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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emmoke 님의 서재입니다.

(리) 리버싱 저스티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Golemmoke
작품등록일 :
2020.11.25 03:50
최근연재일 :
2021.02.04 12:2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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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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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t: 갑옷

DUMMY

레드와 비나가 기계 갑주가 봉인된 곳에 다가갈수록 점점 바닥이 솟아올랐다. 이내 곧 신을 숭배하는 제단처럼 주변 지형지물이 변했으며, 철창 형태로 갑주를 단단히 봉인한 전기의 힘 또한 덩달아 점점 거 세졌다.


제단처럼 변함과 동시에 생겨난 계단을 타고 올라간 레드와 비나는 드디어 기계 갑주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아라크네와의 전투 때문인지, 갑주는 간신히 갑옷의 형태만 유지된 채로 파손돼 있었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꺼내야···. 하죠?-

매우 위험해 보이는 고압 전류 케이지를 끌 수가 있는 장치 같은 건 당연하게도 주변에 없었으며, 애초에 연결된 전선 같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강력한 전류를 유지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만약에 주변에 돌이나 흙이 있었더라면 그것들을 이용해 전류를 막았겠지만, 가고일의 파편들은 모든 가고일이 사망함과 동시에 먼지가 되어 사라진 데다가, 이곳에는 오로지 은과 금밖에 없었다.

“글쎄다, 일단 어디 한번···.”


재생력 덕분에 겁대가리를 상실한 레드는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면서 난리가 난 전기 케이지를 맨손으로 한번 만졌다. 딱히 이상할 것 없겠지만, 전기 케이지는 바로 레드의 손을 전기구이로 지져버림과 동시에 뒤로 튕겨냈다. 만약에 비나가 튕기던 레드의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제단 밑으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너···. 너무 무모해요, 레드님···.-

“그냥 이 전기 결계가 얼마나 튼튼한지 한번 봐본 테스트야, 테스트.”


전기를 생으로 만진 레드의 손에선 새카만 매연이 폴폴 피어올랐다. 딱 겨우 손가락을 까딱 거릴 수가 있을 정도로 불탄 거로 변한 걸 확인한 레드는, 좀 아프겠지만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잠깐만 옆으로 비켜줄래?”

-네? 네, 네.-


레드는 또다시 한 번 자신의 손을 전기 창살 사이로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전기 창살을 직접 만진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창살과 창살끼리 오가며 사방으로 튀기는 전기 스파크가 레드의 살을 파고 들어가면서 숯덩이로 만들었다.


파치지지지직!!!

-꺄···. 꺄아아악!!!-


맨살이 전기에 튀겨지는 소리가 이 드넓은 지하공간을 가득 채웠으며, 또다시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자빠진 레드를 보고 깜짝 놀란 비나의 비명과 조화를 이뤘다.

“걱···. 정하지마!! 생각이 없는 무뇌는 아니니까!!”


완전히 숯덩이가 되어도 조금씩은 움직일 수가 있다는 기믹을 이용해, 레드는 조금 조금씩 전신을 꿈틀거리며 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집고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레드가 입고 있던 옷은 당연하다는 듯이 먼지가 되어 살가죽을 밖으로 꺼냈으며, 살가죽 또한 조각조각이 나며 속살을 피와 함께 밖으로 꺼냈다.


전신이 검게 그을리고, 몸 위에 인벤토리를 제외한 거죽 하나 걸치지 않은 동시에 살가죽 또한 전부 떨어져 나갔을 때 즈음에, 레드는 겨우 전기 창살을 넘어갈 수가 있었다. 레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충격을 단 몇 초 만에 받아, 몸에 엄청난 무리가 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근섬유가 전부 녹아 마치 막 강령술사에게 소환된 스켈레톤처럼 보였고, 유난히 전기에 약한 두 눈은 녹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루가 되었다.


“허어억···. 허어어억···. 씨발···. 됐다···. 됐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전기 창살을 통과했다는 결과에 매우 만족한 레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천장을 향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고, 놀란 비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부로 더욱 과장되게 기뻐했다.

“자···. 이제 그 좆같은 갑옷 좀 만져 보자고!! 일단 재생 좀 하고···.”





인벤토리에서 기본으로 지급한 예비용 옷을 꺼내 입고, 두 눈구멍에서 새로운 눈알이 돋아나왔을 때, 레드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내쉰 다음에 블랙 드래곤이 입었던 갑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놈의 갑옷···.”


챙그랑


레드의 손과 갑옷의 거리가 불과 3cm도 안되었을 그때, 갑자기 레드의 손과 갑옷 사이의 허공에 유리가 깨진 것처럼 금이 하나 생겼다.

쩌적···. 뜨득···.

해당 금은 점점 지하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으며, 해당 틈에서 보라색 마나가 줄줄 새어 나왔다. 해당 마나의 정체에 관해 익히 잘 알던 비나-루카스는 패닉에 빠진 채 ‘그럴 리가 없어’ 와 ‘설마’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네 반응을 봐선 별로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깨져버린 공간은 하나둘씩 바닥을 향해 툭 툭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새어 나오는 보라색 마나의 양은 점점 더 많이 늘어났으며, 마지막 파편 하나가 떨어짐과 함께 지하 공간이 보라색 안개 때문에 더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나가 자욱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새까매졌다. 별과 달이 안 뜬 밤낮처럼 매우 컴컴했지만, 앞이 또렷하게 보였으며, 햇빛 한 줌 없어 추울 것만 같았지만, 매우 따뜻했다.


이 매우 신기하지만, 몹시 익숙한 이 공간은 바로 누군가의 ‘그릇’이란 걸 레드는 바로 눈치를 챘고, 체감상 자신의 것보다 훨씬 드넓은 이 ‘그릇’의 주인을 경계하며 넋이 나간 비나를 꼬옥 안아 보호하기 시작했다.

-아닐 거야···. 그래···. 그럴 리가 없어···. 어째서···. ‘이계’가···. 아니야···.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달의 신’님···.-

“네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거든? 근데 일단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진정해, 비나. 여긴 아무래도 ‘그릇’ 속인 것 같으니까. 내가 자주 내꺼에 들어가서 잘 알아.”

-흐윽···. 흑흑···.-

“울지 말고, 일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저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어림잡아 1km 정도 걷자, 전기와 전기끼리 부딪치며 쇳소리와 유사한 소음을 지속해서 생성하고 있는 먹구름이 레드의 시야에 들어왔다. 파란색, 빨간색, 주홍색, 그리고 하늘색 번개가 보름달이 내리쬐고 있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구름 속에서 돌았으며, 양팔과 양다리를 Y자로 펼친 채로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먹구름은 레드가 아직 훌쩍이는 비나를 안은 채로 다가오는 만큼 줄어들었다. 단지 시각적인 효과만 있는 환영인지, 아니면 허락받은 자만이 안전하게 입장이 가능한 구름 형태의 결계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레드의 눈에 들어온 먹구름 속의 사내는 지금까지 그가 봐온 존재 중 가장 강하다는 것이다.


평소에 눈치도 없이 그 누구한테도 미친개처럼 대들었다는 건 레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 나라의 뒷세계 우두머리를 단신으로 쳐들어와 깽판을 부렸으며, 때마침 타디프가 와줘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레드는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 때문에 글리치 갱단의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변했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 까지 계속해서 가죽이 벗겨졌을 것이고, 생으로 인육으로서 쓰일만한 부위가 썰렸을 것이며, 장기와 안구가 다시 자라나는 대로 계속 적출되었을 것이다. 아라크네의 경우에는 레드가 먼저 덤빈 것은 아니긴 하나, 만약에 대천사가 내려오질 않았더라면 아라크네의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다.


허나 이 두 인물의 경우에는 이기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어도, 그의 생존 본능이 하지 말라면서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있어도, 레드는 깡그리 무시한 채로 타디프와 로컨에게 빚진 걸 갚기 전까진 죽을 순 없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다시 재생한 채로 싸웠다.


하지만 지금 레드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의 얼굴을 한번에라도 바라볼 용기조차 생기질 않았다. 비나-루카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망정이지, 비나가 없었더라면 그는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진 채로 공포 속에서 떨었을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레드보고 어서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두 동공이 긴장으로 인해 흔들렸다. 식은땀이 그의 등을 적셨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근육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팽창했다. 두 다리는 도망을 한시라도 빨리 치기 위해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비나를 지키기 위해 꼬옥 안고 있는 왼팔은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든지, 지키고 싶은 사람을 버리고 도망가, 나중에 후회할 바에야 싸우다가 죽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붉긋붉긋한 오른팔은 눈치가 없게도 한시 빨리 저 앞에 있는 초월적 강자를 상대하고, 상대의 모든 기술을 온몸으로 받은 다음에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고 꿈틀거리며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레드는 어떻게든 힘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던 나머지 신체 부위들을 제압했고, Fight or Flee 상황에서 그는 Fight를 선택했다.




레드의 앞에 선 압도적 강자, 먹구름 속에 서 있었던 존재는 자신의 왼팔과 두 다리가 전기가 잔뜩 흐르고 있는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왼팔을 봉인한 쇠사슬은 중간에 끊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 드넓은 공간 자체와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으며, 그의 두 발을 묶은 쇠사슬 또한 피차일반으로 보였다. 그는 무려 4m가 넘는 거구를 지닌 존재인 데다가, 몸 이곳저곳이 살갗이 아닌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당최 무슨 종족인지 전혀 예측되질 않았다. 그의 두 어깨에는 수천 년을 살아와, 강력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단단하게 굳은 악마의 뿔이 연상될 만큼 투박하지만, 몹시 단단해 보이는 어깨 갑옷이 걸려 있었으며, 돌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금속이 갈비뼈의 형태로 그의 상체를 지켜주고 있었다. 전신은 수많은 흉터로 뒤덮여 있었으며, 개중 몇십 개의 흉터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선혈의 흔적이 미처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붉은색 머리카락은 마치 수많은 전장을 겪으면서 수많은 피를 머금은 대장군의 망토처럼 거칠고 길게 뻗어나 있었으며, 그의 하관은 갈비뼈 모양의 보호대와 같은 재질로 추측되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동시에, 윗송곳니 두 개와 아랫송곳니 두 개, 합쳐서 4개의 송곳니가 길게 쭈욱 입 밖으로 자라나와 있었다.


〔『끌끌끌···. 이봐, 애송이. 이제야 내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생긴 거냐?』〕

“네, 네가 아무래도 나와 비나를 해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지.”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난 슬슬 블랙 드래곤 로드가 이 몸을 너 같은 쭉정이 따위를 위해 날 친히 죽어가면서도 이곳에 봉인한 게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거든?』〕

“대화를 할 거면 일단 이 ‘그릇’에서 나오고 보는 게 어떠냐?”

일단 이곳에서 벗어 나와야 비나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킬 수가 있다는 생각에 레드는 그에게 떡밥을 한번 던져봤고, 여러 가지 의미로 떡밥은 제대로 먹힌듯했다.

〔『뭐? ‘그릇’? ‘그릇’이라고? 네가 여기가 ‘그릇’이란 걸 어떻게 알았냐? 보통은 공간과 공간의 틈새로 착각하던데.』〕

“어떻게 알긴, 밤에 잘 때마다 ‘그릇’에 들어가서 카르나싀라는 친구한테서 기술 배우는데. 두 ‘감정의 악마’도 내 ‘그릇’에서 살고 있고 말이야.”

〔『크하하하하하하!!!』〕

그는 묶이지 않은 오른팔로 자신의 배를 움켜잡고, 메아리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역시 드래곤 로드는 드래곤 로드인가? 생각보다 쓸만한 놈을 데려왔잖아?! ‘그릇’이 언제든지 들어갈 정도로 열려 있다니, 너 이 새애끼, 슬슬 마음에 든다? 아 참, 통성명부터 하지. 난 바브라고 한다. No.6 라는 의미지. 흔히 용 사냥꾼의 갑주라고도 불려.』〕

“난 레드라고 해. C급 해결사지. 이 친구는 비나라고 하고, 이 ‘그릇’ 속으로 옮겨지던 당시에 이계 뭐시기 거리면서 넋이 나간 상태긴 한데, 금방 괜찮아 질 거야.”

〔『일단 좀 앉아라. 해야 할 말이 많을 것 같으니까.』〕

바브가 손짓을 하자, 땅에서 갑자기 두 줄기의 전기가 솟아올라 의자의 형태를 5초간 띄었고, 그 후 전기가 사방으로 흩어짐과 함께 땅의 것과 같은 재질의 암석 의자 두 개가 나타났다. 레드는 제 몸을 아직 가누지 못하는 비나를 먼저 앉힌 다음에 좌석에 앉았으며, 긴장을 한 채로 바브를 바라봤다.




“그래서···.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정체라···. 정확히 무엇을 묻고 싶은 거냐?』〕

“묻고 싶은 게 많지. 넌···. 거인인 거냐? 의식을 되찾고 난 다음부터 너같이 큰 사람은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거인이라···. 날 거인이라고 불러줘서 고맙군. 보통 거인을 아예 배척하기 위해 타이탄이라고 싸잡아 부르고, 사람이 아닌 ‘포식자’ 카테고리에 마음대로 집어넣어 부르거든. 그런데 난 거인이 아니라, 어느 한 거인을 위해 탄생한 존재지.』〕

“그럼 어느 거인의 심리 요소가 뒤섞이며 탄생한 ‘악마’냐?”

〔『나 따위를 ‘초월자’로 봐줘서 고맙군. 그러나 난 그전에 생명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존재다. 그저 살아있는 갑옷일 뿐이지.』〕


그때, 제정신을 되찾은 비나-루카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러면···. 리빙메탈 종족···. 이신가요?-

〔『세상에, 리빙메탈 종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이것 참 별일이군. 뭐, 그러면 잘 알다시피, 리빙메탈은 전부 ‘천신’이랑 ‘마신’, 그리고 ‘경계의 신’한데 끌려갔거든. 난 살아 숨 쉬는 리빙메탈은 아니지만, 리빙메탈과 유사하고, 리빙메탈과 제대로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에고 웨폰’이지. 애초에 리빙메탈 종족은 갑옷류가 없어, 다 하나같이 연장밖에 없는 전투민족들이거든. 아, 그래서 전부 끌려간 건가? 그러고 보니 예에전에 충인족도 전부 전투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해당하긴 했지?』〕


그는 금이 간 자신의 송곳니를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미안, 내가 말이 좀 많았다, 크하하하하!!!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정작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거든. 고작 금속 한 덩이 따위인 나에겐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죽지도 못하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위협적인 존재는 ‘신’도, ‘포식자’나 ‘초월자’도 아닌, 바로 외로움이란 걸 비로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더라고. 의지를 가진 채로 가이아에서 돌아다니고 싶어도, 사명이란 걸 잃어버리니까 고작 쇳덩이일 뿐인 난, 사명을 달성하거나 잃어버려, 기억을 전부 잃어버린 ‘카다반 퍼프로펀’들처럼, 아니지, 걔들은 최소한 움직일 수라도 있지. 뭐 아무튼, 내 ‘그릇’에 갇힌 채로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

“내가 오기 이전에 블랙 드래곤 로드도 있었잖아. 걔랑은 말이 안 통하고?”

〔『걔는 ‘그릇’을 그만큼 열지 못했거든. 강하다고 무조건 ‘그릇’이 열리는 게 아니야, 실제로 물건을 담는 그릇의 입구와 길이, 그리고 넓이에 따라 꽃병이나 밥그릇으로 나뉘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공간인 ‘그릇’의 입구 크기나 내부 크기가 달라. 내부는 대양처럼 넓지만, 그 입구의 크기는 바늘구멍만 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입구는 대양처럼 크지만, 속 알맹이는 좆도 없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릇’이 크게 열린 사람 치고, 약한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난 네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든 거고. 옆에 앉아 계시는 아가씨의 경우에는 레드, 너 때문에 같이 끌려 오게 된 거고. 아, 너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 그래 맞아. 내 ‘그릇’ 속에 카르나싀라는 친구가 있거든? 근데 이 친구가 자꾸만 내 기억에 관해서 알려줄락 말락 감질거리게만 해서 말이야, 도대체 ‘그릇’은 뭘 담으라고 있는거냐?”

〔『나도 뭐 전문적으로 이런 거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라서 자세하게는 모르는데, 건너건너 듣기로는, ‘그릇’의 용량과 ‘감정의 악마’를 담을 수 있는 수량과 정비례 하는 거로 알고 있어. ‘그릇’의 입구 크기에 따라 타인의 ‘그릇’에 들어갈 수가 있고 없고가 나뉘고. 그런데 이런 건 그저 같이 생겨난 추가적인 옵션이고, 이 ‘그릇’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지.』〕


바브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땅에서 갑자기 검은색의 전기 한줄기가 솟아오르면서 네모난 큐브를 소환해냈다.

〔『‘그릇’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이 ‘혁명의 상자’를 담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생전 ‘신’들을 증오하기 시작해, 자신의 모든 마나를 제물로 바치고 이후에 태어날 모든 생명체에게 ‘그릇’을 무조건 부여함과 동시에 이 ‘혁명의 상자’가 있게끔 했지. 물론 기존에 존재하던 생명체를 포함해서. 원래 ‘그릇’은 오로지 ‘감정의 악마’가 개화할 때에만 생겨나는 거라,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거든. 물론 난 생명체라기엔 애매해서 그런지, 이 ‘혁명의 상자’는 속이 텅텅 빈 불량품이야. 그래서 정확히 뭐가 들어 있어야만 했는지 나도 몰라.』〕


서로 대화를 하면서 대량으로 풍기던 바브의 압도적인 기운에 슬슬 익숙해져만 갈 때 즈음에, 갑자기 레드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탁!


바브가 또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손의 형상을 띈 주홍색 전기가 바닥에서 불쑥 튀어나와 레드의 목을 조르면서 번쩍 들어 올렸다.

“끄으으윽···!! 크으으윽···! 갑자기···.”

-레, 레드님!!-

비나-루카스는 바로 등에 메고 있는 날이 다 나간 대검을 꺼내 들고, 레드의 목을 조르고 있는 전기 손을 잘라냈다. 그러나 전기 손은 물리적인 간섭을 할 수가 있으면서 정작 물리적인 형태는 없는 불합리함의 결정체였으며, 비나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바브는 그대로 레드를 들어 올린 채로 자신 쪽으로 천천히 가져왔고, 봉인이 안 된 그의 오른손으로 레드의 멱살을 잡고 눈을 마주 봤다.


〔『야, 내가 아가리만 나불거리고 있으니까, 내가 만만해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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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st: 갑옷 21.02.04 43 0 18쪽
26 Nest: 지하의 지하 21.01.31 42 0 20쪽
25 Nest: 개 21.01.29 41 0 13쪽
24 Nest: 비나-루카스 21.01.26 42 0 14쪽
23 Nest: 운명 21.01.22 48 0 12쪽
22 Knumepsta: 둥지 속으로 21.01.19 70 0 13쪽
21 Knumepsta: 은퇴 21.01.16 45 0 16쪽
20 Knumepsta: 과충전 21.01.13 40 0 17쪽
19 Knumepsta: 각자의 입장 21.01.10 51 0 17쪽
18 Knumepsta: 자가 섭취 21.01.07 40 0 15쪽
17 Knumepsta: 거미 21.01.04 45 0 13쪽
16 Knumepsta: 죄책감 21.01.01 45 0 13쪽
15 Knumepsta: 소모품의 나라 20.12.28 43 0 13쪽
14 Knumepsta: 국경 넘기 20.12.24 45 0 15쪽
13 Knumepsta: 차별 20.12.21 40 0 13쪽
12 트라우마 20.12.19 49 0 14쪽
11 마물의 집을 떠나다 20.12.17 46 0 12쪽
10 마물의 집 20.12.15 46 0 22쪽
9 ERROR404: Monster vs Cyborg 20.12.13 44 0 23쪽
8 ERROR404: 동료 덕분에 20.12.11 47 0 24쪽
7 ERROR404: 감정 각성 20.12.08 46 0 22쪽
6 ERROR404: 다시 만난 토끼 20.12.06 47 0 25쪽
5 ERROR404: 본부 20.12.03 45 0 23쪽
4 ERROR404: 의문의 남자, 그리고 토끼 20.12.01 45 0 13쪽
3 ERROR404: 동기와의 만남 20.11.29 48 0 15쪽
2 ERROR404: 면접 20.11.27 53 0 12쪽
1 프롤로그: 사왕의 씨앗 20.11.25 7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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