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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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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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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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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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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 맥적(2)

DUMMY


“오전 오후 조로 나누어 방청객을 받는데 저희는 오후 조를 선택했어요. 호반 요리사가 오후 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요.”

“응, 오 셰프는 오전 오후 다 나오지?”

“그렇다고 하더라.”


방송국에서 마련한 스튜디오는 제법 컸다. 시현 일행의 자리는 중간쯤이어서 직접적으로 조리가 잘 보일 것 같지는 않았으나 무대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요리 과정을 보는 데 지장은 없을 듯했다.


“송시현, 너도 왔냐?”


껄끄러운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주방장 기석이었다.

기석의 뒤를 따라온 호반 식구 몇 명이 시현에게 눈인사를 했다.


“너 요새 어디서 일한다는 소리가 없던데 백수냐? 조용히 보고 가라.”


시현이 앉은 자리를 힐끗 본 기석이 입꼬리를 슬쩍 비틀면서 참가자들의 가족이나 관계자들이 앉는 앞자리로 내려갔다.


“저 친군가? 자네 다니던 식당에 새로 온 주방장이라는 사람이?”

“예.”


기석이 그들을 스쳐 가자 노인의 모습을 한 금손이 물었고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인상이 좋진 않군.”

“그런가요. 인물은 나쁘지 않은데.”


기석은 신 사장을 꽤 닮았다. 젊었을 때 잠시 배우가 될까 하는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는 신 사장은 인물이 아주 훤했다.

그런 신 사장을 닮은 기석도 체격이 훤칠하고 이목구비도 번듯한 편이어서 사람들에게 주는 첫인상은 괜찮았다.


-사람들이 인물에 속는 거 아입니까. 소가지가 얼마나 싸가지인데.

-언뜻 보면 닮아 보이지만 생긴 것만 닮은 거지 인상은 완전히 달라. 우리 사장님은 얼마나 자상하고 인상이 좋은데.

-맞다 카이, 분위기는 되레 시현 형님이 사장님이랑 더 비슷하지, 저 싸가지보다.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래도 우리 주방장인데.


성훈이나 명수가 입을 내밀고 투덜거리면 시현은 그래도 신 사장을 생각해서 다독거려 주곤 했는데.


“눈빛이 안 좋아요. 입매도 비뚜름하고. 속이 좁겠어요.”


세나가 귓속말하듯 작은 소리로 속삭였고 시현은 살짝 의외의 눈으로 금손과 세나를 보았다.


시현은 죽림 식구들에게 기석에 대한 불평을 한 적이 없었다.

신 사장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호반을 그만둘 때도 새 주방장과 부주방장이 왔다고만 이야기했는데, 금손과 세나가 한눈에 기석을 부정적으로 볼 줄은 몰랐다.


“아, 시작하나 봐요.”


무대 세팅이 모두 끝나고 진행자가 출연진 소개를 시작했다.


“심사위원장이신 오인국 셰프님, 요즘 최고의 스타 셰프이시지요. 이번에 ‘오스키친’에서 선보인 전복해물냉채는 벌써 올해의 화제 메뉴가 되었습니다. 해산물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마약 넣은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지요?”


진행자의 농담에 풍채 좋은 오인국이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일어나서 이쪽저쪽으로 인사를 할 때 금손과 은롱이 앞쪽으로 몸을 굽히면서 그를 주시했다.


“멀어서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저도요.”


금손과 세나가 다시 의자 등받이 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은롱은 좀 더 오래 오인국을 쳐다보고 있었다.


출연진 소개가 끝나자 진행자가 오늘의 요리 테마를 소개했다.


“앞서 오전에 진행된 1조와 마찬가지로 예심을 통과한 여섯 명의 도전자께서 돼지고기를 주제로 한 요리를 해 주시겠습니다. 제한시간은 45분입니다. 요리가 완성되면 심사위원들의 시식 후 세 분이 탈락하고 세 분이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시게 됩니다. 자, 카운트다운 하겠습니다. 5, 4, 3, 2, 1, 시작!”


진행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리자 여섯 명의 도전자들이 일제히 조리를 시작했다.

무대 뒤쪽의 대형 스크린에 도전자들이 조리하는 모습이 차례차례로 비춰졌다.


“예심에 거의 백여 명이 지원했다던데 열두 명밖에 뽑지 않았네요.”

“음, 여기서 여섯 명을 거르고 2차에는 여섯 명만 올라가게 되는 모양이야.”

“홈페이지 보니까 2차에서 또 세 명을 떨어뜨리고 3차에는 세 명만 올려보낸대요.”

“그리고 3차에서 원래 출연진 세 명과 겨루게 되는 거지.”


‘최고의 한 상’은 처음에 유명 셰프 여섯 사람이 각각 젊은 요리사 한 명씩을 데리고 나와서 가르친 후 경연 형식으로 겨루게 하는 게 1부였다.

1부 촬영에서 세 명이 남았고, 2부는 일반인 도전자를 받아서 1, 2차 과제를 통해 세 명을 뽑아 1부 촬영에서 뽑힌 세 명의 요리사와 겨루게 하는 거였다.


일반인 도전자 역시 1차 과제를 거쳐 여섯 명이 정해지면 멘토 역할을 할 유명 요리사가 붙는다.

예능 프로그램 중 여흥처럼 만들어진 코너라 정식 요리 대회라기보다는 가벼운 예능 느낌으로 꾸며졌지만, 심사위원들도 짱짱하고 인기 있는 프로다 보니까 도전자가 많았고 수준도 꽤 높아 보였다.


스크린에 이정호가 비쳤다. 시현은 그의 손놀림을 주의 깊게 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성질머리야 어떻든 간에 요리하는 솜씨는 꽤나 노련해 보이는 게 부주방장 짬은 되어 보였다. 맛을 봐야 알겠지만 척척 조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긴장이나 실수도 없어 보이이고.

호반에서는 돼지고기와 닭을 절반씩 구워 내지만 1차 과제가 돼지고기고 시간 제한도 있으니 돼지 요리만 하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세 명씩 나뉘어 조리를 하고 있는데, 이정호 옆 조리대의 여성 요리사가 시현의 눈길을 끌었다.

서른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2조의 여섯 명 중 이 사람만 식당에서 일하지 않는 진짜 일반인이라고 했다. 오전의 1조에는 일반인이 둘 있었는데, 2조에서는 다섯 명이 식당에서 일하는 현역이었다.

좌우의 참가자가 다 현역 요리사라서 주눅이 들 법도 한데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물 흐르듯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이름이······, 김수빈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시현이 그녀를 눈여겨보는데 금손이 중얼거렸다.


“저 친구 잘하네.”


금손도 그녀가 눈에 띈 모양이었다.


“요리하는 모양새만 보고 아시겠어요?”


세나가 묻자 금손이 턱을 슬쩍 치켜들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내가 수라간 생활만 이백 년이다. 수라간 고양이 이백 년이면 이런 경연 심사위원은 하고도 남지.”


그건 그렇지. 시현은 바로 납득했다. 실제로 조리를 하진 못해도 요리에 관해서 지식 면으로 보자면 나보다 낫지. 먹어 본 요리만 해도 저기 있는 심사위원 다 합쳐도 금손 씨만 못할 테니까.


“목살간장조림을 한다고 했는데 볶네요.”

“음, 45분 안에 해야 하니까 일반 조림보다 빨리 되는 방법을 선택한 모양이군, 깐풍기 비슷하네.”


이정호와 김수빈 옆 조리대의 남자는 꽤 이름 있는 식당의 중견 조리사라는데 촬영이란 걸 의식해서 그런지 이정호와 김수빈의 기에 약간 눌려서 그런지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저 사람은 메뉴도 잘 정한 것 같고 경력도 있어 보이는데 무대울렁증이 좀 있는가 보군.”

“그러게요.”


금손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고 시현도 맞장구를 쳤다.

대회 경험이 없는 사람이 방송 카메라 앞에 서면 당황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시현도 그런 기분을 모르지 않았다.


“다들 손이 빠르시네요. 요리가 척척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야,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이쪽도 냄새가 죽이네요.”


진행자가 추임새를 넣었고 요리가 거의 완성되어 감에 따라 스크린을 보는 방청객들의 입에도 침이 고였다.

방청객들 지루하지 말라고 진행자가 농담도 하고 심사위원들과 요리에 대한 여담도 나누고 가끔 방청석도 스크린에 비춰 준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는 방청객들의 반응을 잡던 카메라가 은롱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아주 귀여운 방청객이 와 계시네요. 어린데도 한눈도 안 팔고 열심히 보고 계십니다!”


은롱의 이국적이고 귀여운 얼굴이 스크린에 비치자 방청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카메라가 은롱을 스쳐 세나와 금손을 지나 시현을 비췄다.


“꼬마 손님과 일행인가요? 왠지 눈에 익은데요? 혹시 송시현 씨 아닙니까?”


시현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카메라가 비추지 말았으면 했는데, 진행자가 이현수 아나운서라 알아볼 것 같더니만.


“5년 전이었나요? 서울 컬리너리 챌린지 최연소 우승자로 화제를 모았던 송시현 씨가 방청 중이시군요.”


당시 컬리너리 챌린지(Culinary Challenge) 대회의 진행자도 이현수 아나운서였다.

카메라는 시현을 잠깐 비춘 후 방청석에 있는 다른 유명 요리사 쪽으로 넘어갔다.


“형 컬리너리 챌린지 우승자였어?”


은롱이 시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흐음, 그랬군. 컬리너리 챌린지는 일반인 방청객을 받지 않으니까 우리가 못 봤네.”


금손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시현을 바라봤다.


서울 컬리너리 챌린지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요리경연대회였다.

전문 요리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심사위원들도 수준이 높아서 꽤 권위 있는 대회인데, 시현은 제대하고 호반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참가했었다.

특성상 경력 있는 요리사들이 많은 대회라 시현처럼 젊은 요리사는 극소수였다. 역대 우승자 중에도 이십 대는 없었기에 시현이 우승했던 해는 젊은 천재가 나왔다고 꽤나 화제가 되었다.

대회 이후 시현을 고용하고 싶어 하는 곳도 많았는데 시현은 호반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고 차차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었다.


“컬리너리 챌린지보다 인기 있는 대회는 많지만 그만큼 인정받는 대회는 별로 없는데, 우리 시현이가 역시 실력자였네.”

“초야에 묻힌 인재였군요.”


금손과 세나의 말에 시현은 쑥스러워서 마른세수를 했다.


“그런 대회 나가는 요리사들은 여기저기 많이 나가던데, 형은 다른 데 나간 데는 없어?”

“응. 컬리너리 챌린지는 우리 사장님이 권하셔서 나갔지만 다른 데는 안 나갔어.”

“저 오 셰프는 예전에 여기저기 경연 많이 나갔던데. 지금이야 심사위원급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중에 요리가 다 끝나고 작은 그릇에 담은 요리가 여섯 명의 심사위원에게 하나씩 돌려졌다.

참가자가 먼저 자기 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 후 심사위원들이 시식을 하고 평을 한 뒤 점수를 준다.

네 명의 요리 평이 끝나고 다섯 번째로 이정호의 차례가 되었다.

현재까지는 유명 이탈리아 식당에서 일한다는 요리사의 돼지고기 우유조림과 김수빈의 목살간장조림이 가장 평이 좋고 점수가 높았다.


“이 요리는 호반맥적이라고, 고구려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돼지고기 구이요리인 맥적을 호반에서 현대에 맞게 변형, 개발한 요리입니다. 이번 방송 참가를 위해 제가 연구해서 좀 더 독특하게 조리해 봤습니다.”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정호도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있을 텐데, 아무리 정식 요리대회가 아니고 예능 방송이라고 해도 경연 형태를 띠는 이상 뭔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서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맥적 시식을 끝낸 심사위원들이 평을 시작했다.


“맛있군요. 호반의 대표메뉴라더니 그럴 만합니다. 된장 양념이라 잡내 없이 구수한 데다 단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잘 어울립니다.”

“호반이 크진 않아도 숨은 맛집이라더니 좋은 요리가 있군요. 한번 식사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전반적으로 호평이 이어졌으나 심사위원 중 신랄하고 직설적인 평으로 유명한 푸드 칼럼니스트 강민우만 말이 없었다.


“강민우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현수 아나운서가 묻자 강민우가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시중에서 이미 검증된 메뉴인 만큼 나무랄 데 없는 맛이고 구움의 정도나 고기 손질도 흠잡을 게 없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양념에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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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5. 맥적(1) +8 24.06.10 451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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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7 38 12쪽
39 24. 고종 냉면(1) +7 24.06.07 458 35 11쪽
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6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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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5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5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5 42 12쪽
29 18. 연저육찜 +7 24.05.28 50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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