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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22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1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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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지독한 악몽이길 바랐다.

가까워 보이는 길일수록 멀리 돌아가게 된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어째서 기억하지 못한 것일까.

그런 후회를 남긴 채 주마등처럼 흘러가던 꿈이 멈추고, 싸늘한 한기가 몸을 감싸는 감각에 힘겹게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망칠 구멍이 막혀서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장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보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잖아요.”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호언장담도 들은 걸로 기억하네.”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보스는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해 계획을 수립해야 된다고.”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한 벽지가 보이는 숙소의 천장이 보이길 바랐으나, 눈에 비치는 건 콘크리트 기둥 내부의 부식된 철골이 드러난 어두컴컴한 흉가였다.

젠장,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닥에서 전해지는 싸늘함에 정신은 이미 말짱해진지 오래였다.

나는 당장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의 감시를 벗어나 달아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봤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계획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도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장소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불빛 덕분에 슬쩍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기를 잠시, 나는 이곳이 콜로니가 개발되며 방치된 구주거지임에 틀림 없다고 결론 내렸다.

콜로니의 개발은 최초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맡지만, 그 후로는 기업이나 중앙 정부의 투자로 폭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덕분에 신도심 쪽으로 인구 이동이 일어나며 정착민들의 주거지는 빠르게 비워져, 구주거지는 폐허로 남겨지거나 슬럼가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아직 나아게도 희망은 남아 있는 셈이었다.

구주거지는 도로도 복잡하거니와 작은 골목도 곳곳에 있어 막다른 길로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두 사람의 추적을 뿌리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유 군, 정신을 차렸다면 쥐새끼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릴 게 아니라 일어나 앉게.”


계획을 수립한 뒤, 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하나가 싸늘한 말투로 경고를 날렸다.

그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돈을 회수하고 죽일 작정일 게 빤한데 지시에 따를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바닥에 누워 있으면 춥지 않아요?”

“남이사 춥든 덥든 무슨 상관입니까?”

“나중에 감기 걸렸다고 투덜대지 말고, 앉아서 불이라도 쬐는 게 나을 텐데요.”


그제야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곧 죽을 목숨인데, 감기가 대수입니까?”

“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보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돈만 돌려받을 생각이었다면 날 대려올 필요가 없잖습니까.”

“으음, 뭔가 오해가 쌓인 것 같네요.”

“오해? 오해라고 했습니까!”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너무 무신경하게 가벼운 말투라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하나는 보스와 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박유 군, 불합리한 상황에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차근차근 설명을 듣고 나면 오해도 풀릴 테니, 일단 진정하게.”

“지금 진정하게 생겼······.”

“강제로 진정당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네.”


싸늘하게 번뜩이는 눈빛의 강렬함 앞에 나는 백기를 들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한 방에 제압되는 것은 물론, 그녀의 손속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느껴봤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하나 더 추가되는 건 사양이었다.


“좋아. 설명을 듣기에 어울리는 태도로군.”

“어딜 봐서······.”

“그럼 이제 제대로 된 설명을 하면 되는 건가요?”


보스는 기회는 이때다는 듯 싱긋 웃으며 나섰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보스는 계속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좋겠네.”

“하지만 제가 대표인데······.”

“그게 싫다면, 나는 내 식대로 복귀하겠네.”

“그건 조금 문제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애매한 답변에 하나는 빙글 몸을 돌리더니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알겠어요!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지위가 반전되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소개부터 하지. 유하나네. 그냥 하나라고 부르게.”

“아, 네. 박유입니다. 그냥 이름만 불러주세요.”


나는 소개를 받으며 주의사항을 덧붙였다.

그러자 하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잠시 후 나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내 상사인 아지다. 나는 그냥 보스라고 부른다.”

“만나서 반가워요, 유. 그냥 박사님이라고 부르면 되요.”


그녀는 눈은 웃고 있는데 오른쪽 입꼬리만 올라간 싸늘한 표정으로 경고해 왔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강’이나 ‘송’ 씨를 떠올렸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당장의 문제만 해결되면 더 볼 이들이 아니기에 아무래도 좋았다.


“네, 보스. 그래서 정체가 뭡니까?”

“저는 분명 박사님이라는 호칭을 부탁했는데요.”

“누구는 박사, 누구는 보스라고 부르면 혼동이 생길 수 있으니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단호한 태도에 보스는 하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건 호칭을 어떻게 통일하느냐가 아니었다.

일단 두 사람은 정부에 속한 기관의 요원은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문제는 일을 맡긴 조직 측의 사람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제3자의 정체를 추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받게, 일이 좀 꼬여서 건네주는 게 늦었군.”


하나는 자신의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아크(Ark)?”

“들어본 적은 있을 거네. 꽤나 거대한 기업체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 대단한 기업에서 사람을 납치한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렇겠지. 믿든 안 믿든 그건 자네 자유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를 납치한 이유는 뭡니까?”


질문이 던져졌음에도 하나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시선이 내 오른쪽 팔에 가서 멈췄다.


“신약 개발을 테스트할 실험체라도 필요했습니까?”


하나가 내 팔에 약물을 주입한 뒤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절단해야 할 지경이던 팔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땡! 안타깝게도 틀렸어요.”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보스가 신이 나 외쳤다.

그러고 나서 해일이 밀어닥치듯 말이 이어졌다.


“당신에게 주입한 액상은 XD706이예요. 제가 개발했고, 이미 임상 시험까지 마친 안전한 약품이죠. 그러니 실험체는 필요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침식을 당하고도 죽지 않은 특별 개체인 박유, 당신이 필요했어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일반적으로 침식을 견디고 살아날 확률은 30억 조 분의 1이고······.”


듣는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지도 않는 보스는 쉬지 않고 말을 꺼냈다.

그게 1분이 지나 5분 정도가 됐을까, 이제 됐다는 듯 하나가 나서서 보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 됐네. 보스는 복귀할 방법을 구상해 줬으면 하는데.”

“하지만 아직 설명이······.”

“그건 다음에 마저 하는 게 좋겠네.”


보스는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부풀리며 항의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 하나의 태도에 입맛을 다시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대충 알아 들었나?”

“네, 아주 대충이요. 당신들이 날 죽일 생각이 아니라는 것 정도?”

“그 사실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니 다행이네.”

“그럼 이 사단이 벌어진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자네는 차량 폭파 사고라고 했나?”

“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내가 답변을 건네지 못하자, 그녀는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을 덧붙였다.


“자네의 팔이 침식된 이유가 차량 폭파 사고라고 들었는데?”

“아, 그렇죠. 그런데 침식은 뭡니까? 제 팔은 불에 탄 게 아닙니까?”

“폭발 때문에 팔이 그렇게 변했다면, 자네는 즉사했을 거네.”


확실히 정신을 잃기 전에 열풍이 불어닥쳤지만, 그렇게 위협적인 열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폭발에 함께 휘말린 경찰은 순직했지만, 나는 이렇게 멀쩡한 것 역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네가 운반한 건 레드 더스트네.”

“네? 그건 방사능 물질보다 더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취급에 따라 그렇기도 하다만, 그보다는 침식이 뭔지 궁금할 테지?”

“그렇습니다.”

“침식은 레드 더스트가 신체 내부에 유입돼 벌어지는 현상이고, 검게 타버린 듯한 흉터가 남는다는 건 레드 더스트가 신체 내부의 마나를 고갈시키는 중이라는 의미지.”


하나는 설명을 이어 나가며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린 안대를 풀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왼쪽 안구는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정도로 크게 회손된 상태였다.

칼로 베인 것으로 보이는 흉터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흉터는 살아있는 것처럼 은은한 붉은 빛을 내뿜으며 번들거렸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수류탄 파편이 눈에 박혔는데, 그 흉터를 통해 레드 더스트가 체내로 유입됐네. 적은 양이지만, 아주 치명적이었지.”

“그럼 하나 씨도 그 정체 모를 액체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겁니까?”

“정체 모를 게 아니라, XD706이라고요!”


자신의 업적이 폄하되는 게 못마땅한지 보스가 빽하고 소리쳤다.


“네, 네. 그래서 제게 바라는 게 뭡니까? 목숨 값이라도 드릴까요?”

“돈은 됐어요. 농담 한 번 한 것 가지고 되게 우려먹네요.”


나는 두 사람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그건 좀 어렵네.”


하나는 다시 한 번 눈을 부라리며 보스에게 경고를 날리고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아왔다.

그러자 보스는 혀를 내밀어 보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인지 단순히 더 나이를 먹은 어른의 여유인지, 하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시 안대로 눈을 가렸다.


“자네가 침식을 견디고 살아남았지만, 목숨을 연장한 것이지 죽음의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이유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숨긴 건 없네. 설명한 그대로야.”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가만히 오른팔로 시선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하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당장은 침식을 멈췄지만, 침식은 다시 진행될 거야.”

“침식이 다시 진행돼 사망한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이네.”

“그걸 막을 방법은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없네. 약물로 멈춘 침식은 내성이 생긴 다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서 같은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어.”


그야말로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죽는다는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내성이 생기는 건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리니까.”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하나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10년,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살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엔 10년은 너무 부족했다.

나는 정신줄을 단단히 붙들어 메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겁니까?”

“그걸 멈춘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네.”

“그게 누굽니까?”

“제로, 최초의 감염자.”

“그 사람은 살아있습니까?”

“재침식을 제어한 남자가 죽었을 리가 없지. 문제는 그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는 점이네.”

“아주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군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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