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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13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28 11: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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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6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일단 고의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변명처럼 들릴 게 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나도 고의였다면 좋을 텐데 말이네. 그럼 마음 편히 자네를 나무랄 수 있을 테니까.]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한 모양인지, 28층에서 헤어지면서 듣던 것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후우, 일단 조금만 더 기다리게. 실험실 외부로 레드 더스트가 유출된 건 아닌지 측정하는 중이네.]

“알겠습니다.”


하나의 말에 슬쩍 구멍이 뚤린 벽쪽을 바라봤다.

아직 거대한 송곳이 꼽혀 있어서 벽을 뚫고 나간 것까지 보이진 않지만, 반 넘게 파묻힌 걸 보면 외벽을 뚫고 나간 게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대화가 끝나고, 대충 30여 분이 지났을까.

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격폐벽이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자 헨슨이 입던 방호복을 걸친 사람들이 실험실 내부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물론, 그들 중엔 헨슨도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정장 차림의 하나도 내 앞으로 걸어왔다.

팔짱을 끼고 선 하나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설명해 보게.”

“아우즈의 설명에 따르면, 제 기운의 변질률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고 합니다.”

“뭐? 그게 어느 정도인가?”


이제 막 설명을 시작했는데, 방호복을 입은 헨슨이 하나를 살짝 밀치며 끼어들었다.


“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다섯 배 정도였습니다.”


순간, 헨슨의 눈동자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게 정말인가? 아우즈, 상세 수치를 보고하라.”

[사용자 정보의 공개 요청은 권한자만 가능합니다.]

“마스터 ID 헨슨, 패스워드는 술잔을 부딪쳐라.”

[인증되었습니다. 질문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헨슨은 질문을 꺼내지 전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변질률이 얼마나 나온 건가?”

[1 : 14.215입니다.]

“허, 이게 무슨··· 아우즈, 자가 검토 프로그렘을 시행하라.”


헨슨은 너무 높은 수치가 AI의 오류를 바탕으로 측정된 것이라 추측한 듯싶었다.


[자가 검토 완료.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초짜가 프로토 타입으로 이 정도라고? 젠장, 당장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군.”


아우즈의 답변에 헨슨은 흥분한 듯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자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하나가 끼어들어 말을 꺼냈다.


“아무튼 별일은 아니라는 말이군.”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닌가? 내 실력을 뽐낼 거물이 나타났는데.”

“그 말씀은 그동안은 전력을 다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는 헨슨의 말이 의외라는 듯 한쪽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헹, 내가 미쳤나? 난 겉멋만 든 놈들에게 작품을 내어줄 생각은 없네.”

“그놈들 속에 저도 포함되는 겁니까?”

“자네나 프리멜라 양은 제외니 안심하게.”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이군요.”


이미 예상한 답변인지, 하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걸 이제야 알았나?”

“아닙니다. 그럼 다른 문제는 없는 겁니까?”


사건의 개요를 파악한 하나는 다시 업무 전선으로 복귀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뭐, 일단은··· 자네가 신경 쓸 일은 남아 있지 않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시 찾아올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십시오.”


헨슨은 귀찮다는 듯 대답 대신 대충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하나가 살벌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유 군, 자네도 부디 조심해 줬으면 좋겠군.”

“명심하겠습니다.”


순간 몸이 움찔하며 얼어붙었지만, 간신히 답변을 내놓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분위기가 엄했다면 경례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하나의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가 군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요즘엔 콜로니 정책에 따라 여성도 징집 대상이 되기도 하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어때? 바로 고칠 수 있겠나?”


잠깐 멍 때리고 있는 사이, 헨슨은 내부 수리를 위해 들이닥친 공방의 기술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임시 변통 정도는 가능한데, 이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오늘은 그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에잉, 그럼 수리는 언제 끝나는 게야?”

“내일까지 끝내 보겠습니다.”

“뭐? 내일?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거야?”


헨슨의 표정이 사나워지며 언성이 높아지자, 그의 앞에 서 있던 드워프 기술자는 어깨를 좁히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게··· 오늘 자제를 신청하면 아무리 빨라도 내일 오전에 도착할 테고, 도착하자마자 작업을 진행해도 오후 다섯 시까지는 생각하셔야······.”

“에잉, 글러먹은 놈들··· 네놈들이 드레곤 주둥아리 앞에서도 그 따위 말을 지껄일 수 있었다면, 여기 있겠어? 철야를 해서라도 내일 오전이 지나기 전에 끝내!”


헨슨은 발을 쾅쾅 구르며 드워프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답!”

“알겠습니다, 스승님.”


헨슨은 등을 돌려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여전히 드워프 기술자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서로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속삭이듯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한 듯 다같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몰아붙이신 거 아닙니까?”


나는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헨슨은 코웃음을 치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너무 나태하기에 한소리 할 참이었으니, 신경 쓰지 말게.”


실험실을 나와 사무실에 도착한 헨슨은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서랍을 열어 사절지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자네는 이만 철호 동생에게 돌아가보게.”

“갈 땐 가더라도 점심은 먹고 갈 참입니다. 영감님도 아직 식전이시라면 같이 가시죠.”


너무 힘들어서 먹은 걸 토해내는 건 아닐지 걱정이지만, 공복에 쥐어짜내지는 것보단 속이라도 든든한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겸사겸사 점심 식사를 하느라 좀 늦었다고 핑계를 대고 시간도 끌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대로 술판으로 이어져 오후 훈련을 빼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헨슨은 머릿속에 떠오른 뭔가를 사절지 위에 옮기기 바빴다.


“나는 급한 일을 처리할 테니, 자네 혼자 먹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반지를 다시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벗은 억제구를 찾자, 헨슨은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반지? 그건 왜 찾나? 그보다 좋은 걸 받지 않았나.”

“이건 시제품이니까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헨슨은 그제야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더 좋은 걸 만들어 줄 테니, 반지 대신 그걸 차고 다니게. 반지보다는 나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건넨 뒤 막 사무실을 나서려던 찰나, 헨슨이 날 불러 세웠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공기 청정기는 사지 않아도 되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어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레드 더스트는 위험 물질인데, 그걸 퍼뜨리게 가만 뒀겠나?”

“그야 그렇지만······.”


나는 진지하게 로봇 청소기까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생각해 보니, 인체 내부에 침투한 레드 더스트가 침식을 발생시키 걸 방치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하신 겁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하는 말이야.”

“그것참, 다행이군요.”

“푸하하핫, 자넨 참 웃긴 녀석이야. 아무튼, 자네가 만들어 내는 레드 더스트는 억제구가 흡수해 결정화시켜 특수 처리가 된 전용 용기에 모아 배출할 걸세. 자네는 그걸 제때 반납하고 용기를 체워 넣으면 되네.”


설명을 듣는 순간 엄청 번거러운 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헨슨은 찌푸러진 내 표정을 발견한 건지, 짐짓 엄한 목소리로 충고를 이어 나갔다.


“내장된 용기는 세 개뿐이야. 교체 시기를 미루다가 처벌 받지 말고, 제때 보충하게.”

“세겨 듣겠습니다.”


혹시나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지만, 굳이 질문을 던지진 않았다.

만약 생각보다 처벌의 수위가 낮다면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여기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어길 수 있다는 전제를 까느니, 성실하게 교체하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하지만 그 성실함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괜한 참견일 수도 있네만, 자네 표정을 보니 불안해서 한마디만 더 하겠네.”


헨슨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먼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러자 헨슨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처벌이란 걸 듣고 나면, 제가 나태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뭐어? 푸하하하핫! 그런 걸 걱정한 건가?”


헨슨은 질문을 듣자마자 기가 차다는 듯 크게 웃어 젖혔다.

하지만 나는 몹시 진지했다.


“괜히 말씀하셔서 그정도 처벌이면 좀 늦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장입니다.”

“걱정 말게. 내 말을 듣고 나면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될 테니까.”


헨슨의 호언장담에 오히려 듣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몸이 떨리기까지 할까 싶었다.


“그냥 듣지 않을 수는 없는 겁니까?”

“자네 같은 사고뭉치는 나는 들은 적 없다는 핑계를 댈 게 빤하니까, 지금 듣게.”


사고뭉치라는 평가는 조금 수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헨슨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잠깐 사이에 듣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한 끝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처음으로 아슬아슬하게 교환했을 때는 구두 경고 정도로 끝날 거네. 그 다음도 마찬가지고. 뭐, 그게 반복되면 길드 내에서 따로 교육할 수도 있고.”


일단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아니,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았을 정도로 좀 늦어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심어지기에 충분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처벌은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레드 더스트가 유출된다면, 길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되네.”


그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절로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말씀은··· 국가 기관이라도 개입한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이네. 이레귤러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아니 증오하는 이들은 이레귤러를 죽여 없애지 못하는 상황을 불만스러워하네.”


하나에게 길드 창립 비사를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헨슨의 표현은 조금 더 과격했기에 조금 더 확 와닿았다.


“만약 레드 더스트가 유출될 경우, 어떤 처벌을 받게 됩니까?”

“운 좋게 유출에서 그칠 경우엔 격리 시설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거네.”

“그럼 침식 피해자라도 나오면······.”


헨슨은 대답 대신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알겠습니다. 절대 늦지 않게 용기를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헨슨 덕분에 한 번쯤이야 하는 생각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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