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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18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3.0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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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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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9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우선 사전 공작 사항부터 숙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창혁은 나와 하나를 바라봤는데, 솔직히 선글라스를 끼고 보이는 게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걸 질문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일단 두 분은 저희 대한민국 중앙 정보국의 요원의 신분으로 이번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건 저희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정보이니, 숙지해 두시기 바랍니다.”


창혁은 뒤쪽의 스크린으로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쪽으로 손을 휘둘렀는데, 파랗게 빛나는 가상의 서류가 만들어졌다.

서류는 빠르게 날아와 나와 하나의 앞에 놓여졌다.

실제로 종이의 촉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으나, 내가 손짓할 때마다 서류가 한 장씩 넘어갔다.


“유하나 님은 전의 것과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다만 박유 씨는 신중하게 살펴본 뒤 암기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는데, 창혁의 충고가 날아왔다.

또 암기인가 싶었으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대충 이름이나 나이, 출신지 등 개인 정보를 살핀 뒤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엔 창혁이 강조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음··· 제 사건이 이런 식으로 처리됐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 일생 일대의 도박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국의 요원이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둔갑돼 있었다.

고속도로 폭파 사건은 정부 측 요원이 잠입해 증거를 빼돌리는 과정에서 직접 범죄에 노출된 것이고, 병원에서 벌어진 난동은 요원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라니.

나는 조금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부탁하면 이런 식으로 일이 처리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대통령 정도면 가능하리란 추측이었다.

그럼 보스는 대통령과 직접적인 친분이 있다는 의미였다.

대통령을 스스럼없이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건지.


“같이 볼 수 있겠나?”


내가 서류를 보고 놀라자, 하나가 옆으로 바짝 붙어 앉으며 말을 건넸다.

잠시 조용히 서류를 확인하던 하나는 다음 장을 펼쳤다.


“과연··· 이런 식으로 엮은 건가.”


하나는 조금 놀랐다는 듯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 궁금해진 나도 서둘러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요원을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정체 불명의 조직과 조우.

요원은 현장에서 중국제 파워 아머인 청파를 목격.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조직과 중국 조직의 연계를 의심해 수사망 전개.]


어째서 인지 보스와 하나, 그리고 내가 겪은 일이 대한민국 정부의 주관 아래 이루어진 공무로 둔갑돼 있었다.


“수사는 핑계에 불과할 테고, 타깃은 어느 정도 좁혀졌나?”


하나의 날카로운 시선이 창혁에게 향했다.


“우선은 세계 인권 위원회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네 개의 조직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었습니다.”


창혁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스크린 위로 네 개의 앰블럼이 떠올랐다.

좌측 상단에 보이는 문양은 한 마리의 붉은 용이 그려져 있었다.

우측 상단에는 검은 청룡이 자리 잡았으며, 좌측 하단을 점령한 건 주작이었다.

자연스럽게 다음은 현무일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다르게 똬리를 튼 검은 뱀이 해골 위에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좌측 상단부터 차례대로 적룡파, 흑룡파, 주작파, 데스 스네이크입니다.”

“적룡부터 주작까지는 중국 내에서 유명한 파벌인데, 데스 스네이크는 처음 듣는군.”

“그러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데스 스네이크는 2년 전, 중국 내전을 틈타 침투한 국적 불명의 조직입니다. 놈들은 혼란스런 상황을 이용해 중국 콜로니 전역으로 세력권을 넓히더니, 6개월 전엔 북현파를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창현의 설명에 하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공산당의 비호를 받는 조직을?”

“심상치 않은 상황이지만, 내전 상황에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하나와 창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혹시 데스 스네이크의 뒤를 봐주는 조직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까?”


배경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서류도 다 봤겠다 슬쩍 내 의견을 입에 담았다.


“일단 저희 측에서 파악한 결과, 신생 조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한 일이군. 그런 만큼 수상하기도 하고.”

“네. 저희도 세계 인권 위원회의 수사망에 걸린 게 데스 스네이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조직의 빠른 세력 확장은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침식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근거로 보이지는 않았다.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겁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겠죠.”


창현은 다시 스크린으로 손을 뻣어 화면을 왼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수없이 많은 중국 공안의 사건 조사 파일이 나타났다.


“이것들은 데스 스네이크가 인신매매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정황 증거입니다.”


허공에 정리되지 않은 채 떠 있던 서류들 중 일부가 반듯하게 정리돼 나와 하나의 앞에 쌓였다.


“그리고 이쪽은 장기매매, 이쪽은 근래에 중국 내 콜로니에서 납치 사건의 증가에 대해 다룬 겁니다.”


그 뒤로도 수많은 서류가 옆으로 차곡차곡 빼곡하게 들어찼다.


“다른 조직들은 조용한가?”


하나는 서류를 들춰 보더니 창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같이 공산당을 밀던 적룡파는 잔뜩 움츠러든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흑룡파와 주작파는 연합해 데스 스네이크를 밀어내기 위해 준비하는 모양새입니다.”

“즉, 다른 조직들은 실험을 진행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하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서류를 덮었다.

그러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이동하도록 하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창현은 스크린을 없애고 실내의 불을 켰다.

그러고 나서 벽면에 바짝 붙어 있는 캐비닛으로 다가갔다.

창현이 문을 잡아 당기자 잔뜩 녹슨 철이 끼익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시죠.”


창현은 우리의 앞에 후줄근한 옷을 한 벌씩 내려뒀다.

손을 뻗어 슬쩍 천을 만지니, 언제 빨았는지 손가락 끝에 먼지가 뭍어났다.

게다가 천은 보푸라기가 일어나 까칠까칠한 게 절대 입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나에게 슬쩍 눈빛을 보내니 그녀는 내 어깨를 툭툭 내려칠 뿐이었다.


“공식 루트로 방문하는 건 아닌가 보군?”


하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창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창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이 없더군요. 현재 중국 콜로니는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서 물품 납입 업자를 가장해 침투하는 게 최선입니다.”

“탈의실은 있나?”

“네. 왼쪽에 보이시는 문으로 들어가셔서 환복하시면 됩니다. 박유 씨는 그냥 여기서 갈아입으시죠.”

“알겠습니다.”


하나가 문을 열고 나가는 걸 확인한 나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창연이 준비한 옷은 예상대로 몹시 거칠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끔찍할 정도의 악취는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중국 콜로니 소식은 들은 적이 없는데, 상황이 심각한 겁니까?”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니까요. 대도시 정도는 아직 멀쩡합니다만, 군이 주둔하지 않는 변방은 각종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실제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와닿지는 않지만, 창현의 심각해 보이는 표정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우리는 다함께 오아시스로 나갔다.

그러고 나서 해가 저물어가는 사막 위를 걸었다.

해는 순식간에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밤의 한기가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앞장서서 걷는 창현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하나의 옆으로 다가가 작게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언제까지 걸아야 하는 겁니까? 설마 중국 쪽으로 넘어가는 차원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입니까?”


모래 때문에 발이 조금씩 밀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위를 계속해서 걷는 건 생각보다 피로가 빠르게 누적되는 일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알 순 없지만, 중국과 거래하는 업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가는 중일 거네.”

“창현 씨,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하나는 얼마를 더 걷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게 빤하니, 내가 직접 질문을 던져 봤다.

창현은 자신의 손목을 힐끔 내려다 보더니 답변을 돌려줬다.

그의 말은 어떤 악마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했다.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다음에 물을 때도 같은 답변을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제 기우입니까?”

“네. 정 궁금하시다면 정확하게 말씀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부디 그렇게 해주시죠.”

“남은 거리가 4㎞ 정도니까, 쉬지 않고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하겠군요.”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말이었다.

우리는 오아시스의 은신처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네 시간 동안 움직였다.

잠깐 멈춰서 물로 입을 축이는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휴식도 없는 강행군이었다.


“그래도 군 시절보다는 편하지 않습니까?”


어두워서 창현의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분명 나를 비웃고 있을 게 빤했다.

확실히 총과 군장을 메고 걷는 것보다 몸은 가벼웠다.

하지만 내게 발목을 잡아 당기는 듯한 모래 위를 걷는다는 악조건은 난생처음이었다.

익숙하지 않다보니 쓸데없이 몸에 힘이 들어갔고, 그만큼 더 빠르게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현은 은근슬쩍 나를 나약한 놈이라 돌려까는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서 걷지. 대화를 나누면서 체력을 낭비하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겠나?”


내가 입을 꾹 다문 채 창현을 바라보고 있자 하나가 나섰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금세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기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차량은 생각보다 많은 흔적을 남기네.”


하긴, AI가 운전하는 차량의 주행 정보는 서버에 저장될 테니 은밀한 작전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럼 구식 자동차를 사용하면 될 일이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일단 그걸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운전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 낙타나 말 같은 동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사막에 방치하고 떠날 생각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낙타나 말을 타본 적은 있나?”

“···없습니다.”


낙타는 동물원에서나 봤고, 승마를 즐길 정도로 부유한 가정도 아니기에 승마술 따위는 배워본 적이 없었다.

흔들리는 동물의 등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꼴사납게 버티는 것보단 그냥 걷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만히 입을 다물자 하나도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을 가로막은 높다란 모래 언덕의 꼭대기에 서자, 저 멀리 어둠을 밀어내는 작은 모닥불이 보였다.

어림짐작하건데, 그 앞에 앉아 있을 사람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유통 업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건 길고 긴 행군의 끝이 다가왔다는 말이었다.


“예상 시간보다 15분 정도 지체됐군요. 어서 가시죠.”


청현은 들으라는 듯 말을 꺼내며 앞장섰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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