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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16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23 11: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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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헨슨은 실험실을 나선 나를 다시 사무실로 데리고 돌아갔다.

그러더니 잠깐 차나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라며, 달디 단 설탕 커피를 타준 뒤 밖으로 나섰다.


“도대체 설탕을 얼마나 부은 거야? 드워프들이 단 걸 좋아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물을 섞기 위해 다른 컵으로 커피를 따라내는데, 바닥엔 덜 녹은 설탕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반절쯤 옮긴 커피에 찬물을 섞었음에도 단맛은 여전했다.

커피를 세 개의 잔으로 나눠 물을 타고 있을 때, 헨슨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의 등 뒤로는 헨슨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여성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드워프의 평균 신장은 150㎝ 전후인데, 헨슨이 데려온 여성은 160㎝ 정도로 보였다.

덕분에 저 여성이 드워프인지, 인간인지, 혼혈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단 판단의 근거 중에 외견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여성 드워프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외형적 특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내 앞에 도착하고 말았다.


“인사하게. 이쪽은 내 제자인 제인이네.”

“안녕하세요, 한제인입니다.”


다행이 이름 덕분에 실례를 저지르지는 않을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유입니다. 부를 때는 이름만 불러주시면 됩니다.”

“인사를 끝냈으면, 바로 일을 시작하지. 테스트를 하느라 점심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프구먼.”


헨슨은 휘적휘적 걸어 자신의 책상 앞으로 이동하더니, 의자 위로 폴짝 뛰어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나는 염치없는 말을 꺼낸 헨슨을 가만히 노려봤다.

점심을 아직 먹지 못한 건 자업자득인데, 내 탓으로 돌리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쇠심줄이라 그렇게 빤히 바라보셔도 소용없어요. 배고픈 건 마찬가지일 테니 어서 끝내죠.”


제인은 나와 헨슨 사이에 두툼하고 묵직해 보이는 책 한 권을 내려뒀다.


“제가 해야 할 게 있습니까?”

“네. 테스트를 마쳤으니, 외형을 결정해서 장비를 제작해야죠.”

“그렇군요.”


맞춤 제작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따로 생각하시는 게 있으면 그림으로 그려주시고, 마땅치 않으면 시제품 도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셔도 돼요.”

“고민해 보지 않아서 시제품 중에 고르겠습니다.”


나는 책을 펼쳐 도안을 살피려 했는데, 그보다 먼저 헨슨의 팔이 뻗어나와 책을 쥐었다.


“괜히 겉멋 부릴 생각하지 말고, 이거나 한 번 봐.”


헨슨은 책 안의 도안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그가 보여준 것은 굉장히 투박한 외견의 팔찌였다.

두께는 2㎝, 넓이는 조절하는 기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는 깨알 같은 크기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눈에 힘을 줘 천천히 읽어 보니, 팔찌에 탑제된 AI가 처음 이미지해 만들어낸 형태를 기운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반복해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자네는 변질화 능력 중에서도 물체를 날려 보내는 힘이 제일 발달했네. 굳이 거추장스러운 무기의 형태를 취하겠다면 말리진 않겠네만, 조금이라도 능숙한 쪽의 기능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나?”


설명을 다 읽은 뒤 고개를 살짝 들자, 헨슨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내심으로는 무기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영감님의 추천이라면, 이걸로 하겠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이 도안이라면 제작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네요.”


제인은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책을 덮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결정했기에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시는 겁니까?”

“크흠, 티가 많이 났나요?”


제인은 헛기침하며 평정을 가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금요.”

“헹, 아무것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 놈들이 매번 질리지도 않고 겉멋에만 치중하더군. 그러면서 뭐? 제대로 만든 걸 내놓으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지!”


헨슨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길길이 날뛰며 화를 터뜨렸다.


“하루이틀 일은 아닌 모양이죠?”


나는 제인에게 슬쩍 곁눈질하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제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저는 밀린 작업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쯧, 딴 놈들이 주문한 건 다 미뤄. 이놈 것부터 만들어와. 혹시라도 누가 딴지를 걸면 나한테 보내고.”

“네. 그렇게 할게요.”


제인이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헨슨의 비위를 맞춰준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그럼 저도 이만 점심을 먹으러 가보겠습니다.”


나는 드디어 찾아온 해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인사를 건넸다.

이나는 헨슨에게 날 맡겼고, 그는 측정이 끝나면 날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건 혼자서 이나를 찾아가도 된다는 뜻이리라.


“아니, 자네는 나랑 같이 가야지. 나도 점심을 굶지 않았나.”

“그게······.”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으나,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붙잡히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게 빤했다.


“저는 간단하게 때울 생각입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문까지 떨어진 거리를 곁눈질로 살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왔는지, 헨슨이 내 앞에 서 있었다.


“흥, 누가 뭐라 해도 밥은 든든하게 먹는 게 최고네. 내가 대접할 테니 같이 가지.”


그는 단단해 보이는 손으로 내 허리를 팡팡치더니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후우, 이거 꼼짝 없이 붙잡혔네.”


드워프의 식사 초대를 거부한다는 건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도망치는 건 그의 입에서 대접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끝냈어야만 했다.

보기 좋게 퇴로를 차단당한 나는 순순히 헨슨의 뒤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아주 기쁘구먼!”


처음 인사를 건낼 때 드웬의 이름을 꺼낸 게 실수였을까.

공사장에서 만난 드워프들은 항상 티격태격하는 상대라도 악감정만 없다면 술잔을 주고받으며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처럼 지냈다.

드웬은 그걸 드워프식 교류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헨슨은 내가 화를 낸 걸 드워프식 교류라 받아들인 모양인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술판을 벌였다.

사내 식당에서 술을 판다는 것도 놀랍지만, 헨슨이 시킨 술의 양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감님, 이걸 정말 다 드시려고 시킨 겁니까?”


우리는 두 개의 식탁이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았는데, 앞에는 식사가 아닌 안주가 깔려 있고 옆에는 식탁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술병이 잔뜩 쌓여 있었다.

슬쩍 봐도 서른 병은 넘어 보일 정도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자네도 한 병 들게.”


헨슨은 오른손을 뻗어 식탁 위에 놓인 맥주병을 집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장단에 맞춰 술병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헨슨은 왼손으로 병마개를 잡아 따는 묘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로 악력이 강하지도 않았고, 굳은 살이 박힌 손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신하게 오프너로 병마개를 땄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는 없으나, 헨슨과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술병을 하나씩 비워 나가며 어울렸다.

하지만 다행이도 내 간이 술에 절어 정신을 잃기 전에 구원자가 등장했다.


“헨슨 씨, 근무 중에 술을 드시는 게 계약 조건이지만 거기에 직원들을 끌어들이지는 않겠다고 각서를 쓰시지 않았나요?”


취기가 올라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아졌는데,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리자 술이 조금은 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응? 내가 그랬나?”


헨슨은 나보다 배는 마셨는데도 코끝만 붉어졌을 뿐, 정신은 말짱해 보였다.


“네. 그걸 어기셔서 작성한 시말서만 벌써 수십장은 될 거예요!”

“푸하하하! 서로 친해지려면 술 한 잔씩 할 수도 있는 거지.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게.”


이나는 헨슨을 몰아붙일 작정인 모양이지만, 그는 끄덕 없다는 듯 병나발을 불어 댔다.

그러자 이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출근 첫날부터 술판을 벌이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영감님이 대접하시겠다는데 뺄 수는 없었습니다.”


취기 때문에 제대로 말이 나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나가 한숨을 푹 내쉬는 걸 보니 의미 전달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에요! 근무 중이니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야죠!”

“어라, 본인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십니다. 영감님, 나중에 이나 씨랑도 한잔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이나는 드워프의 관습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기에 조금 장난을 쳐볼 생각으로 헨슨 씨를 꼬셨다.


“됐어. 이런 술맛도 모르는 풋내기와 술잔을 나눌 정도로 술이 고프진 않네.”

“저도 절도를 모르시는 분과는 술자리를 가지고 싶지 않네요.”

“헹!”

“흥!”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토라져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자자, 거기까지만 하게. 헨슨 씨도 다음을 기약하는 게 어떠십니까.”


조금 더 분위기를 띄워 볼까 입맛을 다시는데, 하나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헨슨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손에 들린 맥주병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푸후, 길드장이 그러라면 그렇게 해야지. 오늘은 만나서 반가웠네, 유. 다음에 시간이 되면 또 한잔하지.”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속 마음이야 어찌 됐든 그의 호의를 면전에서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만족스런 답변이 됐는지, 헨슨은 미련을 털어버리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손을 휘휘 저어 인사를 건네더니 멀쩡한 걸음걸이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내게는 고민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얼마 후에 장비를 찾을 때 얼굴을 마주하게 될 텐데, 술을 마시러 가자는 얘기가 나올 게 빤했다.

게다가 앞으로도 장비의 정비를 공방에 맞기면서 헨슨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마다 술자리로 이어지면 간이 버틸 수 없을 터였다.


“참 대단하군. 헨슨 씨와 친분을 나눈 건 자네가 처음이네.”


하나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하지만 하나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동안은 누구와도 술판을 벌이지 않았다는 겁니까?”

“이렇게 거하게 상을 차린 건 나도 처음 봤네. 어떻게 친해진 건가?”

“친구의 도움을 조금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가··· 그럼 앞으로 종종 헨슨 씨의 술친구가 돼주게.”

“네?”


느닷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자네 같은 주당은 잘 없어서 말이야. 다들 한 번 술자리를 가진 다음엔 슬슬 피하더군.”

“저도 사람입니다. 제 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술을 깨야하니, 의무실에 들르도록하지.”


하나는 의도적으로 내 질문의 답변을 피하며 등을 돌려버렸다.

그래서 이나를 바라봤더니, 그녀 역시 슬쩍 눈을 피했다.


“아니, 답변은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충분한 답을 줬다고 생각하네. 어서 가지.”


하나는 쌩하니 식당을 나섰고, 이나는 그 뒤를 쫓아 자리를 피했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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