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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24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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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하나와 이나의 안내로 의무실에 들른 나는 각성 마법 덕분에 정신이 말짱해졌다.

하지만 몸에 들이부은 알코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 더부룩한 속까지 진정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잠깐 화장실에 들러 억지로 술을 토해냈다.

그러자 한결 속이 편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끔찍한 입냄새 때문에 몇 번이고 입을 행궈야만 했다.

문제는 속을 비워내고 나니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뭔가 해장이 될 만한 걸 입속으로 우겨 넣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나의 말에 곧장 하나의 사무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자 하나는 커피 대신 숙취 해소 음료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취향이 독특하다고 들었는데, 음료 목록 중에 이런 것도 있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쓰린 속을 달래는 일이라,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 뒤 바로 음료를 마셨다.


“이제 이걸 작성해 주세요.”


다 마신 병의 뚜껑을 닫는데, 이나가 제법 두툼해 보이는 서류 다발을 내밀었다.

제일 위에 보이는 건 근로계약서라 적혀 있었고, 그걸 슬쩍 들어 아래 놓인 서류들을 살펴 보니 보험 가입 동의서 등의 골치 아파 보이는 것들이 대기 중이었다.


“제가 직접 작성해야 하는 부분만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걸 언제 다 읽어 봅니까?”


솔직히 가장 중요한 부분인 연봉을 들었으니,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인만 하고 금방 끝내고 싶었다.


“신중하게 다 읽으면서 작성해 주세요.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시고요.”

“계약서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신 분들이 종종 찾아와서 절 귀찮게 하시거든요. 그게 유 씨라면 최악이겠네요.”


이나는 싱긋 웃으며 조곤조곤 말을 건넸지만, 내 직감은 조심하지 않으면 큰 곤혹을 치르게 될 거라며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장의 번거로움이 더 싫었다.

나는 천천히 근로계약서를 읽는 척하며 서류의 공란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마지막 장에 이름과 사인을 마친 나는 바로 다음 서류를 집어 들려 했다.

그때, 이나가 오른손을 뻗어 근로계약서를 지긋이 눌러 내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잠시만요. 확실하게 숙지하셨다고 확신하시나요?”

“어느 정도는요.”


애초에 깨알 같은 글씨로 세 장이나 되는 문서의 내용을 전부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니 대충 둘러대면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럼 몇 가지 중요한 항목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근로계약서 상에 퇴사 항목이 있나요?”


항목이라니, 그런 걸 질문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확률은 반반이었다.


“네.”

“그럼, 퇴사 시 유의 사항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항목이 있는 것도 모랐는데, 그 아래 적힌 내용이 뭔지 알 리가 없었다.


“글···쎄요.”


이나는 내 대답이 나오자마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근로계약서에 퇴사란 항목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제대로 정독하세요.”

“꼭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네. 구직자의 마땅한 소양이니까요.”

“···설마 오전의 일을 앙갚음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유감이네요.”


이나가 말을 마치는 그 찰나의 순간, 그녀의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건 보복이 확실했다.

자신의 상사가 히스테리를 부리니까, 그 원흉에게 응징을 가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가 감정적이라고 해서 이쪽까지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계약서는 두 부를 작성해 하나는 제가 보관하는 거 아닙니까? 집에 가서 천천히 살펴볼 테니,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시죠.”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약서를 분실했다고 찾아오신 분이 없었을까요?”

“저는······.”

“그럴 일이 없다고 호언장담하신 분도 많았어요.”


다 설득력 있는 말이라, 뭐라 대꾸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원칙적으로 내가 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싸우자며 시비를 걸어오는 걸 방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걸 들이받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불쑥 하나가 끼어들었다.


“이나, 야근 때문에 일정이 미뤄져 화가 나는 건 알겠네만 그럴수록 손해를 보는 건 본인이네. 그리고 유, 자네도 잘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나?”


하긴, 출근 첫날부터 술판을 벌인 게 잘한 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직장 동료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면 더더욱.


“최대한 세심하게 살피며 작성하겠습니다.”

“저도 오늘은 참을게요.”


꿈틀.

‘오늘은’이란 말이 내일은 다르다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한바탕 하겠다는 게 분명했다.

이마에 힘줄이 툭 불거지는 게 느껴질 정도지만, 일단은 참았다.

길드장이 중재에 나섰는데, 그걸 무시하고 날 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나는 다시 근로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었고, 그 뒤로 작성한 서류들의 내용도 최대한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은 아니겠지만, 이나는 내가 미처 작성하지 않은 공란이 있지는 않은지만 점검하고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류를 정리해 일어난 이나는 하나에게 허리를 살짝 굽힌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하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네 같은 신입은 처음이군. 이렇게까지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은 없을 거네.”

“영감님과의 일은 절대 자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걸 제외하더라도 말이야. 프리멜라는 자네 때문에 능력을 과용하다 앓아 누웠고, 비서실 업무가 마비되면서 내 일거리도 배는 늘었네.”

“죄송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푸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헨슨 씨도 손을 놓는 바람에 공방 업무에 차질이 생겼고, 공방의 다른 직원들은 우리도 반주 정도는 하게 해달라며 때를 쓰질 않나······.”


이게 그 유명한 나비 효과인가.

나는 그저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이런저런 사고가 발생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하겠네.”

“물론입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나도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 뻗어야겠다 생각하는데,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더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용건이 없었다면, 자네를 이리로 데려오지도 않았네.”


하나는 헨슨의 일로 상황을 정리하려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게 따로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뿐이라면 길드장의 사무실이 아니라 비서실로 향했으리라.


“경청하겠습니다.”

“일단 이걸 읽어 보게.”


하나는 왼쪽 서랍에서 갈색 종이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그 안에는 사진 몇 장과 서류가 들어 있었다.

나는 사진을 집어 드는 순간, 바로 하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뭡니까?”


사진은 온몸이 불에 탄 것처럼 보이는 어린 아이의 시신 한 구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그 시신이 바라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는 사실이었다.


“보는 그대로 침식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 담긴 사진이네.”


원하는 답변을 들은 나는 지체없이 서류를 꺼내 살펴봤다.

의뢰서의 형식을 띤 문서는 세계 인권 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발신된 것이고, 이를 대한민국 정부가 케인 길드에 발송한 것이었다.

의뢰 내용은 중국의 콜로니에서 진행 중인 침식에 대한 불법 연구를 중단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중국의 한 콜로니에서 침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정황을 포착했고, 이를 추적하려 했으나 중국 정부의 항의로 조사단이 콜로니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에 위원회는 케인 길드에 콜로니 조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의뢰서를 꼼꼼이 읽은 나는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침식에 대한 연구가 불법이었습니까? 그럼 아크의 연구소나 케인 길드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건 걱정 말게. 세계 연합에서 규정하는 불법 행위는 침식을 연구해 무기를 만들거나, 능력자를 양산하는 것이네. 침식에 대한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소는 제재 대상이 아니네. 케인 길드 역시 침식으로 능력자를 만들어 낸 적이 없으니 상관없고.”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또다시 범죄와 연루돼 삶이 망가지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서류는 어째서 대한민국 정부를 한 번 거쳐서 들어온 겁니까?”

“세계 연합 부서인 인권 위원회가 직접 의뢰를 건네면 중국 정부와 대결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하는 식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네.”

“결과는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중국 정부의 항의에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의 콜로니를 점검하다가 중극 측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할 수 있게 되고, 세계 연합도 일상적인 협력 연락이었다고 발뺌할 여지가 생기네.”


즉, 정치적 논리가 들어가다보니 과정이 복잡해졌을 뿐이라는 말이었다.


“그걸 중국 측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문제 없는 겁니까?”

“서로가 다 알면서 말하지 못한다는 게 정답이겠지.”


하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측 다 법의 빈틈이나 제도의 부실함을 이용하는 작자들이야. 그동안 사용해온 꼼수가 공개되면 논란이 불거지며 서로 피해를 입을 게 빤하다는 말이네.”


내가 가만히 앉아서 고심하자 하나가 먼저 나서서 정답을 알려줬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니 절로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물론, 이번 조사에서 중국 측의 불법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골치가 아파질 수 있네. 일방적인 중국 정부의 거센 공격을 묵묵히 받아내야 하니까. 하지만 세계 연합이나 대한민국 정부가 나섰다는 건 그걸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확신이 있다는 뜻이네.”

“이런 의뢰는 거절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평범한 길드라면 이런 의뢰가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

“그럼 케인 길드는 평범하지 않다는 뜻입니까?”


내 질문이 이상했을까.

하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를 응시했다.


“자넨 스스로 평범하다 생각하나?”


그 질문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른팔로 향했다.


“우리 길드의 전투직 인원들 중 50%는 침식으로 인해 능력이 생긴 사람들이네. 그리고 비전투 직종까지 더하면 길드 내에 침식을 겪은 인원은 40%가 넘네.”

“가히 침식자의 낙원이군요.”

“처음 길드를 창립할 때는 반발이 심했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괴물들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는 심정은 나도 이해하네. 하지만 나나 동료들은 실험실의 표본이 되고 싶지 않았고, 돈으로 정부와 여론의 지지를 샀네.”

“정부와 얽힌 일이 있어서 거부할 수 없다는 겁니까?”


하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걸 제게 보여주셨다는 건······.”

“일손이 부족해 길드장과 신입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뜻이지.”


하나는 낙담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희가 해야할 일이 정확히 뭡니까?”

“글쎄··· 세계 연합에서 원하는 건 중국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증거겠지.”


중국 정부는 항의하고 나선 것 자체가 실수리라.

그로 인해 침식에 대한 연구가 중국 정부의 묵인 혹은 지원 아래 수행되고 있다는 걸 시인한 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것을 얻어내려면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세계 연합은 뒤에서 팔짱 끼고 우리가 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터였다.


“그것참, 대단히 보신주의적이네요.”


신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리라.


“그래서··· 이거 얼마짜리 의뢰입니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다.

내게 일을 두 팔 벌려 반길 수 있는 조건은 언제나 단 하나, 돈이었다.

근로계약서에는 의뢰금의 0.01%를 수당으로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물론, 양자간 합으로 수당을 조정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하나는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문을 열었다.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수당을 챙겨 주겠네.”

“그게 얼마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소비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건 경리부의 산정이 나오기 전까지 나도 알 수 없네.”


수당을 책정하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드장이 말을 아낀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의뢰가 무보수거나, 보수액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공짜입니까, 후불입니까?”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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