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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군요."
"정녕 이 방법 밖에 없는겁니까?"
남부 연합의 사실상의 지휘부가 된 돌로래스의 대연회장에 일단의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침통했다. 아이샤의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크흐흑!"
아이샤와 마주한 남자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심정은 이해 하지만…. 알레인 자작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봅니다. 작년에만 알레인 영지에 나이트급 2기 마이티 3기를 망실했어요. 어지간한 남부 영지의 기본 고램 보유대수를 넘는 숫자 입니다. 그 전 해에도…. 더 이상 그 영지를 지키는 것은 고램만 낭비하는 결과에요."
알레인 자작령은 남부의 서쪽 최남단영지였다. 매년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으나 연합이 결성되고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한 지역이었다.
지금 회의장에서는 일레인 자작 외에도 이미 소개령을 들은 몇몇 귀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알레인 자작. 영지민이나 가족들 모두 더 안전한 곳으로 잠시 옮겨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아이샤님…."
알레인 자작뿐 아니라 소개령을 명받은 귀족들은 당연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영지를 잃어버린 귀족에게 뭐가 남겠는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탕!"
갑자기 아이샤가 단검을 뽑아서 회의장 테이블에 꽂았다. 금으로 된 손잡이와 미스릴로 상감된 오래된 보검으로 과거 남부의 무역로가 성하던 시절 물건으로 랜스필드가의 유서 깊은 단검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아이샤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이 단검을 이대로 보관하고 있으세요. 10년 내에 다시 여러분들의 영지를 돌려주지 못한다면 그 대신 이것으로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아 아이샤님!!"
옆에서 지켜보던 게일 남작과 호위기사들 그리고 다른 참모진들이 다급히 달려와 말렸다.
"휴~!"
그러자 알레인 자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한 배를 탄 것인데 저도 아이샤님을 믿겠습니다."
"자작…."
알레인 자작이 포기하자 소개령을 받은 다른 귀족들도 공감의 뜻을 전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마음을 정한 알레인 자작이 지도를 보며 물었다.
"그럼 제 영주민과 가족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의 가문의 작위는 왕가로부터 직접 받은 작위였다. 모시는 당주가 없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귀족들 중 한명이 나섰다.
"경의 바로 뒤에 우리 영지로 오시게!"
"루넨 백작…."
알레인 자작과 인접한 루넨 백작령은 과거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곳이었다. 연합이 중재하여 화해를 했다고는 하지만 묵은 감정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가라앉는 게 아니었다.
"자네 영지민과 가족들을 내 영지민과 가족처럼 돌보겠네.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루넨 백작령은 현재 남부 연합의 남서부 최대병력 집결지중 하나였다. 알레인 자작령과 마찬가지로 남서부 최남단의 몬스터침식지와 접한 이곳은 매년 만만치 않은 격전을 치른 곳이었다.
"…루넨 백작!"
두 사람은 마주보며 서로 팔뚝을 잡았다. 바라보던 주변의 귀족들이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렸다.
겨울을 앞두고 남부 연합은 몬스터와의 전선을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 알레인 자작령처럼 병력 소모가 심하고 지리적 이점을 살리기 어려운 영지는 인근 영지로 영지민을 소개하고 병력을 합치고 있었다.
이일이 아이샤가 연합의 수장으로서 한일 중 가장 힘든 일 이었다.
"휴~ 이것으로 준비는 끝난 건가요?"
"예, 소개령을 내린 5개 영지 모두 별 무리 없이 지시를 따라줬습니다."
"정말 두 번은 하지 못할 일이로군요."
아이샤는 방금 마지막으로 소개령에 따라준 알레인 자작을 떠올리며 우울해졌다.
작년 대원정을 위해 병력을 모았던 것처럼 올해도 남부의 여러 영지에서 병력들이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한 병력을 모으고 훈련했다. 남부 탈환을 위한 본격적인 일보를 내 딛을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아이샤님, 그런데 좀 전의 그 말은 진심 이셨던 겁니까?"
"뭐가요?"
"그 10년 안에…."
"예!"
그러자 게일 남작이 크게 놀라 인상을 구겼다.
"안될 말입니다. 그 무슨…."
"게일경."
"…."
"이미 가문의 명예도 영지의 재산도 모두 여기에 걸었어요. 아버님이 목숨을 버려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도 목숨을 걸고 할 겁니다."
"하지만 10년만에는…."
"할겁니다."
"아가씨…."
무려 반세기가 지나고 있었다. 몬스터에 침범당해 없어진 남부의 영지와 귀족들의 숫자만 두 자리 수였다. 게일남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안타깝게 아이샤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가문의 기사 한명이 아이샤에게 서둘러 다가왔다.
"아가씨, 로렌스 백작님이 돌아 오셨습니다."
"그래요? 지금 어디 있나요? 안내…. 아니 직접 가죠!"
아이샤는 게일남작과 호위기사들을 거느리고 로렌스 백작을 만나러 서둘러 나갔다. 올해 남부의 겨울 몬스터와 전투를 앞둔 마지막 준비가 끝이 났다. 돌로레스 성으로는 남부 각지에서 많은 병력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작전실의 테이블 위에는 아이샤의 단검이 꽂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대기하도록 하게."
"예!"
쥬드 집사는 이발사를 잠시 대기시키고 연무장에 들어갔다. 입구에는 기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호위를 서고 있었다.
"이이! 이놈들! 필립! 칼! 죽어! 죽어! 꺼져버려!"
연무대에는 악에 받친 레온의 절규가 퍼지고 있었다. 연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미친 듯이 아무렇게나 휘두르고 있는 듯 보였다.
이 연무대는 필립이 죽었던 곳이었다. 그날 이후 레온은 이곳에 가까이 오지 않았었다.
"휴~!"
레온의 귀성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며 안타깝게 지켜보던 쥬드 집사는 이발사가 대기하는 곳으로 다시 발을 돌렸다.
쥬드는 철이 들 무렵 이미 라스타드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아버지도 대를 이어 라스타드가의 집사를 맡고 있었다. 쥬드도 지금의 라스타드 백작이 어릴 때부터 모셔왔고 레온이 갓난아기 때부터 돌봐왔었다. 이제는 배가 나오고 머리는 대머리가 되어있었다.
"자네는 지금부터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이네. 아니 여기에 온 적도 없는 걸세. 내 말 알아듣겠나?"
쥬드는 대기하던 이발사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발사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귀족들의 생리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 이발사를 연무대로 데려간 집사는 레온에게 말했다.
"도련님 이발사를 데려왔습니다."
레온은 가쁜 숨을 내 쉬고 있었다.
"헉, 헉…."
레온은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들고 있던 무거운 투헨드소드를 연무대에 아무렇게 던져버리곤 이발사가 준비하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연무대에는 이발사의 가위소리만 들려왔다. 레온은 의자에 앉은 채 연무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듯 연무대 이곳저곳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 작가의말
연재 시간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확인 해 보니 설정을 16시가 아니라 18시로 되어 있더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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