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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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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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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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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 맥적(3)

DUMMY

“아쉬움이라 하시면?”

“맛의 깊이가 좀 떨어진다고 할까요?”


강민우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이 맥적도 물론 훌륭합니다. 하지만 앞에 나온 돼지고기 우유조림이나 목살간장조림에 비하면 양념의 밸런스가 좋지 않네요.”


그는 다시 말했다.


“이 방송을 위해 새로 연구를 했다고 하셨는데, 고기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테니 양념을 좀 바꾸신 거겠지요? 그런데 원래의 맥적보다 못하다면 새로 연구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

“이 맥적만 먹었다면 모를 수 있는데, 저는 예전에 호반맥적을 먹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맥적은 원래의 호반맥적보다 맛이 떨어집니다. 좋은 요리가 발전한 게 아니라 전보다 퇴보한 게 아쉽네요.”


이정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맛이 모자라다는 평가가 아니라 예전의 호반맥적보다 못하다는 평가는 그의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었다.


시현이 개발한 호반맥적이 본점의 대표메뉴로 호평을 받는 것이 기석이나 이정호에겐 늘 불만이었다.

호반맥적은 본점에만 있는 메뉴였고, 2호점의 대표메뉴는 기석과 이정호가 함께 개발한 퓨전잡채였다.


말로는 본점과 2호점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신 사장이 호반맥적을 2호점 메뉴에 넣지 않은 이유가 내심 2호점에서는 시현이 만드는 호반맥적과 같은 맛을 못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 걸 기석과 정호는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 편애를 해서 그렇지, 기석 주방장님이 송시현보다 못한 게 어디 있어요?”

“그러게 말야. 송시현이 어린 나이에 컬리너리 챌린지 우승을 한번 하는 바람에 콧대가 높아지고 사람들이 치켜세워 줘서 그렇지. 사실 경력으로 보면 정호 너만도 못한 녀석인데 말이야.”


불만이 많던 둘은 이번 방송에 호반맥적을 들고나오면서 시현의 콧대를 꺾어줄 참이었던 것인데.

나름대로 양념을 바꾸고 새롭게 변화시켰는데 강민우에게 신랄한 비평을 들을 줄은 몰랐다.


“흠, 저 양반 자네가 한 맥적을 먹어 본 적이 있나 보지?”

“글쎄요. 저분 미국에 오래 있다가 얼마 전에 귀국했다고 들었는데, 우리 단골손님은 아니었어요. 단골이면 제가 알거든요.”


시현은 홀 담당이 아니고 주방에 있으니까 손님을 직접 상대할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여러 번 오는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민우는 본 기억이 없었다. 호반맥적을 먹어 본 적이 있다는 걸 보면 적어도 한 번은 왔다는 거겠지만 단골은 아니었다.


“푸드 칼럼니스트인데 입맛이 예민한 걸로도 유명해요. 본인도 요리 잘하는 걸로 알려져 있고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온라인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저도 읽어봤는데 요리에 대한 이해도도 깊고 내용도 좋더라고요.”


강민우에게 다소 안 좋은 평을 받기는 했으나 이정호의 호반맥적이 받은 점수는 전체 3위여서 다음 라운드에 무사히 진출할 수 있게 되기는 했다.

1위는 이탈리아 식당 셰프라는 장명윤이었고 2위는 시현이 눈여겨봤던 김수빈이었다.

1, 2, 3위의 점수 차이는 아주 근소했고, 4위와의 차이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정호도 체면치레는 한 셈이었다.


“3위면 잘한 거지. 다른 메뉴를 골랐으면 더 나았을 걸 괜히 맥적을 골랐나 보다. 2차 과제는 해물이니까 거기 집중하자.”


기석이 정호를 격려했지만 말과는 달리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


촬영이 끝나고 방청객들이 빠져나갈 무렵이었다.


“우린 잠깐 볼일이 있어서 좀 다녀올게.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시현과 세나를 두고 은롱과 금손이 무대 쪽으로 사라졌다.


“시현 씨도 혹시 함께 일하시던 분들과 인사하고 싶으시면 다녀오세요. 저 문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세나가 말했지만 시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나중에 따로 인사를 하면 됩니다.”


기석이나 정호가 시현을 보고 좋은 얼굴을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


“저 잠깐만요, 송시현 씨죠?”


문 쪽으로 향하는 시현의 등을 누군가 살짝 두드렸다.

시현이 돌아보자 푸드 칼럼니스트 강민우가 서 있었다.


“예. 송시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강민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칼럼은 잘 보고 있습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가 자신을 알아본 게 의외여서 시현은 인사를 하면서도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까 방청석에 계신 거 봤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세나가 저쪽에서 기다리겠다는 눈짓을 하고 옆으로 빠졌다.


“저를 아십니까?”

“명색이 푸드 칼럼니스트인데 컬리너리 챌린지 역대 우승자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지요.”


강민우는 싱긋 웃으면서 명함을 시현에게 쥐여주었다.


“촬영이 안 끝나서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연락 좀 주시겠습니까? 제가 꼭 만나 뵙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글쎄요. 무슨 일이신지.”

“별일은 아닙니다. 호반맥적에 관해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럽니다.”


강민우는 명함을 주고 나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아직 촬영 분량이 남은 모양이었다.


문 쪽의 빈자리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려니 금손과 은롱이 돌아왔다.


“오 셰프를 보고 왔어요?”


세나가 물었고 은롱이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응, 세나 누나가 저번에 한 말이 걸려서 혹시 우릴 알아보나 하고 일부러 옆에 가서 어슬렁거렸는데,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어.”

“은롱이는 원래 오 셰프에게서 약간 신맛 도는 냄새가 난다고 했지?”

“응. 그런데 그건 원래 체취가 그런 걸 수도 있어서. 조금 신맛이 짙어지긴 했어.”


집에 돌아오면서 물어보니 금손과 은롱은 지난번 서규원이 오 셰프의 근처에서 노린내가 났다고 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사람마다 고유의 체취가 있다네. 보통 사람들은 그걸 못 맡겠지만 나나 은롱이는 맡을 수 있고, 은롱이는 나보다도 열 배는 더 예민하거든. 나는 원래 오 셰프에게서 별다른 냄새를 맡지 못했는데 은롱이는 오 셰프가 신맛 나는 향을 풍긴다고 하더라고.”

“그거 자체는 별게 아니야. 쓴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고 신 냄새, 단 냄새, 별의별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다 있거든. 드물게 시현 형처럼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저번에 왔던 조향사 손님 말이야. 그 손님 감각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예민하던데, 여우 냄새 같은 게 났다고 한 게 마음에 걸려서 확인하러 가봤지.”


일부러 오 셰프 근처까지 가봤지만 오 셰프 특유의 약간 신맛 나는 체취 외에 다른 향은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이야. 아무 냄새도 안 나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은롱은 뭔가 석연치 않은 듯 작은 이마에 주름을 두어 줄 잡고 있었다.


***


며칠 후, 시현은 강민우에게 전화를 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민우는 반갑게 시현의 전화를 받더니 본론 이야기를 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알아보니까 호반에서 맥적은 원래 송시현 씨가 만드신다면서요.

“······.”

-호반 그만두신 건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호반맥적을 한 번만 요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칼럼 때문에 그러십니까?”


만약 현재 호반에서 나오는 맥적과 시현이 만든 맥적을 비교해서 칼럼을 쓰거나 하려는 거라면 괜한 분란을 일으킬 수 있어 아예 사양하는 게 옳았다.

호반맥적에 대해 시현이 저작권 같은 걸 주장할 것도 아니었고.


-그건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원래의 호반맥적을 꼭 한번 대접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

-호반에서 요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스튜디오에 와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례라면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대접하고 싶은 분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조칸데요. 이번에 미국에서 데리고 온 앱니다.

“······.”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시현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해드릴게요.”


***


“그럼 내일 그 강민우라는 사람 스튜디오에 가는 거야?”


은롱이 물었다.


“응.”

“조카한테 호반맥적을 먹이고 싶어서 형을 개인적으로 초빙하다니, 좋은 삼촌이네.”

“그러게.”


시현이 조금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호반 입장도 있으니까 거절할까 했는데 미국에서 온 조카 먹이고 싶다고 하니까, 왠지 해주고 싶더라고.”


***


휴일인 일요일, 시현은 재료 준비를 해서 강민우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어려운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반년쯤 전 미국에서 귀국한 뒤 차렸다는 강민우의 스튜디오는 크진 않지만 잘 꾸며져 있었다.

푸드 칼럼니스트지만 요리도 하고 너튜브도 찍기 때문에 사무실 옆에 깔끔한 주방을 갖춘 공간이었다.


“오늘 송시현 씨가 호반맥적을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사람은 이 아이입니다.”


강민우의 소개에 따라 시현을 향해 말없이 머리를 꾸벅 숙인 것은 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강서호라고 하고, 제 조캅니다.”


머리를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소년은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로 시현을 뜯어보듯 쳐다보았다.


“호반맥적이면 됩니까? 싫어하는 맛이나 알레르기가 있는 식품은 없으신지요?”

“예. 호반맥적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년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고 시현은 가지고 온 아이스박스에서 재료를 꺼낸 뒤 바로 조리를 시작했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미리 양념에 재워 둔 고기를 가져왔기 때문에 굽기만 하면 되었다.

달군 석쇠에 돼지고기를 올려 지글지글 굽자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특유의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화르르 피어났다.

익숙한 솜씨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반반 구워낸 시현이 부추겉절이를 곁들여서 재빠르게 상을 차렸다.


“자, 호반맥적이 완성되었으니 드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조카를 데리고 식탁에 앉은 강민우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그렇지, 이게 바로 호반맥적이죠. 미안한 말이지만 최고의 한 상에 나왔던 이정호 씨의 호반맥적은 여기 비하면 깔끔한 맛이 없었어요. 나름대로 새로운 양념을 만들어 보려고 한 것 같은데 너무 많은 걸 넣어서 오히려 잡스러웠어.”


고기를 삼킨 뒤 부추겉절이까지 흡족하게 한 입 먹은 강민우가 조카를 바라보았다.


“서호는 어떠냐? 네가 생각하던 호반맥적이 맞니?”


소년은 삼촌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다가 맥적을 꿀꺽 삼키고는 눈을 감았다.


***


겨울이었다. 진눈깨비가 뿌리던 날, 열네 살의 소년은 추위에 떨며 뒷골목에 서 있었다. 쌓인 눈이 녹다 말고 다시 얼어서 발밑이 미끄럽고 지저분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벌써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나온 지 벌써 사흘째였다.


‘내가 먼저 때린 게 아닌데, 왜 믿어주지 않는 거야.’


소년은 입을 꽉 다문 채 추위에 빨개진 코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기상이 그 자식은 학교에서도 맨날 날 괴롭혔는데, 방학 때도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잖아.’


며칠 전 동급생인 기상과 그 패거리들이 집에 찾아와 서호를 불러냈다.


“야, 방학이라고 집에 편하게 들어박혀서 놀 줄 알았지? 빨리 기어나와. 편의점 가서 간식 사 오라고! 내가 뭐 좋아하는지 알지?”

“꺼져! 내가 왜 방학 때까지 니네들 심부름을 하냐?”

“어쭈, 접때 먼지 나게 맞은 거 기억 못 하나 보네?”

“여럿이 덤볐으니까 그렇지, 너 혼자 덤벼봐. 내가 지나!”


서호는 눈을 부라렸고 기상은 코웃음을 쳤다.


“어쭈? 이제 개기네?”


기상이 서호의 머리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아 하지 말라고!”


서호가 성질을 내자 기상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서호의 목덜미 옷깃을 잡아당겼다.


“야, 그러지 말고 저기 아래 주차장 가서 놀자, 좋은 차들 있더라.”

“됐어, 전처럼 나한테 누명 씌우려고?”


서호는 목깃을 잡아당기는 기상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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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맥적(3) +4 24.06.12 441 34 12쪽
43 25. 맥적(2) +6 24.06.11 441 33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452 38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57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7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8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7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6 4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5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5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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