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1,011
추천수 :
222
글자수 :
506,226

작성
23.07.24 23:55
조회
35
추천
0
글자
13쪽

역습(2)

DUMMY

시체로 가득한 건물 내부는 균열발생 초기의 모습을 연상케 만들었다. 아직 마력에 적응하지 못해 그저 처참히 학살당하던 때의 상황이 딱 이러했다.


굳이 상층으로 올라가 보진 않았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아데우스가 있었다면 시체가 널브러진 이곳과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아의 힘이 없어진 지금,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한고을은 물론이고, 함께 있었을 정지운도, 강석호와 이혁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더없이 희박하다. 그 모습을 지금 눈으로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1층 로비로 내려오자 협회의 헌터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몇몇 보였다. 그중 가장 앞선 조사팀 사이로 보이는 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이슬비씨.”


“이찬솔······씨.”


이쪽을 바라보는 이슬비의 표정엔 전보다 경계심이 짙어져 있었다.

출구 바깥으로 배가 불룩이 나온 박정우와 그새 몇 년은 더 늙은 듯 보이는 협회장 김범의 모습도 보였지만 우선은 협회의 시선을 구분 지어둘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선 협회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


“왜······이제야 오신 거예요?”


옅은 떨림이 느껴지는 이찬솔의 목소리에 이슬비는 입술을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이찬솔······.’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몰랐다고 하시진 않겠죠.”


추궁하듯 묻는 말에 고개까지 떨어졌다. 어떤 말이라도 나오길 잠시나마 기다리던 이찬솔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는 이슬비를 지나쳐 건물 밖을 향했다.


“찬솔씨.”


박정우가 먼저 이쪽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그 뒤로 보이는 김범은 고개를 가볍게 까닥거리기만 할 뿐, 그 외엔 어떠한 말도 없었다.


“우선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라······. 이유가 있었다는 거겠지.


박정우의 표정도 그저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는 걸 보니, 그보다 윗선에서 뭔가 지시가 있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박정우는 협회의 실무자들 중 실질적인 리더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녀석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현장에서 뛰는 인물들 대부분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녀석은 됐어. 문제는 뒤에 저 노인네겠지.’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박정우를 지나친 이찬솔은 챙겨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김범을 향했다.


“차, 찬솔씨!”


당황한 박정우가 이찬솔의 팔을 붙들자.


스르릉.


이찬솔은 검을 뽑아들고 박정우를 겨눴다. 자신의 목으로 갑자기 날아든 검날에 당황한 박정우가 양팔을 위로 든 채 한 걸음 뒤로 빠지자 이찬솔은 빼들었던 검을 거뒀다.


“내게 할 말이 많은가 보군요.”


김범의 목소리였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으로 박정우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고도 여유롭게 기다란 수염을 쓰는 모습이 몹시 불쾌하게만 보였다.


“왜 그랬어?”


“뭘 말인가요?”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왜 이제야 온 거야.”


김범은 하얗게 색이 바랜 수염을 천천히 쓸며 침음을 뱉었다.


“칠성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오지 않았냐고 묻는 건가요?”


“사람이 죽었어. 한둘이 아니라 수백이 죽었다고. 협회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는 거잖아!”


이찬솔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혀보려 소리쳤지만, 김범은 여전히 한결같은 표정을 보였다.


“허허. 정확히 아셔야죠. 협회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힘 없는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길드는 헌터 집단이고, 헌터는 민간인이 아닙니다. 헌터가 마물과 싸우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우리가 왜 길드를 도와야 합니까? 심지어 칠성에선 협회에게 지원요청 따윈 일절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뭐라고?”


그야말로 정론.

군인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었다면 누구를 탓하겠는가?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구했다는 점에 오히려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지원요청이라도 보냈었다면 조금은 탓할 이유가 생기겠지만, 칠성은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의 지원은 받지 않았다.


그저 도우러 오는 이들을 막지만 않았을 뿐이지.


“마물들이 혹시라도 민간인을 위협했다면 협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섰을 거예요. 하지만 철저히 칠성만을 노렸죠. 오히려 외부 개입을 차단하려는 것처럼 칠성만을 빙 둘러서 말입니다. 이건 오히려 우리가 묻고 싶군요. 어째서 칠성은 민간인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지원 한 번 요청하지 않은 겁니까? 뭐든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당신들의 오만한 생각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든 거 아닙니까?”


쐐애액!


파바바밧!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한 이찬솔의 검이 김범을 향했다. 그러자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협회의 헌터들이 단숨에 몰려들어 검을 받아치고, 이찬솔을 붙들었다.


쾅!


하지만 고작해야 헌터 몇 명. 이찬솔은 이미 어중간한 헌터 몇 명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검의 넓적한 면에 때려 맞은 여섯의 헌터가 단숨에 피를 쏟으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고작 일 년인가요. 실력이 많이 늘었군요.”


간신히 분노를 삭인 검이 김범의 목덜미에 옅은 상처만을 낸 채 멈춰 섰다.

김범과 이찬솔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사막의 균열에서 미우트를 처치하고 나왔을 때였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그땐 갓난아이에 불과한 수준이다. 때문인지 이번만큼은 김범도 당황한 기색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너희한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대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짓에 방해라도 했다간 모조리 죽여 버릴 거니까 그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가 마치 마력처럼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악마······.”


사람이 느껴야 할 감정이 기운으로 형상화된 듯 뿜어지자 분명 지금껏 봐왔던 마기라는 것에 가까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외부에서 얻은 마기가 아닌, 몸속 깊은 곳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기였다.


“이젠 악마와 연관 돼 있다는 걸 숨길 필요도 없다는 겁니까? 그저 강함만 쫓아 이런 악마를 숨겨둔 것만 봐도 칠성이 돌아가는 꼴은 아주 잘 알겠군요.”


조금은 당황한 듯 보이던 김범의 표정은 어느새 처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이찬솔과 김범, 그리고 박정우를 중심으로 협회의 사람들과 함께 뒤늦은 지원을 나선 길드들이 속속히 모여들어 이찬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직접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던 이찬솔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던 분노를 차분히 가라앉혔다. 방출되던 마기가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정돈된 마기가 주위 공간을 싸늘하게 뒤덮었다.

어떤 이는 추위라도 타는지 손으로 자신의 팔뚝을 쓸었고, 어떤 이는 벌레라도 씹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기를 느낀 사람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지만, 하나같이 공간을 뒤덮은 마기 속에서 벗어나려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방금 말했는데. 방해하면 죽인다고.”


이찬솔이 높이 쳐든 검날이 허공에서 번뜩이더니 김범의 목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날아들었다. 아주 잠시였다. 정말 아주 잠시나마 그대로 녀석의 목을 내려치길 바랐다.


그래도······.


‘정신 차려!’


내 목소리에 날아들던 이찬솔의 검이 아주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뿐, 이미 김범의 목을 날리겠다 생각한 녀석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카강! 파앙!


어디선가 날아든 랜스가 검날을 받아치더니 새하얀 광채를 뿜어냈다. 갑자기 끼어든 반격에 거리를 벌린 이찬솔은 커다란 랜스가 날아든 곳을 노려봤다.

웬만한 남성의 몸체만큼이나 두껍고 기다란 원뿔형의 랜스를 오른손에 쥐고, 그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체를 모조리 가릴 만큼 커다란 오각의 방패를 왼팔에 착용한 여자. 온통 새하얀 광채로 번뜩이는 무구를 두른 그 여자가 이쪽을 향해 방패를 치켜들고 랜스를 겨눴다.


“또 방해를······.”


‘잠깐. 이찬솔!’


그 여자를 김범의 끄나풀정도로 판단한 이찬솔은 마기와 함께 검광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쐐애액!


그러자 이번엔 거울과도 같이 투명한 새 한 마리가 한기를 뿜으며 날아들었다.


콰아앙!


날카로운 부리를 들이밀며 날아든 새를 검으로 받아내자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한기와 함께 미세한 얼음파편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검풍을 이용해 날아드는 얼음파편을 받아친 이찬솔은 그제야 멈춰 서서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멈추라고, 멍청한 새끼야!’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벨프와의 전투에서 얻은 마기 탓에 수시로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이찬솔과 내가 정신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한쪽은 이 분노에 집어삼켜졌을 지도 모른다. 이런 분노가 시도 때도 없이 뿜어져 나온다면 제 정신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녀석들도 결국 이 분노를 받아들여 악마가 된 거라면······.


······내가 악마를 이해하는 날이 올 줄이야.


뿜어지는 마기 속에 내 마력을 쑤셔 넣자 묘하게 섞여들더니 깊은 곳부터 뿜어져 나오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졌다.

그 사이, 느낌만으로도 피부가 오돌토돌하게 돋아날 만큼 서린 마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속에서 얼음으로 조형된 새 수십 마리가 퍼져 나와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남자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


하얗게 기른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묶고, 눈을 희번덕거리는 남자가 무언가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불어를 배워본 적도 없는 나와 이찬솔에겐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녀석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귀찮다는 듯 허공에 손을 휘휘 젓고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스승님. 저 녀석들은 뭐예요?”


‘저기 인상 더러운 녀석은 마르크. 방패 든 여자는 아일라. 러시아랑 미국의 S급이야. 한국에만 연속해서 악마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은 거겠지.’


“다른 나라의 S급들······.”


이찬솔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주던 중, 아일라의 옆으로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스승님! 균열이!”


‘가만히 있어. 저건 아니야.’


“······예?”


흔히 아는 것과 다르게 녹빛이 흐르는 균열. 그 균열은 천천히 벌어지더니 속에서 또 다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뼈가 다 드러날 만큼 마른 중년의 남자는 균열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유유히 주변을 살폈다.


“저 사람도 S급······.”


‘아니.’


주변을 살피던 남자는 이쪽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고는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그러자 그 뒤로 또 다른 남자가 튀어나와 벌벌 떠는 남자의 엉덩이를 걷어차 이쪽으로 밀어냈다.

이찬솔과 S급들이 대치한 중심으로 나가떨어진 남자는 불쌍할 정도로 몸을 떨어댔다. 당장 정신을 잃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닥에 몸을 착 붙이고 꿋꿋이 기어 근처까지 다가온 남자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마력을 흘렸다.

남자를 경계하던 이찬솔이 검을 틀어 겨눴지만, 내게서 조금의 경계도 느끼지 못했는지 이내 그 마력을 받아들였다.


“위, 위험한 거 아닙니다! 사, 살려만 주십쇼!”


마력이 귓속으로 스며들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오는 언어는 달랐지만, 그 모든 뜻이 머릿속에 전해지는 감각이었다. 할 일을 마친 남자가 바닥을 기며 쏜살같이 돌아가자 바닥에 주저앉았던 남자, 마르크가 일어나서 소리쳤다.


“어이, 반역자! 이제 좀 알아듣겠냐?”


저 건방진 말투와 천박한 목소리.


“한국 같은 촌구석에 뭔 악마가 이렇게 자주 들락거리나 했다. 내가 여기서 죽여줄 테니까 빨리 덤비라고!”


내가 S급이었던 그 시절. 별다른 접점도 없었으면서 저 혼자 승부라며 한국까지 찾아와 귀찮게 덤벼들던 녀석이었다.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상대해주지 않으면 한국의 민간인들을 상대로 마력을 뿜어내던 녀석이라 올 때마다 반병신을 만들어 돌려보내곤 했다.


‘저런 건 상대하지 마. 귀찮아지니까. 각국의 판단은 아일라한테 들으면 될 거야.’


마르크를 가만히 주시하던 이찬솔이 시선을 돌려 아일라를 주시하자, 하늘을 비행하던 얼음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쾅!


마찬가지로 이찬솔이 검을 휘둘러 받아치자 다시 마르크의 천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무시하지 마. 어차피 넌 여기서 죽여 버릴 생각이니까.”


녀석의 도발적인 목소리에 이찬솔의 검날에서 희푸른 마력이 연기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자 주변의 공기가 더없이 무겁게 내리깔려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및 연재주기/시간 변경 공지 23.06.27 24 0 -
공지 연재시간 18시 05분입니다. 23.05.11 79 0 -
84 환상(3) 23.08.14 10 0 13쪽
83 환상(2) 23.08.11 14 0 13쪽
82 환상(1) 23.08.10 19 0 12쪽
81 역습의 시작(3) 23.08.09 24 1 14쪽
80 역습의 시작(2) 23.08.08 21 1 12쪽
79 역습의 시작(1) 23.08.07 21 1 13쪽
78 공격대(5) 23.08.04 21 1 12쪽
77 공격대(4) 23.08.03 23 1 12쪽
76 공격대(3) 23.08.02 25 1 14쪽
75 공격대(2) 23.08.01 28 1 14쪽
74 공격댸(1) 23.07.31 30 1 12쪽
73 배신(3) 23.07.28 39 1 13쪽
72 배신(2) 23.07.27 35 0 13쪽
71 배신(1) 23.07.27 39 0 15쪽
70 역습(3) 23.07.25 33 0 14쪽
» 역습(2) 23.07.24 36 0 13쪽
68 역습(1) 23.07.20 38 0 14쪽
67 분노(7) 23.07.19 39 0 12쪽
66 분노(6) 23.07.18 43 0 12쪽
65 분노(5) 23.07.17 40 0 14쪽
64 분노(4) 23.07.14 44 0 13쪽
63 분노(3) 23.07.13 46 0 13쪽
62 분노(2) 23.07.11 51 1 13쪽
61 분노(1) 23.07.10 51 0 14쪽
60 마기(5) 23.07.07 52 1 12쪽
59 마기(4) 23.07.06 60 1 12쪽
58 마기(3) 23.07.05 56 1 12쪽
57 마기(2) 23.07.04 60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