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그래도 마냥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던 것인지, 그러한 움직임이 더해지고 더해질수록 캄캄했던 눈 앞에 아른아른 머무르기 시작한 미약한 빛줄기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진 한서준이, 서둘러 두 팔을 지금까지보다 좀 더 강하게 휘저으며 나아가자,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붙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여지는 정체불명의 불빛이 순식간에 그의 눈 앞에 가까워졌지만, 어쩐지 한서준은 좀처럼 빛을, 나아가 진득한 웅덩이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분명 시각적인 정보로만 따져보면 한 뼘. 고작해야 그 정도 길이만이 그와 불빛 사이에 개입돼 있는 실질적인 거리의 차이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두 손엔 웅덩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자연적인 대지의 난간이 전혀 붙잡히질 않았던 것이었다.
오로지 칠흑의 어둠과, 정체 모를 덩어리들만이 그가 유일하게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웅덩이 속 내용물의 전부였고, 또 온 몸을 얼어붙이는 한기와 더불어진 한계에 다다른 호흡의 문제가 유이하게 웅덩이 안에서 또렷하게 자각할 수 있는 부차적인 사항의 전부였다.
더욱이 폐가 쪼그라들 것만 같은 답답함과 고통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자, 금방이라도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하는 짧디 짧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일순 꽉 채워 버리기 무섭게 곧바로 사라져 버렸지만, 한서준은 금세 왜 빛이 그토록 자신과 가까워지지 않았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한 움큼 한 움큼씩을 앞으로 나아가면, 빛은 그만큼의 거리를 뒤로 물러나며 도망쳤다. 꼭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밝히는 빛을 이용해 먹잇감을 유인하고 거리를 재보는 것처럼, 그런 괴이한 움직임으로 조금씩 조금씩 한서준을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서준은 그 빛을 조종하던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흡사 희망의 빛처럼 보이는 저 하얗고 조그마한 빛이 얼마 안 가 '움직인다.'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음과 동시에 거진 반강제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것도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질척한 웅덩이 안에서도 훤히 보이는 수십, 수백 개의 굵직하고 하얀 송곳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돌연 그의 눈 앞에 불쑥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부지불식간에 위아래로 벌어져 마치 거대한 불도저가 다가오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밀어낸 물의 강렬한 파동과 함께 삽시간에 덮쳐 들어왔던 탓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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