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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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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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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9
추천수 :
222
글자수 :
50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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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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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기(4)

DUMMY

전장을 뒤덮었던 검은빛 마기가 일순간 사라지자, 여전히 배진석의 주먹이 날아드는 와중에도 전장엔 고요함이 느껴졌다.


“으으······.”


“세, 세라씨!”


이찬솔이 갑자기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김성환은 자신의 등에서 신음을 내뱉는 정세라를 뒤늦게 눈치채고서 마구잡이로 흔들어 깨웠다.


“으악!”


파직!


“끄윽!”


가위라도 눌리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난 정세라의 몸에서 찌릿한 전류가 방출되자 몸이 경직된 김성환은 신음을 뱉어냈다.


“와 씨! 방금 그거 뭐였어요? 마력 찾다가 식겁했네!”


“아무래도 찬솔씨가 악마한테 끌려간 것 같습니다!”


“아오! 그 잠깐을 못 버텨서!”


김성환의 등에서 가볍게 뛰어오른 정세라는 푸른 전류를 몸에 두르고서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그녀의 몸에서부터 퍼져나온 전류가 온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바닥을 헤집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잡아냈을 텐데.”


그저 마구잡이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던 전류는 작은 운동장 크기는 될 만큼 커다란 범위 안에서 바닥을 헤집고 있었다.


“자, 잠깐 기다려주십쇼! 이번엔 미끼 한다고 안 했습니다!”


정세라와 정신교감으로 이어져 있던 김성환은, 땅 위에 그려진 범위가 배진석과 황주찬에게 이어진 마력의 끄나풀이 숨어있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아서 잘 피해요! 깡충깡충 잘 뛰어 다니더만!”


그리고 우연인지, 그 범위가 자신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는 걸 안 김성환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다리로 바닥을 힘차게 밟으며 죽을힘을 다 해 뛰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전류가 일순간 잦아들고.


“자, 잠깐!”


“어차피 튼튼하니까 괜찮잖아요.”


콰아아아아앙!


이내 거대한 폭음을 울리며 중심부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전격이 하늘과 맞닿을 것처럼 강하게 치솟았다.


“으아아악!”


점점 퍼져 나오는 전격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빠져나온 김성환은 바닥을 뒹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정도면 같이 묻어버리려던 거 아닙니까!”


김성환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정세라가 떠 있는 허공을 향해 조금 성질부리듯 말하긴 했지만, 정작 그의 등허리에 얼음으로 만들어졌던 뒷다리(?)는 전격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잘려나가 있었다.


“성환씨는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한 거죠. 미안해요.”


“제가 단단하긴 하지만 이 정도에 아무런 피해가 없을 정도는 아닙니다.”


단숨에 마력을 뽑아낸 탓인지 정세라의 몸을 두르고 있던 전류의 갑옷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허공을 날던 몸체가 조금씩 떨어지자 그 아래서 투덜거리던 김성환은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벼, 별말씀을.”


너무 자연스러운 상황에 어색함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김성환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정세라를 던지듯 내려놓고 전격이 내리쳤던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동그란 구멍이 움푹 패여 있었고, 그 속엔 간신히 형태만 남긴 채로 거멓게 탄 두 구의 시체가 보였다.


“위력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있는 거 없는 거 다 끌어 모아서 뱉어낸 거라 그래요. 이래도 살아나면 뭐, 성환씨가 알아서 해야죠.”


“······우선 찬솔씨를 구할 방법부터 찾아봐야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골똘히 고민하던 정세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만 여기에 갇힌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대로 이미 균열을 빠져나갈 출구는 사라졌고, 잡아내야 할 악마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상황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리던 김성환도 별수가 없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때.


“좋지도 않은 머리 싸매고 있어봐야 의미 없습니다.”


움푹 패인 구덩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이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벨프님께서 균열을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말이죠.”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얼음 갑옷을 두껍게 두른 김성환은 커다란 망치와 방패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천천히 솟아오르는 바위기둥을 밟고 올라선 조두현은 여유롭게 비웃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조두현이 밟은 바위기둥을 중심으로 바닥에서 하나둘씩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엔 배진석과 황주찬은 물론이고, 엇비슷한 마력을 두른 제각각의 사람들 또한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정세라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수많은 바위기둥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녀석. 백기영이라고, 아까 파도 일으키던 녀석이에요. 아무래도 저기 있는 녀석들 전부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예상은 했지만······. 전부 제 의지는 아니라는 겁니까?”


“이미 죽어서 의지라고 할 것도 없을 가능성이 크죠.”


“그럼 그냥 좀비라고 생각해야겠네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정세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같이 생전보다 강화된 좀비겠죠.”


기둥 위에 선 한 명 한 명에게서 모두 B급 이상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보다 매섭게 느껴지는 건 그런 마력 위에 덮어진 거뭇한 기운이었다.


“······아까 마력 전부 쏟아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그럼 저 혼자 싸워야겠네요.”


“네. 저도 지켜주면서요.”


눈앞을 가리는 습기를 조용히 훔쳐낸 김성환은 조금 전처럼 허리춤에 얼음을 이어 붙여 말과 같은 하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미 얼어붙었던 바닥에서 솟아오른 얼음 기둥이 정세라를 들어 올려 만들어진 등허리에 그녀를 얹었다.


“조금 격하게 들어가겠습니다. 꽉 잡으십쇼.”


콰가각!


얼음으로 뒤덮인 다리가 지반을 내리찍자 한기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마치 잔잔한 연못가에 빗방울이 떨어지듯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끝을 중심으로 바닥은 동그랗게 파동을 그리며 얼어붙었다.


콰가가가각!


커다란 방패를 들고 광범위하게 아군을 보호하던 푸른 방패의 모습은 없었다. 얼어붙은 지반을 미끄러지며 달리는 모습은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전장을 누비는 기병의 모습이었다.


콰앙! 콰아아앙!


냉기를 두른 푸른 다리가 전장을 달리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온갖 마력이 날아들었다. 독기와 바위조각은 물론이고, 날카롭게 벼려진 물바늘이나 마기로 감싸진 화살과 창까지도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김성환의 몸에 닿지 못했다.


콰가각! 콰가가가각!


깊게 패인 구덩이 속으로 빠르게 달려든 김성환의 주위로 거대한 얼음벽이 수차례 솟아올라 온갖 마력을 상쇄시켰다.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이미 몇 개의 얼음기둥만으로도 마력이 바닥나 쓰러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기둥을 십여 개나 뽑아내고도 김성환의 다리가 쉬지 않고 전장을 누비자, 몇몇 각성자들이 일제히 기둥에서 뛰어내려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흐읍!”


콰아아아앙!


온갖 마력이 뒤섞인 주먹과 검날, 창날이 날아들자 오히려 제자리에 멈춰 선 김성환은 호흡을 크게 내뱉더니 자신의 주위로 동그란 얼음벽을 뽑아냈다. 그 모습은 마치 등껍질 속에 숨어든 거북이의 모습과도 같이 보였다.


까드드득.


각자의 마력과 마기까지 둘러진 공격이 등껍질과도 같은 얼음벽을 때리자, 제각각 접촉한 부위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몇몇 각성자들은 무기를 포기한 채 빠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그러지 못한 각성자들은 공격을 내지른 모습 그대로 꽁꽁 얼어붙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한기가 마치 시간까지도 얼려버린 듯 잠깐의 고요함이 흘렀다.

그리고.


콰각!


등껍질처럼 김성환을 감쌌던 얼음벽에 사방으로 갈라지는 소리가 잠깐의 정적을 깨뜨렸다.


쾅!


갈라진 얼음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얼음기둥이 매섭게 치솟았다. 기둥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조두현이 서 있는 돌기둥이었다.


“흐으읍!”


자신의 몸집처럼 거대한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서, 빛살처럼 솟아오르는 얼음기둥을 발판삼아 날아오른 김성환은 조두현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망치가 휘둘러지자 태산이라도 얼려버릴 듯한 한기가 강렬히 뿜어져 나왔다. 그 아래 깔린다면 필시 망치에 짓이겨지거나,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채 산산이 부서질 위력이었다.


“굉장하네요. 이번 건 진짜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망치 아래에선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힘없이 질주하던 김성환은 한발 물러나 이를 갈며 말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겁니까?”


새하얀 한기가 걷히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조금의 흠집도 없이 멀쩡한 조두현과 거대한 얼음 망치를 온몸으로 막아 얼어붙고 깨진 각성자들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제각각 위력을 전부 뽑아내진 못했다고 해도 이 많은 수를 한 번에 얼려버리다니요. 도대체 하루아침에 그런 힘은 어디서 얻은 건가요? 아. 혹시 그쪽도 악마랑 손을 잡은 겁니까? 체격이 좋으시니까 서큐버스 쪽에서 관심을 보일 수도 있겠네요.”


비웃음을 섞어가며 조롱하는 목소리에 김성환의 입술에서 붉은 핏물이 터져 나왔다.


“아아.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벨프님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쪽도 꽤 강한 악마니까요.”


“······당신을 보니 악마랑 손을 잡는다는 소문이 괜히 퍼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이찬솔 얘기 말이죠? 설마 조무래기 하나가 뱉은 소문이 지금까지 떠돌고 있겠어요? 때마침 좋은 미끼가 던져졌길래 제가 떡밥을 조금 뿌려봤죠. 칠성처럼 큰 길드에 시선이 끌리면 활동하기도 편해지니까요.”


“저거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김성환의 등 뒤에 앉아 있던 정세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크하하하! 모든 건 그분들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리죠! 여기서 저를 죽인다고 끝날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없죠. 저는 그저 그분들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뿐입니다!”


조두현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소리치자 그의 몸과 남은 각성자들의 몸에서 짙은 마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웃음기 가득하던 조두현의 눈가가 차분하게 내리깔리더니 김성환을 향했다.


“인간 중에도 강한 인물이 참 많죠. 본래는 그것들 중 하나를 끌고 갈 때 써먹을 방법이었지만······. 당신이라면 충분할 것 같네요.”


“도, 도망쳐요!”


거뭇한 마기가 온 공간을 뒤덮기 시작하자 정세라의 다급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어, 어디로 -”


“일단 여기서 벗어나라고!”


“알겠습니다!”


얼음기둥을 뽑아내며 마기 속에서 벗어나려던 김성환의 등 뒤로 소름 끼칠 정도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어요.”


쿠구구구구구구!


그저 거뭇한 안개 정도로 공간을 메우던 마기가 점차 짙어지더니 이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벨프님을 위해서!”


그리고.


꾸국. 꾸구국.


“커허억······!”


공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성환과 정세라는 무언가에 짓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피를 토해내며 고통 섞인 신음을 뱉어냈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점점 희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김성환에게 들려온 웃음소리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세, 세라씨······. 죄송······합니다······.”


김성환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등허리에서 나무뿌리와도 같은 얼음줄기가 솟아나더니 이미 정신을 잃은 정세라의 몸에 휘감겨 마기로 휩싸인 공간의 바깥으로 밀어냈다.

마기의 공간 바깥으로 빠져나온 얼음줄기는 피투성이가 된 정세라를 바닥에 내던지듯 떨어뜨리더니 힘없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마기는 조금씩 그 부피를 줄여가더니 이내 조그마한 점처럼 작아지고, 이내 그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마기가 사라진 공간 속에는 조두현도, 수십의 각성자도, 김성환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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