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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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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5 18:5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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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797

작성
24.06.0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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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1. 나미와 미미(2)

DUMMY


“우리 전당포를 본 적이 있다고?”


은롱이 놀라면서 묻자 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봄에, 친구들하고 이 동네까지 놀러 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이 가게를 봤어요.”


집에 돌아갈 때 나미가 친구들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아까 그 집 신기하지 않았어? 글자는 못 읽었지만 간판이 있는 거 보면 가게 같았는데 뭐 파는 집일까? 특이한 냄새가 나던데.”

“?”

“가게? 무슨 가게 말이야?”

“간판에 여우 얼굴 그려져 있던 집.”

“그런 집이 있었어? 난 못 봤는데?”

"나도."


분명히 같은 골목을 지나갔는데 대여섯이나 되는 친구들 중 아무도 그 집을 기억하는 친구가 없었다.


“이상하네, 또 나만 봤나?”


나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친구들 틈에 섞여 집에 돌아갔던 것이다.


“사실 저는요······.”


나미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조금이지만, 어릴 때부터 남들이 못 보는 걸 볼 때가 있었어요.”

“······.”


나미는 은롱을 향해 말했다.


“이름이 뭐예요?”

“나?”


은롱은 놀란 듯한 눈으로 나미를 보다가 대답했다.


“은롱인데.”

“응, 은롱 님, 보통 사람이 아니죠?”


은롱이 깜짝 놀랐다. 지금 은롱은 사람 아이의 모습인데.


“너 혹시 날 알아볼 수 있어?”


나미가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조금은요. 은롱 님은 여우죠?”

“그래······.”


은롱은 당황한 듯 머리를 끄덕였고 세나도 눈에 이채를 띠며 나미를 바라보았다.


“그럴 것 같았어요. 나 어렸을 때 여우 친구가 있었어요. 은롱 님을 봤을 때 그 친구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미는 목이 마른지 우유를 한 모금 홀짝거린 후에 다시 말했다.


“가끔 남들이 못 보는 걸 보는 일이 있으니까, 친구들 중 저만 이 집을 봤을 때도 또 그런 건가 했어요. 그래서 흰머리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미미를 여기 꼭 데리고 와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랬구나.”

“우리 미미, 목소리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 약이 있어요?”


나미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던 은롱이 세나에게 물었다.


“누나, 향설고 환으로 만든 거 남아 있지?”

“아마 한 알 있을걸?”

“한 알밖에 없나?”

“응, 두 알이 남았었는데 삼 년 전에 한 알을 썼잖니.”


은롱에게 대답한 세나가 나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미에게 소리를 찾아 줄 수 있는 향설고가 있긴 한데 마지막 향설고라서 가치가 높기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단다.”


나미가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저, 돈은 없는데요······."

"아니, 우린 돈은 받지 않는단다."

“그럼 어떤 걸 대가로 드리면 될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드릴게요."

“우린 주로 이야기를 받는단다. 저당이면 일 년 보관하고 매입이라면 즉시······.”


이야기 매입과 저당에 관한 설명을 들은 나미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혹시 이야기 말고 다른 거랑 바꿀 순 없어요?”

“음······.”


나미를 바라보던 세나가 대답했다.


“보통은 이야기를 받지만 사연이 있는 물건을 받는 경우도 있고, 손님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대신 받는 경우도 있긴 해.”

“?”

“예를 들자면, 넌 노래를 못 부르게 되었다가 목소리를 받아 간 가수 이야기를 듣고 여기 왔다고 했지?”

“예.”

“반대의 경우도 있단다. 우리 손님 중에 노래를 부르는 손님이 또 있었는데, 그 손님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잊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 대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를 대가로 치렀지.”

“?”


나미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서 세나가 말을 이었다.


“그 손님은 노래하는 목소리를 대가로 치렀어. 그 이후 노래를 못 하게 되었지만 일 년이 지나도 노래를 찾으러 오지 않은 걸 보면 그때 노래와 바꿔 갔던 게 그만큼 소중했던 거지.”

“아아.”


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야기가 아니어도 다른 걸 지불하는 경우도 있는 거구나.

그때 한쪽 소파에서 자고 있던 금손이 앞발로 가만히 제 눈을 만졌다.


나미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자 미미가 걱정스러운 듯 나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아. 조금만 생각할게.”


한동안 생각하던 나미가 뭔가 결심한 듯 은롱을 쳐다보더니 일어나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몇 번 연이어 기침을 하던 나미의 입에서 구슬 한 알이 톡 튀어나와 탁자 위를 굴렀다.

재빠르게 구슬을 붙잡아 세운 나미가 세나와 은롱을 쳐다보았다.


“나한테는 엄마와 미미, 그리고 여우 친구랑 같이한 이야기밖에 없는데, 그 이야길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대신 이 구슬, 이걸 미미의 목소리 값으로 치를 수 있을까요?”


***


나미는 어렸을 때 지금의 엄마에게 입양되었다.

그전에는 친엄마와 함께 인적 없는 산에서 살았는데, 너무 어렸던 때라 그런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왜 그렇게 인적 없는 산에서 둘이 살게 되었는지도 몰랐고.


그래도 엄마의 눈이 아주 예뻤던 건 기억했다. 나미를 보는 엄마의 눈이 항상 사랑에 차 있었고 매일 입맞춤을 해줬던 것도.


그런 어느 날, 오랜만에 산 아래 도시에 다녀온다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미는 엄마가 준비해 놓았던 양식을 먹으며 사흘이나 기다렸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산 아래 도시엔 커다란 차들이 쌩쌩 다니고 그러던데, 사고라도 난 걸까.


봄날이었고, 나미네 집이 있는 언덕에는 꽃이 환하게 피었는데, 나미는 꽃 사이에 앉아서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한참 울고 있는데 누군가 바스락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닦고 머리를 들어 보니 꽃줄기와 풀숲을 헤치고 나미에게 가까이 온 것은 붉은 털의 아기 여우였다.

아기 여우는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나미를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코끝을 내밀어 눈물에 젖은 나미의 뺨을 살짝 핥았다.


“그 아이, 털 색은 다르지만 은롱 님이랑 닮았었어요.”


나미는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은롱을 지그시 보았다.


“은롱 님처럼 말도 잘하는 여우였어요.”


나미와 아기 여우는 친구가 되었고 산에서 만나 자주 같이 놀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무렵, 며칠이나 비가 쏟아져서 나미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여우 친구도 만나지 못했을 때였다.

겨우 비가 그쳤다 싶은 날 여우가 찾아왔다.


“나미야, 보고 싶었어.”

“나도.”


둘이는 오랜만에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치며 신나게 놀았다.

저녁이 되자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우는 집에 돌아가야 된다고 했지만 비가 너무 거세니까 다음 날 밝은 다음에 가라고 나미가 말렸다.


“엄마가 걱정할 텐데.”


여우는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나미와 함께 머물렀다.


“엄마가 찾으러 올지도 몰라.”


밤이 되자 비는 더 거세졌다. 나미와 여우는 같이 끌어안고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천둥처럼 무서운 소리가 났다.

산사태가 나서 흙더미가 순식간에 나미의 집을 덮친 거였다.


정신없이 밖으로 나왔는데 여우가 보이지 않았다. 같이 나온 줄 알았는데.

나미는 여우를 찾으러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토사에 덮여 완전히 흙더미가 된 굴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느라 손톱이 다 빠졌지만 나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여우를 찾아내어 밖으로 끌고 나오는 중이었다.


몇 발자국만 더 나가면 바깥인데, 우르릉 소리와 함께 다시 토사가 덮쳐왔다.

눈앞이 새까매지면서 여우를 꼭 끌어안고 엎드렸는데 누군가 나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정신이 드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때, 상냥한 목소리로 나미를 깨운 것은 큼직한 붉은 여우였다.


“우리 애를 돌봐줘서 고맙구나.”


여우는 나미를 산 밑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데려다주면서 말했다.


“우린 이제 이 산을 떠난단다. 그렇잖아도 사람들 왕래가 너무 많아져서 떠나려고 했었는데 우리 애가 너랑 헤어지기 싫어해서 미뤘었거든. 그런데 이젠 떠나야겠다. 이번 산사태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나미가 아기 여우와 작별을 하고 나자 엄마 여우는 나미의 입에 구슬 한 알을 쏙 넣어주었다.


“우리 애를 구해 준 보답이야. 잘 갖고 있으렴. 네게 좋은 운을 줄 거야.”


여우가 준 구슬을 삼킨 후 나미는 눈이 트였다.

길가에 혼자 서 있던 나미를 한과 가게 엄마가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땅속에 숨겨진 귀한 것이라든지 아주 짧지만 잠시 후에 일어날 일 같은 것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인간 속에 섞여 살지만 인간이 아닌 것이 가끔 나미의 눈에 보이는 수도 있었고.


“갖고 있으면 행운을 부르는 보물이라고 했는데.”


나미가 세나와 은롱을 향해 말했다.


“이 구슬을 드리고 미미의 목소리를 받을 수 있을까요?”


***


은롱이 손을 내밀어 구슬을 만져보았다.


“이거, 여우구슬이잖아?”

“여우구슬?”


세나가 구슬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은롱이 대답했다.


“구미호의 여우구슬은 아니지만 꽤 오래 산 여우의 구슬인데, 완성된 건 아니지만.”


은롱이 구슬을 손에 들고 나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금손 씨처럼 타고난 영물이 아닌데 고양이치고는 너무 수준이 높다 했어. 여우구슬을 품고 있었구나.”


검정고양이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구슬 정도면 우리 미미의 목소리 값이 되지 않을까요?”


미미-말 못 하는 소녀가 검정고양이 나미의 등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귀한 거니까 자기 때문에 쓰지 말라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언니만 믿어.”


나미가 미미에게 얼굴을 비비면서 고로롱거렸다.


“이 상담은 아무래도 은롱이가 맡아야겠는데.”


세나가 조금 옆으로 비켜앉았고 은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로하더니 나미를 향했다.


“저기 말이야,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귀한 거야. 이 여우구슬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긴 한데, 몸 안에 품은 채로 세월이 지나 기운이 무르익으면 지금처럼 조금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큰 능력을 가질 수 있어.”


은롱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했다.


“쓰기에 따라서 정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물건이야. 그리고 수명도 길어지고. 넌 이미 보통 고양이보다 수명이 길지만, 이걸 갖고 있으면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지. 네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

“어쩌면 죽을 위기를 한 번은 넘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괜찮아? 이걸 넘겨도?”

“예, 괜찮아요.”


검정고양이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미미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난 그냥 보통 고양이가 되어도 괜찮아요.”


***


“손님이 그 여자아이가 아니고 고양이였구나.”


환상에서 깨어난 시현이 중얼거리자 은롱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그 고양이가 데리고 왔던 아이가 마지막 향설고를 먹고 목소리를 되찾은 아이야.”

“그 고양이, 금손 씨처럼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니야. 여우구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영물에 가깝긴 했지만 사람처럼 말을 할 순 없었어. 죽림 전당포 안이었기 때문에 말이 통했던 거지.”



작가의말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 아기가 태어나면 고양이는 아기를 작은 고양이로 인식하고 동생이나 새끼처럼 돌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인의 집에 결혼 전부터 키우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지인이 결혼 후 아기를 낳자 고양이가 아기를 동생처럼 정성껏 돌봤어요.

고양이 이름은 신이였고 아기 이름은 준이였는데 어렸을 때 준이는 고양이를 신이 누나라고 부르며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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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4. 고종 냉면(2) +6 24.06.08 457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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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3. 향설고 +5 24.06.06 464 41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466 41 13쪽
36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475 40 12쪽
»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476 4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474 39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485 46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6 24.05.31 484 41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484 37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485 42 12쪽
29 18. 연저육찜 +7 24.05.28 50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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