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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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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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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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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글자수 :
50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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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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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환상(3)

DUMMY

쾅! 콰광! 쾅!


그동안 쌓였던 모든 분을 풀어내듯 강한나의 주먹이 연이어 날아들자 황주찬의 모습을 한 무언가는 속수무책으로 으스러져갔다. 터진 피부로 거뭇한 핏물이 새어나오며 점차 그 형태가 일그러져 가는데도 그녀의 주먹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쾅! 쾅!


마지막을 장식하듯 시원하게 두 손을 번갈아 내리친 강한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로 흐른 땀을 닦아냈다. 그 모습은 전투를 마쳤다기보다는 격한 운동을 끝낸 직후 모습에 더 가까웠다.


“이제야 좀 풀리네!”


시원하게 속을 풀어낸 강한나는 그제야 처참하게 일그러진 형태를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황주찬의 모습을 벗어낸 지 오래. 그곳에 남은 건 얼굴 없는 마네킹이었다. 일반적인 마네킹과 다르다면, 마치 실제 사람의 피부를 입혀놓은 듯한 촉감과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마기뿐.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강한나는 다시 어둠으로 깔린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환상이란 말이지?”


트라우마를 자극할 만한 환상과 머릿속의 인물을 덧씌우는 마네킹. 성 안의 모든 것을 속임수라 생각하라던 이찬솔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저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멈췄을 강한나였다.


“이쯤부터 시작해볼까.”


복도 벽을 가볍게 툭툭 건들이던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마력을 실어 넣었다.


“우선 한 방!”


쾅!


가차 없이 꽂아 넣은 주먹에 복도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방으로 이어져 있던 문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고 무너진 벽 속으로 또 다른 방이 내비쳤지만, 강한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몇 걸음을 더 옮겨 또 다른 벽에 주먹을 힘껏 꽂아 넣었다.


쾅! 쾅! 쾅!


몇 번이고 반복된 과정. 그리고 그 끝엔.


부웅.


“어? 어어?”


역시나 힘을 실은 주먹이 벽을 향했지만,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벽은 주먹에 실린 마력과 반응하더니 마치 신기루라도 되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으악!”


힘껏 내지른 주먹이 갈 곳을 잃자, 함께 중심을 잃은 강한나는 그 속으로 빨려들 듯 고꾸라졌다. 입구가 없는 것도 그저 속임수일 거라 생각한 그녀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타이밍.

벽에 처박힌 정세라를 향해 날아들던 푸른 망치는 정세라가 아닌 다른 이의 머리를 내리치고서 멈춰 섰다.


쿵!


“커억······!”


귀신같은 타이밍으로 정세라를 향해 날아들던 망치를 자신의 머리로 대신 맞아준 강한나는 정수리로 몰려드는 통증에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무너지는 벽에게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력을 둘러두지 않았다면 정신을 잃기에 충분한 일격이었다.


“크흑······.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응?”


이찬솔과 엮인 것을 후회하며 한탄을 내뱉던 강한나는 다른 곳보다 밝은 공간을 느껴 그제야 상황을 살폈다. 저릿한 마력을 뿜으며 제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정세라와 그 앞에서 손을 망치로 변형시킨 마네킹. 이미 자신도 겪어본 일이었기에 순식간에 판단을 끝낸 강한나는 망설임 없이 마네킹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콰앙!


황주찬을 모방한 마네킹도 그랬듯, 마네킹의 전투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할 A급 헌터가 이렇게까지 정신을 놓고 있었다는 점에 강한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특출 난 감각. 정세라는 현실과 트라우마를 완전 인식할 그 감각이 자신보다 부족한 거다, 라고 생각한 강한나는 평소보다 과격한 모양새로 마네킹을 무너뜨렸다.


쾅!


더 이상 꼼짝하지 않는 마네킹을 한 번 더 내리쳐 확인사살까지 끝낸 강한나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은 정세라에게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전부 환상이었어. 정신 차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네.”


별수 없다는 듯 주먹을 치켜든 강한나는 마력을 슬며시 풀고서 정세라를 향해 힘껏 내질렀다. 환상을 깨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물리적인 충격일 테니 말이다.


파즈즉.


“끄어억······!”


하지만 그것마저도 정세라에게 닿지 못했다. 주먹이 채 뻗어나가기도 전에 날아든 한 가닥의 전류가 온몸을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냥 조금만.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정세라 역시 이찬솔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건 마찬가지. 물론 강한나의 현실인지능력이 정세라보다 위인 것도 사실이지만, 스스로 트라우마를 감당하는 정도가 달랐다는 점이 문제였다.


“마, 말을 하지······.”


괜히 온몸에 저릿한 전류를 느껴야 했던 강한나는 억울하다는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꼬박 몇 분.


터벅. 터벅.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두 여자는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이제 괜찮은가 봐?”


“됐어요.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런 것 치고는 꽤 힘들어 보이던데?”


정세라는 자신을 우롱하는 듯한 말은 무시하고서 발소리를 향해 희미한 전류를 흘려 길을 밝혔다.


“저거······.”


“박다미?”


그곳에 비친 건 분명 박다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습을 확인하고도 정세라와 강한나는 섣불리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세라씨? 강한나씨?”


정세라에게서 흐른 전류로 기척을 확인한 박다미는 갑자기 울상을 짓더니 마력을 뽑아 달려들었다.


“으악! 저리가!”


그 모습에 전류를 흘린 정세라는 멀찌감치 떨어졌지만, 박다미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한 강한나는 금세 붙들려 바닥을 뒹굴었다.


“흐아앙······. 이거 좀 어떻게 해줘요. 내가 찬솔씨를 죽인 것 같아요······.”


“아니! 이것 좀 놓고 말하라고!”


“흐아아앙······.”


강한나는 자신의 발에 매달린 박다미를 발로 꾹꾹 밀어냈지만 도저히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엔 힘을 잃은 마네킹이 목이 꺾인 채 매달려 있었다.

그때.


파지직!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정세라가 푸른 전류를 쏘아냈다.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나간 전류는 박다미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마네킹을 정확하게 꿰뚫고 지나갔다.


“정신 차려요.”


“지, 지금 뭘 한 거예요? 차, 찬솔씨가······응?”


전류에 휩쓸려 바닥에 널브러진 마네킹을 그제야 확인한 박다미는 눈물로 범벅된 눈가를 몇 번이나 비벼가며 마네킹과 정세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놀랐지? 그거 사실 가짜였어.”


이미 쓰러진 마네킹에게 주먹을 꽂아 넣을 때처럼 박다미의 귓가에 확인사살을 꽂아 넣은 강한나가 그녀를 뿌리치자, 곧이어 박다미의 끔찍한 비명이 한참이나 울려 퍼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후비적거리며 정세라에게 다가선 강한나가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이제 어떡해? 우리만 여기로 떨어진 거 아니야?”


“쉿. 저것도 좀 조용히 시켜 봐요.”


이미 마력을 흘려 주변을 감지하던 정세라는 시끄러운 소리가 거슬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에 강한나가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대던 박다미의 입을 틀어막자, 정세라는 조금 더 집중해 마력을 흩뿌렸다.

자신의 전류로 환상과도 같은 벽을 골라낼 수는 없지만, 이곳까지 아무렇지 않게 걸어온 박다미라면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시간. 혹여나 이찬솔 혼자 마지막 관문에서 마주해야 했던 세바스를 상대하고 있다면, 혹은 홀로 1층부터 시작된 관문을 겪어나가고 있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내, 흘려보내던 마력을 모조리 끌어 모은 정세라가 숨을 푹 내뱉고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하지만 모여들던 마력의 끝자락에 살며시 걸친 반응에 정세라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끊어진 정세라의 목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강한나는 그녀의 굳어진 안색을 보고 말았다.

감지를 위해 지하복도를 모두 메울 정도로 퍼뜨린 마력. 그곳에 잡힌 건 상층을 모조리 집어삼킬만한 거대한 마력이었다.


“늦었다······.”


피할 수 있는 곳 따윈 없었다. 당장 길을 찾아 도망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불가능한 상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릴 정도로 방대한 마력에 정세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 *


쿠구구구.


“주제 넘는 힘을 사용하는 구나!”


세바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폭포수처럼 일렁이며 덮쳐들었다. 마기를 뽑아낸 이찬솔도 이리저리 잘 피해 다니고는 있지만, 정작 공격을 가할 틈이 생기지를 않는다.

세바스는 흔히 뱀파이어라 알려진 고위 마물. 현 시점에 알려지지 않은 건 물론이고, 미래에도 마물인지, 악마인지로 꽤 많은 논란이 오갔던 녀석이다. 그 이유는 지능과 힘 때문. 인간이나 악마와 다름없는 지능을 가졌으며, 마기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웬만한 헌터는 비빌 수조차 없는 힘을 가진 녀석이다. 하지만 이 녀석과 조금이라도 대화를 해봤던 나와 최지환이 내린 결론은 달랐다.


악마나 마물 따위가 아닌, 인류를 배신한 인간. 혹은 그에 가까운 존재.


세바스가 인류를 배신한 인간이라면, 이미 그런 녀석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크윽!”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사이, 붉은 핏물이 날아들어 이찬솔의 발목을 붙잡았다.


서걱.


핏물보단 살점을 베어내는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지자 발목을 붙잡았던 핏물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잘려 나온 핏물은 여전히 발목에 걸린 채 꿈틀거렸다.


『아이템 : 용의 꼬리 특수능력 발동』


이찬솔은 기다렸다는 듯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러자 발목에 붙었던 젤리와도 같은 핏물에 불길이 붙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 너!’


“막 써도 된다고 한 건 스승님이었어요!”


이곳에 들어서기 전,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사옥에서 챙길 수 있는 아이템은 모조리 챙겼다. 덕분에 내가 아끼던 소장품들은 모조리 이찬솔의 손에 들어가 버렸다.


균열 속에서 마물을 해치우다 우연히 휩쓸린 새끼용에게서 얻은 아이템, 용의 꼬리. 무려 11레벨의 화염방벽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모든 걸 태운다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템이었다.


일회성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보다 저 핏물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요. 마력 좀 끌어올릴게요.”


균열에 들어서기 전, 마기 역시도 다루는 방법을 조금 더 단련했다. 단번에 많은 마기를 끌어 올리게 되면 내가 정신을 유지하는 게 힘들어지고, 내가 정신을 놓게 되면 마기를 억제할 방법이 사라진다. 때문에 조금씩 그 양을 늘려가는 방식을 택해야 했다.


‘오래는 못 버텨. 단숨에 끝내자.’


고개를 끄덕인 이찬솔은 검을 쥔 손을 쭉 뻗어 세바스를 겨눴다. 그리고 마력을 흘리자 거뭇한 마력 속에서 불긋한 검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킬 : 폭검 Lv.6+1 효과 발동』


우연히 얻었을 뿐인 스킬이었지만, 마력을 쏟아 부은 만큼 폭발의 위력이 커지는 스킬.


쾅! 콰아앙! 콰아아아앙!


일렁이는 세바스의 핏물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쏟아 부은 마력이 검기로 이어지며 순차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뭐, 뭐냐! 그만! 멈춰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폭발에 당황한 세바스가 소리쳤지만, 이찬솔은 스킬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스, 스승님!”


‘그렇게 많이 밀어 넣으면 어떡해!’


폭검의 단점이라면, 이미 발동된 스킬과 스킬에 주입된 마력을 회수할 수 없다는 점. 이건 폭검뿐만 아니라 검술과 관련된 대부분의 스킬에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유난히 이것만큼은 그 위력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무너진다! 대비해!’


덕분에 끊임없이 터져나가던 폭발이 세바스는 물론이고, 절벽까지 아슬아슬하게 집어삼켜 바닥이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악!”


‘검! 검 앞으로 뻗어!’


밀어 넣은 마력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 폭발. 바닥이 무너져 곤두박질치는 상황 속에서도 검기의 폭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으아아악!”


다행히 무너진 바닥이 절벽 아래까지 이어지진 않은 듯하다. 이찬솔이 바닥을 가늠하기 위해 슬쩍슬쩍 눈을 돌릴 때마다 얼핏 구조물과 같은 형상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꺄아아악!”


쿠구구구궁!


수많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나서야 검에서 터져 나오던 검기가 잦아들었고, 무너지던 바닥. 아니, 이젠 천장도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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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공격대(2) 23.08.01 28 1 14쪽
74 공격댸(1) 23.07.31 31 1 12쪽
73 배신(3) 23.07.28 39 1 13쪽
72 배신(2) 23.07.27 35 0 13쪽
71 배신(1) 23.07.27 3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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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분노(1) 23.07.10 5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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