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23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21 07:00
조회
16
추천
0
글자
13쪽

9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그런 게 건물 안에 있습니까?”


콜로니에서 보던 공방들은 하나같이 거대하고, 짠 것처럼 시끄러웠다.

그런데 이런 시내 한복판에 공방이 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런 건물 안에 존재한다는 건 우스갯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네. 어서 오세요.”


이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13층 버튼을 눌렀다.

그걸 지켜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14층부터 16층까지는 아예 버튼이 없었다.

설마 정말 공방이 건물 안에 들어 있는 걸까.

애써 사실을 부정하려던 나는 14층의 문이 열리는 순간,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높다란 천장에 매달려 움직이는 용광로에서 뿜어지는 엄청난 열기와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열정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나저나 이 엄청난 열기와 소음은 어떻게 차단한 걸까.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따라오세요.”


이나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서 엄청난 광경에 넋이 나간 나를 불러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라 걷기를 잠시, 공방의 구석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어라?”


그런데 사무실의 문을 닫자마자, 살벌한 열기와 귀 따갑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불가사의한 현상의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하는데, 사무실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안녕하세요, 헨슨 씨. 오늘 신입을 데려오겠다던 이나입니다.”

“아, 이나 양. 기다리고 있었네. 이쪽으로 오게.”


이나가 인사를 마치자, 사무실 안쪽의 책상 위로 손 하나가 쑥 올라와 손짓하는 게 보였다.


“당신도 같이 가는 거예요.”


나는 용무가 없으려니 싶어 열기와 소음이 차단된 원인을 분석하려 했으나, 이나가 내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우리 둘은 손이 올라온 책상으로 다가갔다.


“이놈이 그놈인가?”

“네, 그놈이 이놈입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 건 중년을 지나 노년기를 맞이하는 듯, 길게 자란 갈색 수염에 흰색이 두드러져 보이는 드워프였다.

그런데 드워프와 이나는 이상한 말을 주고받았다.

뭔가 두 사람만 아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놈이 지칭하는 대상은 나로 보였기에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도질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이 지칭하는 놈이 제가 맞습니까?”

“네. 그럼 실장님을 화나게 만든 사람이 따로 더 있을까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이나의 날선 답변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항변할 수밖에.


“근무 조건을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죠! 듣자하니 연봉에 수당에 보험까지 물었다면서요?”

“그거야 구직자로서 마땅한 일이죠.”

“좋습니다. 그 마땅한 일, 얼마나 잘 하시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나는 두고보라는 듯 으르렁거리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푸하하하,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물건 하나 들어온 모양이군. 만나서 반갑네, 나는 헨슨이네.”

“네, 저도 명인 분을 만나 영광입니다. 저는 박유입니다. 그냥 유라고 불르시면 됩니다.”


내 인사에 헨슨은 의외라는 듯 오른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자네, 형제들 중 한 명을 만난 적 있나?”

“네. 헨슨 님께서 보시기에 빌빌거릴 것처럼 보여도 공사판을 전전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구먼. 나는 붉은 모루 망치 출신이네만, 자네가 만난 형제는 어디 출신인가?”


드워프들은 깐깐한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동족과 동족의 지인에 대해서는 경계를 풀고 다가오는 습성이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건 공사판을 전전하다 만난 한 드워프와 술 친구가 된 덕분이었다.

그는 일생의 낙이라며 술 내기하는 걸 좋아했는데, 수십 차례에 걸쳐 내 지갑을 턴 게 미안했는지 형제들을 만났을 때 자신의 이름을 대는 걸 허락해 줬다.


“레펜의 용광로 출신인 드웬입니다.”

“레펜이라··· 아, 그 레펜인가? 그쪽은 좋은 철을 뽑아내는 걸로 유명한 부족이야.”


드워프들의 네트워크는 의외로 끈끈해서 시골 구석에 처박힌 부족의 이름까지도 기억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드웬 가문이라면 멋진 건물을 만드는 걸로도 유명하지.”


헨슨은 동족의 이야기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나는 의아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드웬은 그 분의 이름이 아닙니까?”


내 질문에 헨슨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헨슨은 가문의 이름이지, 내 이름이 아니네.”

“그럼······.”

“드워프들의 전통이야. 내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건 내 아내뿐이니 포기하게.”


새로운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옆에서 듣던 이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꺼냈다.


“그럼 인명부를 다시 작성해 주셔야죠. 저는 헨슨이 가문 이름이라는 건 처음 듣는다구요.”

“에잉, 자네가 내 마누라라도 되는가? 그건 그냥 포기해. 바깥에 있는 젊은 놈들을 붙잡고 이름이 뭐냐고 물을 생각도 말고.”


헨슨은 귀찮은 일이 생길까 싶어 이나의 이견을 일축시켰다.


“헨슨 씨가 뭐라 하셔도 저는 보고를 올릴 거예요.”

“그건 마음대로 하게. 그걸 자네 상관이 몰라서 가만 뒀겠나?”


헨슨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이나는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굳었다.


“자넨 이거나 가져다 줘. 이놈은 측정이 끝나면 보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나는 헨슨이 고이 접어 건넨 얇은 천을 두 손으로 받았다.

그런데 그건 어디서 본듯한 물건이었다.


“어? 이건 프리멜라 씨의······.”


확실하지 않아 작게 중얼거리는데, 이나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며 따끔한 눈빛이 나를 찔렀다.


“네. 누구 씨 덕분에 수리를 맏기게 됐네요.”

“저 때문입니까?”

“그럼 당신 말고 누가 더 있겠어요.”

“자자, 풋내 나는 사랑 싸움은 나중에 하고. 유, 자네는 이쪽으로 따라오게.”


이견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헨슨은 박수를 치며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이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빽 내질렀다.


“누가 이런 남자랑 사랑 싸움을 해요!”


이나는 멀뚱히 서 있는 나를 한 번 흘겨보더니 냉큼 사무실을 나섰다.


“흘흘흘, 한창 혈기 왕성할 때로군.”

“거기에 저도 포함되는 겁니까?”


초면에 실례지만, 절로 표정이 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쪽도 내게 관심이 없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헛소리는 됐고. 날 따라오게.”


헨슨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사무실 뒤쪽으로 난 문으로 들어섰는데, 그 안은 방호복이 잔뜩 걸린 탈의실이었다.

그릭 그 너머로는 밀폐된 실험실처럼 생긴 공간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헨슨은 바로 방호복 중 하나를 옷걸이에서 꺼내 몸에 걸쳤다.


“자네는 저쪽 문으로 들어가게.”

“네? 저는 그걸 입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내 질문에 헨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넨 이레귤러이지 않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침식으로 능력을 얻은 자들을 통칭하는 말이지.”

“그것과 제가 맨몸으로 저 안에 들어가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푸하하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헨슨이 박장대소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제 질문의 어떤 부분이 헨슨 님을 즐겁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만······.”

“나는 이제껏 이레귤러들이 자신의 힘에 상처입는 모습을 본 적이 없네. 그걸 자네가 몸소 보여준다면 새로운 역사가 쓰이겠구먼.”


저 안에서 하나가 보여준 괴물 같은 힘을 쓰면 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흑역사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네. 아참, 반지는 벗고 들어가게. 그걸 만드는 것도 일이라 말이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뺐다.

그러고 나서 얼른 실험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에 들어섰다.

그러자 방호복을 다 입은 헨슨이 창문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표적을 내려줄 테니,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힘을 발현해 보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힘을 어떻게 발현해야 되는 겁니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겠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내가 해본 거라곤 하나가 갑자기 휘드른 쇠 파이프를 막기 위해 팔을 들어올렸을 때뿐이었다.

그 행동에서 쇠 파이프를 붉은 모래로 바꿔버리겠다는 의지는 손톱만큼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으음······.”


나는 멀찍이 내려온 널따란 철판을 노려봤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헨슨의 충고대로 눈을 감고 오른팔을 앞으로 내민 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 봤다.

손안에 소용돌이치는 붉은 기운, 딱 하나가 보여준 그대로였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하자 손끝을 불로 지진 것처럼 조금 화끈거렸다.


[잘하고 있네. 능력이 발현됐구먼.]


눈을 뜨고 손안을 확인하니, 붉게 반짝이는 작은 입자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수치는 안정적이긴 한데, 이미지를 제대로 떠올린 게 맞나? 측정되는 기운의 양이 너무 적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지를 조금 더 강화해 보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낸다는 느낌으로 해봐.]


제대로 된 조언은 아니지만, 나는 손 안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떠올리며 팔 전체에서 손끝으로 힘을 밀어넣듯 손가락을 조였다.

그러자 붉은 입자의 양은 확실히 늘어났는데, 소용돌이는 여전히 느긋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자네가 떠올린 건 하나 양의 방식 같은데?]


드워프답게 눈썰미가 좋은 모양인지, 헨슨은 한눈에 내가 누구를 따라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건 변환계의 이레귤러들이 힘을 다루는 방식이야. 그런데 그게 자네와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라서 맥없이 움직이는 거야.]

“혹시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힘을 다루는 방식이라든지 어떤 계열들이 있는지 말입니다.”

[이쪽은 연구가 활발한 분야가 아니라 자네가 원하는 것처럼 딱 구분지어 말해줄 수는 없네. 하지만 대신 내 기준으로 분류한 걸 들려주겠네.]

“감사합니다.”


헨슨은 잠시 말을 끊은 채 눈을 굴렸다.

그 스스로 분류한 걸 말하기 앞서 점검하는 듯싶었다.


[일단 하나 양의 방식 말인데, 내 식대로 말하면 그건 변환계야. 자신의 기운을 투사해 상대방이 가진 마나의 성질을 변환시키는 거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로인해 발생할 결과만큼은 선뜻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양팔이 순식간에 사라진 덩치가 피를 내뿜는 것이었다.


“대충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대충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드워프 사전에 대충은 없네.]


나는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잔소리와 더불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30분 동안 듣게 됐다.

덕분에 변환계의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철판 앞으로 다가가 모서리 부분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러고 나서 한순간 손가락에 힘을 주듯 기운을 뽑아내 철판을 향하게 만들었다.

손끝이 화끈한 감각과 함께 철판의 모서리 부분엔 거칠게 물어뜬은 듯한 날카로운 흉터가 세계졌다.

발 아래로 붉은 모래가 떨어져 내리는 건 덤이었다.

나는 해냈다는 희열을 느끼며, 양손을 꽉 말아쥐었다.

내 몸은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생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나의 최소치도 간신히 충족한 불편한 몸뚱아리였다.

검사관들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굉장한 불운이라며, 마법을 배울 생각도 하지 말라는 충고를 건넸다.

어차피 마나를 느끼지도 못하는 마당에 마나를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련을 한다고 나아지지도 않겠지만, 그들은 그 작은 충격에도 신체의 균형이 흐트러지며 사망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음, 교육한 보람이 있군. 역시 내가 세운 이론은 정확하단 말이지. 연구실 놈들도 내 말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면 좋겠는데 말이지······.]


처음으로 인외지경의 힘을 다뤘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나는 헨슨의 자부심이 잔뜩 담긴 자화자찬을 들어야만 했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드 스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중단하겠습니다. 20.03.03 24 0 -
20 19 20.03.02 12 0 12쪽
19 18 20.03.01 12 0 11쪽
18 17 20.02.29 12 0 12쪽
17 16 20.02.28 15 0 11쪽
16 15 20.02.27 20 0 12쪽
15 14 20.02.26 15 0 11쪽
14 13 20.02.25 15 0 12쪽
13 12 20.02.24 17 0 13쪽
12 11 20.02.23 17 0 12쪽
11 10 20.02.22 14 0 12쪽
» 9 20.02.21 17 0 13쪽
9 8 20.02.20 16 0 12쪽
8 7 20.02.20 17 0 12쪽
7 6 20.02.19 20 0 13쪽
6 5 20.02.17 23 0 12쪽
5 4 20.02.15 38 0 12쪽
4 3 20.02.14 58 0 12쪽
3 2. 20.02.13 89 1 12쪽
2 1 20.02.13 126 1 11쪽
1 프롤로그 20.02.13 170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