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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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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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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797

작성
24.05.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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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 커피 스콘(1)

DUMMY


“아니, 분명히 이 골목이었던 것 같은데.”


장석우는 비슷한 골목길을 세 번째 들어갔다가 다시 큰길로 돌아 나왔다.


“저번에는 큰길로 못 나와서 애를 먹었는데 왜 이번에는 나올 때마다 큰길이야?”


할머니가 아끼던 감투를 좋은 값에 판 덕분에 급한 불을 껐던 석우는 집에 뭐 돈 될 만한 게 더 있나 찾아보다가 오래된 물건 두어 점을 더 찾아냈다.


그리 값이 나갈 것 같진 않지만 감정이나 받아볼까 하고 전당포를 다시 찾아가는 길인데 아무리 찾아도 전당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왜 가게 이름도 생각이 안 나지.”


그날 두 군데 골동품점을 들른 후 우연히 그 전당포를 봤는데, 골동품점은 두 군데 다 상호가 생각이 나는데 전당포만 상호가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안서동 전당포라고 인터넷 검색도 해 봤지만 그날 갔던 전당포와 비슷한 곳은 없었다.

방금 마지막으로 들어간 골목길이 그때 들어간 골목길과 딱 맞는 것 같았는데 끝까지 들어가 보니 막다른 골목이었고 전당포는 없었다.


“아휴, 모르겠다, 포기다, 포기!”


다시 큰길로 나온 석우는 전당포 찾기를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젠장, 이건 팔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이번에 배낭에 넣어 온 건 할머니의 반짇고리였다.

낡은 데다 군데군데 시커멓게 그을린 부분도 있지만 할머니가 증조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물건이라고 아끼시던 거였다. 오동나무 함에 백동 장식이 있는 게 나름 멋스러웠다.


“할머니는 바느질도 잘 못 했으면서.”


어렸을 때 석우가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바지 엉덩이를 찢고 집에 왔을 때 할머니가 바지를 꿰매 주었는데 어찌나 눈에 띄게 꿰맸는지 석우가 할머니에게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우앙 이게 뭐예요 할머니, 이거 창피해서 어떻게 입고 다녀.”

“누가 이렇게 찢어먹고 오라던?”


할머니는 하하 웃으면서 석우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어차피 며칠 있으면 또 찢어먹고 올 거 아니냐. 그냥 입어라.”

“이잉.”

“하하, 할머니가 바느질 솜씨가 시원찮아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글씨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더 잘 쓴다.”


화통하고 시원스러운 성격이었던 할머니는 글씨도 잘 쓰고 요리도 잘했는데 유독 바느질만은 젬병이었다.


“그래도 말이지, 할머니가 이 반짇고리 아주 좋아한다. 뭐 예쁘게 바느질은 못 해도 필요한 건 다 하니까. 꼭 바느질 곱게 해야 하는 건 잘하는 다른 사람 시키면 되지.”


할머니는 그 엉성한 바느질 솜씨로 석우의 옷도 기워 주고 단추도 달아 주고 했었다.


“입 부루퉁하게 내밀지 말고, 모양새는 이래도 할미 손이 복손이다. 이래 봬도 이 할미가 이 손으로 도깨비감투도 기운 사람이야.”

“도깨비감투요? 그런 게 어딨어요?”

“하하,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진짜 도깨비감투는 아니지만 내 맘속에선 도깨비감투나 마찬가지다, 뭐 그렇단 말이지.”


엉덩이를 툭툭 쳐주던 할머니의 손길이 생각난 석우는 배낭을 가슴 쪽으로 돌려 안았다.


“할머니, 미안해요. 집에 할머니 물건 남은 것도 별로 없는데 이것까지 들고나와서.”


이건 그냥 팔지 말아야겠다. 집에 가서 녹차나 따뜻하게 한 잔 끓여 마셔야지.


석우는 배낭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와 엇갈리듯 버스에서 내린 청년이 석우를 유심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디서 본 사람인가?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


다라랑!


“형 왔어?”


은롱이 총총거리며 인사를 했고 시현이 들어서면서 말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난번에 감투 갖고 왔던 손님 봤어.”

“나도 봤어. 여기 골목에 들어왔다 나갔어.”

“이제 전당포를 못 보는 모양이지?”


시현이 묻자 은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밀히 말해서 우리 손님은 그 사람이 아니고 두두리 아저씨였잖아. 두두리 아저씨가 죽림을 느끼고 그 사람을 이리로 데려온 거였으니까 두두리 아저씨가 없으면 그 사람은 죽림을 못 봐.”

“그렇구나.”


무심코 문밖을 돌아보던 시현은 은롱에게 물었다.


“나처럼 널 보고 여기로 따라 들어온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형처럼 먼저 날 알아보고 말까지 통한 사람은 없어도 모습을 보는 것까지는 한 사람이 있어. 오래전이긴 하지만. 내가 일부러 모습을 보여준 사람도 몇 명 있고.”

“그럼 일반 손님들은 어떻게 오는 거야?”

“음······, 몇 가지 길이 있는데.”


은롱이 말을 고르다가 좀 어려운지 세나 쪽을 쳐다봤다.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세나가 말했다.


“대개는 추천으로 오십니다. 본인은 추천받았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요.”


커피 향이 좋아 시현도 머그잔을 하나 꺼냈다.


“소문을 듣고 오거나 두두리 씨처럼 능력이 있는 물건을 가진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여기로 이끌려 오는 경우도 있고요.”

“예에.”

“여기 이야기를 맡기신 손님들은 1년간은 죽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죽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드리고, 대부분은 그걸 지키십니다. 가끔 약속을 어기고 죽림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는 사람도 있지만 저희도 영업상 약간의 소문 정도는 필요하니까 그 정도는 그냥 둡니다.”

“제가 청운 고서점에서 소문을 듣고 왔던 것처럼요?”

“예. 하지만 인연이 없는 사람은 어차피 전당포를 못 봐요.”

“손님들은 1년 후에는 모두 기억을 잃는 거죠?”

“모두는 아니에요. 아주 드물지만 특별한 손님 또는 죽림과 인연이 있는 분 중 기억을 유지하시고 다른 사람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은 자신이 추천하는 사람에게 죽림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요.”

“응, 응, 그래도 추천을 받았다고 꼭 올 수 있는 건 아니야. 자격이 없으면 죽림이 보이지 않아.”


은롱의 말을 들으며 시현이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그럼 전에 오셨던 조동욱 씨 같은 분은 처음에 죽림을 못 찾았던 게 자격이 안 되어서였는데 나중에는 자격이 되었던 건가요?”

“비슷합니다. 조동욱 씨께 악몽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이 추천인이고요.”

“그 아저씨, 그 몇 년 사이에 우리 집이 보이게 된 걸 보면 그동안에 뭔가 아주 좋은 일을 했었을 거야.”


은롱이 말했고 시현은 커피를 홀짝 마셨다.


“그럼 망정수를 대출하셨던 민수정 씨 같은 경우는 우연인 거죠?”


안서대교에서 자살하려다 우연히 금손 씨를 만난 거니까.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은 민수정 씨도 추천이 있었어요.”

“예?”

“민수정 씨 자신은 몰랐지만, 금손 씨에게 민수정 씨를 추천한 누군가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금손 씨가 민수정 씨를 데리러 갔던 거예요.”

“아······, 그런가요.”


시현이 좀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는 걸 보고 세나가 웃었다.


“차차 더 알게 되실 겁니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시현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 그런데 저는 죽림에 대한 기억이 온전히 있잖아요?”

“예. 그렇죠. 이미 죽림의 가족이 되셨으니까요.”

“그럼 저도 혹시 다른 사람에게 죽림을 추천할 수 있을까요?”


은롱과 세나가 서로 눈을 한 번 맞추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됩니다. 죽림에 대해서는 주변에 비밀로 해주세요.”

“예에.”


그럴 줄 알았지만 조금 시무룩해지는 시현을 보며 은롱이 다정하게 말했다.


“어쩌면 나중에 형아도 추천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실망하지 마.”

“응.”


어떻게 하면 추천인이 될 수 있는지는 안 가르쳐 주네. 뭐, 이유가 있겠지.

시현은 은롱의 귀 끝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물었다.


“은롱이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뭐 해줄까?”

“아, 오늘 먹으려고 생각한 몽로가 있어. 잠깐만.”


은롱은 장식장 쪽으로 총총총 뛰어가더니 단지 하나를 안고 왔다.


“이거 그 단지 아니야? 민수정 씨의 몽로를 담았던 거?”

“응, 맞아.”


은롱이 단지의 뚜껑을 열고 손을 넣더니 원래 몽로의 삼 분의 일 정도 크기의 파르스름한 구슬을 꺼냈다.

크기가 작은 데다 금방 꺼질 것처럼 투명한 게 원래 몽로보다 훨씬 흐렸다. 구슬이라기보다는 마치 이슬방울의 그림자 같았다.


“수정 씨 몽로는 수정 씨가 도로 찾아간 거 아니야?”

“응, 그치만 우리가 1년 동안 보관하는 동안 몽로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몽로의 잔영이 남게 돼.”


은롱의 설명에 따르면 매입하거나 주인이 1년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은 몽로는 온전히 죽림에 귀속되지만 전당품으로 맡겼다가 찾아간 몽로는 잔영을 남긴다고 한다.

원래 몽로보다 크기가 훨씬 작고 형태도 흐리지만 그것도 역시 몽로여서 은롱이가 먹게 된다고 했다.


“온전한 몽로보다는 얻는 힘이 적지만 그래도 이렇게 작은 것도 차곡차곡 먹으면 다 힘으로 쌓이거든.”


하긴 1년간 맡았다가 돌려주는데 아무 이득을 남기지 않는다면 전당포가 아니겠지. 그러니까 이건 맡아 준 이야기의 이자 같은 건가.


시현은 납득하면서 은롱의 손에 들린 작은 몽로를 바라보았다.

이미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먹어보지 않아도 몽로의 맛을 알 것 같았다.


“이건 워낙 양이 작기도 하고 식사보다는 간식 같은 걸로 만들어 먹는 게 어울릴 것 같은데? 아, 잠깐 기다려 봐.”


주방 냉장고 앞에 선 시현은 머릿속으로 필요한 재료를 생각했다.

아몬드, 크림치즈, 초코칩······.

냉장고를 열자 시현이 생각한 재료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이제 아주 잘 쓰네, 형아!”


시현이 자연스럽게 냉장고와 선반장을 열어 필요한 것들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은롱이 손뼉을 쳤다.


시현은 죽림에서 일하게 되면서 아공간 냉장고와 찬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어떤 식품이든지 다 나오는 건 아니고 현재 이 세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식재료라는 제한이 붙어 있었다.


“서왕모의 복숭아나 꿈꾸는 풀 같은 식재료는 저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냉장고나 찬장을 연다고 그냥 불러낼 수는 없으니 꼭 써보고 싶으시다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주방 사용을 설명해 주던 세나가 한 말이었다.


“아, 그리고 이 세상의 식재료라고 해도 한겨울에 복숭아 같은 건 나오지 않고요. 현재 유통되지 않는 식재료가 필요하시다면 그것도 저나 은롱이에게 말씀해 주세요. 가능한 대로 구해 볼게요.”


그러니까 시현이 임의로 불러낼 수 있는 건 현재 유통되고 있는 식재료에 한하고, 그 외의 식재료는 은롱이나 세나에게 말해야 되는 거였다.


처음 사용할 때는 생각만으로 재료를 정확히 지정하는 게 쉽지 않아서 원래 의도했던 것과 다른 재료가 나오거나 다른 게 딸려 나오는 일도 있었는데 몇 번 사용해 보는 중에 정확하게 지정하는 요령을 깨쳤다.


재료 준비를 마친 시현이 거실로 나가 세나에게 물었다.


“저기, 민수정 씨에게 대접한 특제 커피를 조금 써도 될까요?”


시현의 말을 들은 세나가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웃었다.


“그 커피가 궁금하셨군요?”

“예.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는 특제 커피라고 하시길래.”

“그거 금손 씨가 특별히 구해온 커피라서 금손 씨 허락을 받아야 쓸 수 있어요.”


세나가 말하면서 금손 쪽을 쳐다보자 창가에 앉아 있던 금손이 시현을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얼마나 쓸 건데?”

“한 잔이면 됩니다.”

“어, 그래, 쓰게. 아는 사향고양이에게 얻은 건데 보통 커피보다 맛이 진하니까 감안하고.”

“엇, 그럼 루왁 커핀가요?”


사향고양이라는 말에 시현이 깜짝 놀라자 금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루왁 커피랑은 달라. 루왁보다 더 귀하다면 귀할 수 있는 커피라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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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5. 맥적(2) +6 24.06.11 442 33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453 38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57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8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8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7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6 4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5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6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6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6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6 42 12쪽
29 18. 연저육찜 +7 24.05.28 509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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