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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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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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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1. 봉인술 2

DUMMY

4.


영일은 성한 눈으로 손에 쥔 놈의 살점을 보았다.


‘殺’


살점 가운데 적힌 글자가 눈에 익었다.


몸에서 글자가 떨어지자 놈은 급격하게 기운을 잃어갔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식신의 사기(邪氣)가 풀린 건 아니었다.


다시 기운을 차린다면 또다시 영일에게 덤벼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일은 왼눈에서 쉼 없이 흘러내리는 피를 어깨로 훔쳐냈다.


양손을 앞으로 모으는데 눈앞이 핏물로 뿌옇기만 했다.


양손의 검지를 뻗어 서로 붙이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엇건 모양을 하자 수인이 완성되었다.


영일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기합을 크게 질렀다.


“하아아압!”


작은 회오리가 일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잔가지들과 나뭇잎들이 쓸려 올라갔다.


회오리는 점점 커지면서 힘을 키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물러나 있던 야생닭까지도 휩쓸어 버린다.


야생닭을 삼킨 회오리는 그대로 큰 나무들 틈으로 얽혀들었다.


꾸덱··· 꿰꿰꿰에···.


놈이 발악하면 할수록 나뭇가지는 날개와 목을 더욱 단단히 조여댔다.


일성은 점점 힘이 빠져가는 놈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야생닭은 그렇게 나무들 사이에 가둬졌다.


봉인술의 수인!


이번에는 영일이 수인을 제대로 맺은 것이다.


어느새 해는 떨어져 있었다.


영일은 성한 눈으로 아직 여리게 남아있는 빛을 더듬어 길을 찾았다.


그러고는 다시 축지술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었었지만, 영일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흐느꼈다.


“스승님··· 법사님들···.”



5.


대형마트 맞은편 골목길.


이른 아침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책가방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학교에 가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손에 쥔 핸드폰에 정신이 팔린 상태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걸음이 불안한 건 당연하다.


‘저리 걷다가 장애물이라도 만나면 바로 걸려 넘어질 텐데···.’


아이를 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과속방지턱을 못 본 채 걷던 아이가 그 앞에서 발을 헛디디고 만다.


아이는 휘청하며 넘어진다.


“아야···.”


들고 있던 핸드폰이 몇 걸음 앞까지 날아가 떨어졌다.


무릎이 까졌을 법도 한데 아이는 아프지도 않은가 보다.


담담하게 핸드폰을 향해 한 손을 길게 뻗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만치 앞에서 크고 흉측한 피사체가 비틀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무언가를 본 아이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핸드폰을 향하던 아이의 팔이 황급히 다시 돌아왔다.


아이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무릎이 까지는 상처도 견딘 아이는 순식간에 겁에 질려버렸다.


아이의 눈이 금세 눈물로 차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울부짖음이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의 앞에 나타난 건 상처투성이의 남자였다.


남자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겁에 질린 아이의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자신의 몰골이 상대에게 공포감을 줄만 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찢겨 너덜거리는 승복!


그 사이로 드러난 검붉게 말라붙은 상처들!


무엇보다도 왼쪽 눈이 있어야 할 곳은 텅 비어있다.


아이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기겁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도시 한복판이었으니.


남자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움직여 왔다.


고속도로변보다는 숲길을 가로질렀다.


눈에 잘 뜨이는 평지보다는 험한 비탈길을 내달렸다.


성치 않은 몸에, 어설픈 축지술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도심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더욱 신중했다.


인적이 드문 길만을 골라 걸었다.


지금까지는 용케 잘 걸어왔고 잘 버텨왔다.


이런 끔찍한 몸 상태를 이끌고서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 골목을 울렸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비틀댄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남자는 골목길 담을 짚으며 서서히 주저앉았다.


귓전에서는 여전히 아이의 울음이 메아리쳤다.


남자는 의식이 흐려지는 중에도 사력을 다해 쫓던 흔적을 더듬었다.


‘분명, 이 근처다. 거의 다 왔는데···. 아! 스승님··· 법사님들···.’



6.


정철과 운천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감지력이 뛰어난 철산도 눈을 떴다.


“이 근처입니다. 가깝습니다.”


철산이 소리치자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잠들어 있던 법사들도 전부 눈을 떴다.


“축지술의 흔적입니다. 미약하게 지속되다 지금은 끊어졌습니다.”


이어지는 철산의 말에 정철과 운천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같은 걸 느꼈다는 뜻이었다.


“저 맞은편 골목길이오.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 모두 서두르시오.”


정철은 법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면서 자신이 앞장을 섰다.


전깃줄을 박차고 오른 한 무리의 제비 떼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남아있는 건 운천뿐.


운천은 제자들이 움직이는 걸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건우, 네 이놈! 어디서 뭘 하다가 여기서 이렇게 나타나느냐. 큰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다마는··· 단단히 혼을 내놓을 테다.’


운천은 영력의 흔적을 건우의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정철도 마찬가지였다.


대형마트 맞은편 골목길로 향하는 정철의 날갯짓이 거셌다.


그 퍼덕임에서 흥분과 화가 느껴졌다.


다가가는 기세로 봐서는 역시 운천과 마찬가지로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감지력이 남다른 철산은 좀 달랐다.


그는 그렇게 섣부르게 판단하는 게 좀 조심스러웠다.


그가 느낀 것은 분명, 법사들이 도술을 쓸 때 나오는 영력이긴 했다.


그것도 매끄럽지 못하고 미숙함이 드러나는 수준의 영력.


그런데 그게 꼭 건우의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좀 애매했다.


지금까지 추적하여 온 건우의 흔적과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산은 전깃줄에서 솟아오르기 전 정철에게 넌지시 언질을 주려 했었다.


하지만 열정에 취한 정철이 먼저 움직여 버렸으니···.


철산의 의심은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점점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아니, 저··· 저··· 저건!”


무리의 가장 앞에서 날던 정철이 소리를 질렀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비탄(悲歎)!


그런 감정들이 마구 뒤엉켜 절박한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그건 정철의 뒤를 따르던 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영일 법사 아닙니까?”


놀란 법사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속도를 줄였다.


그 와중에 서로 몸이 부딪치면서 다들 공중에서 잠시 균형을 잃었다.


“저, 저 몰골이··· 저게 대체 어찌 된 일이요? 그리고 여긴 어떻게 왔단 말입니까? 어서들 빨리 구합시다!”


정철은 거친 날갯짓을 멈추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그때, 혹시 몰라 뒤따라왔던 스승 운천이 이 광경을 목격한다.


“잠깐! 저 앞에 어린아이가 있지 않으냐? 저 아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충격적인 상황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운천이 정철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차분히 명령을 내린다.


“우선 저 아이에게 빙석술을 걸어라. 난 그동안에 영일에게 변신술을 걸어 옮기겠다.”


(* 빙석술(氷石術): 사람을 잠시 얼음이나 돌로 만드는 도술)


운천의 말에 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영일의 위를 한 바퀴 크게 선회한 정철이 급강하를 시작한다.


날개를 접고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제비의 속도는 찰나였다.


정철은 아이가 알아채기도 전에 쏜살같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부리로 정수리를 톡하고 건드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스스스스슥-!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울음이 뚝 하고 그쳤다.


동시에 아이의 발끝부터 서릿발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얼음은 곧 아이의 온몸을 감쌌다.


꽤 두툼한 얼음이었다.


한여름의 날씨였음에도 얼음이 두꺼운 게 냉동 상태는 오래 유지될 듯싶었다.


이어서 운천이 양 날개를 앞으로 모아 힘겹게 수인을 맺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영일의 몸이 송충이로 변했다.


그때 운천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법사 하나가 영일에게 다가갔다.


영일을 입에 물어 올라오자 다들 그의 뒤를 따랐다.


“살살 옮겨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천천히!”


운천은 직접 봤던 영일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며 당부했다.


영일을 물어 나르는 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갯짓에 더욱 신경을 썼다.



7.


대형마트 뒤 공터.


뒷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인적이 드문 작은 약수터가 나온다.


그 뒤 수풀이 우거진 곳에 지금 법사들이 모여 있다.


모두 회복술을 받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법사는 누군가가 다가오는지 망을 본다.


그리고 나머지는 만신창이가 된 영일을 둘러싸고 있다.


영일은 부어주는 약수를 계속 삼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모금을 받아 마시더니 겨우 정신을 차렸다.


운천은 제자의 처참한 몰골에서 눈을 떼더니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때, 영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열렸다.


“일성 법사가··· 송담 법사를··· 주··· 죽··· 죽였··· 습니다.”


사력을 다한 한마디였다.


영일의 성한 오른쪽 눈에서 힘이 빠졌다.


스르르 감기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이어서 그의 몸도 축 처져버렸다.


지켜보던 법사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이보게, 영일! 영일!”

“정신 차리게, 영일!”

“이 사람, 여기서 이러면 안 되네, 영일, 이 사람아!”


철산은 영일의 가슴에 귀를 대어본다.


“아직 숨이 끊어진 건 아니오. 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겠소.”


영일의 참혹한 모습을 보는 운천 역시 가슴이 찢어졌다.


하늘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자들 앞에서 함부로 날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


운천은 부릅뜬 눈에 이슬이 맺히려 하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움켜쥔 주먹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 한 얼굴이 떠올랐다.


‘일성, 네 이노오오옴···!’


그때, 산책을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약수터로 다가왔다.


법사들은 숨을 죽이면서 급히 몸을 낮췄다.


지금은 모두 사람의 모습!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다들 능숙하게 자기 모습을 감추었고, 행인은 지나가며 그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위험이 사라지자 법사들은 다시 일어섰다.


주변 나뭇잎까지 긁어모아 덮고 있던 한 법사는 옷을 소리 나게 탁탁 털어댔다.


정철이 스승에게 다가서며 조심스레 말했다.


“짐승을 식신으로 부린 듯합니다. 여기저기 할퀴어진 상처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눈이 저리된 것은···.”


눈 하나가 뭔가에 의해 뽑혀 나간 참혹한 모습이 아직 지워지지 않아서일까?


정철은 차마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린다.


먼 곳을 응시하던 운천이 다시 땅을 보았다.


“주둥이가 날카로운 놈이다. 그리고 살기를 불어 넣었다. 부적까지 썼는지는 모르겠구나.”


운천은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 미세한 진동에 하얗게 센 눈썹까지 꿈틀댔다.


기운이 달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흥분이 과해서일까?


정철은 스승의 이런 반응이 걱정스러웠다.


“청운당에 먼저 돌아가야겠다. 네가 건우를 찾아와라!”


운천이 법사들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정철을 마주 보며 말했다.


정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일성을 잡겠습니다.”


정철은 운천을 보낼 수 없었다.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한 칠순의 노구가 아닌가?


그런 그가 누적된 피로를 안고 일성과 맞서야 한다.


스승의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두 법사가 나서며 말했다.


“정철 법사는 스승님 곁을 지키시오. 우리 둘이 가겠소이다. 우리를 보내주시오.”


유정과 만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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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7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37 1 11쪽
» 021. 봉인술 2 23.12.20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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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43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43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48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46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47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49 1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56 1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5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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