 하다.


하지만 신 기자는 수화기를 귀에서 슬쩍 뗀 채 미동도 없다.


심지어는 아무런 표정조차 없다.


사실, 스나이퍼 박의 호들갑이나 울부짖음은 신 기자에게는 아주 익숙하다.


하루 이틀 봐 온 게 아니란 얘기다.


모닝커피를 입에 대려던 신 기자는 다시 잔을 내려놓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회전의자를 슬쩍 틀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때는 이 바닥에서 한가닥 하던 양반이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첨단 장비와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신흥 파파라치들!


그들의 등장으로 스나이퍼 박의 입지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어서일까.


신 기자는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그를 대하지 않는다.


지난번 국민 여동생 김주희 사건까지는 참 좋았다.


그런데 그 뒤로는···.


물론, 물어오는 게 전부 기사로 실어 줄 만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아찔하면서도, 세상의 이목을 단번에 휘어잡을 만한···.


그런, 강력한 한방이랄까?


그런 확실한 게 없다 보니 자꾸 젊은 놈들이 물어오는 것들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게 아닌가.


스나이퍼 박,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바닥이 얼마나 냉정한지를.


감각이 떨어지고 실력이 거덜 나면 가차 없이 내팽개쳐지는 게 바로 이 세계라는 걸.


아직은 겨우 설탕물이지만, 흙탕물 되는 건 한순간이란 걸.


그런데 역시나.


신 기자가 스나이퍼 박을 잘 아는 만큼 스나이퍼 박도 신 기자를 잘 알고 있는 처지가 아니던가.


신 기자가 뜸을 들이자 스나이퍼 박은 이놈이 또 무슨 음흉한 수를 쓰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과거 자신의 약점을 잡거나 치사한 꿍꿍이를 꾸미던 때처럼 말이다.


스나이퍼 박은 상대가 길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바로 본론을 끄집어낸다.


- 줄리 한! 바로 줄리 한! 내가 줄리 한을 잡았다고!


신 기자는 눈이 번쩍 떠졌다.


무표정하게 생기 없던 얼굴에도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주, 주, 줄리 한이라고?’


철저한 사생활 관리로 유명한 줄리 한!


철벽을 치는 스케일이 유별난지라, 관련 별명도 시리즈로 갖고 있는 여자.


‘모태 클린’, ‘무공해X년’, 혹은 ‘결벽충’


바로 그 한류스타, 줄리 한?


신 기자는 휘둥그레진 눈을 비비며 회전의자를 다시 원위치시켰다.


손을 뻗어서 책상 위에 내려놓았던 커피를 다시 집어 들었다.


“주, 줄리 한이요? 아니, 줄리 한이 왜요?”


되물어 봄과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려던 순간이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스나이퍼 박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흐흐흐··· 왜일까? 천하의 줄리 한이 말이야, 응?


‘이 인간! 이제는 밀당까지 신의 경지네. 닳고 닳은 능구렁이 같은 놈팽이.’


신 기자는 살짝 비굴한 목소리로 “아이, 박 선생님~!”하고 그를 졸라댔다.


간드러진 목소리와 선생님 호칭.


이건 신 기자가 상황이 불리할 때 쓰는 전형적인 구슬리기 레퍼토리다.


스나이퍼 박은 밭은기침을 여러 번 뱉었다.


그러고는 못 이기는 척 숨겨뒀던 비밀 보따리를 천천히 풀어낸다.


- 줄리 한이 말이야···


마치 몰래 엿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의식이라도 하는 듯한 은밀한 속삭임으로.


신 기자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입안 가득 채웠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자 자기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섰다.


- 흐흐··· 줄리 한이··· 욕조에서 어떤 젊은 남자랑 같이 목욕을 하고 있었어! 그걸 내가 찍었다고!


너무나 충격적인 뉴스가 신 기자의 고막을 울렸다.


그 울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중추신경까지 마구 긁어댔다.


무척이나 자극적이고도 센세이셔널한 뉴스였다.


일생 한 번 잡아볼까 말까 한 그런 특종!


“푸~우우우우!”


신 기자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점프하며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내뿜었다.


망나니가 사형수의 목을 치기 전 칼에 내뿜는 것보다 더 강력한 물줄기가 그대로 터져 나왔다.


모니터는 순간 흐린 갈색 커피 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모니터를 닦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바로 스나이퍼 박을 다그친다.


“지, 지, 지 진짜··· 제대로 찍은 거··· 맞아요?”


신 기자는 이렇게 흥분한 적이 없었다.


턱을 타고 흐르던 커피 물이 그대로 와이셔츠를 적시고 넥타이까지 물들였다.


하지만 신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대충 턱과 입을 훔쳐낸 후 빠르게 눈을 깜빡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아,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그동안 잔챙이 사건들로만 꾸역꾸역 지면을 채우고 있던 신 기자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경쟁사보다 방문자 수나 클릭 수가 밀리기 시작했고.


당연지사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광고 때문에 탈모까지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천우신조라!


스나이퍼 박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이지, 연예계가,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크게 한번 뒤집힐 만한 대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특종 보도는 바로, 나, 신 기자가 하는 거다. 이 <예스패치>의 신 기자가!’


신 기자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켜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이거 왜 이러시나? 날 뭐로 보고?


이제 주도권이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걸 직감한 걸까.


스나이퍼 박의 목소리에서 살짝 거드름이 느껴진다.


수화기 너머 상대의 이죽대는 얼굴이 상상되는지 신 기자는 짜증이 뻗쳐올랐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찍은 거죠? 그 여자 집은 보안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갔어요? 아니면 택배 배달원으로 변장했나?”


슬슬 조바심도 나기 시작했다.


바짝 말라버린 입술에 침을 바르는 소리가 그대로 수화기를 타고 넘어갔다.


- 어떻게? 고성능 카메라에 추적방해장치가 달린 드론을 띄웠지. 이거 말이야, 원격으로도 조종이 가능한 최첨단 드론이라고, 후후훗!

“아~! 드론이요···.”

- 이래 봬도 내가 좀 젊은 감성인데다 4차산업 트렌드에도 민감한 사람 아닌가?


신 기자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묵직한 구닥다리 DSLR 카메라에 대포 렌즈나 메고 어슬렁거리던 스나이퍼 박이었는데.


드론이라···!


역시, 생존의 위협을 느끼니까 빠르게 업데이트를 한 모양이었다.


“저, 박 선생님, 제가 직접 봤으면 좋겠는데요.”

- 흐흐흐, 신 기자! 이건 역사로 기록될 사진이야!


정말이지 이번에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이다!


이건 분명, 역사에 남을 만한 엄청난 사건이다.


신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암요, 그럼요! 그럼요!”

- 그리고 내 이름은 이 사진으로 기억될 것이고. 영원히.

“네네, 그럼요. 퓰리처상도 노려볼 만하지요··· 근데 저, 박 선생님, 지금 어디 계시죠? 지금 바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

- 흐흐흐··· 이봐 신 기자, 아까 내가 얼마라고 했지?


스나이퍼 박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꾸 돈 얘기만을 이어가려 했다.


신 기자는 짜증이 났지만, 꾹 눌러 참았다.


상대를 달래서 원하는 걸 얻어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억지웃음도 웃어야 하고, 굽신거리는 것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는 빤스만 입고 춤을 추라고 해도 그리해야 한다.


특종이 어디 쉬운가?


그것도 일생일대의 대특종이다.


줄 듯 말 듯 장난치는 듯한 상대의 묘한 반응이 이어졌다.


맥락 없는 실없는 말도 한동안 오갔다.


그러더니 드디어, 원하는 답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이따가 점심 때쯤 가지

“하핫! 네, 박 선생님, 그럼 있다가 뵙겠습니다.”


꾹 참고 버틴 보람이 있었다.


통화를 마친 신 기자는 커피에 젖은 모니터를 티슈로 닦아냈다.


잔에 남은 식은 커피를 원샷하고 창가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묘한 미소가 얼굴에서 피어올랐다.


불현듯 떠오른 한 생각 때문이었다.


‘흐음, 특종도 특종이지만···.’


스나이퍼 박의 말이 맞다면 저 위에 계시는 분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다.


‘저 위에 계시는 분들’이란, 이 나라에서 힘깨나 쓰시는 분들을 말한다.


그런데 골치 아픈 추문에 휩싸여 뭔가 쌈박한 돌파구가 필요하신 분들!


뭔가 사람들의 이목을 잠시 다른 곳을 돌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분들!


정치권에서는 그걸 가리켜 ‘국면전환’이라고 하고.


금융권에서는 ‘추세전환’.


그리고 연예계에서는··· 뭐더라?


‘에라, 모르겠다.’


블라인드를 걷자 오전의 햇살이 사무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신 기자는 유리창에 붙은 회사명 <예스패치>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5.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신 기자!”


노크도 없이 벌컥 <예스패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의기양양하게 들이닥친 스나이퍼 박은 개선장군 그 자체였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게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쓰고 있는 검은 선글라스 위로 습기가 가득한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신 기자가 반가움의 악수를 청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스나이퍼 박은 악수를 받는 대신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USB 스틱을 흔들다가 신 기자가 내민 손 위에 얹어주었다.


“이게 그 퓰리처상 확정 사진인가요?”


USB 스틱을 받으면서 신 기자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컴퓨터 앞에 앉는데 가슴이 두근댔다.


벌써 사진을 담은 기사를 작성해서 데스크에 송부하기 직전인 것처럼.


오전에 놀라서 커피를 뿜은 모니터 화면에는 아직 갈색 얼룩이 남아있었다.


“다시 말하는데, 그거 십억짜리야! 알아들었어? 십억이라고!”


신 기자의 등 뒤로 들리는 스나이퍼 박의 목소리가 음산했다.


얼룩이 묻은 모니터 화면에 자신의 긴장한 얼굴과 그의 음흉한 얼굴이 동시에 비쳤다.


스틱을 포트에 꽂고 폴더를 열어보니 꽤 많은 사진 파일이 어지럽게 보관되어 있었다.


전부 연속촬영으로 생성된 파일인 듯싶었다.


신 기자는 그중 중간쯤에 있는 파일 하나를 더블클릭했다.


“어엇···!!!”


신 기자의 눈이 주먹만큼이나 커졌다.


깜짝 놀라는 반응이 재미있었던 걸까?


등 뒤에서 스나이퍼 박의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원거리에서 당겨 촬영한 듯한 사진.


그래서인지 선명도는 좀 떨어졌다.


그러나 사진 속에 보이는 여자는 분명 줄리 한이었다.


욕조 안에서 한 젊은 남자와 마주 보고 목욕을 즐기는 모습.


신 기자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나라했다.


이 정도라면···.


그의 머릿속이 갑자기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오전에 생각하던 ‘저 위에 계신 분들’ 중 몇몇 얼굴이 다시 떠올라서였다.


이 시국에 당장 국면전환이 필요할 것처럼 보이는 어르신들 말이다.


‘민국당 정 의원, 박 의원, 서 의원, 치안총감 김정팔, 그리고 행복은행장 오대윤···.’


그들의 처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스나이퍼 박이 부른 십억은 아무래도 손해 보는 금액이었다.


“박 선생님, 이거 잘하면 백억도 받을 수 있겠는데요.”


고개를 뒤로 돌린 신 기자의 눈빛이 매섭게 반짝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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