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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습니다."
폴머에게 쫓겨난 취객이었다.
스펜서는 부하 중 한명을 취객으로 위장시켜 자신의 술집을 정탐하고 오게 했다. 그렇게 나온 부하의 보고를 받고 스펜서는 고민에 빠졌다. 페트리시아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하마터면 그대로 비명횡사 할 뻔 했던 것이었다.
"그녀 덕에 목숨을 건진 셈이군요!"
다른 부하가 스펜서에게 말하자 스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좀 전 공터에서의 일이었다.
"부하들 수가 많이 늘었군. 스펜서!"
스펜서의 목에 단검을 대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스펜서의 부하들을 둘러보더니 음산하게 속삭였다.
"오…. 오랜만 입니다. 페드로 형님."
"쉬! 쉬! 스펜서, 너 지금 저 소년들 앞에서 내 이름을 말한 거야? 응? 스펜서?"
"아 아니…. 제가 실수를…."
스펜서는 쩔쩔매고 있었다.
"거기다 내 구역에서 허락도 없이 장사를 해? 부하가 다시 늘더니 간도 늘어난 모양이지? 응?"
페드로라는 남자는 스펜서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대고 스산한 목소리로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펜서는 꼼짝도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려야 했다. 심지어 단검을 던지려던 한손을 그대로 든 채였다.
"혀 형님, 제발….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한번만 봐 주십시오."
"흥! 옛정? 너와 나 사이에 그런 게 있었나?"
페드로의 단검이 스펜서의 목에 가는 혈선을 그리고 있었다. 핏방울이 가늘게 목선을 타고 흘러 내렸다.
"허 허억!"
스펜서는 끝장이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오늘은 페트리시아를 봐서 한번 봐주지…. 운 좋은 줄 알아!"
페드로는 아쉽다는 듯 소리 없이 단검을 접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휴~!"
스펜서는 풀썩 쓰러지듯 주저앉자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스펜서의 등 뒤에 소년들도 심지어 스펜서의 부하들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령처럼 나타난 페드로는 어느새 패트리시아와 스펜서의 부하들 사이를 막고 서 있었다.
페드로가 나타난 후 이때까지 공터에는 손가락 하나 꼼지락 대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숨을 제대로 쉰 인간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페드로라는 남자의 살기에 억눌렸던 사람은 복면 괴한들뿐만이 아니었다. 소년들도 그 압도적인 살기와 위세에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도, 돌아가자!"
스펜서는 감히 페드로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꾸벅 인사를 한 후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기다려요! 당신들 그대로 돌아가면 다 죽어요!"
철수 하려던 스펜서를 페트리시아가 같은 말로 다시 막아 세웠다. 그러고 보면 페드로를 제외하고 이 공터에서 유일하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있긴 있었다.
"의뢰인들이 귀족소년들 이죠?"
"그 그렇소만 그걸 어떻게?"
스펜서가 한쪽의 페드로의 눈치를 살피며 페트리시아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건 알 필요 없고, 아무튼 당신들 이대로 돌아가면 그대로 다 죽은 목숨이에요!"
"…?!"
스펜서가 다시 페드로를 쳐다보자 페드로는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귀족들이 이런 암살 청부를 아무 대책 없이 당신들 같은 얼치기들에게 맡겼을 거 같아요?"
"?!"
"가문의 기사들도 넘쳐나는데 왜 하필 당신들 같은 암흑가의 찌꺼기들을 썼을 거 같아요?"
"…!"
스펜서는 아무 대구를 하지 못했었다. 페드로의 탓도 있었지만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말이 증명 된 셈이었다. 돌아와 보니 가게 자물쇠는 부서져 있었다. 대놓고 침입한 이유야 뻔했다. 남김없이 몰살하고 암흑가의 세력다툼 정도로 덮어버릴 생각 이었으리라….
소년들의 시체가 떠오르고 그 소년들을 죽인 자신들의 시체도 떠오르면 아마도 두 살인사건 간의 접점을 생각해 낼만큼 영리한 사람들은 별로 없으리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철부지 녀석들이라 생각하고 두고두고 벗겨먹으려 했는데…. 꼬맹이들이라도 귀족새끼는 귀족새끼라 이건가? 간악한 것들!"
"어떡하죠? 두목?"
"하는 수 없지, 한동안 수도를 떠야지…. 그래도 나름 이 보답은 해 주고 가야겠지?"
스펜서는 자신의 가게를 나서는 폴머의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잖아요?"
페트리시아는 마차에서 소년들을 바라보며 화사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운 좋게 세비안 백작님이 페드로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교장이 찾아온 날 페트리시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비안에게 교장과 아는 사이인지 확인하려고 교장이 마시지도 않은 술값 계산서를 내밀었다. 그 계산서 뒤에는 세비안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었다. 다행이 교장이 교장실에서 세비안의 부주의함을 책하다 벌떡 일어나는 순간 그 계산서 뒷면의 메시지를 발견 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비안이 밖에서 기다리던 점원에게 답변을 전하러 나가던 차에 알리시아를 만난 것이었다.
소년들은 바짝 얼어서 마부석 남자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 페드로 오빠? 괜찮아요. 평소에는 정말 다정하시다구요. 그렇죠? 오빠?"
그러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검은 조끼의 날렵한 모습의 남자가 마부석에서 돌아보며 흰 이빨을 어색하게 드러내 씩 웃어보였다.
"다 다정… 해 보이시네요."
"하하하!"
항상 농담을 멈추지 않던 쌍둥이들과 맥스조차도 이번에는 제대로 웃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두 오빠는 정말 잘 생겼다!"
페트리시아가 세드릭과 케드릭을 보며 말하자 두 소년은 잠시 페드로의 눈치를 보더니 곧 페트리시아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이야~ 우리의 외모야 페트리시아양의 미모에 비하면 해님 앞의 반딧불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아름다우신 페트리시아양이 목숨까지 구해 주시다니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어머나, 호호호호!"
그러자 맥스가 손가락으로 옆에 앉아있는 세드릭의 목에 단검처럼 가져다 대고 말했다.
"죽다 살아나더니 그사이 간도 늘어난 모양이지 니들?"
좀 전 공터에서 스산한 목소리로 스펜서를 협박하던 페드로의 흉내를 낸 것이었다. 과연 그러자 쌍둥이들도 흠칫했다. 그러나 이 모습에 정작 당황한 것은 펠릭스였다.
"이 이봐, 맥스, 너희들…. 아무리 그래도 그건…."
펠릭스는 마부석의 페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페드로는 맥스가 자신의 어투를 흉내 내자 놀란 듯 돌아보더니 곧 유쾌하게 웃으며 말에게 채찍질을 했다.
"으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학생들이구나. 너희들!"
마차는 어두워지는 수도대로를 달려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군!"
"흑."
알리시아는 초조하게 교문 쪽을 바라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의 귀가시간이 끝났다. 소년들이 잡아둔 동부귀족소년들을 향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세비안이 흐느끼는 알리시아를 가볍게 다독여 주었다.
"이 녀석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귀족인 우리를 감히 처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소년들이 검을 뽑아들자 알렉시스는 거칠게 반항을 했다.
"오 오지 마! 그만둬…. 제발!"
베릴은 겁을 먹고 주저앉아 뒷걸음 치고 있었다. 레온은 담담히 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부귀족소년들에게 몰려드는 학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사나웠다. 이들 중 상당수의 소년들이 이미 몬스터 토벌 같은 실전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들 동부귀족소년들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경험상, 감정상 끝장을 볼 때는 봐야 된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는 소년들이였던 것이다.
"말했지? 이미 끝났을 거라고…."
레온이 담담하게 칼을 보고 말했다.
"그뿐이야? 다른 남길 말은?"
"…."
레온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잠시만! 잠시만!"
맥티어넨이 아이들을 제지하며 서쪽 벽을 가리켰다. 누군가 담벼락 위를 넘어오고 있었다.
펠릭스였다.
페드로가 마차에서 내리는 소년들을 뒤에서 감싸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저기, 얘들아. 가능하면 말이야 좀 전 공터에서의 내 모습은 잊어버리렴."
펠릭스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으나 쌍둥이들과 맥스는 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에는 이미 언제 벌벌 떨었냐는 듯 장난기가 생글생글 감돌고 있었다.
"어때 맥스?"
"넌 어때 캐드릭?"
"아~ 무리야. 나란 인간은 잘난 외모에 뛰어난 기억력 까지…."
이쯤 되자 황당한 건 페드로였다.
"푸하하하!"
잠시 호탕하게 웃던 페드로가 말했다.
"그래, 좋을 대로 해! 하지만 꼬마들아 부디 조심하렴…. 이쪽도 목숨이 오가는 경우가 생기면 장담 할 수가 없단다."
소년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는 잠시 마차를 끌어준 버서커를 쓰다듬어 주고는 마차 지붕을 이용해 학교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나씩 마차 지붕으로 학교 벽을 넘어가는 소년들을 보며 페트리시아가 물었다.
"어때요 페드로?"
"뭘?"
"뻔 하잖아요? 돈이 좀 될 거 같아요?"
"하! 페트리시아, 저 녀석들은 귀족이라도 남부소년들이야. 그리고 저 꼬마는 서자고. 넌 그 세비안인가 하는 녀석이 처음에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모습을 보고 뭔가 기대한 모양인데….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 저 개구쟁이들 어디가 돈이 되어 보인단 말이야?"
"그래요? 그런데 왜 자꾸 내 눈에는 저것들이 다 돈 자루로 보이는 거죠?"
페드로는 마지막으로 담을 넘어 사라지는 맥스를 보다 돌아서며 말했다.
"… 내일 안경이나 맞추러 가 봐!"
"짝!"
알리시아는 펠릭스의 뺨을 거세게 올려쳤다. 그리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트렸다.
"흐흑…. 이 멍청아!"
펠릭스는 뺨을 부여잡고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쌍둥이들이 서둘러 알리시아의 뒤에서 펠릭스에게 손짓 눈짓을 했다. 쌍둥이들이 서로 껴안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펠릭스는 어색하게 알리시아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말했다.
"저…. 미안해 알리시아, 앞으로는 조심할게."
그러자 소년들이 주변에서 삑~ 하며 휘파람을 날렸다. 이어서 박수 소리와 놀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저거 틀림없이 잡혀 살 거야…."
그 광경을 보며 맥티어넨이 옆의 칼에게 말했다.
"흠, 알리시아가 정말 고생 좀 하겠는 걸?"
그사이 다른 소년들은 동부귀족소년들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쌍둥이들과 맥스에게 다가가 격려를 해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있었다.
"그놈들이 17명이나 달려들었는데 말이야 내가…."
"무슨 17명이야? 30명도 넘었다고!"
"훗, 하여튼 너희들 허풍은… 뭐 결론은 이 맥스님이 다 해치웠다는 거지!"
소년들은 맥스와 쌍둥이들의 허풍을 웃으며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풀려난 레온과 동부귀족소년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기숙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막 들어가려는 레온을 칼이 불렀다.
"이봐 레온!"
"…."
"너 좀 전에 대련할 때 날 필립이라고 불렀어. 기억나?"
그러자 레온의 입 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그래서?"
"… 그만둬!"
"…?"
"죽은 녀석을 질투해서 어쩌자는 거지? 네 녀석과 필립이라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봐야 너만 자꾸 비틀어 질 뿐이야!"
"지금 나한테 충고를 하는 거냐? 아니면 동정을 하는 거냐?"
"그럴 리가, 어느 쪽도 아니야. 내말은 이쯤에서 그만 하라는 거야. 네 녀석이 그걸로 얼마나 비틀어지던 내 알바는 아니지만 그 때문에 자꾸 이런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잘 알겠다고. 그러니 네가 그만 두던지 아니면….
"아니면?"
"다음번엔 오늘처럼 좋게 끝나진 않을 거야."
"…."
레온은 잠시 칼을 노려보다가 들어가 버렸다.
"알렉시스, 너도 마찬가지야!"
알렉시스는 잠시 멈춰 서서 칼을 가만히 노려보다 내뱉었다.
"흥, 웃기지마!"
그러고는 휙 들어가 버렸다.
"못 말리겠군!"
칼과 세비안은 서로 쳐다보며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축제는 내일이었지만 이미 구 남자 기숙사 앞은 웃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맥티어넨이 언제 불러왔는지 마법 특기생들이 와서 펠릭스 등 소년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불꽃놀이 같은 그 빛은 멀리까지 흘러나왔다.
"저놈들 내일 일정은 어쩌려고 저 난리인거야? 그나저나 2학년 미 귀환자가 4명인가?"
영문을 모르는 제시 교관이 인원 점검을 하기위해 성큼성큼 남자기숙사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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