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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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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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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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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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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 맥적(1)

DUMMY

성훈의 말을 들은 시현이 가볍게 웃었다.


“누가 나가서 하면 어떠냐, 그거 이미 호반 대표메뉴인데. 맥적이 원래 없는 음식도 아니고.”

-아휴, 그렇다 캐도 일반 맥적이랑 호반맥적은 다르다 아입니까. 게다가 주방장도 부주방장도 형님이 만드는 맛을 못 낸다고요!

“레시피 다 아는데 왜 맛을 못 내?”

-그라이 답답지 말입니다. 형님이 갈키주고 나간다 할 때 필요 없다고 그리 어깃장 부리더마는, 맛이 달라요. 보통 사람들이야 그것도 이것도 다 맛있다 카겠지마는 우리가 먹어 보면 딱 알지예. 오래된 단골손님 중에도 뭔가 맛이 변했다카는 손님이 있다 아입니까.

“그래?”

걱정스럽게 혀를 찼던 시현이 다시 말했다.


“뭐 어쨌든 호반 부주방장인데 웬만큼은 하겠지. 호반 이름 달고 나가는데 좋은 결과 얻으면 좋겠다.”


전화를 끊은 시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호반에 있을 때 맥적은 항상 시현이 했다. 원래 궁중음식이라 송가미록에도 조리법이 적혀 있지만 호반의 맥적은 시현이 개발한 거라 일반 맥적 조리법과는 좀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도 호반맥적이라고 불렀고, 2호점에서도 하지 않고 본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였다.

호반이 크진 않아도 숨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게 된 것에도 맥적이 큰 공헌을 했다.


호반을 그만둘 때 조리법을 꼼꼼하게 적어서 넘겨줬는데, 일반 사람이라면 몰라도 요리사가 그 맛을 못 낼 것 같진 않은데.


사실은 그만둘 때 부주방장으로 내정된 이정호를 비롯한 요리사들에게 맥적과 월과채 등 몇 가지 호반 본점의 대표메뉴를 직접 제대로 전수하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이정호나 기석이 시현에게 배운다는 것에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지 레시피나 내놓고 빨리 꺼지라는 눈치를 줬기 때문에 결국 어영부영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형 일하던 식당 요리사가 도전한대?”


성훈과의 통화 내용을 들었는지 은롱이 물었고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예비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지만 아마 그 정도는 통과할 거야. 나중에 방송 나올 때쯤 좀 챙겨봐야겠네.”


시현의 말을 듣고 뭔가 잠깐 생각하는 눈치이던 은롱이 금빛 눈을 반짝이면서 시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 호반맥적이라는 건 뭐야? 그냥 맥적이랑은 달라? 우리도 좀 만들어주면 안 돼?”

“못 해 줄 거야 없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눈 감고도 만드는데.”


맥적은 사실 복잡한 요리는 아니다. 된장을 기본으로 한 양념에 돼지고기를 재웠다가 꼬치에 꿰어 구워 먹는 요리인데, 이 양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요리사마다 독특한 맛이 난다.


송가미록 맥적 부분에 덧붙인 고조부의 짧은 글을 보면 고조부는 맥적이 고구려 시대부터 명맥을 이어 온 우리 전통 요리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우리 고조부님이 전통 요리계에서는 이단이라고 두드려 맞고 서양 요리며 이세계 요리까지 연구하는 분이었지만 사실은 절대 전통을 소홀히 하는 분이 아니었어.”


송윤수는 전통 요리를 꼭 그대로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리저리 변형을 해보는 걸 즐겼지만 그렇다고 결코 전통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현 역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송가의 옛 요리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지만 한식 외의 다른 요리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고조부에게 공감이 많이 갔다.


맥적(貊炙)의 맥(貊)은 옛 고구려 사람들을 의미하고 적(炙)은 꼬챙이에 꿰어 구운 고기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 고기요리 중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따 저녁으로 해줄게. 혹시 넣고 싶은 몽로 있어?”

“아니, 오늘은 그냥 맥적만 먹어볼래.”

“그래, 부추겉절이 해서 같이 먹으면 좋겠네.”


호반맥적이란 전통적인 돼지고기 맥적 외에 시현의 제안으로 닭고기 맥적을 추가한 것이고 일반 맥적과 달리 양념이 독특했다.

돼지고기 맥적과 닭고기 맥적이 반반 나가는데, 주문 시 손님에게 의향을 물어보고 돼지고기만 원하면 돼지고기로, 닭고기만 원하면 닭고기로 선택도 가능하게 했다.


돼지고기는 목살로 준비하고 도톰하고 넓적하게 썬다. 부드러워지도록 칼로 두드려 잔칼집을 내어놓는다.

향이 좋은 달래와 쌉싸름한 부추를 송송 썰어 놓고 마늘은 다소 굵다 싶게 다진다. 달래가 없다면 쪽파나 부추만 써도 되지만 달래가 있으면 향이 더 좋다.


된장 양념을 만드는데, 시현은 시판 된장이 아니고 집에서 직접 담근 집된장을 썼다.

호반에서 일할 때는 시판 된장이 아니라 호반에 된장을 공급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영주에서 오래전부터 된장을 만들어 온 종갓집으로 아는 식당이나 호텔 등에만 납품하는 곳인데 시현의 할아버지와도 친분이 있었던 집이다.


“된장 담는 집이 많지만 아직 영주 된장만 한 집을 못 봤다. 직접 담그지 못할 거면 영주 된장을 받아다 써라.”


할아버지도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셨고, 호반의 신 사장도 초기에는 시판 된장을 썼는데 할아버지의 추천을 받아 영주 된장을 써본 이후로는 된장 맛이 다르다고 값이 좀 비싸도 영주 된장을 써 왔다.

지금 시현이 쓰는 된장은 집에서 직접 담근 것인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영주 된장보다 깊은 맛은 좀 떨어지지만 감칠맛은 부족하지 않아서 요리에 따라서는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시판 된장보다 맛이 강한 편이라 양념할 때 양을 좀 적게 한다.


된장에 양조간장과 국간장을 적정 비율로 섞고, 단맛과 윤기를 내기 위해 조청을 좀 넣고 청주와 깨소금, 후춧가루까지 넣은 뒤 시현이 개발한 소스를 넣어 농도를 맞춘다.

원래의 조리법에는 없지만 시현은 매실청을 기조로 따로 개발한 소스를 쓰는데 이게 호반맥적의 비법 중 하나였다.

양념의 비율도 중요한데 호반의 양념 비율은 시현이 여러 번 시험해 보고 만들어낸 비율로 정해져 있었다.


양념을 잘 섞은 뒤 충분히 어우러지면 고기를 양념에 잰다.

고기를 재기 직전에 참기름을 약간 넣고 고기를 된장 양념에 버무린다. 한 장 한 장씩 잘 버무린 후 아까 송송 썰어 놓은 달래, 부추, 마늘을 넣고 다시 버무린다.

고기에 양념이 충분히 밸 수 있게 랩을 씌워 재워 둔다.


반 시간쯤 후, 이제 재워 둔 고기를 깨워서 구울 차례.

원래 전통 맥적은 꼬치에 꿰어 굽지만, 호반에서는 꼬치 없이 석쇠에 구워서 냈다.

적당히 달궈 기름을 바른 석쇠에 고기를 펼치고 양념이 타지 않도록 불 조절에 주의하면서 굽는다.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서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닭고기 맥적은 닭다리 정육을 준비해 큼직큼직하게 썰어 준다.

양파와 생강 등을 넣어서 돼지고기와는 조금 다르게 간장 없는 된장 양념을 준비해 농도를 조절한 후 잘 섞어서 닭고기를 양념에 잰다.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시현의 비법 소스가 들어간다.


닭고기는 석쇠에 굽지 않고 달군 팬에 굽는다.

재워 두었던 닭고기를 팬에 구운 뒤 석쇠에 구운 돼지고기와 반반으로 부추겉절이나 파채 위에 올려서 낸다. 시현은 부추겉절이를 더 좋아해서 호반에서도 부추겉절이를 썼다.


“자, 식사 다 됐습니다. 와서 드세요.”


시현이 부르자마자 금손과 은롱, 세나가 줄줄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으음, 이게 호반맥적이란 말이지? 된장 양념이라 그런가 간장과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맛이야. 잡내도 전혀 없고.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1차 과제는 거뜬히 통과하겠는걸.”

“다른 참가자들도 요리사일 테니 장담할 수는 없지요. 그래도 이건 호반에서 자랑하는 요리입니다. 은롱인 어때?”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 단짠단짠한데 연저육찜이랑은 또 완전히 다른 맛이야. 연저육찜은 단맛이 더 강하고 입에서 살살 녹게 보들보들한 게 좋았는데, 이거는 구수한 불맛이 나면서 쫄깃쫄깃 씹히는 게 좋아. 돼지고기도 맛있지만 이 닭고기가 아주 독특한 맛이 나서 계속 들어가!”

“그래, 된장과 닭고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군. 뭔가 전통적인 향수를 자아내는 맛이야. 부추겉절이도 상큼하고 매콤한 게 맥적이랑 아주 잘 어울리네. 양념한 고기는 타기 쉬운데 전혀 타지 않았으면서도 딱 불맛 날 정도로 잘 구워졌고.”


금손과 은롱은 항상 음식 평을 잘 해주지만 세나는 말이 적은 편이라 시현이 세나를 흘끔 보자 세나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시현 씨는 1주일에 5회, 1일 1식만 준비하기로 했지만 1주일에 4회로 줄여야 할까 봐요.”

“예?”


뭔가 못마땅한가 싶어 시현이 되묻자 세나가 새치름하게 말했다.


“우리 은롱이 밥투정이 없어진 건 좋은 일이지만, 매일 이렇게 맛있는 걸 먹다 보니 살이 쪄요. 오늘은 밖에 나가 걷기라도 해야겠어요.”


음, 칭찬인가? 칭찬일 거야.


“그런데 형아, 최고의 한 상에 형아네 식당 요리사가 나간다고 했잖아?”


입에 반질반질 기름을 묻혀가며 맥적을 먹던 은롱이 물었다.


“응.”

“저기, 혹시 우리 촬영장에 구경 갈 수 있어?”

“응?”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라 시현은 조금 당황했다.


“글쎄, 이번에 나가는 사람이 나랑 그렇게 편한 사이는 아니라서.”

“그렇구나. 그럼 가까이선 못 보겠네.”


은롱이 조금 실망하는 눈치자 세나가 말했다.


“내가 방송국 홈페이지를 봤는데, 예비 심사는 내부인들끼리만 하지만 1차 과제부터는 방청객을 받는다더라. 경연 형식으로 방청객들 보는 앞에서 직접 요리하나 봐. 전에 금손 씨랑 너랑 처음 오 셰프 봤던 것도 무슨 경연 대회 때 방청객으로 갔을 때였지?”

“응, 그럼 방청 신청을 하면 되겠다. 경쟁률이 높진 않으려나? 누나. 방청 신청 좀 해줘. 우리 다 같이 가서 보자. 형도 갈 거지?”

“응, 갈 수 있다면 가서 보면 좋지.”


***


성훈에게 들으니 이정호는 예비 심사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한다. 1차 과제 방송은 한 달 뒤지만 실제 경연은 1주일 뒤의 토요일 오후에 열린다고 했다.

시현도 관심이 생겨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는데, 1차 과제는 식당에서 판매 중인 일반 메뉴를 해도 되지만 2차부터는 주제만 받아서 자신만의 창작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방청권 경쟁이 치열하달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인기 있는 프로인데 세나가 용케 방청석 네 자리를 연석으로 확보해서 다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세나 누나가 신청하면 될 줄 알았어. 누나가 저런 거 잘 뽑거든. 복권을 뽑아도 꽝이 안 나와. 큰 것도 안 나오긴 하지만.”


밥할 때는 똥손이라고 구박을 하지만 바느질과 티켓팅에는 금손인가 보군.


“그런데 은롱이는 구미호잖아? 이런 거 굳이 세나 씨한테 방청 신청시키지 않아도 마법으로 뽑을 수 있지 않아?”


둔갑도 하는데 방청권 정도는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신령이나 영수와 친해지면 꿈에 나와서 미래도 가르쳐 주고 한다던데 로또 번호를 가르쳐 준다든지 경마의 승패를 가르쳐 준다든지 그런 일도 있을 법하지 않나?


시현의 농담에 은롱은 정색을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너구리 아저씬 줄 알아? 정직한 신령과 영수는 도박과 스포츠에 관여하지 않아!”


아,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시현은 군소리 없이 입을 닫고 사과의 표시로 머리를 숙였다.


***


“준비 다 됐나? 방청 시간이 오후 2시라니까 이제 출발하면 될 것 같네.”

“예, 나갑니다.”


금손과 은롱, 세나는 시현이 모는 자동차로 경연이 열린다는 스튜디오를 향해 출발했다.


“운전 혹시 불편하시면 제가 할까요?”


세나가 나섰지만 시현은 괜찮다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 죽림에 왔을 때는 한동안 운전을 안 하던 뒤라 운전 울렁증이 좀 올라왔었지만 요즘 몇 번 차를 몰았더니 또 괜찮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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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5. 맥적(3) +4 24.06.12 440 34 12쪽
43 25. 맥적(2) +6 24.06.11 440 33 12쪽
» 25. 맥적(1) +8 24.06.10 451 38 12쪽
41 24. 고종 냉면(3) +6 24.06.09 456 34 12쪽
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7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8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6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6 4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4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5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5 42 12쪽
29 18. 연저육찜 +7 24.05.28 50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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