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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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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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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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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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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1. 나미와 미미(1)

DUMMY

“백 년도 더 전에 만들었을 텐데 아직 있었다고?”

“몽로의 형태로 뭉쳐서 죽림의 단지에 봉인하면 천 년도 갈걸?”


샐쭉 웃은 은롱이 손뼉을 딱 쳤다.


“아 맞다. 그 향설고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손님의 몽로를 보여줄게. 안 그래도 조만간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 먹으면 되겠다. 형이 맛보고 그 몽로와 어울릴 만한 요리를 해줘.”


은롱은 장식장으로 폴짝폴짝 뛰어가서 단지 하나를 들고 왔다.

봉인을 해제하고 단지 뚜껑을 열자 은은한 자줏빛을 띤 몽로 하나가 떠올라왔다.


“이건 그 손님이 남긴 물건에서 뽑은 몽로야. 지난번에 봤듯이 그 손님은 우리에 대해선 다 잊었어.”

“지난번에?”

“아, 그 손님 형도 봤는데.”


은롱은 말하면서 숟가락을 가져와 시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 한 방울 맛을 보고 어떤 요리에 어울릴지 이야기도 봐줘.”


은롱이 몽로를 톡 치자 시현이 들고 있는 숟가락에 자주색 이슬방울이 탱글 떨어졌다.

시현은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벌써 몽로를 먹어 본 적이 몇 번 되지만 아직도 몽로를 입에 넣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


-다라랑!

시현의 시야가 흐려지면서 풍경 소리가 울렸다.

전당포의 문이 살짝 열리고 빼꼼 머리를 들이민 것은 지난번 은롱과 함께 갔던 시장에서 본 한과 가게의 여자아이였다.


‘그때 고양이랑 놀고 있던 그 아이네.’


시현의 생각에 맞장구치듯 아이의 발밑에서 나타난 검정고양이가 먼저 문 안으로 쏙 들어왔고 그 뒤를 따르듯 아이도 들어왔다.


“손님이다, 손님!”


거실 소파에서 나른하게 뒹굴고 있던 은롱이 발딱 일어나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손님 맞지? 이쪽으로 들어와. 이렇게 어린 손님은 오랜만인걸.”


마치 자기는 어리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은롱이 아이를 안쪽으로 안내했고 여자아이는 조금 주춤거리면서도 순순히 안으로 들어왔다. 고양이도 소녀의 그림자처럼 딱 붙어서 함께 들어왔고.


“여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은롱이 소녀와 고양이를 소파에 앉혔고, 그들을 보고 주방으로 들어갔던 세나가 잠시 후 복숭아정과와 우유 잔을 올린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세나가 정과와 우유 잔을 소녀에게 내밀고 종지에 담은 우유는 고양이 앞에 놓았다.


“이건 동물이 먹어도 되는 우유니까 먹어봐.”


은롱이 권했고 잠시 머뭇거리던 고양이가 먼저 우유를 핥기 시작하자 소녀도 우유 잔을 들고 홀짝 마셨다.

우유를 마시고 복숭아정과도 먹은 소녀가 긴장을 풀고 편해진 것처럼 보이자 세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 꼬마 손님,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고양이가 소녀의 무릎 위로 살짝 올라앉으며 세나를 쳐다보자 소녀가 고양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내 동생인데, 말을 못 해요. 입을 뻐끔거려도 소리가 안 나와요. 말을 할 수 있는 약을 살 수 있어요?”

“?”

“시장 건너편에 사는 다래주점 할아버지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노래를 못 하게 된 사람이 여기 와서 약을 받고 노래를 다시 할 수 있게 됐다고 했어요. 우리 미미도 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


나미는 시장에서 한과 가게를 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여섯 살 때인가,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엄마가 미미를 주워 왔다.


“세상에 비가 이렇게 오는데, 이렇게 어린 걸 누가 버렸나 보더라.”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미미를 이불 속에 넣고 따뜻하게 해주었다. 나미는 엄마 곁에 붙어서 미미를 살펴보았다. 눈이 동그랗고 까만 털이 난 미미는 추워서 달달 떨고 있었다.


엄마는 예전에 고양이를 주워온 적이 있었는데, 그 얼룩고양이는 며칠 만에 주인이 나타나서 찾아갔다.

나미는 며칠 사이에 얼룩고양이와 정이 들었는데 주인이 데려가는 바람에 많이 서운했었다.


엄마는 이번에도 며칠간 미미의 주인을 찾아보는 것 같았지만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한 듯했다. 미미가 걸고 있던 목걸이에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지만 연락처는 없었고.


“나미야, 미미는 그냥 우리가 키울까? 이름도 미 자가 들어 있으니 돌림자 같네, 그냥 우리 나미 동생 할까?”


엄마의 말에 나미는 좋아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미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자고 있는 미미의 보송보송한 얼굴을 살짝 만져 보자 미미가 동그란 눈을 뜨고 나미와 눈을 맞추더니 천천히 눈을 깜박거렸다.

이건 고양이의 애정 표현 중 하나로 고양이 키스라고도 하는 건데! 나미의 마음이 온통 노글노글해지면서 따스해졌다.


미미를 키우자고 한 이후 엄마는 한동안 무척 바빠 보였다. 입양이 간단한 일이 아닌지 컴퓨터 앞에서 이것저것 보면서 준비도 많이 하는 것 같았고 외출도 잦아졌다.


“나미야, 엄마가 바빠서 미안, 새 식구를 들이려면 준비할 게 많아서 그래.”


나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언니니까, 바쁜 엄마 대신 내가 미미를 잘 보살펴야 해.


엄마가 외출할 때는 옆 가게 떡집 이모가 미미와 나미를 보살펴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오면 떡집 이모는 나미를 칭찬했다.


“나미가 미미를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나 봐. 얼마나 잘 챙기는지 몰라. 미미도 나미를 믿고 의지하는 거 같고. 고양이랑 사람이 아니라 진짜 자매 같다니까.”

“고마워요. 언니,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이제 준비 다 끝나서 더 안 나가도 돼요.”


미미는 처음엔 버림받은 충격 때문인지 다소 주눅 들어 있고 활발하지 않았는데 엄마와 나미에게 귀여움을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게 되었다.


계속 외동으로 자란 나미는 동생이 생긴 게 너무 좋았다. 항상 미미를 신경 써서 보살폈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다가도 미미가 걱정이 되어 집에 얼른 들어오곤 했다.

미미도 나미를 잘 따랐고 매사 나미를 의지하면서 졸졸 따라다녀서 아주 귀여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미미가 도대체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말은 고사하고 웃을 때나 울 때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얘는 아마 소리를 못 내나 봐, 딱해라.”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미는 답답해서 몰래 미미를 붙들고 말을 가르치려고 해본 적도 있었다.


“야옹, 냐옹, 미야옹!”


옆에서 먼저 야옹야옹 우는 시범을 보여주자 미미는 따라 하려는 것처럼 입을 벌렸지만 작은 입을 빠끔거릴 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미미를 병원에 데려가서 진찰을 받아 봤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고.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데 왜 소리를 못 낼까.”


걱정스럽게 미미를 쓰다듬던 엄마가 미미의 얼굴을 살피더니 밝은 소리로 말했다.


“까짓거, 소리 못 내면 어때, 우리 미미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데. 잘 돌봐주고 좀 더 크면 소리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속상한 눈치였다. 나미도 속상했다.


미미가 집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가끔 밤에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니까 엄마는 잠에서 깨지 않았지만, 나미는 미미가 울 때마다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었다.


“왜 울어? 미미? 울지 마, 착하지, 응?”


입을 벌린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우는 미미의 얼굴은 큰소리로 와앙와앙 우는 것보다 더 슬퍼 보였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생각이 난 거야?”


미미는 입을 딱 딱 벌렸지만 누군가 미미의 목을 꽉 잠근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쓸 뿐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 보였다.


“미미······.”


나미는 짧은 팔을 벌려 미미를 껴안으면서 속삭였다.


“나도 사실 엄마가 없어. 그렇지만 지금 엄마가 우리 엄마야. 미미는 내 동생이고. 이제 울지 마, 미미.”


미미가 알아듣는지는 몰랐지만, 나미는 미미에게 몸을 살짝 붙인 채 계속 속삭였고 미미는 나미에게 기댄 채 다시 잠이 들었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미미는 밤에 울지 않게 되었고 어디든 나미를 따라 다녔다.


공원에 미미를 데리고 놀러 나갔을 때였다. 나미가 잠깐 친구랑 이야기를 하느라고 자리를 비운 새 미미를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놀리면서 나뭇가지로 미미를 집적거리자 미미는 겁에 질려서 나미를 불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목을 쥐어짤 뿐이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나미는 너무 화가 나서 제일 심하게 놀리는 아이에게 덤벼들어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그 애가 집에 가서 이르는 바람에 나중에 엄마한테 혼이 났지만 미미를 놀리는 아이를 가만둘 순 없었다. 내가 언니인데 우리 미미 내가 지켜야지!


그날 미미는 엄마가 잠든 뒤 나미의 옆에 와서 작은 몸을 찰싹 붙이고 나미에게 머리를 기댔다.

소리는 못 내지만 천천히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몸의 체온이 둘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나미는 졸린 눈을 비비며 미미에게 몸을 딱 붙였다.


우리 미미, 소리만 낼 수 있다면 날 더 빨리 부를 수 있었을 텐데. 그 나쁜 아이들이 미미를 괴롭힐 때 소리만 지를 수 있었어도, 큰 소리로 울 수만 있었어도 누가 지나가다 도와줬을 수도 있는데.

미미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울면서 애 터지게 자신을 불렀을 걸 생각하면 나미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휴일, 엄마와 미미가 함께 낮잠을 자는 걸 보고 나미는 모처럼 밖에 나가 놀까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어린이 공원에 나와 놀고 있는 친구들이 좀 있으려나 해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들어서자 한쪽에 놓인 평상에 시장 건너편 다래주점의 흰머리 할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흰머리 할아버지는 아이와 동물을 좋아해서 나미를 볼 때마다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주곤 하는 친절한 분이었다.

인사를 하려고 평상 쪽으로 가는데 흰머리 할아버지는 친구와 이야기하는 데 어찌나 열중했는지 나미가 가까이 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니 할아버지, 지난번에 해준 이야기 생각이 안 나요?”

“무슨 얘기 말이야? 금시초문인데.”

“허 참, 할아버지, 나한테만 몰래 얘기해 주는 거라고까지 했으면서 생각이 안 나신다니.”


할아버지의 맞은편에서 답답해하며 가슴을 치고 있는 건 처음 보는 딸기코 아저씨였다.

방해가 될까 봐 다가가다 말고 멈춰선 나미를 못 본 채 둘은 진지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지난번 등산 가다가 들은 노래 말이에요. 그 가수가 몇 년이나 노래를 못 하다가 다시 노래를 하게 된 게 여우에게 목소리를 받은 거라면서요. 생각 안 나세요?”

“뜬금없이 뭔 여우여?”

“아니 내가 그때도 그게 무슨 옛날이야기 같은 소리냐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말했잖아요. 정말이라고, 여우 간판이 있는 전당포에서 여우에게 목소리를 받은 거라고.”

“어허 이 사람이 진짜 여우에게 홀렸나.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내가 했다고?”

“······.”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딸기코 아저씨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진짜 내가 여우에게 홀려서 헛소리를 들은 건가.”

“이 사람, 여름이라 몸이 허한가 보네. 아마 개꿈이라도 꿨던 게지. 자, 나랑 가서 뭐 배를 좀 채우세.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할까?”


흰머리 할아버지는 딸기코 아저씨의 등을 두드리면서 팔을 잡아끌었고 딸기코 아저씨는 영 개운치 못한 얼굴로 눈을 껌벅거리면서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평상 근처에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미의 눈이 반짝였다.


진짤까? 전당포라는 게 뭔진 모르지만 목소리가 다시 나오는 약을 받았다는 걸 보면 가게나 약국 같은 곳이려나?

그런데 여우 간판이 있는 곳이라.


나미는 눈을 가늘게 좁히면서 기억을 되살렸다.

여우 간판이 있는 집이라면 나미가 전에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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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5. 맥적(2) +6 24.06.11 440 33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451 38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56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7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8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6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6 40 11쪽
»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5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5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5 42 12쪽
29 18. 연저육찜 +7 24.05.28 50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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