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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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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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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6. 살인부적 1

DUMMY

1.


도심에 들어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두에 선 뱁새가 갑자기 균형을 잃었다.


목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한동안 갈피를 못 잡더니, 날갯짓하는 횟수도 갑자기 줄었다.


건우의 흔적을 놓친 것이다.


그 후 운천 일행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조금 있으면 뱁새는 기력이 다할 것이다.


도술이 풀리면서 그대로 곤두박질칠 것이고.


정철은 난감했다.


‘이거 어찌한다··· 큰일이군.’


날갯짓을 하던 정철이 스승을 힐끔 돌아보았다.


아직 노기(怒氣)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히 피로한 움직임이었다.


아무리 도력이 높다지만 벌써 일흔다섯의 나이가 아닌가.


그 노구가 이렇게 장시간 바람을 맞으며 날아왔으니.


스승에 대한 걱정이 깊어지자 마음은 더 급해졌다.


정철은 다시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건우의 흔적은 분명 저 아래 대형 상가쯤에서 사라졌다.


뱁새가 방향감각을 잃은 것도 바로 저 부근부터였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늘어난 전파로 인한 방해 탓일까.


확실히 법사들이 정신을 집중하고 영력을 모으는 데 힘이 더 드는 것 같았다.


정철은 과거 스승 운천이 악귀 나찰(羅刹)을 잡으러 부산까지 다녀온 후에도 같은 말을 했던 걸 떠올렸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흔적을 더듬어야 한다.’


정철은 그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제자와 눈을 마주친 운천이,


“장시간 날아와서 피곤하구나. 여기서 잠시 쉬어가자.”


라며 제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우선 운천은 식신으로 부리던 뱁새를 회복시켰다.


오랜 시간 의도치 않게 몸과 마음이 사로잡혔던 작은 미물.


도술이 풀리자 하염없이 곤두박질을 쳐버린다.


이를 지켜보던 운천이 애처로운지 혀를 찼다.


“쯧쯧, 저런! 저 가엾은 것이···.”


그러면서 뱁새의 꽁무니를 쫓기 시작한다.


법사들은 스승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작은 미물 하나 함부로 대하지 않던 운천!


도술 수련을 위해 쓰이던 힘없는 생물, 작은 풀 한 포기까지도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놓던 스승이 아니던가.


어느 순간 운천이 속력을 줄이면서 날개를 급히 퍼덕였다.


운천의 눈에서 안광이 발했고, 그 빛은 그대로 뱁새를 향해 날아갔다.


운천이 영력을 쏜 것이었다.


떨어지던 뱁새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기충(元氣充)이라!


운천 본인의 체력도 시원치 않은 마당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모자란 영기를 저 미약한 새에게까지 나누어주다니.


기력을 거의 다 소진했던 뱁새는 순간 다시 회복하면서 기운을 차렸다.


날개를 야무지게 퍼덕이는 모습이 마치 새로 태어난 새 같았다.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뱁새는 자신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조화냐 싶어 한동안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아!”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철은 감탄을 뱉어내었다.


인간의 몸으로 부리는 도술도 쉽지 않은데, 새의 몸을 한 상태로 저리 자유자재로 영력을 쏘다니.


그것도 기운이 많이 쇠한 상태에서 말이다.


도사 중의 도사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다 싶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뱁새가 멀어져 가는 걸 지켜보던 운천이 다시 법사들을 돌아보았다.


평소와 같은 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앞 전신주에 자리를 잡도록 하자!”


그러고는 몸소 앞장서서 대형 상가 근처 전신주로 향했다.


운천이 택한 장소는 적절해 보였다.


일단 전신주가 높아 사람의 눈과 손이 닿기 어려웠다.


또 시야가 탁 트여 기운을 느끼기에도 좋았다.


게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상가 뒤편 공터로 몸을 숨기면 그만이었다.


“도술이 풀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사람이 다니는 길 근처다. 갑자기 새가 사람으로 변해 하늘에서 떨어지면 야단법석이 날 것이다.”


전깃줄 위에 차례로 내려앉는 법사들을 향해 운천이 말했다.


정철은 스승의 말에 한마디를 더했다.


“다들 쉬면서도 정신을 집중하는 걸 잊지 맙시다. 누구라도 건우 그 아이의 영력이 느껴지면 지체없이 내게 알려주시오.”


말을 마친 정철은 스승의 곁으로 날아가 앉았다.


어깻죽지에 느껴지던 저항이 사라지자 그 틈을 피로로 인한 고통이 메우고 들어왔다.


금방 날을 세운 칼끝으로 천천히 쑤시는 느낌이 이와 같을까.


앓는 소리라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괴로울 스승은 내색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정철은 스승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물어보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건 운천이었다.


“큰일이구나, 그 아이가 이렇게 빨리 서울까지 날아올 줄이야.”


자신의 피로감을 감추려 일부러 말을 돌리시는 건가.


정철은 혹시라도 스승의 호흡이 전보다 더 거칠어진 건 아닌지 귀를 기울였다.


“도술도 그렇지만 부적도 문제구나.”


하지만 정철의 걱정과는 달리 스승의 호흡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삼백 장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양입니다.”


정철이 스승과 호흡을 맞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천은 제자의 말을 긴 한숨으로 받았다.


작은 부리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일성, 그놈이 결국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정철은 스승이 일성을 탓하는 걸 들으면서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2.


청운당.


일성은 영일이 사라진 길을 응시하며 입을 씰룩였다.


‘운 좋게 전정술을 피했어도 식신으로 삼은 닭의 추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전정술(電霆術): 번개를 다루는 도술. 연마도가 높아지면 사람도 공격하고 죽일 수 있다.)


일성의 이글대는 눈빛은 쉽게 잦아들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씰룩이던 입이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누런 이가 드러났다.


아랫입술이 곧 윗니에 눌려 일그러졌다.


퍼덕~ 퍼덕~ 퍼더덕~


그때 초가의 마루 아래에서 나는 소리에 놀란 일성이 눈을 돌렸다.


“으음? 저놈은···.”


야생닭은 두 마리였다.


식신으로 부린 놈은 벼락에 빗맞은 놈이고, 또 한 놈은 저기 저렇게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마루 아래에 고개를 들이밀고 놈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허허허, 이놈 봐라!”


놈은 일성과 눈을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틀어버렸다.


살기(殺氣)를 직감한 동물적인 본능!


일성의 눈초리가 매섭기도 했지만, 조금 전 그 난장판에 놀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일성이 팔을 뻗자 놈은 몸을 떨면서 더욱 움츠러들였다.


“네놈들이 우리 불쌍한 송담 법사하고 순진한 영일 법사의 속을 그렇게 썩였다면서··· 응?”


훽하니 모가지를 낚아채며 들어 올리자 놈은 몸부림을 쳤다.


일성은 닭의 모가지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자지러지듯 발광하던 놈의 움직임은 금세 둔해졌다.


곧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순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세하게 떠는 닭을 한 손에 들고서 부엌에서 식칼을 찾아 나온 일성이 잠시 멈춰 섰다.


삐거덕-!


송담과 함께 술을 마시던 방의 문이 불어온 바람에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입을 벌린 채로 숨이 끊어진 솜담이 있었다.


“여보게 송담, 문이나 닫고 주무시게나.”


일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쥔 식칼을 뻗어 방문을 닫았다.


“이제 내가 청운당의 주인이다. 흐흐흐.”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에서 땀이 솟았다.


일성은 칼을 쥔 손의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비틀비틀 법당으로 걸어갔다.


벼락에 탄 장작더미에서 나는 메케한 냄새는 아직도 여기저기 스며있었다.


냄새는 쉽게 가실 것 같지 않았다.


법당 안은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불상도 언제나 그랬듯 평안한 얼굴이었다.


조금 전 그 끔찍한 일을 같이 경험했으면서도 어찌 혼자만 저리 편한 얼굴이란 말인가.


게다가 인자한 웃음까지 머금고 있다니.


일성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어 가벼운 헛웃음이 터졌다.


“허헛··· 참!”


불상의 바로 앞.


법사들이 새벽예불을 드리는 자리.


그곳에도 늘 그랬듯 방석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가장 중앙에 놓인 주황색은 스승 운천의 것.


그 바로 오른쪽엔 정철의 자색(紫色) 방석.


원래대로라면 일성 자신의 것은 운천의 왼편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일성의 자리는 저 멀리 출입문 앞이었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대변하는 방석의 위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미련하게 힘만 쓰는 세상이 아니지 않나··· 미련하게···.’


또 송담의 말이 귓전에서 울렸다.


가라앉아 있던 분노가 다시 스멀스멀 치밀었다.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술기운은 그 분노를 금세 살기(殺氣)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내가 청운당의 주인이라니까.”


이를 악문 일성의 얼굴이 떨렸다.


구레나룻 밑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일성은 가운데 운천의 방석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발로 걷어차 버렸다.


들고 온 식칼을 바닥에 내려놓고 방석 위에 풀썩 앉았다.


그새 기운을 좀 차린 닭이 다시 퍼덕하며 날갯짓을 했다.


그러자 일성은 또 모가지를 쥔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꾸데에엑··· 데엑!


닭은 일성의 손아귀 안에서 다시 힘을 잃었다.


불상 앞에 놓인 반상에는 향로와 물이 담긴 대접이 있었다.


향로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냄새가 좋았다.


반상의 밑으로 둘둘 말린 귀황지 뭉치도 보였다.


(* 귀황지: 부적에 사용되는 종이. 전통 재래 한지로 삼을 삶은 물에 한지를 담가낸 것)


일성은 반상과 귀황지 뭉치를 끌어당겼다.


움직일 때마다 향로 표면에 비친 자기 모습이 흉하게 일그러지는 게 싫었던 걸까.


일성은 갑자기 향로를 집어 들어 불상을 향해 냅다 던져버린다.


탱-!


탁한 공명음과 함께 향로는 불상의 몸통에 부딪혔다.


공중에 잠시 솟구쳤다가 떨어진 향로는 구르더니 방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흐흐흐-!”


음산한 웃음을 지은 일성이 대접에 든 물을 벌컥 마셨다.


한 손에 들려있던 닭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잠잠하던 놈이 또 퍼덕이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닭을 노려보던 일성이 천천히 식칼을 집어 들었다.


벗어나려 사력을 다하는 놈의 움직임!


하지만 그 힘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


일성은 손아귀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접 위로 모가지가 끌려왔고, 그 위로 식칼이 다가왔다.


서늘한 칼날이 모가지에 닿자 놈은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꾸데에엨··· 데엨···!


시뻘건 핏물이 일성의 얼굴 위로 튀었다.


일성은 축 처진 닭의 모가지를 대접에 걸쳐 놓고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귀황지 뭉치를 펼치자 그 안에서 세필(가는 붓)이 나왔다.


마지막 부적을 쓴 건 정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항상 부적을 쓴 후 세필을 귀황지 안에 말아두는 습관이 있다.


일성은 대접에 핏물이 차오르는 걸 지켜보면서 바닥에 귀황지를 한 장씩 펼쳤다.


법당 안에 가득하던 향냄새가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사이를 피비린내가 채워갔다.


일성은 귀황지가 법당 바닥을 절반 가까이 채우자 세필을 집어 들었다.


핏물도 대접에 적당히 차올라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일성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일성은 첫 번째 귀황지에 핏물을 흠뻑 머금은 세필을 댔다.


“이제 내가 청운당의 주인이라니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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