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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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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1,028
추천수 :
222
글자수 :
50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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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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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환상(1)

DUMMY

“끄으응······.”


빛이라곤 전혀 들지 않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울렸다.


“차, 찬솔씨?”


어둠 속에서 불안에 찬 박다미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그저 그녀의 목소리만 메아리치듯 울려 퍼질 뿐이었다.


“세라씨! 한나씨!”


함께 왔던 일행들을 애타게 불러 봐도 역시나 같은 반응.

밟고 있던 발판에 집어삼켜져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 속에 갇혀버린 박다미는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그, 그냥 어두운 거야. 출구만 찾으면······.”


쉬이이이.


스스로를 위안하는 목소리와 함께 잔잔한 바람이 주변을 스치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이내 마력이 담긴 바람결이 어둠 가득한 공간을 메우자, 박다미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바람을 다루는 D급 헌터, 박다미.

공기가 흐르는 곳이라면 이런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것쯤은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차례고 벽을 짚어가며 서슴없이 걸음을 옮기던 박다미의 손에 간신히 문고리가 잡혀들었다.


끼리릭.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소리까지도 등골을 자극할 정도로 소름 끼치게 느껴졌지만, 박다미는 애써 겁나지 않은 척 콧소리를 흘려가며 열린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밖 또한 여전히 어두웠지만, 희미하게나마 공간의 형태는 보일 정도였다. 잃었던 시야를 조금이라도 되찾았다는 안도감에 옅은 한숨을 뱉어낸 박다미는 그제야 제 실력을 조금 더 확실히 발휘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박다미가 마력을 터뜨리자 근처에 누군가 있었다면 꽤 거세게 느꼈을 만한 바람이 단숨에 퍼져 나갔다. 평소라면 바람을 타고 흐르는 마력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감았을 눈도 이런 공간에선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이리저리 눈을 굴려가며 바람이 빠져나가는 공간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찾았다.”


금세 바람이 흐르는 방향을 잡아낸 박다미는 평소보다도 빠른 걸음을 옮겨나갔다.

하지만.


“······어?”


그 걸음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막힘없이 흐르던 바람을 따라 걷던 박다미의 앞을 희미한 무언가의 형체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바람의 흐름 속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바닥에서 솟아난 게 아닌 이상. 아니, 그 중 하나라도 흐름에 움직임이 잡혀야 했다. 하지만 눈앞을 막아선 형체는 정말 한 순간에 앞에 생겨난 수준이었다.


“그르르르······.”


그리고 들려오는 위협적인 숨소리.

태생적으로 겁이 많았던 박다미에게 사실 헌터라는 직업이 어울린다고 보긴 힘들지만, 하루에도 수없는 헌터가 죽어나가는 균열 속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방대한 마력과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전투센스.


“으아악!”


순간적으로 마력을 쏘아낸 박다미는 출구를 향해 흐르던 바람이 아닌, 틈새를 비집고 흐르는 바람을 찾아 또 다른 방 안으로 들어섰다.

외부로 뚫린 천장과 천장을 막아둔 유리창. 성채에 가려지긴 했어도 그 창으로 들어온 달빛은 이곳에서 본 어디보다도 밝게만 느껴졌다.


“이찬솔 진짜 때려줄 거야······.”


비교적 밝아진 분위기에 조금은 두려움을 떨쳐낸 박다미는 마력을 가다듬어 닫힌 문을 겨눴다. 화살촉과도 같은 십여 개의 마력뭉치가 그녀의 주위를 감싼 지 약 1분. 이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슬며시 열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동시에 날아든 마력들이 문밖으로 들어서는 형체와 함께 나무와 철제를 이어 만들어진 문까지 모조리 박살냈다.

그렇잖아도 어두운 방 안으로 흩날리던 먼지가 점차 사그라지자 박살나 뻥 뚫린 문만이 덩그러니 드러났다. 박살난 문의 파편이 어질러진 바닥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 제대로 된 방어를 갖추지 못했다면 성한 곳이 없어야 할 공격에도 그곳엔 희미하게 보였던 형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후.”


조금 전까지 겁에 질렸던 사람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호흡을 뱉어낸 박다미는 사각의 방 안을 모조리 자신의 마력으로 메웠다.

역시나 바람에 잡히지 않는 기척. 하지만 녀석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 바람의 길이 가로막히는 걸 느꼈던 박다미는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기척이 느껴지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속박? 아니, 일격.’


박다미의 의지에 따라 방 안을 흐르는 바람결이 미묘하게 뒤틀려갔다. 흐름을 바꾸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묘한 변화. 그것은 박다미에게 있어서 적에게 맞는 무구를 고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스르륵.


그리고 이내 모습을 감췄던 형체가 박다미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방 안은 이미 박다미의 공간.


쉬릭. 쉬리릭!


흩어졌던 안개가 모여드는 것처럼 눈을 가린 여성의 형체가 형상화됨과 동시에 날카로운 바람결이 녀석의 몸을 난폭하게 찢어발겼다.


“크캭! 크르륵!”


일반적인 마물의 비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간이 낼만한 비명은 더더욱 아니었다. 마치 물속에서 소리치는 진동과도 같은 비명. 재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난 박다미는 그런 녀석을 찢어발기는 바람에 더해 또다시 화살촉과 같은 마력을 일제히 쏘아댔다.

작은 폭풍 속으로 날카롭게 날아드는 바람결이 가차 없이 몸을 찢어발기자 녀석은 더 이상 어떠한 비명도 내뱉지 못하고 처참하게 으스러져만 갔다.

혹여 상대가 악마였다 해도 별다른 태세를 갖추지 못한 채 받아냈다면 멀쩡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들 정도로 위력적이던 공격이 차츰 사그라지자 폭풍 속에 갇혀 마음대로 쓰러지지도 못하던 녀석이 바닥을 뒹굴었다.


“제발. 일어나지 마라, 제발.”


정작 꽤나 각 잡힌 공격을 퍼부었던 박다미는 쓰러진 적을 향해 소소한 마력을 계속해서 던져대고 있었다.


파스스스.


“어?”


끝내 바닥을 뒹굴던 녀석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검은 안개처럼 흩어지자 그제야 공격을 멈춘 박다미는 목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녀석이 확실히 죽었는지를 살폈다.


“뭐야······. 별 거 아니었잖아?”


그저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는 점에 지레 겁을 먹고 상대와의 가늠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박다미는 김이 새도록 압도적인 격차에 안심하고서 부서져 뚫린 문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때.


“그래. 어서 가.”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박다미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완벽하게 일치하는 높낮이와 감정.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


“······엄마?”


저도 모르게 돌린 시야로 10년 전, 마물의 침공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가. 가서 살아.”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던 벌레와도 같은 마물들에게 제 몸을 미끼로 던지고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던 그 모습이 박다미의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엄마······.”


물론 박다미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저 환상이었고,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라우마라는 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부정하려 들게 되기 마련. 그저 환상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살아있는 어머니를 버리고 떠날 그릇이 되지 못했다.


“엄마, 미안해. 다훈이······. 다훈이가······.”


“누나······.”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 방울씩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어머니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눈앞에 펼쳐졌던 형상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등 뒤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박다미의 얼굴을 닮은 소년.


“다훈아······.”


균열로 일던 혼란이 가라앉는데 걸린 시간은 5년. 그 무렵 이미 각성자들에게서 돈 냄새를 맡은 장사꾼들은 제각각 길드를 창설해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하나, 혼란이 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은 각성과 동시에 제대로 된 규제가 정해지지 않은 길드로 팔려나갔고, 그게 아니라면 길거리를 전전하며 도둑질을 일삼았다.

박다미 또한 길거리에 내몰린 아이들 중 하나였고, 심지어 각성조차 하지 못한 동생까지 보살펴야 했다.


“누나, 미안. 내가 폐급이라 힘들었지?”


한고을에게 잘못 걸려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지만, 길거리를 전전하던 때와 비교하자면 전혀 나쁠 것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심지어 부려먹기 편해야 한다며 한고을이 잡아준 숙소까지 있었으니, 동생을 걱정할 일도 줄었다.

하지만 사고는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에 터지는 법.

박다미가 균열로 들어선 사이, 동생이 묵고 있던 숙소 근처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아직 각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던 동생은 싸늘한 시신으로 남았다.

그 시절 동생의 나이는 고작 열넷. 누나가 되어 동생 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다훈아, 누나가 미안해.”


“누난 바람요정이잖아. 요정은 안 울어.”


하지만 정작 지켜내지 못했다 생각했던 동생은 환상에서마저도 앳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다훈아······. 엄마······.”


가장 취약한 트라우마를 끌어올리는 정신공격. 이 시대의 누구나 그렇듯, 박다미는 마물들에게 잃었던 가족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찬······솔씨?”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이찬솔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건, 이찬솔이 치켜든 검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쐐액!


“꺅!”


눈앞에 펼쳐졌던 환상 속에서 아직 제 정신을 되찾지 못해, 이찬솔이 나타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휘둘러진 검이 그녀의 볼가를 스쳤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쳐 이찬솔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볼가에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찬솔씨!”


상처를 입었다는 건, 최소한 눈앞의 이찬솔이 허상은 아니라는 것.


쐐액!


“꺄악!”


하지만 진심으로 죽일 듯 검을 휘두르는 이찬솔의 모습은 오히려 조금 전 가족의 모습보다 현실감이 없었다.


“혹시 고통도 환상이고, 피도 환상이면······. 아니, 근데 저게 환상이라고? 아. 매혹 당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균열로 들어서기 전, 이찬솔에게 들었던 아데우스와 그 수하들의 능력은 온갖 디버프와 정신공격으로 가득했다.


“근데 저게 매혹 당한 거면······죽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니,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도 -”


쐐액! 카가각!


“흐익!”


조금 전에 당했던 정신공격이 트라우마를 허상으로 일으킬 정도의 힘을 가졌다곤 해도,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면에서 날아든 이찬솔의 검으로 벽면에 선이 그어질 정도면 이미 환상의 수준을 벗어났다고 봐야 했다.

생각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달려든 이찬솔 탓에 바닥을 구르던 박다미는 어느새 방구석에 몰려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아, 안 돼······. 가, 가까이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쐐액!


쉬이이이익!


구석에 몰린 박다미를 향해 이찬솔이 달려드는 순간, 세찬 바람이 일며 검과 함께 그의 몸뚱어리를 처참히 날려버렸다.


우선 중요한 건 생존.

그런 생각에 미치자 박다미에게서 마력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 홀리기나 하고······.”


눈앞의 이찬솔이 단순히 매혹에 걸렸다 해도 죽지만 않을 정도로 패주는 건 괜찮을 거다, 라고 판단한 박다미는 터져 나온 마력을 살벌하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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