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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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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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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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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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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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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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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DUMMY

3.


“오··· 그래, 연예 산업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경험을 꽤 했다고?”

“예, 팬클럽 회장도 여러 차례 했고, 공연장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도 해봤습니다.”

“흐음··· 좋아, 듣기에 연예인 인권 보호 캠페인이란 것도 했다던데? 그건 뭔가?”

“네에,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한 악플로 피해를 보는 연예인들을 돕기 위한 SNS 운동입니다.”


분명 차 한잔 마시는 정도의 짬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은 벌써 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꼬치꼬치 캐묻는 호구조사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툭툭 질문을 던질 때마다 바라보는 눈빛이 뜨거웠다.


그리고 날카로웠다.


답변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놈이 거짓말을 하나 안 하나를 보는 듯했다.


오랜 세월,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면서 익혀온 사람 보는 눈!


그게 번뜩이는 자는 과연 이러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한 회장은 노련하게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사실 어젯밤, 줄리와 앙드레는 건우를 위해 A4지 10장 분량의 모범 답안을 만들어주었다.


그간 한 회장이 신입사원들을 만나 자주 물어봤던 질문들과 또 그에 어울릴 만한 수준의 무난한 답들.


그 덕분에 건우는 지금껏 잘 버티고 있는 거다.


줄리와 앙드레의 수고가 없었다면 지금쯤 건우는,


“사생질이요··· 상대 아이돌 안티글 도배요··· 계정 폭파시키기요··· 학교요? 중퇴했죠, 뭐··· 도술 배우러 산에 들어갔어요··· 한번 보실래요?”


같은 끔찍한 말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살짝 경직되어 있던 한 회장의 눈은 어느 순간부터 부드러워졌다.


“그래, 듣자 하니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일을 한다고 하던데, 대단하네. 허헛!”


건우는 겸연쩍은 듯 살포시 웃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말로 얼버무리자 한 회장의 너털웃음이 터진다.


“조만간 말이네··· 난 은퇴하게 될걸세. 그럼 이 빅웨이브는 내 딸 줄리와 아들 한 PD가 경영하게 될 거야. 앞으로 잘 좀 도와주게.”


뜻밖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건 예상 질문지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무슨 대답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자 줄리가 얼른 수습을 한다.


와락 한 회장의 팔짱을 끼더니 또 애교 섞인 말을 늘어놓는다.


“아빠~ 아니··· 회장님, 또 왜 이러세요오? 아직 할 일이 많으신 분이···.”


한 회장은 딸의 애교에 녹아내렸다.


다시 너털웃음이 이어졌고,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앙드레가 대화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버렸다.


숨넘어갈 것 같던 면담이 무사히 끝났다.


건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 그만 다리가 풀려버렸다.


지하 1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건우는 앙드레의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선다.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요.”


깔깔대는 줄리와 앙드레가 건우의 머리를 한 대씩 툭 쳤다.


“그 정도면 잘했어. 도사니 도술이니··· 그런 말이 네 입에서 안 튀어나왔으면 성공한 거야.”


세 사람이 탄 세단이 다시 BW 빌딩을 빠져나왔다.


운전을 하던 앙드레는 건우에게 글로브 박스를 열어보라 했다.


그 안에는 건우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 한 통과 글자가 빽빽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이게 뭔가요?”


건우가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쥐고 펄럭였다.


앙드레는 엄숙한 얼굴로 건우를 돌아보았다.


“너 근무 스케줄이야. 이제부터 우리 식구 아니냐?”


놀란 건우가 감격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이를 펼쳐 든 채로 차분히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건우.


그런데 갑자기 다시 고개를 홱 들더니 언성을 높인다.


“잠깐만요! 이거 너무 빡센 거 아닌가요?”



4.


다음날,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이었는데 윤 집사는 건우를 흔들어 깨웠다.


“아흐으으···.”


눈을 겨우 뜬 건우는 비몽사몽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우적대던 건우는 침대에서 떨어질 뻔하다 겨우 바닥에 발을 디뎠다.


밤잠이 없는 노인과 한방을 쓰는 건 이렇게 고역이다.


게다가 부지런하시기까지 하니.


도대체 왜 앙드레는 윤 집사와 방을 함께 쓰라고 한 것일까.


입이 퉁 부은 건우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직 머리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윤 집사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옷을 주워 입었다.


젖은 머리가 다 마를 때쯤이 되자 앙드레는 모습을 드러냈다.


“도사, 가자!”


첫 번째 스케줄, 운전 연습.


건우는 운전면허는 있지만, 운전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운전이 중요하고 자주 한다는 말을 앙드레에게 처음 들었을 때, 건우는 신나기만 했다.


저렇게 멋진 차들을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다니···.


하지만 여유롭게 즐기며 타는 것과 업무로써 누구를 실어 나르는 건 분명 다른 차원의 일!


건우는 운전석에 앉는 순간부터 그걸 체감하기 시작한다.


“너, 로드매니저가 뭐 하는 건지는 알아?”


이른 아침이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앙드레가 물었다.


앙드레는 내 대답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들고 있던 생수를 벌컥 마셨다.


“그냥··· 매니저일··· 하는 거 아닌가요?”


건우의 맹한 대답에 앙드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헛기침을 뱉는다.


“소속 연예인 따라다니면서 일정 관리하고 이동을 책임지는 사람이 로드 매니저야!”


앙드레의 음성에서 우쭐거림이 느껴졌다.


곁눈질로 힐끔대는 모습에선 거만함도 보였다.


“일정에 따라 목적지까지 항상 제시간에! 차가 막히건, 도로에 빵꾸가 났건, 전쟁이 나서 다리가 끊겼건, 상관없이. 무조건 제시간에···! 그러니 운전이 중요하지 않겠어?”


건우는 말없이 수긍의 고갯짓을 했다.


“뭐해? 어서 출발해!”


앙드레가 차창 밖을 내다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건우는 깜짝 놀라 돌아본다.


“추, 추··· 출발하라고요? 계기판 설명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앙드레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돌아본다.


“그런 거 얘기해 줄 시간 없어! 그런 건 운전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얼른 출발!”


건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부릉-!


고급스러운 세단의 계기판에 전원이 들어오면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건우는 점점 빨라지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D’에 맞췄다.


풋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을 조금씩 떼니 세단이 천천히 움직였다.


핸들을 살살 틀면서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어느새 신호등이 깜빡이는 대로 앞이었다.


새벽의 도로는 한산했다.


가끔 시내버스와 화물트럭만이 보일 정도로.


건우는 앙드레가 왜 이 시간에 운전 연습을 시키는지 알 것 같았다.


“뭐해? 밟아!”


퉁명스럽게 내뱉는 앙드레의 말에 건우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밟··· 으라고요?”


백미러 안에 비친 건우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절벽 앞에서 밀리기 직전의 어린아이처럼.


“아··· 거 젊은 놈이 쫄기는. 안 죽어! 밟아!”

“네, 네··· 에!”


바들바들 떨던 건우가 마침내 엑셀에 발을 올렸다.


부릉!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쿨럭, 한 번 오바이트를 한 세단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앞좌석은 요동쳤고, 안전벨트를 메지 않고 있던 앙드레는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괜찮으니까 더 밟아. 시내 주행 제한은 60까지야. 그리고 들이받으면 보험처리 하면 되니까 그냥 밟아, 건달처럼!”


세단은 제법 속력을 내는 듯하다가 신호에 걸렸고, 다시 출발할 때가 되자 또 엉금엉금 기었다.


그 패턴이 계속 반복되자 앙드레는 답답한지 가슴을 쳐댔다.


“나, 참··· 속 터져서. 출근 시간 다 됐다. 정체 구간 걸리면 기어가야 해. 검정고시 학원 안 갈 거야?”


하지만 온 신경이 전방 5미터 앞에 고정된 건우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앙드레가 차 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간다.


“난 늦어서 택시 타고 갈 거니까, 넌 혼자 학원까지 가봐! 알았지?”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세단 안이 적막과 공포로 가득 채워진다.


“망했다!”



5.


자차를 모는 이들에게는 지옥 같다는 출퇴근 시간.


건우는 여지없이 그 지옥의 정체 구간에 걸려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러운 안개까지 자욱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한편으론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거북이처럼 기어서 그런 걸까.


초보인 건우를 향해 위협적으로 빵빵대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학원 수업 시작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시계를 보니 7시 18분.


수업 시작까지는 12분이 남았다.


아무리 검정고시 학원이라지만, 수업 첫날부터 지각하는 학생이 좋게 보일 리는 없다.


그리고 그 소식은 바로 줄리에게도, 또 어쩌면 한 회장한테도 전해질 것이다.


건우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입안이 바싹 마르자 목이라도 축여야겠다는 생각에 뒷좌석에 던져둔 배낭에 손을 뻗었다.


묵직한 책이 만져졌고, 지퍼가 반쯤 열린 틈새로 생수병이 잡혔다.


생수병을 뽑아들 때였다.


물기 묻은 표면에 뭔가가 달라붙어 같이 따라왔다.


“어···!”


건우의 눈이 확 커졌다.


부적이었다.


지난번 블라인드 인터뷰 작전 때 쓰다 남은 부적!


초코파이 상자에 담아 옷장 안에 넣어두었는데, 한두 장 흘린 모양이었다.


부적을 손에 쥐자 건우의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가만있자!”


그러면서 쌈박한 생각이 떠올랐다.


차창 밖을 둘러보았다.


서행하는 차의 깜빡이와 전조등만 겨우 보일 정도로 안개는 여전했다.


간혹 전조등에 운전석이 얼핏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건우는 슬며시 운전석 차창을 내렸다.


부적 든 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위로 뻗은 후 천장에 부적을 꾹 눌러 붙였다.


이어서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부양술!


유리창이 떨리면서 트렁크 쪽이 슬쩍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떠오르나 싶었지만, 차가 너무 무거운 것인지 아니면 영력이 모자란 것인지.


더는 힘을 받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고 만다.


“쳇, 이런···.”


부적에 수인까지 맺었는데 이 모양이라니.


건우는 자신의 모자란 영력을 탓하며 같은 수인을 다시 한번 맺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양팔도 빠르게 펄럭였다.


마치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그러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단이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 된다··· 뜬다··· 앗싸!”


신이 난 건우의 팔이 더 빨라졌다.


세단은 5미터, 10미터, 그렇게 솟아오르더니 어느 순간 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정고시 학원 건물이 위치한 쪽이었다.


시간은 7시 25분.


건우는 사력을 다해 날갯짓했다.


저만치 앞에서 학원 건물의 네온사인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 조금만 더!”


시뻘게진 건우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다.


힘들어 죽을 맛이었지만, 펄럭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 불과 10미터 정도 남은 상황!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건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맞다! 주차··· 주차는 어떻게 하지?”


이대로 떨어져서 다시 지하 주차장까지 들어가려면 족히 10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건우는 초보 아닌가?


그 좁은 공간에서 후면주차까지 할 생각을 하니까 또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후면주차는 공식도 가물가물하다.


그렇다고 길가에 아무 데나 차를 세울 수도 없었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건우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 그 위에 차를 세워두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옥상 주차!


빠르게 펄럭이던 건우의 팔이 조금씩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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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46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24.01.19 21 1 11쪽
45 045. 안 보이나 느껴지는 2 24.01.18 21 1 12쪽
44 044. 안 보이나 느껴지는 1 24.01.17 20 1 11쪽
43 043. 차가운 남풍 3 24.01.16 21 1 11쪽
42 042. 차가운 남풍 2 24.01.15 16 1 12쪽
41 041. 차가운 남풍 1 24.01.13 18 1 12쪽
40 040. 인사발령 2 24.01.12 16 1 11쪽
39 039. 인사발령 1 24.01.11 21 1 11쪽
38 038. 악귀나찰 2 24.01.10 18 1 12쪽
37 037. 악귀나찰 1 24.01.09 25 1 11쪽
36 036. 잠입 2 24.01.08 26 1 11쪽
35 035. 잠입 1 24.01.06 23 1 11쪽
34 034. 로드매니저, 건우 3 24.01.05 23 1 12쪽
»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24.01.04 27 1 12쪽
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9 1 12쪽
31 031. 방어진 4 24.01.01 29 1 11쪽
30 030. 방어진 3 23.12.30 33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33 1 11쪽
28 028. 방어진 1 23.12.28 36 1 11쪽
27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5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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