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23 21:10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3,033
추천수 :
58
글자수 :
634,660

작성
23.12.19 18:10
조회
42
추천
1
글자
11쪽

020. 봉인술 1

DUMMY

1.


줄리의 집.


가늘게 뜬 눈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왔다.


건우는 누운 채로 길게 기지개를 켰다.


포근한 침대에서의 늦잠이라니···.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건우는 한창 사생질에 미쳐있던 때가 생각났다.


스마트폰을 쥔 채로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깨던 나날들.


그런데 어찌 보면 지금의 잠자리가 그때보다도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침대가 고급이어서 그런가?


흐뭇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던 건우는 깜짝 놀랐다.


“으허어엌-!”


침대맡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


줄리, 앙드레, 그리고 윤 집사!


그들이 건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건우는 침대 시트로 몸을 감으면서 눈을 크게 떴다.


“우리 도사님! 굿모닝~!”


앙드레가 먼저 간드러진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이어서 그 느끼한 얼굴이 건우에게 다가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확 달라진 반응이라니.


이유는 알만했다.


건우는 어젯밤 일이 다시 떠오르자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피었다.


“하도 곤히 잠을 자서 깨우지를 못하겠더라고. 얼른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이번에는 줄리가 말했다.


긴장과 두려움이 사라진 그녀의 얼굴.


줄리는 TV에서 봤던 것처럼 다시 인형으로 돌아와 있었다.


건우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에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우리가 먹는 걸 차렸는데. 오늘은 그냥 같이 먹자고! 내일부터는 원하는 걸 말해. 만들어 줄 테니까.”


윤 집사도 푸근하고 정겨운 얼굴로 건우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KFC 할아버지가 보였다.


다이닝룸은 복도의 제일 끝.


건우가 머무는 별실에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집이 넓다 보니 ‘한참’은 말 그대로 한참이었다.


건우는 세수도 안 한 잠옷 차림이 무안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세 사람은 편하게 와서 식사를 해도 좋다고 양해를 해 주었다.


난데없이 불쑥 떨어진 불청객에서 갑자기 귀빈 대접이라!


좀 어색하고 난감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봤을 때 이러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다이닝룸의 가운데에는 대리석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한 이십여 명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데, 반들반들 빛나는 게 근사했다.


블라인드가 쳐진 채로 살짝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스며들어 왔다.


그 바람에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러자 은은하게 출렁이는 빛의 물결이 테이블 위에서 춤을 췄다.


‘식구도 셋밖에 없는데 이렇게 으리으리한 식탁이라니···.’


건우는 위화감에 또 몸이 움츠러들려 했다.


하지만, 이 집주인이 누구인가?


한류스타 줄리 한이 아닌가?


그걸 다시 확인하자 불편한 마음은 금세 녹아 버린다.


줄리는 건우를 가장 상석에 앉혔다.


건우는 쑥스러운지 계속 머리를 긁적이다 앞에 놓인 주스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윤 집사가 식사를 테이블에 세팅하자 앙드레가 건우 옆에 앉았다.


“참! 어제 작전대로, 거기서 나오면서 신 기자 그놈한테 문자는 보내놨어. 자,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


‘작전’이라 함은 신 기자가 깨어났을 때 스스로 현장에서 박차고 나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건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아침 식사를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TV에서나 봤음 직한 서양식 호텔 조식은 건우의 식도를 매끄럽게 타고 내려갔다.


건우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앙드레와 줄리, 그리고 윤 집사도 커피잔에 커피를 따랐다.


“상황이 완전히 정리됐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우리하고 조금만 더 있자, 응?”


따끈한 식빵에 과일잼과 땅콩버터를 반씩 발라 입에 넣던 건우가 멈칫했다.


고개를 들어 줄리를 바라보자 줄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 게 확인되면 바로 보내주도록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건우는 줄리의 말에 뭔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줄리가 환하게 웃었다.


앙드레와 윤 집사도 만족의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2.


대형마트 앞 주차장.


후텁지근한 밤기운이 여전한 시각.


주차장이 조금씩 비어 간다.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자 점원이 흩어져 있던 카트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카트가 바닥을 긁으면서 나는 소리가 요란했다.


전선 위에 앉아있던 법사들이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다들 모가지가 처지고 부리에 힘이 없었다.


피곤함에 찌든 모습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곳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건우의 흔적을 찾는다며 분주하지 않았던가.


2인 1조로 마치 정찰기처럼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던 정밀 정찰.


이는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눈에 뜨일까 봐 함부로 회복술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 먹은 것이라고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풀 이끼, 설익은 채 떨어진 썩은 과실, 심지어는 나무 진액 같은 것들뿐.


힘이 없고 몸이 지치는 건 당연했다.


정철은 스승이 앉은자리를 돌아보았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곤히 날개에 묻고 계시는 모습이 무척 애잔해 보였다.


피로가 가중되어 조금 전 소음에도 반응하지 못하셨던 걸까.


정철은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때였다.


저만치에서 철산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야간 정찰에서 돌아오고 있는 거였다.


다들 피곤하니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 다시 시작하자는 스승의 말씀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철산은 자진하여 단독 야간 정찰을 고집했다.


다른 법사들보다 눈과 귀가 밝고 감지력이 뛰어난 철산!


건우가 치고 달아난 방어진에서 부적도 가장 먼저 발견하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의 희생이 법사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런 철산의 모습에 정철뿐 아니라 스승 운천도 크게 감동한 건 당연했다.


“서쪽에서 미세한 영력이 느껴졌소이다.”


철산은 전깃줄에 앉자마자 정철을 보며 말했다.


날개를 접고서도 아직 몸이 많이 떨리고 있었다.


기운을 무리해서 쓴 게 틀림없었다.


“그 아이의 영력이 맞는 것 같으오?”


정철은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었다.


“우리가 추적해 온 기운과 매우 흡사합디다.”


날개 사이를 부리로 쓰다듬으면서 말하는 철산은 가쁜 숨을 잘도 참고 있었다.


“혹시 어떤 도술이었소?”


정철은 건우가 쓸 수 있는 도술의 종류를 생각하며 물었다.


“주변 전파의 영향도 있고, 또 마침 비행기도 지나가고 있어서 정확히 파악은 불가했지만···.”


철산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영력의 파장이 짧은 게, 식신을 부릴 때 쓰는 도술 같기도 하고, 또 부적에 기운을 넣는 것도 같았소이다.”


철산의 말을 듣던 정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세상을 크게 어지럽힐 만한 난리까지는 아닌 듯싶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아직 자제력이 부족하고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가 아닌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일을 벌이기 전에 어서 막아야 했다.


정철은 다시 철산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날이 밝은 후에 위치를 대충이라도 확인할 수 있겠소이까?”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정철의 얼굴은 간절해 보이기도 비장해 보이기도 했다.


“주변 전파가 생각보다 강해서 장담은 못 하겠소만···.”


철산은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정철과 눈을 마주치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인다.



3.


지리산 기슭 어느 곳.


날이 저물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긴장감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야생닭은 피곤함을 몰랐다.


여전히 나뭇등걸 위에 꼿꼿이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반면에 영일은 웅크린 자세가 영 불편했다.


온종일 달리다 드디어 바닥에 몸을 붙일 때는 그리 좋더니만.


그것도 이리 오랫동안 꼼짝도 못 하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


영일은 변신술에 성공한 순간을 또 떠올려 보았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던 도술이 우연히 단박에 성공하자 놀라움으로 흥분에 젖던 순간!


평소 폭포수련 때마다 실수가 잦아 정철 법사에게 많은 잔소리를 듣던 자신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런 흥분도 잠시.


그렇게 성공한 도술이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자 영일은 다시 우울해지고 말았다.


사실, 도술에 성공하는 것과 그 도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닌가.


영일은 한숨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기다리는 것뿐이라!’


몸이라도 성하면 이렇게 계속 참고 기다려 보기라도 하겠건만.


놈과의 난투극으로 다친 상처들은 이제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던 영일에게 문제가 생겨버렸다.


바로, 바짓단으로 동여매 두었던 종아리의 상처.


그 상처가 터지면서 피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뜨끔, 타들어 가는 통증 때문에 몸까지 움찔대자 놈이 고개를 틀며 노려보았다.


놈은 바로 영일이 있는 곳까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쿡~! 쿡~! 쿡~!


놈에게는 분명 영일이 돌덩이로 보일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놈의 부리는 정확하게 영일의 종아리 상처 부위를 쪼아대고 있었다.


피 냄새로 확인한 것일까?


영일은 사력을 다해 이를 악물고서 신음을 참아냈다.


하지만,


쿡~! 쿡~! 쿡~!


놈의 부리가 다시 종아리를 쪼았다.


아니, 물어뜯는다고 해야 할까.


마치 ‘숨어 있는 거 이제 걸렸다!’라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했다.


놈은 갑자기 사정없이 부리를 놀려댔다.


“흐으··· 아아아앜-!”


영일의 비명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펑-!


하며 영일에게 걸려있던 도술도 풀려버렸다.


영일은 낮 동안 놈과 사투를 벌일 때보다도 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영일의 눈앞에서 생생한 현실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쉬면서 체력을 축적한 놈이 앞발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영일의 뺨을 후려쳤다.


영일은 이를 막으려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팔목을 거칠게 긁은 놈의 앞발은 그대로 영일의 턱도 할퀴고 지나갔다.


“아아아아앜-!”


영일의 비명이 또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 비명을 즐기기라도 하듯 이어지는 놈의 연속 공격!


이번에는 놈의 부리가 영일의 왼쪽 눈을 향했다.


숲에서의 해는 빨리 떨어진다.


제법 어스름한 공간에서 공포에까지 질려있는 상황.


이런 와중에 사지까지 멀쩡하지 않은 자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는 그저 허우적대는 것뿐.


그런데 야생닭은 사악할 정도로 날렵했다.


놈은 그 허우적거리는 틈을 귀신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흐아아아··· 아아앜···!”


아직 해가 다 떨어진 건 아니었을 텐데, 영일의 한쪽 눈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휩싸인다.


영일은 왼쪽 눈에 부리를 박고 퍼덕대는 놈의 몸통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떼어내려 애를 썼다.


뒹굴기도 몸부림치기도 하면서.


입에서는 여전히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비명이 아니라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울부짖음!


영일의 한쪽 손이 놈의 깃털을 한 움큼 뜯어냈다.


그사이 또 다른 손은 목 부위의 살점을 찢었다.


꾸에에에엨!


그러자 놈은 마침내 영일의 몸에서 떨어지더니 뒷걸음질을 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보도사 나가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24.01.04 25 1 12쪽
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7 1 12쪽
31 031. 방어진 4 24.01.01 26 1 11쪽
30 030. 방어진 3 23.12.30 29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29 1 11쪽
28 028. 방어진 1 23.12.28 35 1 11쪽
27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3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6 1 11쪽
25 025. 손님맞이 2 23.12.25 48 1 11쪽
24 024. 손님맞이 1 23.12.23 36 1 12쪽
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7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37 1 11쪽
21 021. 봉인술 2 23.12.20 38 1 12쪽
» 020. 봉인술 1 23.12.19 43 1 11쪽
19 019. 딸기잼, 포도잼 2 23.12.18 36 1 11쪽
18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43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43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49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46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47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49 1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56 1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56 1 11쪽
10 010. 일거양득 1 23.12.08 62 1 11쪽
9 009. 건우, 드디어 2 23.12.07 68 1 11쪽
8 008. 건우, 드디어 1 23.12.06 74 1 11쪽
7 007. 추적 3 23.12.05 76 1 11쪽
6 006. 추적 2 23.12.04 84 1 12쪽
5 005. 추적 1 23.12.03 91 1 11쪽
4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23.12.02 119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