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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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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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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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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2)

DUMMY

푸른 전류를 흘려 새까만 어둠을 물린 정세라는 당황한 기색도 전혀 없이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갔다.

꿉꿉한 곰팡이 냄새가 자욱한 지하 복도.

나무판자와 철제를 엮어 만든 조잡한 문만 아니었다면 지하 감옥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배경이었다.


“흐음······. 원래 1층부터 시작이랬는데. 뭔가 잘못 된 것 같긴 하네.”


이찬솔에게 들었던 설명으론 1층부터 6층까지 이어진 관문들을 거쳐 7층에 위치한 아데우스를 잡아내야 했다. 정신공격의 특성상 개인보단 여럿이 뭉쳐있어야 파회에 수월하기 때문에 첫 번째 주의사항으로 들었던 점이 바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져 버렸으니 우선 초장부터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 정도는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구조는 알겠단 말이지······.”


저릿한 전류에서 뿜어진 푸른빛 덕분에 어둠 따윈 정세라에게 그리 문제가 되진 않았다. 평소 균열에 살다시피 하던 정세라는 이곳으로 전이된 직후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 구조의 파악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근데 왜 출구가 없지?”


전이되기 직전, 세바스가 했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지하3층. 기다란 복도에 딸린 방이 여럿 있을 뿐, 구조도 복잡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상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야 마땅했지만, 출입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흐음······. 트랩도 없고, 마물도 없고······. 응?”


지직.


복도에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정세라의 전류 한 가닥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한곳을 향하더니 일순간에 잦아들었다.

주변을 밝히고 있다고는 하나, 복도의 모든 곳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흩뿌린 전류는 아주 미약한 마찰에도 반응할 수 있는 정찰의 용도였다. 그런 전류가 무언가를 찾아낸 듯 흐르다 갑자기 잦아들었다는 건, 범위의 한계를 정확하게 잡아내지 않는 이상 순간적인 이동이 가능한 상대가 있다는 의미.


“뭔가 있긴 있다는 거지? 경계심이 강한 것 같은데.”


잠시 숨을 가다듬던 정세라는 주변을 밝히던 전류를 거둬, 스스로 어둠의 한복판으로 숨어들었다. 저릿하던 마력이 단숨에 사라지자 어둠에 삼켜진 공간은 그저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정세라의 잔잔한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둠 속.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무언가의 손길이 다가왔다.


파즈즈즉!


하지만 그 손길이 닿는 순간, 푸른 전류가 거칠게 튀어 오르더니 흐릿하던 형체를 단숨에 집어삼켜 태워버렸다. 자신의 피부로 흐르는 전류를 통해 몸에 닿는 대상을 감전시켜버리는 볼트스킨. 평소엔 워낙 강한 전류를 두르는 탓에 잘 사용하진 않는 스킬이었지만,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엔 충분한 스킬이었다.


“이게 뭐야?”


다시 어둠을 밝힌 정세라의 시야로 눈을 가린 남자의 형체가 들어왔다. 어떻게 기척 없이 다가왔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사람이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 가장 큰 의문이었다. 느껴지는 마력까지도 인간과 같았다면 죄책감을 품었을 정도.

이내 정세라에게서 옮겨 붙은 전류를 견뎌내지 못한 형체는 거뭇한 안개로 흩어져 사라졌다.


“약하잖아?”


까다로운 상대에게 마비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킬. 겨우 그 정도의 충격도 버티지 못할 정도라면 높게 쳐서 리자드맨 정도의 급밖에 되지 않을 거다.

어딘지 김이 새도록 약한 상대에 경계를 낮춘 정세라는 다시 출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때.


“세라야.”


역시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이곳은 물론이고, 어디서도 이젠 들릴 리 없는 목소리.


“······오빠?”


정세라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물을 막아내던 오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린 정세라의 시야는 얇은 나무판자와도 같은 문에 막혀 자유롭지 못했다.


“이, 이거 뭐야? 오빠! 오빠 거기 있어?”


마치 그날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한 환상.

오빠의 손길로 좁은 장롱 안에 갇혀 좁은 문 틈새로 바라보던 시야였다.


“괜찮아, 세라야. 거기 그대로 있어. 괜찮아. 오빠는 강하니까.”


정세라의 유일한 피붙이였던 정지혁은 그의 말대로 푸른 불길을 다루는 꽤 유능한 헌터였다. 그 시절의 정세라 역시 전류를 다룰 수 있었지만, 정지혁의 품에서 안전하게 지내오던 그녀는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다뤄내지 못했다.


“오빠, 안 돼! 나 이제 강해졌단 말이야! 같이 싸울 수 있어!”


정세라는 안간힘을 써가며 눈앞의 문을 마구잡이로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쉬리릭.


가려진 장롱 문 밖으로 고막을 자극하는 파공음과 함께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 돼······.”


좁은 문틈에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볼 수 있는 문 밖의 상황. 하지만 정세라는 그 상황을 볼 수 없었다. 보지 않아도 그 날의 일들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낫을 든 마물들. 사신이라 불러 마땅한 마물들은 아직 C급 수준이었던 정지혁이 감당하기엔 벅찬 상대였다. 그럼에도 본래 자신의 수준 이상을 보이며 맞서 싸웠던 그는 꽤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그 시절의 상황을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한국의 첫 A급 후보로 올리길 마다하지 않았을 게 분명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전에 들려온 파공음과 함께 정지혁의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갔다.


“······오, 오빠는 괜찮아, 세라야. 절대 나오면 안······된다?”


치명상을 확인한 마물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상황에도 오로지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던 정지혁. 거대한 낫이 날아들어 다리도, 복부도, 어깨도 모조리 구멍이 송송 뚫려가고 있었지만, 그는 정세라가 숨어 있는 장롱에서 멀어지기 위해 자신의 몸을 푸른 불길로 뒤덮은 채 바닥을 기었다.


“나 이제 강해졌는데······. 오빠······.”


완전한 패닉에 빠진 정세라는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장롱 안에 갇혀 오빠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날처럼.


부웅. 부웅.


그때,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붕붕 휘두르는 형체가 정세라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왔다.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전류로 간신히 밝혀진 근처까지 다가오고서야 보인 형체는 커다란 몸집에 푸른 갑옷 두른 채 푸른 망치를 든 남자, 김성환이었다.

김성환의 얼굴은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패닉에 빠진 정세라를 단숨에 처리하겠다는 듯 거대한 망치를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평소라면 대놓고 다가오는 기척과 둔한 공격 따위에 당해줄 리가 없는 정세라였지만,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환상은 그녀에게 모든 이성과 판단을 빼앗아버렸다.


쾅!


날아드는 얼음망치에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못한 정세라는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녀의 이마로 붉은 핏물이 주륵 흘러내렸지만, 조금의 신음도 내지 않은 채 여전히 초점을 잃은 채였다.

그리고.


부웅.


또다시 날아든 망치가 그녀를 향했고.


쿵!


굉음이 어둑한 지하복도로 울려 퍼졌다.


* * *


“저, 저기요······.”


날렵한 몸놀림과 강력한 주먹으로 한 마리의 치타처럼 전장을 누비는 강한나의 능력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짐승처럼 발달한 감각 덕분에 어둠 속에 아무도 없다는 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내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


그저 어둠만으로 잔뜩 위축된 채 벽을 짚어가며 간신히 걸음을 떼어내던 강한나의 손에 문고리가 잡혀들었다.


끼릭.


다행히 잠겨 있지 않은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서자 하늘에 뚫린 천장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등 뒤로 자신의 목덜미를 노려오는 기척을 느끼고서 반사적인 공격을 날렸다.


쾅!


주먹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 상대가 누가 됐든 정확한 공격이 먹혔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이곳은 무려 악마가 존재하는 성 안. 고작 공격 한 번으로 경계를 풀기엔 너무도 위험한 곳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서 주먹을 쥔 채 몇 초나 문 밖을 경계하던 강한나는 슬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마력이 실리긴 했으나 반사적인 공격이었을 뿐, 적에게 치명상을 입혔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척은 느껴지면서도 다시 반격해 올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끝내 걸음을 뗀 강한나는 문 밖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쉬이익.


어둠 속에서 거뭇한 연기가 흩날리더니 이내 모든 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두 눈만 껌뻑거리던 강한나.


“한나야.”


하지만 일순간 등 뒤로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어릴 적, 자신을 돌봐주던 할아버지의 목소리.


“이 녀석아! 허구한 날 주먹질만 하고 다니면 어쩌냐?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공부를! 저딴 괴물들이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다! 저렇게 갑자기 생겨난 것들은 결국 갑자기 사라지게 돼 있어요! 그럼 그때 남는 게 뭐냐? 그 잘난 주먹이 아니라, 지식이란 말이야!”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은 선생님과 같았고, 특유의 장난기가 넘치는 탓에 오래된 친구와도 같았다. 이젠 들을 수 없기에, 그립게 느껴지는 목소리임은 분명했다.


“할아버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할아버지의 환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디딘 강한나는 그의 앞에 서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진짜 죄송한데······.”


그리곤 살아생전의 할아버지를 대하듯 정중히 말을 건넸다.


“딱 한 대만 때릴게요.”


하지만 정중한 말투완 다르게 그녀의 주먹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꼭 그래보고 싶었거든요.”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한 강한나. 눈앞에 보이는 환상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스크린 속의 그림과도 같은 존재일 뿐,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환상에게 품을 연민 따윈 없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특유의 장난기로 매일같이 자신을 놀리던 모습과 날렵하기론 자신 있던 움직임에도 단 한 번을 잡아내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옷자락. 결국 생을 다 해 죽은 할아버지의 형상이 눈앞에 있으니, 이젠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한 대만 때려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부웅!


하지만 눈앞에 보였던 할아버지는 그저 환상일 뿐. 온 힘을 다 해 날린 주먹과 함께 환상은 안개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뭐야? 왜 없어졌어? 돌아와! 돌아오라고!”


허공을 가른 주먹과 함께 꿈꿨던 헛된 기대가 사라지자, 강한나는 제자리를 방방 뛰며 흩어지는 연기를 헤집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역시나 누군가의 형체가 흩어진 환상에 정신이 팔린 강한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고, 이내 바위와도 같은 주먹을 내질러 그녀를 노렸다.


쾅!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하필 너야?”


이찬솔에게 들을 바로, 스톤의 길드장은 균열 속에서 그 생을 다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은 강한나에게 있어서 더 없이 좋은 소식에 속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스톤을 나쁘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모든 건 단풍 연합에 들고 난 이후. 칠성에 대한 알 수 없는 원한은 점점 깊어져만 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도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강한나가 길드를 빠져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황주찬의 눈에 들었기 때문. 강약약강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길드를 빠져나가려던 그녀를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한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 그녀를 공격해왔다.


“너. 변장을 할 거면 상대를 잘 보고 했어야지.”


적에게서 느껴지는 분명한 기척. 눈앞에 보이는 황주찬은 절대 환상이 아니었다.


“진짜면 더 좋았을 걸······.”


오히려 그렇기에 강한나의 분풀이 상대로는 제격이었다.


“쉽게는 안 죽여줄 거니까 각오하라고.”


그리고 이어진 주먹은 황주찬의 모습을 한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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