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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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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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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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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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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 연저육찜

DUMMY


-번거로우시겠지만 저희 집에 와서 요리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 사장에게 전화로 물었더니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요즘 입맛이 없으셔서 어떤 것도 맛있게 드시질 못하는데 송 선생님의 요리라면 어머니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못 드시는 음식이나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있으실까요?”


유 사장의 어머니는 다행히 아직 치아도 괜찮고 따로 못 드시는 음식도 없다고 했다. 단지 나이가 드셔서인지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밍밍하다고 하신다나.


-예전엔 고기류도 좋아하셨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연로하시니까 씹는 게 좀 힘드신지 고기류를 못 드신 지가 좀 됐어요.

“예 그렇군요.”

-아, 금손 선생님도 같이 와주세요. 전에 금손 선생님이 오셨을 때 어머니와 무척 재미있게 옛이야기를 나누셨거든요.

“알겠습니다.”

-아직도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요.


유 사장이 좀 속상한 말투로 덧붙였다.


-요즘은 옛일, 옛사람만 기억하시고 최근에 일어난 일이나 새로 만난 사람은 잘 기억하지 못하셔서요.


시현은 유 사장에게 들은 말을 참고로 심사숙고 끝에 송가미록의 메뉴를 몇 가지 골랐다.


“장 좀 봐올게. 나루서점에 가기 전에 죽림에서 먼저 한번 만들어 보자.”

“우리 주방에서 어떤 재료든지 다 구할 수 있는데 뭐 하러 장에 가?”


은롱이 물었지만 시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죽림의 식료품 창고는 가장 좋은 재료를 제공해 주지만, 요리사라면 직접 시장을 다니면서 재료를 보고 고르는 과정을 게을리할 수 없거든. 남이 주는 재료로만 요리를 한다면 반쪽짜리 요리사밖에 못 돼. 정 구하기 어려운 재료가 있다면 죽림의 도움을 받더라도 일단은 내가 직접 다니면서 장을 봐야지.”

“시현이 말이 맞다. 요리사라면 식자재 고르는 거나 손질하는 것부터 꼼꼼히 잘 살펴야지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면 안 되지.”


금손이 말하자 은롱이 눈을 빛내며 시현의 허리춤을 잡았다.


“나도 장 보는 거 구경하러 따라가도 돼?”

“음······, 뭐 그러자.”


***


시현은 검정 몸체에 빨간 줄이 간 죽림 전당포의 경차에 올라서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운전을 그렇게 오래 했어도 아직도 운전대 잡을 때마다 한 번씩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시동 걸 때까지가 문제지 정작 운전을 시작하면 또 그럭저럭 괜찮았다.


자주 가는 시장 근처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은롱을 데리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손님 부르는 소리며 가격 흥정하는 소리 등이 시끌벅적했다.


“자, 여름 생선이라면 역시 민어! 민어, 농어, 물 좋은 민어, 농어 있습니다!”

“오세요, 오세요, 달콤한 참외 나왔습니다. 복숭아도 나왔습니다!”

“마늘, 양파, 생강~ 마늘, 양파, 생강~”


더러는 가게 앞에서 노래 부르듯 소리를 높이고, 더러는 녹음을 틀어놓기도 하면서 호객하는 상인들 사이를 지나가며 은롱이 배시시 웃었다.


“물건 사라고 사람을 막 부르는 거구나.”

“은롱이는 재래시장에 와본 적이 없어?”

“응, 마트는 가봤는데 이런 시장은 처음이야.”


은롱은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현은 시장에 나와 있는 식자재를 천천히 둘러보고 은롱이 뭘 물어보면 대답도 해주면서 단골 정육점으로 향했다.


“시현이 아니냐. 너 호반 그만뒀다면서?”


단골 정육점 아저씨가 시현을 발견하고 가게 안에서 뛰어나왔다.

시현은 호반에서 일하기 훨씬 전 할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오던 중학생 때부터 이 정육점의 단골이어서 정육점 주인 부부는 시현을 허물없는 조카 대하듯 했다.


“예, 그렇게 됐어요.”

“며칠 전에 명수가 고기 떼러 왔을 때 들었지 뭐냐. 호반 신 사장이 건재했으면 턱도 없는 일이지. 신 사장도 그렇게 누워 있는데 너까지 없으면 호반이 잘 굴러가려나 모르겠구나.”

“지금 주방장이 잘하겠죠 뭐. 호반 정도면 자리 잘 잡은 식당이니까 쉽게 흔들리진 않을 거예요.”

“에잉, 그게 다 신 사장이랑 너랑 뼈 빠지게 일한 공인데!”


정육점 사장은 쯧쯧 혀를 찼다.


“너는 새 일자리 구했고? 너 정도면 데려가려는 데가 꽤 있을 텐데? 대회 수상 경력도 있고.”

“당분간은 다른 데서 일하기로 했어요. 식당은 아니지만 요리 공부가 많이 되는 곳이라.”

“흠 그런 데가 있어? 암튼 너처럼 착하고 부지런한 애가 잘돼야 하는데. 우리 집사람도 네 얘기 가끔 한다. 그나저나 이 꼬맹이는 누구냐? 머리랑 눈 색이 특이한데 어디 외국에서 온 앤가? 진짜 귀엽게 생겼네.”

“예. 아는 분 댁 아이인데 시장 구경하고 싶어 해서 데리고 나왔어요.”

“오호, 외국 아이라면 한국 시장이 신기하겠지? 어디 보자, 헤이 보이, 하우 아 유?”


은롱이 생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어, 우리말을 잘하네.”

“저 여기서 났어요.”

“어 그래? 생긴 것만 외국 애고 토박이였군.”


사장은 멋쩍은 듯 코밑을 쓱 훔치고는 시현에게 물었다.


“그래, 오늘은 뭘 줄까? 찾는 거 있어?”

“통삼겹살이요.”

“마침 질 좋은 거 있는데 한번 볼래?”


사장이 꺼내 놓은 삼겹살은 표면이 촉촉하고 광택이 나는 게 한눈에도 신선해 보였다. 붉고 반질반질한 색감에 변색된 부분도 없고 지방과 살의 비율도 적절했다.


“오늘 삼겹살 좋네요. 이걸로 할게요.”


속으로 먹을 사람들을 셈해 본 시현이 넉넉한 양을 산 뒤 은롱을 데리고 다른 가게로 가서 월계수 잎이며 생강 등의 부재료를 좀 샀다.


“죽림의 식자재 창고가 있다곤 해도 내가 살 수 있는 건 양심상 직접 사야지.”


문을 열면 재료가 딱 준비되어 있는 건 편리하긴 하지만 이렇게 시장을 돌면서 물건 고르는 맛이 없다.

시현은 기분 좋게 시장의 북적북적한 기운을 들이마셨다.


“어라? 은롱아!”


바로 옆에 붙어 따라오던 은롱이 몇 발짝 뒤로 처져서 가게 한 군데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유과네?”


강정이며 약과, 유과 등 한과를 파는 가게였다.


“먹고 싶어?”

“응.”


은롱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은롱은 유과보다 유과를 파는 아주머니 뒤쪽을 보는 것 같았다.


가게 안쪽이 살림집이었는데 아주머니 뒤쪽에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앉아 무릎을 맞대고 놀고 있었다.

아이는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고 고양이는 마치 박자라도 맞추듯 냥냥거리는 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귀여웠다.


“아유, 꼬마 손님이 예쁘기도 하네. 한과 먹을 줄 아니?”

“네.”

“뭘 줄까? 이 강정 어때?”


인상 좋고 후덕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은롱에게 강정을 쥐여 주는 걸 보고 시현이 얼른 지갑을 꺼냈다.


“은롱아, 강정 그냥 받으면 안 돼. 형이 사 줄게.”

“아유 아니에요. 아이가 귀여워서 제가 그냥 줬어요.”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지만 시현은 강정을 한 봉지 사고 값을 치렀다.


“강정 맛있어?”

“응.”


은롱이 강정 가게를 돌아보며 생글 웃는 게 유독 그 가게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은롱이 혹시 저 가게 알아?”

“응.”


은롱은 시현을 잡아당기더니 귓속말을 했다.


“전에 우리 손님이었어.”


시장을 나오면서 은롱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이런 시장은 처음이지만, 다른 시장은 몇 번 가봤어.”

“다른 시장?”

“응, 우린 몽중시(夢中市)라고 부르는데, 오늘은 형이 날 여기 데려와 줬으니까 다음엔 내가 형을 몽중시에 데려가 줄게.”


은롱은 기분이 좋은 듯 주차장의 차를 향해 폴짝폴짝 뛰어갔다.


***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대파와 월계수잎을 넣는다. 마늘과 생강, 통후추와 양파, 계피도 넣었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청주를 한 큰술 넣고 큼직큼직하게 썬 통삼겹살 덩어리를 넣어 센 불에서 삶는다.

삼겹살을 삶는 동안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은행을 달달 굴려 볶아서 파래지면 종이에 올려 한 김 식히고 종이로 비벼 껍질을 벗긴다.

푹 삶은 삼겹살 덩어리를 건져서 물기를 뺀 뒤 달군 프라이팬에 올려 겉이 노릇노릇해지도록 굽는다.


치지직, 고기에서 기름이 배어나와 자글자글 끓으면서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고소한 냄새와 함께 귀와 코를 자극했다.

시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기를 뒤집었다.


작은 냄비에 할아버지의 특제 간장을 넣고 맛술과 설탕, 물엿, 생강, 통후추와 마른 고추를 넣고 센불에서 끓여 조림간장을 만든다.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중불로 낮춰서 조림간장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졸인다.


조림간장이 침샘을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며 자글자글 졸아드는 동안 기름 두른 팬에 두부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놓고, 표고버섯도 십자무늬로 칼집을 내 손질해 놓았다.


“자, 이제 팬에 옮겨 담아 조려야지.”


넓은 팬에 삼겹살을 반듯반듯하게 썰어 담고 두부와 표고버섯, 밤과 대추 등 부재료를 함께 담은 뒤 끓여둔 조림간장을 부어 조린다.


송가미록의 조리법을 보면 인삼도 넣지만 나래서점 유 사장의 모친이 인삼은 잘 받지 않는다 해서 인삼은 제외했다.

재료에 색이 잘 배고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조림장을 끼얹어 가며 조려 주다가 은행과 대추를 넣고 조금 더 조린다.


잘 조려진 삼겹살을 썰어 부재료와 함께 접시에 예쁘게 담은 시현이 식탁에 접시를 놓자 아까부터 식탁에 앉아서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있던 은롱과 금손이 반색을 했고, 세나도 아닌 척하지만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향도 그렇고 엄청 고급스럽게 보이는 요리군요. 이건 뭐라고 부르죠?”


세나가 물었고 시현이 대답했다.


“연저육찜입니다. 대표적인 조선 궁중요리의 하나고요. 원래는 진간장을 쓰지만 저는 할아버지의 간장을 썼습니다.”

“송가의 요리를 각별하게 만드는 데 그 간장이 큰 역할을 하지, 암.”


금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코를 발름거렸다.


“냄새가 굉장하군.”

“이번 주말에 나루서점 유 사장님께 대접할 음식인데, 죽림 가족들도 맛보시라고 먼저 만들었으니 한번 시식해 보시죠.”


금손이 먼저 한입 시식을 하자 즉시 세나와 은롱이도 한 점씩 입에 넣었다.


“후아아, 이거 고기가 입에서 막 녹아. 양념은 단짠단짠한 게 진짜 맛있어!”


은롱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감탄했고 세나도 천천히 고기를 씹어 삼킨 후 두부와 버섯도 한 점씩 입에 넣었다.


“이름 그대로 고기가 굉장히 부드럽고 양념이 잘 배어서 감칠맛이 있네요. 곁들인 두부랑 밤도 좋고.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게 깊은 맛이 있어서 어르신들도 좋아하시겠어요.”


금손도 목을 골골 울렸다.


“골골송이 절로 나오는 맛이야. 옛날엔 임금님 수라상에나 올랐던 음식인데, 나루서점 식구들이 좋아하겠군. 유 사장 모친께서 입맛을 잃으셨다 하지만 이 정도면 달아난 입맛도 돌아오겠는데.”

"유 사장님 어머님이 예전에 고기류를 좋아하셨는데 요즘은 잘 못 드신다고 해서, 부드럽게 조리하려고 특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이 정도면 드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음,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라면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겠군."


황홀한 표정으로 고기 한 점을 더 삼킨 금손이 물었다.


“주 요리를 연저육찜으로 하면 혹시 밥은 따로 생각한 게 있나?”

“예, 연잎에 싼 찰밥을 낼까 합니다.”

“음, 괜찮군. 연잎밥 좋지.”


금손이 분홍색 혓바닥으로 코끝을 날름 핥았다.


시현도 연저육찜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고기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씹자마자 말캉, 입안에서 폭발하듯 진한 육즙을 내뿜으며 녹아내린다.


‘이 정도면 송가미록의 빈 부분을 조금 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시현은 은근히 이 요리가 나루서점 모자의 마음을 울려 주기를 기대하면서 연저육찜의 풍부한 맛을 음미했다.






연저육찜f.jpg


작가의말

내일부터는 연재 시간을 오후 6시 50분으로 고정하려고 합니다.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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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6. 조우 +6 24.06.14 448 36 12쪽
45 25. 맥적(4) +9 24.06.13 439 37 13쪽
44 25. 맥적(3) +4 24.06.12 440 34 12쪽
43 25. 맥적(2) +6 24.06.11 440 33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450 38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56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6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7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6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5 4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4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4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5 42 12쪽
» 18. 연저육찜 +7 24.05.28 50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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