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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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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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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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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369

작성
23.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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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28. 방어진 1

DUMMY

1.


서울 상공.


여전히 영일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숨은 붙어있어 다행이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의 몸으로 회복이라도 시켜주면 편히 발이라도 뻗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오늘 새벽 무렵에도 여러 차례의 짧은 경련과 신음으로 괴로워하던 영일.


그때 뭐라도 해주지 못했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철은 대형마트 뒷산에 숨겨두고 온 영일의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리를 앙다문 채로 날갯짓을 하는데 흐르는 눈물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날갯짓에 힘을 더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스승님, 저기 저 차입니다.”


그때 철산이 건우의 영력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철산 법사의 근성과 감지력은 놀라웠다.


정철은 다시 한번 그를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철산이 아니었으면 자신들은 계속 서울 상공을 배회하며 지쳐갔을 것이다.


“방금 창밖으로 부적을 한 장 날린 것 같습니다.”


선두에 서서 차를 따라가던 철산이 말했다.


그러자 정철은 공중에 떠 있던 잠자리 한 마리를 사역시켜 그 부적을 쫓게 했다.


잠자리는 날개를 슬쩍 접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급강하했다.


정철은 하강하는 잠자리를 보면서 요 며칠간의 일을 떠올렸다.


건우의 영력을 감지했던 근방을 다시 찾았던 철산.


안타깝게도 그 흔적이 더는 남아 있지 않자 그는 낭패감에 괴로워했다.


겨우 잡았던 실마리를 허망하게 날려버린 건 아닌가 하는 절망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철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24시간 정밀 정찰을 시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다시 건우의 영력을 감지해 낸 것이다.


그곳은 사람들도 많고 전파가 강해서 감지가 쉽지 않았던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 틈에서 미세한 영력을 느낀 철산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이 접근하여 그것이 건우의 영력임을 확인해 냈다.


그리고 마침내, 건우가 어떤 차에 탄 채로 그 건물 안에서 나오는 걸 법사들이 보게 된 것이다.


“아까 건물 안에서 사용한 부적은 총 세 장인 걸로 보입니다.”


철산은 곁에 다가온 스승 운천을 보며 말했다.


운천은 이미 많이 지쳐 깃털이 거칠어지고 눈이 충혈된 철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 삼백 장을 가지고 나갔는데 그동안 얼마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철의 걱정스러운 말엔 힘이 없었다.


멍하니 뭔가를 더 생각하는가 싶던 정철은 갑자기 밀려든 돌풍에 깜짝 놀랐다.


그의 몸이 잠시 뒤로 밀렸다가 다시 돌아왔다.


정철을 보고 철산이 다시 말했다.


“함부로 쓰는 것도 그렇지만, 잃어버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오. 그게 만약 악귀들에게라도 들어간다면···.”


말을 다 끝맺기 전이었다.


달리던 차가 방향을 바꾸더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철산은 날개에 힘을 주면서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운천과 정철도 철산을 따라 방향을 틀면서 균형을 맞췄다.


쫓던 차는 한적한 고급 주택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2.


명선봉과 토끼봉이 보이는 계곡.


기력을 제법 회복한 유정과 만봉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유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만봉을 돌아보며 안심시키는 말을 한다.


“그렇다고 내 말을 오해는 하지 마시오. 적의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일성이 계속 죽이려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땐 목숨 걸고 맞서야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한 만봉은 별말 없이 타박타박 걷기만 했다.


유정이 걸음에 속력을 붙이더니 힐끔 만봉을 돌아보았다.


“우리 오랜만에 축지술 내기나 해봅시다. 지는 사람이 고추참치 한 캔 주는 거로 합시다.”


생필품을 사러 아랫마을로 가는 길의 중간쯤.


거기서 한 샛길로 빠지면 버려져서 다 허물어진 작은 산장 하나가 있다.


지금은 입산이 통제된 구역인데, 두 사람은 그곳을 둘만의 비밀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간혹 등산객들이 배낭이 무거워 가져온 물품들을 산길에 버리고 갈 때가 있다.


유정과 만봉은 멀리 도술수련을 다녀올 때마다 그것들을 주워 모아서 그곳에 몰래 보관해 왔었다.


청운당 식구들 몰래 말이다.


그중 스팸이나 참치캔, 과일 통조림은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하하핫! 그럼 시작하오!”


유정이 먼저 앞서나갔다.


질세라 만봉도 땅을 박찬다.


속력은 금세 호보법(흑호랑이 걸음) 단계까지 치달았다.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간격을 유지했다.


그들이 지나갈 때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후우··· 후우읍···.”


유정은 단내가 나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한동안 축지술을 사용하지 않아서 근육이 놀라기라도 한 걸까.


오늘따라 온몸이 무겁고 지치는 게 이상했다.


이건 마치 젖은 솜이불을 지고 빗속을 뛰는 기분이었다.


축지술을 처음 배울 때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다.


또 익숙해져서 호승심에 무리해서 사용할 때도 이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사이 체력이라도 약해졌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매일 그렇게 수련에 집중하면서 몸과 마음을 닦아온 자신이?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로 친다면 청운당에서 단연 최고라고 자부하는 유정 자신이?


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흐읍··· 흐으으···”


뭔가 이상했다.


뭔가가···.


만봉은 슬쩍 곁눈질로 유정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도 자신처럼 지금 몹시 힘든 걸 숨기는 티가 역력했다.


송골매로 변해 그 긴 거리를 단숨에 주파해 왔다손 치자.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은 노년의 스승과는 다르지 않은가?


용보법도 아니고 아직 호보법이다.


이 정도의 속력과 맞바람은 그간 거뜬히 견뎌왔다.


그런데 대체 오늘은 왜 이리 몸이 무거운 걸까?


만봉도 유정에게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넌지시 물어보고 싶어졌다.


몸 상태가 이상한 게 자신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안도라도 얻으려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접어버렸다.


괜스레 오해를 사서 친구의 자존심만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만봉은 티 안 나게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면서 이를 악물었다.


나무들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그때였다.


유정이 갑자기 속력을 줄였다.


호보법이던 발걸음이 금세 우보법으로 느려졌다.


그러자 만봉도 금세 발걸음이 무뎌졌다.


“후우, 무슨 일이요?”


만봉은 멈춰 선 채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이미 땀으로 흥건한 두 사람의 얼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보시오!”


유정은 길가의 한곳을 가리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만봉은 유정의 격한 숨을 느끼며 고개를 슬쩍 숙였다.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꺾인 나뭇가지 하나가 있었다.


“청운당에 도착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소. 어느 순간부터 이곳의 기운이 이상하여 달리면서 곳곳에 저런 꺾인 나뭇가지를 던져두었소이다.”


만봉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유정은 그것을 주우면서 말을 계속 이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면 이미 던져두었던 나뭇가지를 또 볼 이유가 없소이다.”


그러자 만봉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얼굴에선 ‘속았구나!’ 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3.


“맞소이다! 지금 우리는 진에 갇혀있소.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는 중이외다.”


만봉은 이제야 답답하던 뭔가가 풀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다른 때보다 이상하게 더 뜨겁게 느껴지던 저 태양.


체력이 쉽게 고갈된 이유도 알만했다.


만봉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같은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태양을 찡그린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이 안에 갇혀 있었던 거요?”


만봉은 억울함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땅을 보며 푸념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이었다.


보통은 영력과 부적을 주변 사물에 적용하여 눈속임을 이끌어내곤 하는데.


그런 진과는 차원이 다른 솜씨였다.


이건 마치, 철저히 왜곡된 시공간 안으로 끌려 들어와 기력이 조금씩 소진되는 기분이었다.


“글쎄올시다.”


유정은 주변 사물들을 유심히 둘러보다가 다시 말했다.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소이다.”


만봉도 주위를 살피면서 시름 섞인 한숨을 뱉어냈다.


그러면서 답답한지 두어 군데 묵직한 장풍을 쏘아봤다.


쿠웅-!

쿠웅-!


단단한 건물에 강한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땅도 제법 흔들렸다.


만봉이 쏜 장풍은 어디론가 멀어지는 듯하더니 거친 소음과 함께 다시 살아나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여러 차례 같은 자리를 맴돌던 장풍은 서서히 힘이 약해졌고, 마침내 흩어졌다.


유정은 장풍이 움직이는 걸 뚫어지게 관찰했다.


그러더니 만봉에게 말했다.


“더 큰 바람을 불러 봅시다!”


유정은 양손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면서 휘젓는 동작을 서너 번 반복했다.


그와 동시에 비둘기가 우는 것처럼 낮은음의 주문을 읊었다.


누풍술이었다!


(* 누풍술(摟風術): 큰바람을 끌어모으는 도술. 익숙해지면 모은 바람으로 공격을 할 수 있고, 또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도 있다.)


잠시 후 바람이 몰려들었다.


처음은 가벼운 산들바람인 듯하더니, 그 바람은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그러다 급기야는 집 한 채를 뽑아 올릴 만큼 거친 바람으로 강해졌다.


만봉도 하반신에 단단히 힘을 준 채로 팔을 휘둘러 유정을 도왔다.


휘이익, 휘이익하는 사나운 바람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바람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었다.


유정이 갑자기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야생마처럼 이리저리 날뛰던 바람의 줄기가 유정의 손에 잡히면서 순간 얌전해졌다.


“바람이 지날 때 소리가 유독 거칠게 나는 부분이 있소. 공간의 두께가 얇아서 그런 것이오. 약한 지점은 바로 그곳이오.”

“어쩔 셈이오?”

“바람을 던진 후 그 지점까지 축지술로 달려갑시다. 거기서 전정술로 깨뜨리는 겁니다.”


유정이 쥐고 있던 바람을 다시 앞으로 내 던졌다.


볼살을 떨리게 하는 바람과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에 공간이 요동쳤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따라 충돌을 거듭하던 바람은 조금씩 힘이 약해졌다.


그러면서 어느 한 지점을 지날 때였다.


귀를 찢는 소음이 강하게 들려왔다.


“저쪽이요!”


유정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축지술은 우보법에서 호보법으로, 또 순식간에 용보법으로 빨라졌다.


바람의 속도를 금세 따라잡은 두 사람은 동시에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유정이 먼저 숲 한가운데 공간이 일렁이는 곳에 검지와 중지를 붙인 손가락을 내리뻗었다.


전정술(번개를 부리는 도술)!


이어서 만봉도 같은 곳을 향해 번개를 내리꽂았다.


두 줄기의 섬광이 한곳을 강타했다.


눈앞에서 강한 불꽃이 작렬했다.


눈을 찡그린 둘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투명한 비닐봉지에 불이 붙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진이 흩어졌다.


그들 앞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시공간을 구부러뜨려 마치 가락지처럼 붙여놓은 것 같소. 안에 걸려든 것들을 쳇바퀴처럼 계속 돌게 만드는 진이요.”


유정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긴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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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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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041. 차가운 남풍 1 24.01.13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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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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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방어진 3 23.12.30 33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33 1 11쪽
» 028. 방어진 1 23.12.28 37 1 11쪽
27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5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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