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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안곰탱 님의 서재입니다.

레드 스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데굴곰
작품등록일 :
2020.02.13 10:35
최근연재일 :
2020.03.02 18:2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12
추천수 :
3
글자수 :
104,035

작성
20.02.13 10:47
조회
88
추천
1
글자
12쪽

2.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DUMMY

그동안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생생했다.

난도질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고통은 이제 믹서기에 집어넣고 갈아대는 듯싶었다.

수 초의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지자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고통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때 돌연, 이변을 느꼈다.

오른 손가락 끝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쾌함이 고통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하던 감각이 돌아온 건 물론이고, 무의식 중에 힘을 주자마자 팔이 움직였다.


“이게 무슨······.”

“하나 씨, 이제 됐어요.”

“알겠다.”


뒤늦게 병실에 들어온 여성의 말에 날 짖누르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어디··· 다행이 목숨은 건졌군요.”


상황을 멍하니 구경하던 경찰을 지나쳐 내게 다가온 여성은 붉은 빛을 띠는 암석처럼 변한 오른팔을 요리조리 살폈다.

“목숨은 건졌다고?”


그건 즉, 죽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리라.


“네,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인가 보네요.”


팔을 살피던 여성은 의미심장해 보이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듣는 귀가 있어서 여기서 설명하기엔 힘들 것 같네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등을 돌려 경찰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박유 씨의 신병은 저희 측에서 인수하도록 하겠어요.”

“저도 다시금 말씀드리죠. 범인은 절대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흐음, 저는 분명 박유 씨를 데려가도 좋다는 명령서를 보여드렸는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중앙 정부의 명령서이지 않습니까? 정 억울하시면 콜로니 측의 명령서도 함께 가져오시죠.”


두 사람은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지만, 내겐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그보다는 불탄 나무껍질처럼 시커멓던 팔이 갑자기 붉은 암석처럼 보이게 된 이유가 알고 싶었다.


“저기, 하나 씨? 뭐 좀 물어봅시다.”


나와 마찬가지로 말다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여성을 불렀다.


“응? 아까 보스의 말을 듣지 않았나. 내가 해줄 말은 없네.”


융통성 없기는······.

속으로 입맛을 다신 나는 외견이야 어찌 됐든 감각이 돌아와 움직일 수 있게 된 오른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2주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동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왼팔이 가려울 때가 문제였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침대에 대고 팔을 힘차게 비벼야만 했다.

혼자 낑낑대며 간지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모습을 간호사에게 들켰을 땐 정말 부끄러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 셈인 걸까.

먼저 떠오르는 건 이들이 중앙 정부의 요원이라는 추측이었다.

중앙 정부의 명령서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이에게 보스라 부르니 충분히 신빙성이 높았다.

하지만 요원이라 하기엔 보스의 철부지처럼 보이는 행동이 눈에 밟혔다.


“후우, 됬어요. 저는 박유 씨를 그냥 데려갈 테니 불만은 그쪽 상관을 통해서 접수하세요.”


보스는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인지 일방적으로 말을 잘라버렸다.

그녀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뒤 나를 바라보며 섰다.


“박유 씨, 가요.”


나는 물끄러미 보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경찰에게 돌렸다.

하지만 그 잠깐을 못참겠는지 보스는 나를 닦달했다.


“뭐해요? 어서 가자니까요.”

“아니······.”

“뒷감당은 제가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게 아니라, 이걸 풀어줘야 가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아······.”


보스의 시선이 내 손가락을 거쳐 수갑으로 옮겨갔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경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절대 풀어드릴 수 없습니다. 콜로니 정부의 명령서를 가져오시죠.”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러자 보스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렇다면 실력 행사를 할 수밖에 없죠. 하나 씨, 부탁할게요.”

“괜찮겠나?”


보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 이 정도는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어요.”

“하아, 알겠네.”


낙답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 하나가 내 발목을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녀의 손에 닿은 수갑이 붉은 빛을 띠는 모래로 바스라져 침대 위에 쌓였기 때문이다.


“헉!”


깜짝 놀라 재빨리 발을 빼자, 얼마 남지 않은 수갑의 일부분마저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경찰이 허겁지겁 총을 뽑아 보스를 겨냥하며 소리친 덕분에 나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꼼짝 마!”

“하아, 어째서 항상 이렇게 되고 마는 건지······.”


하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인상을 찌푸렸으나, 보스는 그녀를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마침 일이 없던 게 하나 씨라 다행이죠.”


보스의 천진난만한 발언에 기가 찼는지, 하나는 으르렁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강행돌파할 거라면, 명령서를 위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에이, 혹시 모르잖아요? 어쩌다 한 번 먹힐 수도······.”


뭔가 굉장히 불손한 단어들이 연달아 들려왔지만, 보스는 대수롭지 않은양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역시나 정부 측의 요원이 아닌 모양이었다.


“잠깐, 역시 조직 쪽 사람이 맞았잖아!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돈은 돌려주겠어. 그러니까 날 내버려 둬!”


머릿속에 이대로 끌려가면 확실히 죽을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아다.

그런데 보스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히 바라봤다.

그러자 하나가 보스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고, 그제야 전후 사정을 파악한 모양인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돈도 회수해 가도록하죠.”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꺼냈지만, 나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돈은 물론이고, 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너희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잖아! 그럼 돈만 가져가!”

처음엔 그녀들의 신원을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지만, 이젠 아주 확실해졌다.


그걸 알아차린 건 나뿐만이 아닌지, 경찰도 빠르게 대처해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보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경찰 특공대든 뭐든 출동해 범죄자들을 체포할 것이다.

나는 내심 안심하며 어떻게 해야 경찰의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 안전할 수 있을 것인지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런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하나 씨, 귀찮은 파리들이 꼬이기 전에 자리를 옮기죠.”

“매번 하는 말이지만, 스스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자각은 없는 건가?”

“제가 그럴 리가 없죠.”

“그럼 이번엔 누구 탓이라고 우길 생각인가?”


하나의 질문에 보스는 고민하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보스는 뻔뻔하게 하나를 바라봤다.

그러자 하나는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굳혔다.


“틀린 말을 아니지만··· 아니, 더는 시간 낭비겠군.”


하나는 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자는 마음을 먹었는지, 성큼성큼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당황해 두어 걸음 물러나며 비명을 내질렀다.


“멈춰! 더는 경고하지 않는다! 멈춰!”


그는 당장이라도 발포할 것처럼 총구를 들이밀며 경고했으나, 하나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하나의 다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나는 좁은 실내를 가득 체운 총성에 반사적으로 귀를 막으며 앞으로 엎드렸다.

경찰은 조준에 실패한 모양인지, 하나의 다리는 멀쩡해 보였다.

멈추지 않고 걸어가 그의 앞에 선 하나는 격려라도 할 생각인지, 총구를 오른손으로 움켜쥐더니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다음부턴 망설이지 않고 급소를 노리게. 범죄자들은 당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을 테니까.”

“이익!”


경찰은 악에 받쳤는지,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이미 한 줌 모래로 변해버린 총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와 바닥을 더럽힐 뿐이었다.

당황한 채 굳어버린 경찰의 모습에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이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치더라도 병원 근처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형사님,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썩은 동앗줄처럼 보이지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젠장!”


퍼뜩 정신을 차린 경찰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뒷걸음질 쳤지만, 하나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그러더니 발도하듯 손날을 뻗어 가차없이 그의 울대를 올려쳤다.


“크헉!”


순간 숨이 턱 막혔는지, 경찰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걸 바라보던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뭘 어떻게 해도 도망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덮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병원 안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 덕분에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송으로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방송에 따라 행동할 수가 없었다.

성인 남성을 손쉽게 제압하는 하나를 뚫고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빠져나갈 계획은 있나?”

“물론이죠. 저는 무턱대로 돌진하는 것처럼 보여도 도망칠 구멍은 파놓는 영민한 사람이라고요.”

“그 구멍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리거나, 물이 가득 차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기우에 불과하길 바라지.”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시죠. 하지만 워프 중에 발버둥 치면 좀 위험할 수는 있어요.”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 나가다가 동시에 나를 빤히 바라봤다.

“30초 내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나?”

“당연히 불가능하죠.”

“그럼 다른 방법은 없겠군.”


그 순간, 하나의 오른쪽 눈동자가 번뜩였다.

불길함이 엄습하자 나는 당장 도망칠 수 있도록 몸을 일으켜 앉았다.

처음 그녀와 마주했을 때와 다르게, 발목을 죄는 수갑은 더 이상 없었다.

이대로 끌려가 죽느니,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게 살아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그나저나 몇 층인지 모르는데, 괜찮으려나.

힐끔 창문을 살폈다.

절망적이게도 크게 자란 나무나 낮은 건물이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어찌어찌 고층 건물의 강화 유리를 깨고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우리 말로 해결합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보스 대신 내가 사과하지. 미안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어졌네.”

“아니,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제발 이렇게 부탁할 테니, 목숨만 살려줘!”


일자리 하나 쟁취하지 못하고 콜로니의 변두리를 전전하는 인생이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의 제력에 기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착실하고 악착같이 모아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지만, 부유하게 행복하자는 게 내 신념이다.


“대화를 나누는 건 여길 벗어난 뒤라도 충분하네.”

“안 돼!”


잠깐의 망상에 행동이 굳어지자, 하나는 비호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뒤통수에서 번쩍하고 섬광이 일었다.

뇌를 저릿하게 마비시키는 듯한 기묘한 통증도 잠시, 눈앞이 검게 물드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병원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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