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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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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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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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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취중진담 1

DUMMY

1.


‘불콰한 기분으로 산길을 달리는 묘미란 게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일성은 알딸딸한 상태에서 축지술을 유지하다가 나뭇등걸에 몸을 자꾸 부딪쳤다.


그때마다 보통 걸음으로 돌아와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을 슈퍼에서 사 마신 술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속력을 내 달려서 그런 걸까.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 그만이었다.


스승의 꾸지람 때문에 어수선했던 마음은 이제 좀 가라앉아 있었다.


“이래 봬도 내가 일성이다! 도술로 치면 내가 운천 바로 다음이라고!”


일성은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외쳤다.


태양 볕이 스며들면서 습기가 말라가던 숲속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외침은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처럼 돌다가 이내 부드럽게 잦아들었다.


비틀비틀 갈지자를 그리며 걷던 일성은 잠시 멈춰 섰다.


손길이 자연스레 허리춤에 찬 팩 소주 여덟 개에 다가갔다.


팩의 표면에 묻은 물기가 기분 좋게 만져졌다.


“얼른 가서 송담하고도 한잔해야지, 흐흐흐···.”


일성은 스승 일행과 헤어지기 전 그들이 변신술을 쓰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그때 가만히 계산을 해보았다.


건우 그놈이 방어진을 치고 변신술까지 써서 달아났다.


아무래도 잡히는 데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최소한 하루 이상은 족히 걸릴 수도 있다.


그건 다시 말해, 적어도 오늘 하루 동안은 청운당이 무주공산이라는 뜻!


‘건우,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아, 아니··· 법사들이 방심을 한 거지, 후훗!’


일성은 건우가 청운당에 처음 왔던 때가 떠올랐다.


부친의 뒤에 선 채 우리를 힐끔대던 모습.


툭 튀어나온 입은 그대로 굳어버린 듯 들어갈 줄을 몰랐고.


어리숙한 더벅머리에 가려진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했다.


냉랭한 분위기의 다른 법사들과는 달리 일성은 왠지 건우에게 호감이 갔다.


그 알 수 없는 끌림이 바로 오늘의 이런 사달을 만들기는 했지만.


일성은 고개를 들어 숲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보았다.


입가에 씨익 웃음이 돌았다.



2.


오래간만에 느지막이 일어난 송담은 마당을 쓸고 있었다.


휘파람까지 휘휘 불며 비질을 해나가는 그의 등은 벌써 땀으로 축축했다.


잠시 멈춰선 송담은 기지개를 크게 한번 켰다.


벌써 중천에 뜬 해가 제법 따가웠다.


이게 얼마만의 늦잠인가.


매일 새벽같이 스승 운천의 성화에 못 이겨 눈을 뜨면서 하루를 시작해 온 게 벌써 십 년이라.


짜증도 나고 괴롭기도 하여 하산을 생각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건만···.


오늘같이 이런 날도 오는구나, 후훗!


송담은 해를 보고 눈을 찡그리면서도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일주일 전이던가.


나무를 하다 허리를 삐끗해서 한 며칠 누워있었다.


그런데 그걸 잘 아는 정철이 오늘 새벽에 스승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송담은 그걸 똑똑히 들었다.


송담은 아직 몸이 온전치 않으니 청운당에 머물게 하시라는.


‘정철···! 고마운 사람.’


과연 청운당을 이을 후계자다운 인덕이 아닌가.


빗자루를 다시 고쳐 잡은 송담은 흙먼지가 이는 마당을 곱게 쓸어 나갔다.


부엌에서 밥 짓는 냄새가 스멀스멀 번져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신참인 영일 법사가 아궁이에 부채질을 열심히 해대고 있었다.


영일도 간만에 늦잠을 푹 잤을 것이다.


밥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시장기가 돌았다.


마당을 쓰는 소리에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었다.


송담은 그게 우스운지 피식, 웃음이 터졌다.


꼬꼬꼬꼬~ 퍼드득-!


비질을 하던 송담이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초가지붕 위!


또 그놈들이다.


요 며칠 전부터 청운당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야생닭 두 마리!


일성의 말로는 마을에 식료품을 사러 갈 때마다 숲에서 보이던 놈들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탈출한 건지, 누가 버리고 간 건지, 아니면 누가 고의로 놓아준 건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매번 밥을 지을 때마다 다가와 저렇게 퍼덕거리면서 먼지를 일으키니 말이다.


도술을 써서 확 목을 비틀어 버렸으면 좋겠지만···.


스승 운천은 맑은 영기가 탁해진다고 함부로 살생을 말라고만 하니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송담은 빗자루를 세워 들고 초가지붕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미처 크게 한번 휘두르기도 전이었다.


놈들은 또 푸드덕 먼지를 일으키더니 저만치 숲 근처로 날아가 버린다.


골이 난 송담은 콧바람을 거세게 내뿜었다.


“이보게 영일! 나중에 저 닭 좀 잡으시게.”


송담의 짜증 섞인 말에 영일은 아궁이에 부채질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희멀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척이나 날랜 놈들입니다. 밤에는 부엌에까지 들어와서 곡식도 훔쳐 먹습니다.”


영일의 말에 더 화가 난 걸까.


송담은 빗자루로 놈들이 있는 쪽을 냅다 휘저으며 말을 잇는다.


“아니, 그런데 무슨 닭이 새벽에 울지도 않고 저러고만 다니나.”


영일은 송담의 투덜거림에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그때,


“여보게 송담!”


송담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혀가 좀 꼬부라지긴 했지만, 분명 일성이었다.


송담은 휙 몸을 돌렸다.


비틀대는 일성이 곱게 쓸어놓은 마당을 다시 어지럽히며 들어오고 있었다.


송담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아니, 어찌 혼자 오시는가?”


달아난 건우를 붙들어서 돌아오는 법사들의 모습을 예상하던 송담은 의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일성은 헤벌쭉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대뜸,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세. 간만에 한잔하면서 말일세···.”


하며 송담의 팔짱을 끼었다.


송담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초가 안으로 끌어 당겨졌다.


“어어··· 아니, 어디서 술을 이리···.”


진하게 풍기는 술 냄새에 코를 틀어막은 송담은 끌려가지 않으려 버텼다.


그런데 일성이 허리춤에 찬 팩 소주를 슬쩍 내보일 때였다.


송담은 얼굴색이 순간 변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만다.


인적 드문 깊은 산속.


그 안에 묻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에 눌려 있던 건 송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속세에 있을 때는 술 좀 한다고 하던 주당이 아니었던가.


남이 술에 취해 비틀대는 건 보기 흉해도, 그 술이 내 목구멍을 타고 들어오는 건 또 다른 얘기.


송담은 이제 일성의 역한 술 냄새를 맡으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좀 불안했다.


함께 길을 떠났던 스승 일행은 왜 같이 돌아오지 않은 건가.


이러다 갑자기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쩐다···.


초가 안으로 끌려 들어가던 송담이 재차 혼자 돌아온 이유를 물었다.


“들어가서 얘기한다니까···.”


하지만 일성은 막무가내로 송담을 끌어당기기만 했다.



3.


소주가 세 팩이 빌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일성이 네 번째 팩을 딸 때였다.


방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찻잔 두 개가 불쑥 들어왔다.


영일이 밀어 넣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법사님들,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하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일성과 송담,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 당부의 말이란 게 둘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변을 염려하는 것이라는 걸.


“그러지 말고, 자네도 우리랑 같이하시게!”


잔뜩 농이 섞인 일성의 권유였다.


하지만 영일은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할 일을 핑계로 얼른 자리를 피해버린다.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둘 사이를 오갔다.


덕분에 어색한 긴장감은 한껏 누그러졌다.


잔에 채워지는 술맛은 분위기를 더 무르익게 하고 있었다.


일성이 송담의 잔을 채워주며 입을 열었다.


“스승께서 청운당을 비워두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나를 친히 돌려보내지 않으시던가.”


술기운에 흥이 올라서인지 또 허풍이 작렬한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벌건 일성의 얼굴 때문이었을까.


참말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생각이면 정철 법사를 보내실 일이지··· 넘버원과 넘버투가 같이 다니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취한 마당에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을 것이다.


송담은 별생각 없이 일성의 빈 잔을 다시 채워준다.


그런데 잔을 쥔 일성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스승께서 후계자로 정철을 마음에 두고 계신다지?”


채워진 잔을 단숨에 들이켠 일성은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넌지시 물었다.


“다들 알고 있는 얘기 아닌가? 실력이나 인품이나 어디 하나 모자란 게 없으니.”


송담은 잔에 남아있던 술을 입에 털어 넣으려다가 잠시 멈추며 말했다.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일성.


잔을 쥔 그의 손에 또다시 힘이 들어갔다.


일성은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몸을 추슬렀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점점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일성은 여섯 번째 소주를 땄다.


송담의 정철에 대한 칭찬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일성은 몇 번의 불편한 시선과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송담은 제법 취해서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다.


“스승께서 정철을 아끼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허허허!”


혀가 많이 꼬부라진 송담은 눈까지 풀려있었다.


잔을 쥔 손도 많이 떨리고 있었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일성.


거칠어지다가 잦아들다가를 반복하던 그의 숨결에서 이젠 더운 열기가 잔뜩 느껴졌다.


“송담, 자네 같은 훌륭한 사람도 있는데 왜 그리 정철만 추켜세우는가?”


굳이 정철이 아니더라도 청운당을 이을만한 법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뜻을 넌지시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물론 일성도 포함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미 만취하여 정신 줄을 놓아버린 송담이었다.


그는 선을 넘어서는 말들까지 슬슬 뱉어내기 시작한다.


“허허, 내가 그리 훌륭하면 매일 법당에서 불상이나 닦고 법사들 빨래나 하고 있겠는가? 그건 일성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일성은 귀가 쫑긋 서는 게 느껴졌다.


듣고 싶었던 얘기였다.


바로 자신에 관한 말들을.


스스로 이인자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청운당에서 알게 모르게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에 관한 말들을.


“아니,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게 있나?”


일성이 무심한 척 물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 위로 송담의 두 눈이 끔뻑거렸다.


“에이, 이런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송담은 곧 고개를 처박고 잠에 빠져들 듯하면서도 입을 놀리는 걸 쉬지 않았다.


“생각해 보게나. 마을에 장을 보러 가는 걸 왜 맨날 자네에게 시키겠나? 그 허드렛일을···.”


일성은 몇 년 전이 떠올랐다.


스승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그 일을 맡겼을 때를.


그때 스승은 청운당 식구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하며 일성을 추켜세웠었다.


그런데···.


“그리고 폭포수련 하러 갈 때 누가 법사들을 인솔하던가? 경력으로 치면 내가 더 오래고, 도술로 치면 자네가 더 위인데, 왜 정철이 인솔하겠나?”


듣고 보니 그랬다.


법사들의 집중 수련 시간인 폭포수련.


일성은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어서 신경 안 쓰고 있었건만···.


쭉 운천이 해오던 일을 어느 순간부터는 정철이 하고 있었다.


스승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 한 일.


“한번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네. 스승은 그저 우직한 사람보다도 순간순간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송담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일성은 다시 술잔을 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니 잔에 찬 술이 미세하게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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