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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조선타임트래블 Reru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8.03 10:03
최근연재일 :
2021.09.20 19:4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7,741
추천수 :
105
글자수 :
311,603

작성
21.09.20 10:57
조회
84
추천
2
글자
11쪽

조선타임트래블 4

DUMMY

**





정한은 눈을 감았다 뜬다. 눈꺼풀 안쪽에 아직 내리쬐던 햇볕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다.

시자철은 빛이 막 사그러든 채 굳은듯이 서있는 이현의 손안에서 반짝이고 있다.

정한은 주위를 둘러본다. 깜깜한 밤이다. 노란 등빛이 새어나오는 궁 안쪽 안에서는 선과 홍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이현은 가만히 창호지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쳐다보고 있다. 정한은 낯선 이현의 모습을 경계하면서 빛이 새어나오는 궁 안쪽을 쳐다본다.

그때 어둠속에서 그림자들이 사사삭 하고 나오더니 궁 밖에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억!"


"으악!"


경비들이 목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자 그림자들은 지체 없이 안쪽으로 침입해 들어간다. 정한이 놀라 그림자들을 따라 달려 들어간다. 궁 안쪽 복도는 이미 궁녀와 내관들의 시체로 피바다다.

정한이 경악한 눈으로 복도를 따라 달려 들어가 열린 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선다. 선은 검을 빼들고 창문 앞에 달빛을 등지고 둘러싼 각시들을 경계하며 뒤에 아기를 안고 선 홍을 보호하고 있다.

아기는 갑작스런 비명소리와 소란에 놀란 듯 홍의 품에서 울고 있다.


"이미 늦으셨습니다. 세자.“


각시들 중 하나가 이미 죽은 내관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조선의 시간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시자철은 수명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검은 가비나 온수들이라면 몰라도 우리 각시들 앞에서는 소용이 없지요."


각시가 선이 들고 있는 검을 비웃듯 쳐다보며 말한다.


"오랫동안 당신 시자철의 가문은 우리를 방해했지만 이제 그것도 끝입니다."


그러자 선이 탄 듯이 검게 갈라지고 부서진 시자철을 꽉 움켜쥔다. 정한은 그것이 이현이 가진 시자철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를 넘겨주시지요."


각시가 말한다. 그러자 선이 고개를 으쓱인다.


"왜?"


"그 아이는 시자철과 같은 시간의 정수를 품고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만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조선의 시간을 찢느라 불필요한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현이가 필요하다?"


선이 그런다. 그리고 시자철을 쥔 손을 꾹 움켜쥔다. 그 손짓을 따라 각시의 눈이 돌아간다.


"소용없습니다. 시자철은 이미 죽었거든요.“


각시가 비웃듯 말한다. 그러자 선이 고개를 기웃하며 씩 웃는다.


"글쎄. 하지만 아직 내 시간은 남아있거든."


그리고 선이 칼을 자신의 팔에 대고 쓱 긋더니 쏟아지는 피를 시자철 위에 붓는다. 그러자 선의 피가 닿은 시자철에서 치익 하고 김이 올라오더니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선과 홍을 둘러싼 각시들의 몸이 푸른 불꽃에 휩싸여 타오르기 시작한다.

각시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기 시작한다. 내관의 목소리를 빌린 각시가 활활 타오르는 중에도 똑바로 선을 쳐다보며 저주의 말을 뱉는다.


"지금 당신의 치른 핏값은 당신이 갚게 될겁니다."


선이 씩 웃는다.


"그렇다면 한 방울도 아깝지 않아."


그리고 각시들은 비명소리 속에 공중에서 재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뒤따르는 정적 속에 홍이 선을 쳐다본다.


"저하!"


그러자 선이 시자철을 내려다본다.


"뭘 하신 겁니까?!“


홍이 다급하게 묻자 선이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홍에게 다가와 아기와 홍을 껴안는다.


"팔일입니다 빈궁.“


선이 말한다. 홍은 심장이 두근거린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홍은 선의 얼굴을 보며 묻는다. 선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내 시간의 팔일을 시자철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제가 쓴 팔일의 값은 각시들이 가져가려 할 것입니다.”


선이 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아기인 현은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찌푸린 얼굴로 선을 향해 통통한 팔을 내밀고 있다. 선이 웃으면서 현의 작은 손가락을 잡아준다. 현이 선의 검지손가락을 조그만 손가락으로 잡는다.

선이 막힌 숨이 터져 나오듯 웃는다. 홍은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으로 선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때 바깥에서 쿵 쿵 쿵 쿵 하는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홍이 흠칫 놀란 듯 찢겨진 창호지 사이로 새어들어 오는 첫 새벽빛을 바라본다. 정한이 돌아보자 그 새벽빛을 집어삼킬듯 시자철의 황금색 빛이 정한의 몸을 감싸며 정한의 몸이 또 다음 시간으로 이동되기 시작한다. 정한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선과 홍, 현의 가족들을 돌아본다.

마침내 아무도 보지못했던 정한의 모습이 사라졌을때, 해가 떠오르며 불길한 북소리가 가슴을 치듯 궁위의 하늘로 퍼져가기 시작한다.







**





"...... 세자는 비구니를 궁중에 끌어들여 풍기를 어지럽혔으며, 부왕의 허락없이 평양에 미행하고, 조계사에서 궁녀를 살해했다."


상소문을 집어던진 왕이 소리친다.


"세자는 이 극악무도한 행동들에 대해서 해명할 수 있는가?"


그러자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린 채 엎드려있던 선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바닥에 찧는다.


"아바마마. 모함이옵니다. 상변한 나경언을 대질하게 해주시면 모든 모함의 전말이 드러날 것이옵니다!"


그러자 왕이 의자를 쾅 치며 일어난다.


"시끄럽다! 네 성질이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이제 살인까지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냐? 그러고도 네가 이 나라의 세자라 할 수 있는가?"


선은 고개를 젓고있다. 정한은 그 사이 몇년이 더 흐른것을 본다. 선의 눈은 초점이 흐리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있으며 피부색마저 다른 사람같다. 그리고 정한은 지금이 언제인지를 깨닫는다.

... 사도세자. 선이 마침내 수십년간의 영조의 괴롭힘과 꾸짖음 끝에 광기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해치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죽음이 기다리고있는곳으로 끌려나온 자리.


"저하, 소인과 한익모, 나경언을 엄히 문추하여 관련자를 색출하고 전후사정을 알아낼 것을 주청 드립니다. 세자저하의 품성은 고변내용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한구가 얼른 앞으로 나선다.


"저하, 고변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조사가 필요할 줄로 아뢰옵니다. 조계사에서 세자저하와 궁녀의 시체를 보았다는 목격자를 찾았사옵니다."


"세자저하가 7월경에 전하에게 아뢰지 않고 평양에 간 것은 평안감사가 이미 보고한 것으로 아뢰옵니다."


옆에 있던 윤재겸이 말한다. 그러자 왕과 가장 가까이 있던 체제공이 나서서 말한다.


"경들은 세자저하에 대한 모함이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도안되는 모함으로 저하를 음해하고 있소! 전하, 저들의 말은 듣지 마시옵소서. 제가 나경언을 문초하여 진실을 규명하겠나이다.“


"체제공. 영상께서야말로 무조건 세자저하의 허물을 덮으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전하께 알리지 않고 평양을 다녀온 것은 역모죄에 해당하오!"


윤급이 큰소리를 치며 말하자 좌우 갈라진 대소신료들은 각기 목소리를 높이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다. 영조의 얼굴의 노기가 더해가고 가운데 꿇어앉은 선의 얼굴은 참담하다.

체제공의 옆에 서서 모든 것을 보고있는 정한은 바닥에 엎드려있는 선의 모습을 본다. 옆에 있는 이현은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선을 지켜보고 있다.

정한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다음 장면이 바뀐다.






**






"전하!"


선의 눈앞에 영조가 던진 칼이 떨어진다. 석고대죄를 하며 머리를 풀어헤친 채 흰 옷을 입고 엎드려있던 선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칼을 바라본다.


"네 죄로 더 이상 이 왕실을 부끄럽게 하지 말고 자결하여라."


영조가 말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홍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무너진다.

궁녀들이 홍을 부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선은 눈앞의 칼을 잠시 쳐다보다가 손안의 시자철을 꾹 쥐더니 다시 땅에 머리를 짓찧는다.


"아바마마. 소인 부족함이 헤아릴 수 없사오나 이 칼로 주상전하께서 주신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는 없사옵니다."


그러자 아들의 고개 숙인 헤친 머리를 내려다보던 영조가 차갑게 고개를 돌린다.


"... 네가 수치스런 목숨을 끊지 못하겠다면 내가 끊어주마. 여봐라."


정한은 경악한 눈으로 선과 영조를 보고 있다. 내관이 고개를 숙이며 앞으로 다가오자 영조가 명을 떨어진다.


"... 뒤주를 내오너라."


".. 이제 그만해."


정한은 덜덜 떨며 이현을 돌아본다. 이현은 여전히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홍의 비명과 시자철을 쥔 채 경복궁의 돌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을 쳐다보고 있다.


"이거 네 과거잖아. 네 가족들이잖아. 저기 있는 건 네 아버지, 네 어머니, 너라고! 알고 있는거야?"


소리치던 정한은 문득 이현이 쥐고 있는 시자철이 피투성이인 것을 알아챈다. 이현의 꽉 쥔 손에서는 검은 피가 시자철을 타고 뚝 뚝 떨어진다. 정한이 놀란 눈으로 다시 이현을 쳐다본다.


"... 이현?"


그리고 하늘이 갑자기 확 어두워진다. 각시들의 비명소리와 남자의 끔찍한 비명소리에 놀란 정한이 돌아보자 경복궁 가운데에는 뒤주와 그 뒤주를 까맣게 둘러싼 각시들이 카각카각 소리를 내며 뒤주 안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정한은 그때 각시들이 파먹고 있는 남자의 비명소리가 선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 정한은 헛구역질을 한다.


"욱!"


검푸른 새벽빛 하늘 아래 신하들은 모두 뒤주 주위를 둘러싼 채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 침묵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나무로 된 뒤주는 각시들에 의해 덜컹거리며 검은 피가 줄줄 새어나오며 안에서는 끊임없이 끔찍한 비명소리가 새어나온다. 정한은 무릎이 풀려 털썩 주저앉는다. 그때 어린아이가 달려 나온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할바마마!"


정한은 크게 뜬 눈으로 아이를 쳐다본다. 열 살 쯤 되었을까 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은 이현, 어린 정조의 것이다.


"할바마마! 제발 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바마마!"


이현이 각시들이 뒤덮고 있는 뒤주를 향해 달려가자 얼른 병사들이 이현을 잡고 뒤로 끌어낸다. 이미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현의 얼굴은 눈물범벅이다. 있는 힘을 다해 병사들의 제지에서 발버둥을 치며 무너진 어린 이현은 손톱으로 땅을 긁으면서 대신들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돌아보며 울부짖는다.


"어찌하여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십니까! 저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병사들을 포함한 뒤주를 둘러싼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신하들 어느하나 고개를 들거나 입을 여는 자가 없다. 이현이 비명을 지른다.


"할바마마!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할바마마 제발...!"


신하들과 영조의 외면 속에 새벽의 넓은 경복궁 안쪽에는 어린 이현과 그 아버지의 비명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키릭키릭 까드득 까드드득 하고 뒤주가 덜컹거리고 각시들은 끊임없이 뒤주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 이제 그만해."


정한의 얼굴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제발 그만해."


정한이 굳은 듯이 서있는 이현의 손에서 시자철을 빼앗아 손으로 내리치기 시작한다.

정한의 손이 깨지고 손톱이 깨지며 피투성이가 되는데도 정한은 자신의 고통조차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시자철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고, 다시 장면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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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한강 위의 다리 배 4 21.09.15 82 1 12쪽
55 한강 위의 다리 배 3 21.09.14 52 1 10쪽
54 한강 위의 다리 배 2 21.09.14 50 1 9쪽
53 한강 위의 다리 배 1 21.09.13 6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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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3만년을 거스른 사나이 9 21.09.12 6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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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3만년을 거스른 사나이 4 21.09.09 5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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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3만년을 거스른 사나이 2 21.09.07 4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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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천상열차분야보물지도 5 21.09.02 54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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