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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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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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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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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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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2)

DUMMY

건물이 무너질 듯 터져 나오는 폭음에 칠성 사옥의 1층 로비는 혼비백산이 되어 있었다.

벽면의 콘크리트는 금방 떨어져 내려도 이상할 것 없이 커다란 금이 쩌적 갈라졌고, 대부분의 유리창은 이미 깨져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실력깨나 있는 각성자들이 대부분인 칠성엔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규칙은 깨지지 않고 있었다.


“빨리 좀 나가봐!”


“앞에서 안 간다고! 밀지 좀 마!”


하지만 이상하게 로비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질 듯 휘청거리는 상황에도 그곳에서 멀어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점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앞사람을 밀어가며 어떻게든 건물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써대다가도 정작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 마찬가지로 걸음을 멈추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앞에 무슨 일 있어?”


로비에서 추가적인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팀원들의 능력을 이용해 건물을 지탱하고, 사람들을 건물 밖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던 경호팀장, 박광필은 멈춰 선 사람들로 꽉 막힌 입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 티, 팀장님······.”


하지만 대답은 박광철의 목소리를 들은 팀원들이 아닌, 무전기에서 새어나왔다.


‘티, 팀장님! 사옥 주위로 균열 발생입니다!’


“균열? 균열 한두 번 보냐, 이 새끼야? 들어오는 마물은 쳐내고 일단 사람들부터 안전하게 대피시켜야지,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그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건물을 둘러쌀 정도로 많습니다!’


“뭐?”


무전으로 들려온 말에 잠시 주위를 살피던 박광철은 냅다 건물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애초에 벽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통과한 그는 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균열.


새로 발생되는 균열들은 길드와 협회의 조사를 통해 그 급이 매겨진다. 그럼 일개 각성자들은 생활을 위해서, 혹은 성장을 위해서 등급이 매겨진 균열을 공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정해진 규칙.


정보가 없는 균열엔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지정된 S급, 혹은 A급의 헌터들만이 들어설 수 있는 신규 균열.


지금 박광철의 눈앞엔 그런 균열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이거야, 원.”


박광철은 B급 헌터로 칠성의 경호팀장 자리를 맡고 있었다. A급 균열 공격대에 들어간 적도 있어, 나름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로 이어붙인 듯 길게 늘어선 수십 개의 균열을 보고 있자니 지금껏 자랑스럽게 여기던 자신의 실력이 부질없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직까진 균열만 발생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균열 속에서 고블린이나 스켈레톤 같은 하급 마물만 떼거지로 나온다 해도 홀로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쿵.


“조졌네.”


그리고 그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다는 듯 균열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양날도끼를 든 거대한 고블린.

에메랄드처럼 녹색으로 빛나는 몸을 가진 골렘.

단단한 비늘로 덮인 리저드맨.

머리만 한 수정이 달린 지팡이를 든 스켈레톤.


일개 각성자들이 잡아내기엔 하나하나로도 꽤 강력한 마물들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균열 속에서 걸어 나오는 마물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팀장님.”


마물들이 끝도 없이 걸어 나오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박광철의 옆으로 경호팀의 이민식이 다가왔다.


“10년 전을 보는 것 같구만. 안 그래?”


“그러게 말입니다. 군데군데 발생했던 균열이 여기에만 전부 몰린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요.”


“길드장님은?”


“때마침 부길드장님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홍지아님을 모시러 가고 계십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박광철은 인벤토리에서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민간인들은 다시 건물 안으로 유도하고, 봉쇄팀은 내부에서 건물 지지, 전투팀은 당장 밖으로 튀어나오라고 전해. 이혁님께 지원 요청하고. 그동안은 내가 막고 있겠다.”


“하지만······.”


박광철의 지시를 들은 이민식은 균열 속에서 나오는 마물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경호팀장으로서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보이는 것만 수백에 달하는 마물을 잠시나마 홀로 감당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광철의 눈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네 행동이 늦어질수록 내가 위험해진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수백의 마물을 향해 홀로 뛰어드는 박광철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이민식은 이내 고개를 돌려 로비를 향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사옥으로 들어서는 그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 *


칠흑에 갇힌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해봤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겪어보지 못했기에 이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죽음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조금 전까지 내 정신이 있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고, 그저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도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칠흑 속에서 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족의 원수.

-네가 죽였어.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난 쓰레기야.

-네 욕심 때문에 또 누가 죽는지 봐.


‘다 죽여 버리겠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칠흑 속에서 그저 드는 생각이라곤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치 몸을 잃고 오로지 감정의 끄나풀만을 붙든 채 남아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칠흑 속에서 희미한 빛이 아주 작게 발광(發光)했다.


‘눈······?’


푸른 결정과도 같은 빛은 집중할수록 점점 그 빛을 선명하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은 빛.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육체를 잃은지 이미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뻗는 손에 감각은 분명했고, 팔과 어깨를 이은 뼈마디와 자잘한 근육의 감각까지 확실히 전해져왔다.

얇고 긴 손가락. 하얀 피부. 분명 아름다웠을 손에 박인 굳은살과 수많은 흉터들.


‘이건······.’


손부터 시작된 몸의 감각이 팔을 타고, 어깨를 넘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 느껴지는 감각은 나의 것도 아니고, 이찬솔의 것도 아닌, 또 다른 무언가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몸을 움직여 새하얀 빛을 움켜쥐자 주먹 안에 눈처럼 차가운 촉감이 선명하게 전해왔다.

그리고 빛을 쥔 손을 천천히 펼치자.


솨아아악.


칠흑으로 가득하던 온 사방에 새하얀 빛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빛에 두 손으로 가렸던 눈을 천천히 뜨자 눈 덮인 나무와 얼어붙은 계곡, 차가운 공기와 다르게 따스한 햇살아래 나무판자를 엮어 만든 작은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한 소녀가 밝은 미소를 지은 채 머리위로 번쩍 든 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빠, 빨리, 와아!


어눌한 말투로 반갑게 맞이하는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정상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느낌은 좀 다르네.’


정상윤의 말이 허리를 뚝뚝 끊어먹는 느낌이라면, 소녀는 말이라는 것 자체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소녀의 손짓에 따라 오두막을 향해 천천히 발을 디뎠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찰그락거리며 몸에 걸친 쇠붙이가 부딪히고,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을 두른 쇠붙이가 거치적거릴 법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무게감이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배, 배고파아.


초등학생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과 작은 키. 허벅지까지 떨어지는 새하얀 머리카락. 새하야면서도 푸른빛이 감도는 창백한 피부.

창백한 피부 탓에 공기가 너무 차가운 건 아닐지 걱정도 됐지만, 귀여운 얼굴로 맑게 웃으며 어리광부리는 모습은 그저 건강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우, 우와아! 새, 생서언!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엔 소녀의 몸체만 한 생선이 밧줄로 잘 엮인 채 들려 있었다.

은빛의 쇠장갑을 두른 손으로 소녀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서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난로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속에 고인 물이 얼어붙어 있었고, 그 탓에 오두막 내부는 마치 냉장고라도 들어선 듯 오히려 바깥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부엌을 향해 손에 든 생선을 테이블에 얹어두고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식수를 사용하기 위해 눈을 퍼다 담아둔 커다란 나무통, 얼어붙은 벽난로, 나무를 조잡하게 덧붙여 만든 식탁과 의자를 제외하곤 가구라고 부를 것 없는 공간이었다.


-새, 생서언! 보, 보여줘!


어느새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선 소녀는 자신의 양손을 꽉 잡고 기대된다는 듯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여 달라는 건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그것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리춤에 걸려 있던 검자루를 쥐고 길게 뽑아들었다. 새하얀 검날에서 하얀 검광이 흘러내리듯 뿜어져 나왔다.


그야말로 명검(名劍).


그리고 지금 소녀가 원하는 건 이 검을 휘두르는 것.

자체적으로 마력이 흘러넘쳐 온 힘을 다 해 휘두르면 태산도 베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위력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런 명검을 휘둘러 한다는 것은 고작 생선을 베어내는 것이었다.


‘달라.’


나와 같은 검사의 몸. 하지만 이 몸이 그리는 검의 궤도는 나의 것과 달랐고, 가슴 속에서 뛰는 박동도 나의 것과 달랐다. 정확히 따지면 ‘나와 다르다’보다는 ‘내가 틀렸다’에 가까웠다.

그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완벽하다는 것.

분명 내가 움직이고 있지만 내 의지는 아닌 이 답답함에 비하면, 이찬솔의 몸속에서 꼼짝하지 못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손에 쥐어진 검을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음?’


어느새 소녀가 있던 곳에 매끈하게 다듬어진 얼음판이 사람 키만큼 높게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엔 어깨에 간신히 걸칠 만한 금빛 단발과 눈이 부실만큼 새하얀 피부를 가진 한 여자가 새하얀 갑옷을 두르고, 새하얀 검을 쥔 채 서 있었다.


‘나······?’


그 속에 비친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얼음판에 기다란 금이 그어지더니 그 속에 소녀의 모습이 비쳐졌다.


-머, 먹히면 아, 안 돼애.


얼음결정과도 같은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깊은 곳부터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과 함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소녀를 담고 있던 얼음판과 함께 배경이 함께 산산이 무너져 내리며 다시 칠흑의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마치 방금까지 꿈이라도 꾼 것처럼 모든 게 사라지자 또 다른 감각이 온몸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을린 것 같은 통증과 뼈마디가 갈리는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들자 아주 잠깐이나마 정신을 잃을 뻔했다. 피부를 에이던 차가운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몸의 수분을 모조리 빨아들일 듯이 더운 열기가 목구멍을 자극하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


‘끄으윽······!’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칠흑에 집어삼켜진 정신을 강제로 끌어내려 발버둥치자 칠흑 속으로 희미한 빛마저 새어 들어왔다.


“······어나.”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빛을 향해 발버둥칠수록 전해지는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간다.


“······재현!”


아직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면 이젠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모든 걸 지키겠노라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끄아아악!’


“스승님!”


고막을 때리는 이찬솔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어둠이 순식간에 물러나고, 그 속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흐릿한 시야와 초점이 조금씩 맞아 떨어지자 익숙한 배경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가지각색의 찰흙을 뒤섞어둔 것처럼 비틀린 하늘과 몸에 느껴지는 통증.


콰아아앙!


그리고 어디선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폭음.

당장이라도 들려오는 폭음에 몸이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고통에 범벅이 된 몸은 숨을 헐떡이며 하늘을 바라본 채 똑바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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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마기(2) 23.07.04 6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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