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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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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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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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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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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30. 방어진 3

DUMMY

7.


유정과 만봉은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겨우 방문까지 다가갔다.


하지만 문을 열어젖히자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영일이었다.


그는 바로 문 앞에서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수인을 맺으려 했다.


만봉이 재빨리 손가락 둘을 붙여 세우더니 그를 향해 뻗었다.


파악!


영일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몸뚱이는 순식간에 시뻘겋게 타올랐다.


불꽃이 거세게 사방팔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불길에 휩쓸려 버릴 것 같았다.


영일은 그 와중에도 웃고 있었다.


그건 영일의 웃음이 아니라, 일성의 웃음이었다.


“으하하하핫-! 어딜 도망가느냐! 너희들의 명은 여기까지라니까. 다 죽어라, 여기서!”


이번에는 유정이 두 손을 붙이면서 앞으로 뻗었다.


퍽-!


불붙은 영일의 몸이 붕 뜨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영일의 몸에 붙어있던 불길이 튀어 이미 방안까지 옮겨붙은 상황이었다.


방안에도 빠르게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한편 구석에 엎어진 송담을 노려보던 만봉이 그 옆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눈이 커졌다.


“역시나-!”


구겨진 채 나뒹굴고 있던 건 부적 한 장이었다.


송담의 몸에 붙어 있다가 장풍의 위력에 떨어진 것이었다.


만봉이 그것을 집어 들어 필체를 살폈다.


일성이 쓴 게 맞았다.


입술을 깨문 만봉은 부적을 불길 속에 거침없이 던져버렸다.


그러자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이 천천히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밥상, 그 위에 있던 음식들, 청운당, 마당에 나가떨어진 영일까지···.


유정과 만봉은 또 하나의 허상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공포에 질렸다.


허상이 사라지자 그들 앞에 어둠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한밤중이었다.


하늘에는 반달이 걸려있었다.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동시에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번 역시 진이었소.”


두 번째 방어진은 그렇게 깨졌다.


만봉은 허상들과 함께 사라지지 않은 유일한 하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건, 송담의 시신이었다.


“송담은 죽은 게 맞소이다!”


만봉은 그의 뒤틀린 시신을 가지런히 펴면서 말을 이었다.


“고얀 놈! 동료 법사의 시신을 식신으로 부리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만봉은 송담의 시신을 수습한 후 뭔가가 더 생각났는지 유정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처음부터 좀 이상했소이다.”


유정도 만봉을 바라보았다.


“청운당에 다가설 때 말이요. 송담이 비질을 하고 있었소이다. 그런데 왼손잡이인 송담이 오른손잡이처럼 빗자루를 잡고 마당을 쓸고 있지 않았소? 초가에 들기 전 마당을 둘러봤을 때도 역시나 평소 그가 쓸던 방향과 정반대로 흔적이 남아있었소이다.”


유정은 아, 하는 탄식과 함께 고개를 주억댔다.


만봉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영일 그 아이! 평소 성격이 워낙 깔끔하여 절대 밥주걱을 들고 부엌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소이다. 그런데 아까는 분명 아니었소.”


유정이 허리를 굽혔다.


흉하게 일그러진 송담의 얼굴에 작은 헝겊을 하나 덮어준 후 짧은 묵념을 올렸다.


만봉도 그 옆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망자를 향한 예를 올렸다.


두 사람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자리를 둘러보았다.


북극성을 찾아 위치를 확인한 그들은 곧바로 청운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진짜 청운당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또 다른 방어진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8.


초가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보고 있던 일성이 몸을 일으켰다.


저만치 앞에서 불꽃이 일었다가 사그라지는 게 보였다.


두 번째 방어진이 깨진 것이었다.


“한밤중에 불꽃놀이가 아름답구나, 후훗!”


일성은 두 번째 방어진이 있던 곳과 청운당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러고는 직감했다.


이제 슬슬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가 왔음을.


일성은 법당 쪽으로 걸어가다가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초가 마루 아래를 향해 말했다.


“얘들아! 너희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있거라!”


마루 아래의 으슥한 좁은 공간에는 엽총을 손에 쥔 길수와 철민이 있었다.


일성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둘의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다시 법당으로 향하는 일성이 한 손으로 배를 슬슬 문질렀다.


끼니를 계속 술과 고기로만 채워서 그런 걸까.


배는 여전히 든든했다.


이대로라면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을 듯싶었다.


법당 안에서 자신이 써둔 부적들을 모조리 들고나오는데 그 두께가 제법 두툼했다.


일성은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 부적들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운 채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가끔 구름에 가리는 반달 때문에 앞마당은 흐릿하게 보이다가 밝아지다가를 반복했다.


일성은 어둠에 익은 눈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작개비 몇 개를 주워 모았다.


대부분 다 실한 것들이었지만, 개중에는 그 끝이 불에 살짝 타다만 것도 있었다.


영일이 달아나는 걸 막으려고 전정술을 썼던 것 때문이었다.


일성은 문득 영일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몸에 불이 붙은 걸 겨우 끄고는 황급히 달아나던 모습.


식신으로 삼은 야생닭의 추격은 물리쳤을까?


그놈, 아직 살아는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곧 흩어졌다.


일성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부적들을 다시 손에 쥐었다.


한 장 한 장씩 그것들을 장작 위에 펼쳐 올리면서 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나머지 부적은 다시 바지춤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일성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힐끔 얼굴을 내미는 반달이 밝았다.


반달은 수줍은지 다시 얼굴을 구름 뒤로 감췄다.


스승 운천에게 도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도 오늘처럼 반달이 수줍어하던 날이었다.


일성은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영력이 강해지고 도력이 쌓이면 스승인 운천과도 대적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사람들은 과연 누가 이긴다고 할까?


마냥 철없던 천둥벌거숭이 어린아이가 자라 드디어 지금의 일성이 되었다.


만약 그때 그 생각을 밖으로 내뱉었다면 다들 일성을 미친놈이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다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누가 이긴다고 할까?


“누가 이기긴 누가 이겨? 당연히 나지! 내가 이제 청운당의 주인이라니까!”


일성은 또다시 얼굴을 내밀려고 하는 반달을 향해 외친 후 장작더미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쫙 편 왼손바닥 위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올라갔다.


분신술의 수인!


손끝에 기운을 불어넣자 바닥이 흔들렸다.


늘어져 있던 장작개비들이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렇게 떨림이 더해가던 중이었다.


올라있던 부적이 갑자기 장작의 몸통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일성의 손끝에서 빛이 발했다.


영롱하고도 여운이 짙은 빛이었다.


그 빛을 받은 장작개비들이 서서히 몸을 부풀렸다.


허벅지 굵기까지 커진 놈들은 금세 다시 항아리 정도로 팽창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이 되자, 일성의 키만큼이나 길쭉하게 솟아올랐다.


“식구들이 돌아올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이제 슬슬 잔치를 준비하세! 허허헛!”


다시 구름에서 벗어난 반달이 앞마당을 비추었다.


그러자 조금 전 다섯 개의 장작개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작개비들은 모두 다섯 명의 일성이 되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분신술!


실로 장관이었다.


진짜 일성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분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9.


다시 청운당 앞 폭포가 나타났다.


유정과 만봉은 반갑다기보다는 조심스러웠다.


과연 이번에는 진짜일까?


두 사람은 같은 의문에 동시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구름 속을 유영하던 반달이 제 모습을 반쯤 내보였다.


만족할 만큼의 환한 빛은 아니었지만, 한밤에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유정과 만봉은 청운당 입구로 들어서는 오솔길에 발을 들였다.


사박사박! 사박사박!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소리가 선명했다.


이미 눈은 어둠에 익어있었지만, 그래도 불안정한 시각보다는 선명한 청각이 더 믿을 만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청운당 쪽으로부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쉿-!”


앞장서서 걷고 있던 만봉이 멈춰서더니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붙였다.


유정도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다가오는 발소리는 그대로였다.


아무리 어둠에 눈이 익은 상황이라지만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법.


만봉은 다가오는 것의 정체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싶었는지 고개를 쭉 내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누가 남의 집 앞에서 얼쩡대느냐!”


거친 남자의 음성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만봉이 다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물러섰다.


뒤따르던 유정도 당황했는지 두어 걸음을 물러나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청운당은 내 집이다!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하지만 다시 이어지는 남자의 외침.


그런데 이 남자의 목소리, 어딘가 익숙했다.


바로, 일성의 음성이었다.


잔뜩 움츠린 경계 자세로 전방의 어둠 속을 주시하던 두 사람은 천천히 자세를 바로 가다듬었다.


“일성 법사님! 만봉입니다. 유정과 함께 왔습니다. 잠시 얘기를···.”


퍼억-!


만봉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그의 가슴팍에 묵직한 장풍이 날아들었다.


몸이 뒤로 밀려나면서 뒤에 서 있던 유정도 함께 나동그라졌다.


두 사람이 다시 일어섰을 때 드디어 일성의 모습이 눈앞에 흐릿하게 나타났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한번 수인을 맺으려 했다.


“네 이놈!”


하지만 이번에는 만봉의 손이 더 빨랐다.


퍽-!


일성의 몸이 뒤로 밀려나면서 크게 휘청거렸다.


양손도 아니고 비록 한 손으로 쏘는 장풍이었지만, 영력이 집중된 파괴력은 상당했다.


일성이 겨우 중심을 잡고는 다시 수인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켜보고 있던 유정이 바로 손을 뻗었다.


퍼벅-!


유정의 장풍은 조금 더 강했다.


충격으로 나동그라진 일성을 보며 유정이 이번에는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영력에 일성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으하하하하하핫!”


요망한 웃음소리와 함께 일성의 몸에 불이 붙었다.


화염에 휩싸인 일성의 몸이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불길에 놀란 유정과 만봉이 한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몸을 움츠린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기괴한 웃음소리는 한동안 두 사람의 귓전을 울리다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불길에 허우적대던 일성의 모습도 사라졌다.


바닥에는 장작개비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보시오, 분신술이요!”


유정은 그 장작개비를 주워 들었다.


타다 남은 부적이 장작의 표면에 남아있었다.


유정은 그걸 떼 내어 들어보았다.


“역시, 일성의 필체올시다”.


게다가 경면주사도 아니고 짐승의 피로 쓰여 있었다.


(* 경면주사(鏡面朱砂): 주홍색 또는 적갈색이 나는, 황화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광물의 결정체. 부적을 쓸 때 많이 사용된다.)


정 가운데 ‘殺’이란 글자가 선명한 게 섬뜩함 마저 주는 부적이었다.


유정은 잔뜩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만봉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방어진이 끝나지 않은 것 같소이다.”


눈을 부릅뜬 만봉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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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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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37. 악귀나찰 1 24.01.09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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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033. 로드매니저, 건우 2 24.01.04 27 1 12쪽
32 032. 로드매니저, 건우 1 24.01.03 2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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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 방어진 3 23.12.30 33 1 11쪽
29 029. 방어진 2 23.12.29 33 1 11쪽
28 028. 방어진 1 23.12.28 36 1 11쪽
27 027. 블라인드 인터뷰 2 23.12.27 35 1 11쪽
26 026. 블라인드 인터뷰 1 23.12.26 3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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