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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21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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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디스플레이에서는 정체 모를 괴물들이 날뛰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영상이 비춰졌다.

하나의 영상이 끝나면 바로 다음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도시가 파괴됐으며,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엔 황량한 붉은 모래의 사막이 펼쳐질 뿐이었다.


“이게 뭡니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설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무심할 정도로 잔혹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그게 우리에게 다가올 좋지 않은 미래라는 걸······.”

“침식 때문입니까?”

“네. 우리는 약물로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 결말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젠장, 뭔가 방법이 있을 거 아닙니까! 10년 뒤엔 저렇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 어떻게 삽니까?”


소파의 팔걸이를 내려치며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삐이익!


그때, 갑자기 경고음이 들리며 손가락에 낀 반지가 붉은 빛을 내뿜었다.


“조금 진정하세요. 폭주할 생각이 아니라면요.”


나 역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괴물이 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심호흡을 반복하며 화를 삭였다.

그러자 프리멜라는 서랍을 열어 상자 하나를 더 꺼냈다.


“첫 만남에서 억제구를 바꿔 끼는 사람은 처음이네요.”


질책하는 게 분명한 말에 나는 조금 기분이 상했다.

아니,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은 마당에 힐난까지 당하자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감정을 다스렸다.

한 번 더 억제구를 바꾸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감염자라나는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그가 재침식을 제어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반지를 교환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비협조적이라는 말도 듣지 않았나요?”

“목숨이 달렸는데, 협조적이든 비협조적이든 노력은 해봐야 할 거 아닙니까!”

“······.”


프리멜라는 입을 닫은 채 버튼을 조작했다.

어둡던 방 안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그녀는 말을 고르는 모양인지, 미간을 좁히고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신뢰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건을 내걸었죠.”

“그게 뭡니까?”

“자신을 이긴다면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네요.”

“그럼 당장 때려눕히면 될 것 아닙니까!”

“후우, 그게 쉬운 일이라면 저희도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지는 않겠죠.”


프리멜라는 제 역할을 마친 반지를 다시 상자에 넣고, 소파에 등을 기대며 낙담했다.


“저는 이제껏 하나 언니보다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 언니는 자신이 열 명은 더 있어야 그와 싸워볼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어요.”


그건 하나가 제로를 이기기 위해 도전한 적 있다는 뜻이리라.

결과는 하나의 패배였을 테고.


“연구 쪽 성과는 있습니까?”

“재침식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당장은 힘들다는 결론이 나와서 재침식을 억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해요.”


어느 쪽이나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게 남겨진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으리라.

연구야 아는 게 없으니 도와줄 수 없을 테지만, 실력을 쌓는 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에게 도전할 생각인가요?”


눈을 가린 천을 뚫고 볼 수라도 있는 모양인지, 프리멜라가 질문을 던졌다.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합니까?”

“목적을 가지고 향상심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일이죠.”


어느 쪽도 아닌 애매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만약 내가 제로라는 놈을 이기고 치료법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거금을 받고 아크 측에 팔 수 있을 것이다.

당작 급한 건 아크 쪽 사람들일 테니, 가격도 상당히 후려칠 수도 있으리라.


“이런 상황에서도 잔머리를 굴리는 건 대단하네요.”

“···독심술, 정말 못하는 거 맞습니까?”

“뭐라고 답해도 믿지 않을 거잖아요.”

“그건······.”


어느 쪽이든 의심이 가는 건 마찬가지라,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질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군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그러죠. 아무튼 길드 소속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될 텐데, 의식주는 보장해 주는 겁니까?”

“속물······.”


속으로 생각한 게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왔는지, 프리멜라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노예처럼 부림당하는 건 사절입니다.”

“우릴 뭘로 보는 거예요?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그래요? 당장 머물 곳은 있습니까?”

“사옥 근처에 직원 기숙사를 이용하게 될 겁니다.”

“당장 쓸 수 있는 지원금도 나옵니까?”


선금으로 받은 4억은 추적당하지 않도록 현찰로 받았다.

하지만 그걸 당장 찾으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덩치의 양쪽 팔을 갈아버렸으니 양측에서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고 있을 게 빤했다.

야금야금 모아둔 돈도 인출하자마자 흔적이 남을 테니, 당분간은 무일푼 신세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급여가 나가기 전까지 법인 카드를 줄 겁니다.”


프리멜라는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연봉은 얼마입니까? 수당 같은 것도 있습니까? 보험이야 당연히 들어주겠죠?”

“초봉은 4,800만 원이고, 외주를 받으며 수당도 나갑니다! 그리고 저희는 위험한 일을 하기에 4대 보험은 물론이고, 생명 보험까지 가입해 드립니다. 답변이 됐을까요?”

“물론이죠. 와, 역시 대기업이라 그런지 초봉도 넉넉하군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말끝에 바드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당장 급한 문제들이 사라지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10년 후에 닥칠 일은 아직 남아 있어서 찜찜하다는 게 문제였다.


“궁금한 건 더 없나요?”


프리멜라의 질문은 싸늘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묻고 싶은 게 남았지만, 지금은 턱밑에 겨눠진 칼날을 피해야 할 때였다.


“생각나면 다시 묻겠습니다.”


프리멜라는 답변을 듣자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 나서 찻잔을 깨뜨릴 기세로 세게 내려놨다.


“그럼 따라오세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프리멜라는 쌩하니 방을 나섰다.

나는 그 뒤꽁무니를 쫓았다.

방을 나와 복도를 걷는 프리멜라는 눈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아 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 나서 곧장 카운터에 앉은 여성에게 말을 건넜다.


“이나 씨, 신입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네, 실장님.”


용건을 마친 프리멜라는 몸을 반만 돌려 내쪽을 바라봤다.


“적응 잘 하시길 바랄게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냉기가 풀풀 날려 어떨결에 인사를 건넸지만, 프리멜라는 바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혹시 프리멜라 님을 언짢게 만든 건가요?”


프리멜라가 찬 바람 부는 골자기였다면, 이쪽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이었다.


“아마···도요. 그런데 그건 왜 묻습니까?”

“덕분에 어깨가 결리게 생겼기에 감사해서요.”


눈만 웃고 있는 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확인해야 할 것을 짚었을 뿐이었다.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오세요.”


내가 마땅한 답변을 내놓지 않자, 이를 바득 간 이나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는 거죠?”

“숙소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뒤를 순순히 따라나서,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러자 이나는 1과 45뿐인 버튼 중 1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움직였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았아 1층에 도착했다는 기계음이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나 씨. 뒤에 분은 신입입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문 앞을 지키던 남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출입증을 발급해야 하니, 내일 데리고 찾아뵐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짧게 용건을 건넨 이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은 이나에게 걸었는데, 매번 내가 신입인지 궁금해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내게 말을 걸며 잘 부탁한다고 악수를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미리 대기 중이던 차에 올라타며 이나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다들 친절한 분들이군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저분들이 호의적인 건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짐작하기 때문이죠.”

“그게 무슨 뜻입니까?”

“평상복을 입은 채 길드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등장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침식을 경험했다는 걸 추론하기에 충분하다는 말이에요.”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까?”

“네. 그보다는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시고, 길을 외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죠.”


나도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상대를 귀찮게 하는 취미는 없었다.

나는 이제 막 출발한 차량의 창문 너머로 서울 시내의 풍경을 감상했다.

높다란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거리는 말끔하게 정비돼 있었다.

개발 중인 콜로니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오랜만에 눈 호강을 제대로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대강 10분여가 흘렀을까.

차량은 목적지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내로 진입해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는데, 운전수가 이나에게 말을 건넸다.


“먼저 회사로 돌아갑니까?”

“아니오. 저는 일이 남아서 다시 들어가야 해요. 1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이나는 아무 말 없이 아파트 단지의 사무실로 걸어들어갔다.

나는 따라오라는 말이 없었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 있자 마음먹었다.

그게 정답이었는지, 잠시 후 사무실에서 나온 이나는 내게 카드 두 장을 내밀었다.


“우선은 카드 키를 이용하시고, 틈 날 때 관리 사무소를 방문해서 생체 정보를 입력하세요. 카드의 유효 기간은 한 달이니까, 나중에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연락해 귀찮게 만들지 마시고요.”


나는 이나가 건넨 카드 중 302동 802호라 적힌 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생체 정보를 입력하라는 건 아파트 입구나 호실의 문까지 사용자를 인식해 자동으로 개폐된다는 뜻이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그건 법인 카드인데, 한도는 400만 원입니다. 부디 아껴 쓰세요. 그리고 미리 경고하는데, 최소한의 생활비는 남겨두세요. 그리고 절대 공짜 아니라, 당신 월급에서 세 달 동안 할부로 갚아야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에엑, 그런 말은 없었는데! 날 속인 겁니까?”


프리멜라는 급여가 나오기 전까지 법인 카드를 줄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생긴 조항이라는 걸 부디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이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째려보며 으르렁거리듯 말을 읊조렸다.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더 알아야 할 게 있을까요?”

“출근은 아홉 시까지고, 복장은 옷장을 열어 보시면 제복이 들어 있을 겁니다. 회사에 도착하시면 안내 쪽에 신입이라는 걸 밝히고 제 이름을 말해주세요.”


말을 마친 이나는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나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바라보다가 등 뒤로 보이는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안은 어떠려나?”


솔직히 초호화 호텔의 스위트룸 정도는 아니더라도 깔끔하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콜로니의 허름한 숙소를 전전하던 내게 기숙사 건물에 바라는 건 청결, 그 한 가지 뿐이었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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