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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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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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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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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 수수떡과 메밀전병

DUMMY


“그나저나 밤나무골 여우고개가 어딘지는 알아?”


시현이 은롱의 머리를 쓸어주며 묻자 은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손 씨랑 찾아봤어. 충북이래.”

“충북 청주시라네.”


금손이 말했고 시현이 그를 돌아봤다.


“머네요. 차 타고 가도 두 시간은 걸릴 텐데 저녁 늦게 출발하면 한밤중에나 도착하겠네요. 뭘 타고 가나요? 죽림 차 타고 가요?”


죽림 전당포에는 가끔 차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쓰는 경차가 한 대 있었다. 운전은 세나가 전담하고 있었고.


“음, 나중에 보면 알 걸세.”


금손이 장난스럽게 은롱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고 시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들어선 시현은 전날 삶아 놓고 간 팥을 으깨서 팥고물부터 냈다.

수분을 날려가며 고슬고슬하게 볶은 팥고물을 넓은 쟁반에 펼치자 익은 팥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기분 좋게 팥 내음을 들이마신 시현은 팥고물을 식히는 동안 수숫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반죽하기 시작했다.


더운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익반죽을 한 뒤 찰기가 돌게 잘 치댄다.

반죽을 좀 재워 두었다가 다시 한번 치대 준 뒤 동글동글 경단 모양으로 수수알을 빚었다.

물을 팔팔 끓인 후 수수알을 퐁당퐁당 넣고 있는데 금손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오! 수수팥떡인가?”

“예. 두두리 씨가 좋아할 것 같아서 만들고 있어요. 메밀전병도 하려고요.”

“그래, 그래, 대견하네.”


금손이 흐뭇한 얼굴로 시현의 다리 주변을 맴돌면서 꼬리로 다리를 툭툭 쳐주고 나갔다.


수수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주걱으로 설렁설렁 저어주는 동안 익은 수수알이 물 위로 동동 떠올라왔다.

떠오른 수수알을 건져서 찬물에 헹군 후 팥고물에 굴려 주니 겉은 보슬보슬하고 속은 쫀쫀하게 차진 수수팥떡이 완성되었다.


“이젠 메밀전병! 먼저 소부터 만들자.”


메밀전병은 손이 좀 가지만 메밀 좋아하는 두두리에게 특식으로 해주고 싶었다.


숙주를 잠깐 삶아서 체에 받쳐 물기를 빼준 후 송송 썰어 물기를 꼭 짠다.

김치도 한 줌 꺼내 쫑쫑 다졌다. 잘 익은 김치의 새콤하면서 맵싸한 향이 입맛을 돋군다. 두부도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후에 으깨주었다.

잘게 썬 돼지고기에 다진 파, 마늘, 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밑간을 해서 강불에 달달 볶아준 뒤 큰 그릇에 숙주, 김치, 두부와 함께 담았다.


고춧가루, 소금,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골고루 잘 섞어서 소를 만드는 동안 벌써 매콤짭짤하면서 고소한 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소는 됐으니 이제 반죽을 만들어야지.”


큰 그릇에 메밀가루를 넣고 쫄깃하라고 밀가루도 조금 섞은 뒤 물과 소금을 넣어 반죽을 시작했다.

반죽이 주걱에서 조르르 흐를 정도의 농도가 된 후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얇게 편다.


팬에 닿는 면이 살짝 익었을 때 뒤집어 준 후 만들어 놓은 소를 넣고 돌돌 말아 주고 겉면이 노릇노릇해지도록 굽는다.


“우왕! 이거 무슨 냄새야! 넘 맛있겠다!”


은롱이 코를 킁킁거리면서 주방으로 들어왔다.


“메밀전병, 하나 먹어볼래?”

“응, 응!”


은롱이 반바지 뒤로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갓 구워 뜨끈뜨끈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메밀전병을 한 토막 썰어 주자 은롱이 침을 꼴딱 삼켰다.


“우왕, 맛있다. 겉은 쫄깃쫄깃하고 속은 고소하고 매콤한데 씹히는 맛도 좋아. 아삭아삭한 건 숙주야?”

“맞아. 그런데 은롱이 귀가 튀어나왔다?”


메밀전병을 씹는 은롱의 머리카락 사이로 여우귀가 뾰죽 튀어나왔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귀가 튀어나왔네.”


은롱이 눈을 반달처럼 접으면서 메밀전병을 꼭꼭 씹었다.

맛있으면 귀가 튀어나오나? 꼬리와 귀가 나와서 반인반수 같은 은롱이가 메밀전병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시현도 미소를 머금었다.


외동이라 동생도 없고 아직 애도 없는 총각이라 어린애한테 뭐 해먹이는 기분을 몰랐는데, 할아버지가 어린 시현에게 맛난 것을 해먹이면서 흐뭇해하시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먼 길 가니까 저녁은 간단하게 먹자고, 몸 무거우면 안 되니까.”


금손이 주방에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고 시현은 또 고개를 갸우뚱했다.

먼 길 가면 밥을 더 든든히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차멀미라도 할까 봐 그러나?


“형 이것저것 많이 했으니까 저녁은 요리하지 마. 있는 밥이랑 밑반찬이면 돼. 저번에 형이 만들어 둔 밑반찬 다 맛있어!”


우리 은롱이 말도 예쁘게 하네. 아직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어쩜 이렇게 정들게 할까.

시현은 웃으면서 은롱의 머리를 헝클었다.


“이제 슬슬 가볼까.”


저녁을 간단히 먹고 나서 해가 완전히 저물자 금손이 야웅 하면서 몸을 활처럼 폈다.

세나가 보자기에 싼 감투를 안고 나오는 걸 보고 시현도 주방에서 찬합을 챙겨 나와 출입구를 향했다.


“응? 충북 청주시를 간다면서 왜 이 층으로 올라가요?”


금손과 세나, 은롱이 이 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던 은롱이 도도도 내려와서 시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형아, 얼른 와, 올라가 보면 알아.”


은롱의 손을 잡고 이 층 죽림에 올라가자 시원한 대나무 바람이 불어왔다.

대나무숲 사이에 드문드문 서 있는 문 중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흰색 문 앞에 금손과 세나가 서 있었다.


“형아, 요기 서 있어.”


은롱이 금손과 세나의 사이에 시현을 세우고는 단풍잎 같은 손을 문에 대더니 종알종알 뭔가 주문을 외웠다.

문에 그려진 문양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문밖으로 떠올라 나오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한순간 문이 스르르 열렸다.


“엇!”


마치 물살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시현 일행이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바람을 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날아가는 것처럼 귓전에 바람이 스쳐 갔다. 누군가 시현의 손을 잡고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정해 주고 있었다.


한참 만에 발이 땅에 닿으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눈앞이 맑게 개면서 아래쪽으로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들을 비추는 가로등과 그 건너편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그들은 고속도로를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 위에 내려섰다.


“여기가 옛날 밤나무골 여우고개가 있던 자리라네.”


금손이 말했고 시현이 땅을 단단히 딛고 잘 선 것을 확인한 세나가 그때까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세나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괜히 귓전이 뜨뜻해진 시현이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자, 두두리 아저씨 꺼내 봐.”


은롱이 말했고 세나가 보자기를 바닥에 펴고 감투를 꺼냈다.


“혼자 나올 수 있을까? 내가 도와줘야겠지?”


은롱이 감투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힘을 모으려고 하는데 감투가 포롱포롱 흔들리더니 두두리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고향의 기운이 느껴져, 내가 혼자 나갈 수 있네.”


파닥파닥 흔들리던 감투가 퐁 튀면서 두두리의 모습이 툭 튀어나왔다.


“이야, 이거 얼마 만에 이쪽 팔을 돌려 보는 건가.”


두두리가 못 쓰던 왼쪽 팔을 빙그르르 돌려보며 신난 소리를 내었다.


“와, 어제 봤을 때보다 훨씬 보기 좋으신데요!”


시현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두두리의 옷도 몸도 어제의 그 너덜너덜한 몰골보다 훨씬 멀끔해져 있었다. 군데군데 상처는 보였지만 어제와는 댈 게 아니었다.


“음, 애기씨 덕분이지, 정말 고마워.”


두두리가 세나를 향해 머리를 꾸벅했고 세나가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직녀의 바늘이 있었으면 거의 제대로 복구시켜 드릴 수 있었을 텐데 제 솜씨로는 여기까지가 최선이어서, 다 낫게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아니여 아니여, 이만큼 해준 게 어디여. 이렇게 고쳐 주지 않았으면 고향에 왔다 해도 내 힘으론 못 나왔을 거여.”


두두리는 발을 탕탕 굴러 보더니 그리운 듯 주변을 휘이 둘러보았다.


“땅 깊은 곳에는 아직 여우고개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정말 많이 변했구먼.”


두두리는 가슴을 펴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죽림 식구들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정말 고맙네.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떠나기 전에 고향을 보는구먼. 이제 여한 없이 도깨비골로 돌아갈 수 있겠어.”

“떠나실 생각인가요?”

“음, 우리 같은 도깨비들은 믿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없지. 사실 벌써 오래전부터 돌아가고 싶었는데 몸이 그 꼴이라 힘을 쓸 수가 있어야지. 좀 더 있었으면 아마 나도 모르는 새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원귀가 되었을지도 몰라.”

“도깨비골이 어딘가요?”


시현이 묻자 두두리가 허허 웃었다.


“아, 젊은 김 서방은 모르겠구먼. 도깨비골은 이승의 장소는 아니고 우리 도깨비들이 삶을 다하면 가는 곳이여. 나도 이제 슬슬 갈라고.”


마실이라도 간다는 듯 유쾌한 어조로 말하는 두두리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시현은 서둘러 찬합을 풀었다.


“가시기 전에 이거 좀 드셔 보세요.”

“아니 이거 메밀묵에 메밀전병, 수수팥떡까지 있지 않나!”


두두리는 큼직한 손으로 전병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음, 맛있군, 맛있어. 떠나는 길에 이렇게 맛있는 걸 잔뜩 먹게 해주다니 정말 고맙네. 자, 나도 그냥 갈 수는 없지! 선물을 줘야지!”

“아니, 아니 그런 건 됐습니다. 맛있게 드셔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시현이 손사래를 치자 두두리는 반쯤 투명해진 손으로 시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니야, 도깨비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고. 선물을 받으면 몇 배로 갚는 게 도깨비여!”


두두리는 다시 한번 그들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여우 도령에겐 이야기를 남기고 가고 애기씨에겐 감투를 남길 거여. 애기씨, 뭐 보이고 싶지 않은 걸 넣거나 반짇고리로 쓰거나 하게. 바느질이 조금 더 잘 될 거여. 고양이 영감님에겐 따로 뭘 남길 만한 게 없는데 괜찮지 영감님?”

“물론이지, 죽림에 이야기를 남기면 나한테 남긴 거나 마찬가질세.”

“젊은 김 서방, 자네는 요리사지? 자네에겐 이걸 주지!”


갑자기 시현의 눈앞에 팟 하고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깜짝 놀란 시현이 뒷걸음질을 치는데 불덩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쫓아오더니 시현이 막으려고 들어 올린 손바닥 안으로 쑥 들어오면서 꺼졌다.

두두리가 아이처럼 킥킥 웃었다.


“놀랐지? 내 마지막 장난이여. 잘 써보게. 쓰는 법은 고양이 영감님이 가르쳐 줄 거여.”


두두리의 몸은 이제 거의 투명해져서 보이지 않고 유쾌한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스라해졌다.


“자넨 좋은 요리사가 될 거여. 다들 잘 지내게.”

“두두리 아저씨, 잘 가!”


은롱이 외쳤고 호쾌한 웃음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한세상 잘 놀다 가네, 어이차!”


세상이 고요해졌다.


한참 만에 시현이 말했다.


“두두리 씨는 돌아가신 건가요?”


금손이 대답했다.


“음, 사람 기준으로 보면 그렇지. 하지만 사람의 죽음과는 조금 달라서 삶을 끝내고 육신을 버린 도깨비의 영은 도깨비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

“좋은 데 갔을 거야. 자, 우리도 이제 집에 가!”


은롱이 시현의 손을 당겼다. 돌아보니 아까 그들이 나온 문이 그대로 서 있었다.

문을 향하며 세나가 말했다.


“그나저나 좋은 선물을 받으셨네요.”

“예?”


시현이 되묻자 은롱이 깡충 뛰며 말했다.


“도깨비불 말이야, 도깨비불. 두두리 아저씨가 형아한테 도깨비불을 주고 갔어.”














수수떡메밀전병f.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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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5. 맥적(2) +6 24.06.11 440 33 12쪽
42 25. 맥적(1) +8 24.06.10 450 38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56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6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7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6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5 4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4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4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5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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