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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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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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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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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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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공격대(5)

DUMMY

“끄응······.”


‘이제야 정신이 좀 들어?’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슬며시 눈을 뜬 이찬솔은 잠시 멍하니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잠들기 전과 비교하자면 더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얼룩진 핏자국이 끔찍했던 날을 되새겨주고 있었다.


“저 얼마나 잠든 거예요?”


‘아마 이틀?’


“이틀이요?”


이찬솔이 잠들어있는 동안에도 주변의 소음이나, 기척 정도는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은 얼핏 가늠할 수 있다. 뜨거운 균열 속에서 벨프에게서 벗어난 건 물론이고, 두 S급과의 전투도 모자라 악마 추종자들과의 전투까지 벌였으니, 며칠이 지났건 멀쩡히 눈을 떴다는 게 기특할 정도다.


“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지?”


하지만 정작 이찬솔은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헐레벌떡 일어나 잠들어 있었던 병실을 빠져나왔다.


“으악!”


“다미씨?”


이찬솔이 문을 열자 때마침 병실로 들어서려던 박다미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깜짝 놀랐잖아요! 갑자기 열면 어떡해요!”


“미안해요. 그보다 별 일 없었어요? 악마가 쳐들어오진 않았나요? 아니면 최지환 헌터님이 갑자기 난동을 부렸다던가······엑!”


눈을 뜨자마자 주변 상황부터 살피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박다미는 뾰로통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물수건을 주워 이찬솔의 머리에 얹어버렸다. 일부러 축축하게 적신 물수건에서 흐른 물이 얼굴을 타고 내렸다.


“무슨 전투광도 아니고······. 몸이나 챙겨요. 힘들게 의사 선생님 불러왔더니 괜히 나만 혼났잖아. 몸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진짜.”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는 박다미의 말투에 그제야 자신의 몸을 훑어보기 시작한 이찬솔은 잠들기 전보다 깔끔해진 걸 알아채고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하하······.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하여간. 멀쩡하면 나와서 밥이나 먹어요.”


툴툴거리며 돌아선 박다미의 뒤로 따라붙은 이찬솔이 로비로 내려오자 분주히 움직이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이쪽을 향했다.


“찬솔씨!”


가장먼저 반갑게 맞이한 건 역시나 김성환이었다. 그 외에도 이혁, 한고을, 정세라의 모습이 보였다.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서 걱정했습니다. 지금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 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헌터님.”


이찬솔의 대답에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김성환이 슬며시 말했다.


“호칭 말입니다만, 이젠 편하게 불러줘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헌터님이라는 건 뭐랄까······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사인데 말입니다. 하하!”


“아. 그럼······성환씨?”


이어진 대답을 피식하며 웃어넘긴 김성환은 도시락이 쌓인 곳으로 이찬솔의 등을 떠밀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십쇼. 도시락뿐이지만 양은 충분할 겁니다.”


나름 멀쩡하게 남은 테이블과 의자를 로비 한가운데에 아무렇게나 배치해 식탁대용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꽤 잘 나가던 칠성의 길드원들이라기엔 조금 초라하게도 보였다.

한고을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밥알을 입속에 밀어 넣은 이찬솔은 함께 앉은 김성환에게 궁금한 것들을 슬쩍 묻기 시작했다.

아일라와 마르크는 이찬솔이 했던 말과 최지환의 부탁에 따라 세계 대표 헌터들의 지원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해외로 떠났다고 한다. 두 녀석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던 점에서 악마 추종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준 타이밍은 꽤 적절했던 것 같다.

진성태와 고상원은 악마에 대적할 준비를 위해 화랑으로 돌아갔다. 모든 길드원의 지원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굳이 강압적으로 끌어들이진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헌터가 된 이상 악마와 맞서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그 일이 당장 현실로 다가온 현재엔 목숨을 내던질 이가 많지 않을 거란 걸 이미 예상하고 있다는 말이다.


“길드장님은 어디 있어요?”


“아, 그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진척된 상황을 막힘없이 말해주던 김성환이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함께 식사를 이어가던 일행들의 시선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태가 영 이상해.”


모두가 말을 아끼려는 와중에 한고을이 대답했다.


“상태가 왜요?”


“칠성을 해체한대.”


“뭐라고요?”


뜬금없는 농담으로 웃어넘기기엔 다른 일행들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또 피곤하게 만드네. 이 빌어먹을 자식이.


강한 힘과는 별개로 최지환은 멘탈이 썩 좋지 않다. 덕분에 나와 지아가 항상 옆을 지키며 녀석의 멘탈을 지켜줘야 했을 정도다. 그런 녀석이 나와 지아는 물론이고, 길드원까지 단숨에 잃었으니 멘탈을 잡고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어디 있는데요?”


“몰라.”


“네?”


“모른다고. 그 말만 하고 사라졌어. 투덜이가 따라가긴 했는데 그건 별 쓸모없으니까 알 방법이 없지.”


“고을아. 아무리 그래도 투덜이가 뭐냐.”


얌전히 식사를 이어가던 이혁이 나긋하게 말했다.


“칠성 해체라잖아. 뭔 상관.”


“녀석아. 소속을 떠나서 예의는 챙겨야지.”


“잔소리는.”


이혁과 한고을의 대화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찬솔이 슬쩍 말했다.


“투덜이가 누구예요?”


“아. 강석호 헌터님 얘기입니다. 연구팀장님과 강석호 헌터님은 개와 원숭이 같은 사이입니다.”


“누가 개 같다고?”


“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성격 때문이지. 강석호는 제멋대로 구는 거 가만히 못 보거든.’


“하긴······둘이 대화할 거 상상만 해도 착잡하네요.”


“말에 뼈가 있다?”


“그냥 그렇다고요.”


한고을이 이를 갈며 이쪽을 노려보자 이찬솔은 휙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럼 이참에 정하면 되겠네.’


그 녀석이라면 어디 뒤뜰이라도 가서 검이나 휘두르고 있을 게 뻔하다. 어차피 떼어놓고 가야 될 녀석이 모습을 감췄다면 오히려 이 틈에 서두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우선 내가 아는 선에서 남은 악마는 칼트, 아데우스, 바알, 벨프, 넷이야. 벨프는 그 자리에서 죽었기를 바라야 되지만, 혹시 그렇지 않아도 당장 움직일 순 없을 거야. 그리고 내 기억엔 없지만 네가 기억하는 악마까지 총 다섯.’


“다섯······.”


습관적으로 내 말에 반응하려던 이찬솔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공격대는 둘로 나눌 거야. 우선 너를 포함해서 정세라, 박다미. 셋이서 아데우스를 친다. 연락조는 화랑에 맡기고, 나머지는 혹시 모를 역습에 대비할 겸, 지원조로 여기에 남을 거야.’


총 다섯의 악마.

마주한 적 없던 빛의 악마를 제외한다면, 칼트보다 뛰어난 무력을 지닌 악마는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칼트가 직접적으로 인간을 핍박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변수가 생기지 않길 바라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미뤄 최대한 성장했을 때 상대해야 한다.


내 이야기를 듣던 이찬솔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모인 일행들에게 계획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 그때 봤던 악마랑 싸우라고요?”


이찬솔의 계획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일행들 사이로, 박다미의 당황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여기 강한 사람들이 이렇게 널렸는데 제가 거길 왜 껴요! 오히려 연락조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게 낫죠!”


“하지만 다미씨도 보셨지 않습니까. 제가 눈을 떼자마자 얼어붙었던 모습 말입니다.”


박다미의 말에 끼어든 건 김성환이었다. 고작 아데우스에게서 눈을 피한 것만으로 온몸이 얼어붙었던 김성환은 그 경험을 떠올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행히 아데우스가 먼저 물러선 덕분에 냉각은 금세 풀렸지만, 녀석이 만든 조건을 모조리 지켜가며 상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김성환보다 잘 아는 이는 없을 거다.


“맞다! 아일라씨도 있잖아요! 여자면서 S급이면 최고 아니에요?”


‘그건 안 돼.’


“그건 안 돼요.”


남자를 배제한 공격대로 아데우스를 상대하고, 아일라와 마르크를 포함한 S급들을 이용해 바알을 처리한다. 아일라를 아데우스 쪽에 배치하고 싶지만, 바알을 상대하기 위해 신성 효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공략이 복잡한 아데우스를 잡아내기에 설명만으로 벅차다는 점, 무엇보다 아일라의 신성력이 이찬솔에게 독약이라는 점을 고려해 결정한 멤버다.


“하지만······.”


쾅!


지레 겁먹은 박다미의 모습을 언짢게 쳐다보던 한고을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쫑알쫑알 말 많네, 진짜. 그럴 거면 그냥 빠지던가.”


한고을의 한 마디에 입을 꾹 다문 박다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찬솔이 조심스레 말했다.


“다미씨만큼 저랑 합을 맞춰본 버퍼가 없어서 그래요. 다미씨 스킬이면 몸이 엄청 가벼워져서 싸우기 편하거든요. 그리고 방금 생각났는데, 한 명 더 있어요. 전투에 익숙한 사람이니까 분명 도움될 거예요.”


박다미를 달래듯 차분히 말하던 이찬솔은 고개를 휙 돌려 한고을을 향해 찌릿한 시선을 보냈다.


“이쯤 됐으면 한고을씨도 계약서 파기해줄 거고요. 그렇죠?”


“뭐어? 그걸 내가 왜 -”


“내 각성의 돌.”


불만으로 가득하던 한고을이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한참 전에 세간을 뒤집었어야 할 소식이 아직도 들려오질 않더라고요. 도대체 제가 가져다 준 각성의 돌은 어디로 갔을까요?”


“어, 어차피 그거 나 주기로 한 거였잖아!”


“하나 더.”


“뭐?”


한고을의 반응은 예상했다는 듯 이찬솔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나 더 구해줄게요. 꽤 괜찮은 조건이죠?”


그러자 한고을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크흠. 어차피 도둑고양이 정도야 다시 구하면 되니까.”


“와······.”


“······진짜 물건이네.”


인벤토리에서 꺼낸 영혼 계약서를 서슴없이 건네 오는 한고을의 모습에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찬솔은 한고을에게서 받은 영혼 계약서를 망설임 없이 박다미에게 건넸다.


“많이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당연히 겁 날 수 있는 일이고요. 하지만 다미씨의 힘이 꼭 필요해요. 걱정할 일 없도록 제가 모두 지킨다고 약속할게요.”


울상이 된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린 박다미는 잠시 이쪽을 빤히 바라보더니 영혼 계약서를 거칠게 낚아채고서 자리를 벗어났다.


이거 분위기가 좀······.


“이야. 역시 멋지십니다.”


“나도 반하겠는데?”


“물건이야, 물건. 진짜 대단한 물건이 나타났어.”


설득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한숨 돌리던 이찬솔에게로 조롱 섞인 말들이 여럿 날아들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이찬솔이 얼굴을 붉혔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찬솔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저 상황이 즐겁다는 듯 웃는 일행들의 모습이 조금 가엾게 느껴진다. 여기 모인 일행들은 칠성과 함께 목숨을 걸었던 녀석들이다. 분명 길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을 터.

칠성의 부길드장이자, 또 한 명의 길드원으로서,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들겠다며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열흘 뒤.

악마의 습격으로 칠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도심지의 거리는 여전히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다.


“출발할게요.”


무장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무리가 뒤섞인 보라매공원. 그곳에 덩그러니 뚫린 균열 앞에 선 이찬솔과 그 뒤를 이은 세 명의 헌터들이 걸음을 디뎠다.

최근, 악마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자 사람들의 관심은 녀석들을 토벌하기 위해 형성된 공격대로 쏠렸다.


-겨우 D급이라며?


-악마가 악마를?


-괜히 우리만 피해보는 거 아니야?


힘이 쭉 빠질 정도로 부정적인 소문만이 무성한 공격대는 그렇게 균열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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