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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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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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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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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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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9. 건우, 드디어 2

DUMMY

3.


건우가 앙드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앙드레는 아연실색하며 커피를 벌컥 들이켠다.


“뭐야, 마술로 잠깐 재웠다 깨운 게 아니라, 날 고양이로 변하게 한 거였어?”


흥분할 때의 날카로운 음색이 또 파우더룸을 울렸다.


옆에 서서 이들을 지켜보던 윤 집사가 슬쩍 거들고 나선다.


“아니요, 고양이로 변한 게 아니라 고양이처럼 행동했어요.”


윤 집사의 말에 앙드레의 문신한 눈썹이 또 꿈틀댔다.


“으잉?”


앙드레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윤 집사는 마치 재미있는 영화를 관람한 사람 같았다.


그는 자신이 봤던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하나하나 묘사해 나갔다.


“고양이처럼 울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재롱도 부리고, 그루밍도 하고··· 그랬다고요.”

“뭐··· 뭐라고요?”

“저는 정말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니까요.”

“마··· 말도 안 돼!”


말로는 부족했던 걸까.


윤 집사는 좀 전에 봤던 앙드레의 몸짓을 따라 하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앙드레는 낯이 붉어지더니 남은 커피를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런 후 건우를 도끼눈으로 째려보았다.


“자, 그래서?”


또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걸 우려한 걸까.


줄리가 다시 대화를 주도하며 주의를 끌었다.


“찍은 사진 파일을 스스로 삭제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파일을 다시 복구하지 못하게 컴퓨터나 카메라를 아예 없애버리게도 하고요.”


얘기를 듣던 줄리는 아리송한 얼굴로 커피잔을 들었다.


꼴깍, 하고 커피를 한 모금 삼키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반신반의하며 갈등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옆에서 앙드레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도 여전히 황당한 소리로밖에는 안 들리거든? 만약에 지금 말 한대로 되지 않으면 그땐 어쩔 거야?”


줄리의 얼굴에서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냉정함이었다.


주변 공기가 갑자기 훅하니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건우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자신감이 쉼 없이 흘러넘치는 여유가 느껴졌다.


“절 믿으세요! 비록 초보지만 유능한 법사한테 도술을 배웠다고요. 쉽게 말해 대치동 일타강사한테 도술 과외를 받았다고나 할까요, 후후훗···.”


말하는 게 꼭, 세상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 같았다.


‘도사’라는 자들하고 함께 살다 와서 현실 감각이 다운그레드 된 것일까.


또 한편으로는 정신 분열 직전의 열성 사이비 종교 지지자 같기도 했다.


믿어라, 들어줄 것이다!

바라라, 이루어질 것이다!

행하라! 얻을 것이다!


맨날 이런 구호나 부르짖으면서 길거리나 지하철을 배회하는 자들 말이다.


줄리는 과하게 자신감이 넘쳐 이상해 보이기까지 한 건우를 보면서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조만간 자신에게 닥칠 미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두운 회색빛이었다.


사진이 공개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사진 자체도 충격이지만, 그간 지켜온 자신의 깨끗한 이미지!


그게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이미지는, 연예인에겐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더럽혀지면 팬들과 쌓은 신뢰 역시 동시에 흩어져 버릴 것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우상에서 꼴사납게 추락해 버린 위선자.


이어지는 손가락질과 싸늘한 시선, 또 수군거림.


끔찍한 참상이 이보다 더한 게 있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위기는 이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고도 비과학적인 ‘도술’이란 것에 의지해야 한다니.


그게 자신의 처지라니.


줄리는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하는 생각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또 손에 땀이 차면서 한숨도 길게 터졌다.


그래도···.


줄리는 어찌 되었든 결정을 해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이 상태로 허무하게 당하고 말 테니까.


“만약 잘못되면, 넌 내 인생 망친 거에 대해 평생 책임을 져야 해! 알아들었어?”


조금 전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위협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말투였다.


줄리는 건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 너무 걱정 마세요. 절 믿으시라니까요.”


줄리의 눈을 담은 건우의 눈이 반달을 그리면서 꿈틀댔다.


건우는 조식 트레이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우걱우걱!

쩝쩝!


줄리는 샌드위치가 건우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고는 결심이 선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앙드레··· 그놈하고 당장 미팅 잡아!”



4.


앙드레가 심호흡을 길게 내뱉더니 핸드폰의 주소록을 뒤졌다.


줄리는 앙드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과 함께 이 바닥에 들어온 이후로 안 겪어본 일이 없는 앙드레였다.


산전수전에, 공중전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우주전까지.


갖은 구설과 별의별 가짜뉴스.


어이없는 협박과 황당한 모함에도.


한 번도 불의에 굽히거나, 또 악의 무리들과 타협한 적은 없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어떤 더러운 일이라도, 꿋꿋하게 막아내고 헤쳐냈던 앙드레!


앙드레가 있었기에 바로 지금의 줄리 한이 있음을.


자신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의 절반은 앙드레의 공임을.


줄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줄리는 역대급 위기 앞에서 데뷔 첫 무대에 설 때 느꼈던 두려움이 살아났다.


그때, 앙드레는 줄리의 손을 꼭 쥐면서 기도를 해줬었다.


줄리는 그때를 생각하며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건우를 돌아보았다.


“아까 뭐라고 했지? 최면을 걸고 기억도 잊게 한다고 했던가? 자세히 좀 설명해 봐!”


건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바로 쥐고 있던 부적 두 장을 테이블 위에 펼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능수능란한 타짜 같아 보였다.


“헤헤헷, 잘 보세요!”


건우는 부적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걸 접기 시작한다.


문득 초등학교 미술 시간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들이 색종이를 이리저리 누르고 젖히면서 다양한 형체를 만들어 내던 때.


건우의 양손 엄지와 검지는 부적을 만지작거리고 또 뒤집어 누르기도 하면서 분주히 움직였다.


줄리는 그 모습을 숨을 죽이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손이 바쁘게 움직인 시간은 대략 오 분여 정도였다.


그동안 파우더룸은 사각거리는 종이 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졌다.


“완성-!”


마침내 건우는 두 개의 종이 작품을 줄리의 앞으로 쭉 내밀었다.


줄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만히 보니, 그건 두 마리의 개구리였다.


엉덩이 부분을 손톱 끝으로 누르면 폴짝폴짝 가벼운 점프를 하며 전진하는 종이 개구리.


그걸로 아이들끼리 누가 더 빨리 달리나 경주를 하던 바로 그 종이 개구리 말이다.


그런데 종이 개구리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다시 줄리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미심쩍은 눈초리가 건우의 낯을 따갑게 쏘아댔다.


건우는 줄리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걸로 어떻게 할 거냐 하면 말이죠···.”



5.


앙드레는 신 기자의 번호를 노려보며 거친 숨을 뱉었다.


“이 자식!”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기존의 연예부 기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


적당히 가십이나 긁어서 뿌리고, 삥이나 뜯는 기레기들은 오히려 다루기 쉽다.


욕망에 솔직한 것들은 뻔하니까.


뻔하기 때문에 바라는 것도 훤히 보인다.


그런데 신 기자, 이놈은···.


도무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도무지 뭘, 왜, 어디까지 바라는 건지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평범한 기레기들을 넘어서는 과감하고도 대범한 도발!


그 과감함과 대범함은 항상 세간을 뒤흔들었다.


놈의 손을 거친 뉴스가 포털에 걸리면 적어도 한 달은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 같다.


또 뒷수습으로 받은 돈은 어떻고.


소문에 의하면 기사 한 꼭지당 보통 세 장에서 다섯 장은 부른다고 한다.


삼억에서 오억을 말하는 거다.


어설픈 기레기들이야, 업계에서 통용되는 ‘표준 삥’을 넘어서는 과욕을 부리다 되치기를 당하기 일쑤다.


그 결과로 쇠고랑 차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런데 이놈은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게 뒤탈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항상 한방으로 숨겨 두고 있다.


놈들 말로는 그걸 일종의 ‘보험’이라고 하나 보다.


앙드레가 두려운 건 바로 그거다.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게 계속 이어지는 피 말리는 불안감.


한번 그렇게 코가 꿰어 버리면 남은 생은 항상 긴장 속에서 놈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놈이 날려버린 유력인사들을 한번 보자.


정계의 거물들.


관계의 노장들.


경제계의 수장들.


학계의 원로들.


연예계의 아이콘들.


스포츠 스타들.


또는 경찰 간부에, 심지어는 사교육 일타강사까지.


그 외 이름만 대면 알만한 돈 좀 있고 힘깨나 쓰는 사람들.


그 사람들 정도면 말이다.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예스패치> 같은 조그마한 파파라치 매체 하나 날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가만히 있는 걸까.


그 답을 잘 알고 있는 앙드레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신 기자의 번호를 누르는 그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들으며 앙드레는 줄리를 한번 돌아보았다.


‘흔들리면 안 된다.’


앙드레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줄리는 더 동요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평생 고락을 함께해 온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 파트너.


그 어떤 어려움이 괴롭히고 짓밟아도 줄리 앞에선 힘든 내색을 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줄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게 해서는 안 된다.


앙드레는 매니저로서 프로다운 일 처리는 당연한데,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헌신!


자신과 한배를 타는 어려운 결정을 해준 상대를 위해 기꺼이 한 몸 바칠 각오로 임하는 바로 그 헌신!


앙드레는 줄리와 함께 일하게 된 날을 떠올렸다.


성 소수자인 앙드레가 차가운 사회의 편견에 괴로워할 때 선뜻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줬던 줄리.


줄리는 앙드레의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 나랑 같이··· 이 답답한 세상을 바꿔봅시다.’


앙드레는 지금도 줄리의 힘찬 음성과 따스한 손길을 기억한다.


차별과 냉대로 얼어붙었던 이성과 감정이 봄눈 녹듯 녹아내리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앙드레는 한 가지를 굳게 결심했었다.


줄리를 위해 헌신하는 매니저가 되겠다고.


앙드레는 처음 줄리의 손을 잡았던 그때를 기억하며 얼굴에 미소를 그려보려 애썼다.


‘어라?’


수신자가 부재중이라는 신호음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앙드레는 다시 한번 더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왜? 안 받아?”


줄리가 걱정되는지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앙드레는 문자를 한 줄 적어 보냈다.


핸드폰 자판을 누르는 진동음이 경쾌하게 들렸다.


“이 자식 말이야··· 우리가 먼저 전화해서 많이 놀란 모양인데. 당황해서 일부러 안 받나 봐, 후후훗···.”


앙드레는 애써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빙그레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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