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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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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DUMMY

5.


앙드레와 건우가 탄 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상습 정체 구간이라 연일 교통방송에서 언급되는 곳을 지나는 중인데, 오늘따라 차량은 물 흐르듯 흐른다.


운전하는 앙드레는 표정이 밝다.


“창문 좀 열어주세요!”


차 안에서 꼼지락꼼지락 부적을 만지던 건우가 말했다.


“왜?”


앙드레는 신호가 바뀌자 액셀을 밟으면서 건우를 힐끔 돌아보았다.


“마지막 굳히기 부적이에요!”


건우는 종이비행기 모양으로 접은 부적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앙드레가 창문을 내려주자 건우는 부적을 든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휘익-!


차량을 스치는 빠른 바람에 휩쓸린 부적이 하늘로 치솟았다.


부적은 한동안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더니 어느 순간 한곳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그게 어디로 날아가는 거냐?”


백미러로 부적이 떠오르는 걸 본 앙드레가 궁금한지 물었다.


앙드레는 이제 건우가 하는 모든 행동이 신기한가 보다.


“예스 패치 사무실이요. 신 기자 PC에 달라붙어서 불을 지를 거예요. 그럼 이제 그놈들이 가진 사진은 영원히 사라지는 거죠.”


건우가 더벅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다른 사진은 더 없는 건가?”


앙드레는 그래도 불안한 모양이다.


물어보는 말투가 의심 많은 할머니 같다.


“아차! 그리고 이거도··· 히히힛!”


건우가 어깨에 메고 있던 메신저 가방에서 사진을 꺼냈다.


“스나이퍼 박인가 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거예요. 지난번 미혼술로 사진 파일 삭제를 시켰을 때 이건 컴퓨터 파일이 아니어서 삭제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앙드레는 건우가 내미는 사진을 찡그린 눈으로 힐끔댔다.


다시 신호가 바뀌면서 브레이크를 밟자, 사진을 받아 들더니 인상을 썼다.


“이게 그 문제의 사진이구나! 세상에···. 이것 때문에 우리 줄리가 그렇게나 마음고생을···.”


앙드레는 적나라한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간 겪었던 고충 때문이었을까.


이런 감성적인 순간에는, 앙드레는 여지없이 게이 특유의 섬세함이 드러난다.


차 안이 훌쩍대는 소리로 가득 차려 하자 앙드레는 얼른 라디오를 켰다.


갑자기 건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 때문이었다.


<아이러브>의 ‘당신과 당신의 멜로디’


오랜만이었다.


이 노래를 다시 듣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이런 뜻밖의 장소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말이다.


건우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면서 생각했다.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라더니 정말로 틀린 말은 아니네.’


건우는 감격에 겨운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흥얼거리던 노래에 자꾸 흐느낌이 섞여 들었다.


그런데 그걸 앙드레가 들었는지 건우를 돌아본다.


앙드레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는다.


“넌 또 왜 그래? 너도 일이 잘 풀려서 감격스러운 거야?”


앙드레의 뜬금없는 말에 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앙드레는 이놈이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두 사람이 탄 차는 막힘없이 강남대로로 들어섰다.



6.


김 지배인의 집.


왕왕대는 TV 소리에 또 눈이 떠졌다.


김 지배인은 누운 채로 슬쩍 고개를 돌려 화면을 보았다.


또 그 얘기였다.


아까 낮부터 무슨 여배우의 은밀한 사진을 공개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더니만.


앵커 목소리가 저렇게까지 격앙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저게 저렇게 생방송까지 때려대며 소란을 피울 일인가?


국민 세금을 걷어 운영되는 지상파 방송국에서 저리 할 일들이 없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평소 TV를 켜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던 김 지배인이나, 오늘은 이상하게 TV가 거슬리기만 했다.


김 지배인은 리모컨을 들어 파워 버튼을 눌러버린다.


TV 소음이 사라지자 방안은 금세 적막으로 채워졌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하면서 잠을 청해보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갑자기 고요해진 환경은 가뜩이나 예민한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할 뿐이었다.


“젠장···.”


호텔에서 일하면서 못 잤던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는 계획은 다 틀어져 버렸다.


김 지배인은 그 후로도 몸을 여러 번 더 뒤척였다.


결국, 방안 불은 다시 켜지고 만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니 이 생각 저 생각이 이어졌다.


다시 잠들기는 틀린 것 같았다.


삐걱대는 침대에 걸터앉아 마지막 남은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는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


또 그 생각이 살아났다.


누군가 자신을 봤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


주말 내내 이 생각은 김 지배인을 괴롭혔다.


돈을 처음 들고 왔을 때의 흥분과 환희는 잠시.


스멀스멀 자라던 불안과 근심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까지 커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김 지배인은 아직 반 이상 남은 담배를 끄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 뜨자! 불안하면 뜨는 게 상책이지.”


옷을 입고, 지갑과 라이터를 챙기고, 차 키와 방 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방구석에 있던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 옷가지 몇 벌과 세면도구, 그밖에 생각나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주워 담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 평소 잘 쓰지 않던 야구모자도 눌러썼다.


출입문을 소리 안 나게 연 김 지배인은 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조용했다.


발끝을 세우고 살금살금 1층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한쪽 구석 자리.


그곳엔 자신의 애마인 구형 YF 쏘나타가 세워져 있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 후 조심스레 트렁크를 열어 세웠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사과박스를 하나씩 옮겨 나가기 시작하는데 심장 뛰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긴장 때문에, 그리고 힘도 들어서,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


하지만 박스를 들고 들어왔을 때처럼 꾹 눌러 참았다.


출입문을 잠그고 나와, 트렁크를 닫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얼굴은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김 지배인은 거의 사용하지 않던 에어컨을 켜고 잠시 땀을 식혔다.


“일단 멀리 벗어나는 거야! 찾기 힘든 곳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종일 뒤척이며 하던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탁 트인 바다보다는 험한 산!


김 지배인은 머릿속으로 오대산, 덕유산, 설악산, 치악산 등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떠오른 산을 생각하고는 씨익 웃었다.


지리산!


대학 시절 자주 가던 곳.


미연이와의 추억이 녹아있는 곳.


아슬아슬 썸을 타다가 처음으로 고백했던 장소.


첫 키스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버린 곳.


얼굴의 땀이 어느 정도 식자 김 지배인은 액셀을 천천히 밟았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차체에 후미등 하나도 깨진 차가 미세하게 덜덜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지배인의 차가 골목길을 막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저만치 뒤 깨진 가로등 아래에 숨어 있던 고급 세단에서 전조등이 들어왔다.


세단 안의 남자는 차를 움직이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자 조용히 말했다.


“지금 움직입니다. 따라가겠습니다.”



7.


정 의원의 사무실.


아침 뉴스 화면에 큼지막한 자막이 떴다.


「블라인드 인터뷰 해프닝」


리포터는 어제의 주요 사건을 요약 정리하고 있었다.


어제의 그 환장할 순간들이 다시 떠오르자 의원들은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이제 어쩔 거요?”


박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고개를 돌렸다.


화면은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지는 장면에 이어 무대 위 두 남자를 클로즈업했다.


잠에서 막 깨어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는 모습.


그러다가 손을 맞잡고 헤벌쭉 웃는 모습.


진행을 맡은 앵커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저게 뭐야! 씨발 진짜···. 그때 그냥 묻어버리라니까. 말 안 듣더니··· 쯧쯧!”


서 의원이 정 의원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정 의원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정일도를 엿 먹이다니···.


설마 해서 살려 줬더니, 저것들이.


화보다도 부끄러움이 먼저 치밀었다.


족보에도 없는 핏덩어리들에게 당했다.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이고도 대범하게.


“정 의원이 우겨서 이렇게 된 거니까, 오사마리(마무리)도 정 의원이 잘해!”


박 의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정 의원의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문 앞에서 정 의원의 보좌관이 꾸벅 인사를 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살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일은 없었다.


“아이고, 나는 변호사나 다시 만나봐야겠다. 내일 검찰청 앞에서 봅시다.”


서 의원도 마시던 커피를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세 사람의 사이가 오늘처럼 서먹했던 적은 없었다.


다시 TV 화면에서는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이 컨벤션 센터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던 그 민망한 사진은 이제 더는 뜨지 않았다.


정 의원은 화면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확 TV를 꺼버린다.


그리고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차명폰이었다.


끙-!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서랍 안의 전화를 꺼내 받았다.


가장 먼저 들린 건 사과의 말이었다.


- 의원님!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땡초였다.


평소와는 달리 침울한 그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처럼 들렸다.


그런데 정 의원은 의외로 차분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바로 욕지거리가 쏟아졌을 만도 한데.


“네가 왜 면목이 없냐? 다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그런 건데. 그럴 필요 없다. 다 내 잘못이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내는 건 오히려 손해라는 걸.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평생 깡패로 썩지 않고 이렇게 의원까지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 의원은 고개를 쭉 내빼서 혹시 보좌관이 듣고 있는 건 아닌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사무실 문은 닫혀있었다.


그는 계속 통화를 이어갔다.


“지배인 그놈한테는 사람 붙여놨지?”


이제 TV 화면 속의 저 두 놈과 지배인은 한 패거리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나 보다.


정 의원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그걸 느낄 수가 있었다.


- 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몰래 움직이는 거 확인했습니다. 우리 애 하나 붙여놨습니다. 실시간으로 계속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제가 직접 미행도 하겠습니다.


땡초의 말에 정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놓치지 말고 잘 따라다녀야 해. 알지?”


땡초는 정 의원의 당부에 거듭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땡초는 정 의원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김 지배인이 가지고 있는 돈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어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될 경우···.


그때 미치게 될 파장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기자하고 사진사 그놈은 며칠 있다가 좀 잠잠해지면 담가버려. 대가리하고 손목, 발목은 잘라서 태워버리고, 몸뚱이는 공구리쳐서 바다에 던져버려··· 알지?”


이어지던 통화는 노크 소리가 울리면서 멈췄다.


보좌관이었다.


아마, 내일 검찰청에 출두하는 일 때문에 변호사가 찾아왔을 것이다.


정 의원은 조용히 전화를 끊고 문을 보며 말했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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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46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24.01.19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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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2. 차가운 남풍 2 24.01.15 16 1 12쪽
41 041. 차가운 남풍 1 24.01.13 18 1 12쪽
40 040. 인사발령 2 24.01.12 16 1 11쪽
39 039. 인사발령 1 24.01.11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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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37. 악귀나찰 1 24.01.09 25 1 11쪽
36 036. 잠입 2 24.01.08 2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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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24.01.04 27 1 12쪽
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9 1 12쪽
31 031. 방어진 4 24.01.01 28 1 11쪽
30 030. 방어진 3 23.12.30 32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33 1 11쪽
28 028. 방어진 1 23.12.28 36 1 11쪽
»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5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8 1 11쪽
25 025. 손님맞이 2 23.12.25 50 1 11쪽
24 024. 손님맞이 1 23.12.23 40 1 12쪽
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9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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