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지구.
중앙 아시아 한 곳.
인적이 없는 산속에 1,026m 깊이의 수직 동굴이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세계 최대의 수직 동굴은 376m 깊이인 멕시코의 제비 동굴이었다.
동굴 속으로 아무런 장비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남자가 보였다.
동굴 밑에는 에메랄드 빛 물이 잔잔히 고여있었다.
그는 수면 위에 떠서 50m 앞에 있는 10m 높이의 지하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맞아?"
[네, 오네요.]
-쉿!
-쉿!
순간,
폭포 위 동굴 속에서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거대한 뱀이 튀어나왔다.
흉측한 혀를 날름거리며 머리를 흔드는 것이 몹시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는 무섭지도 않는지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이잉!
-이잉!
-이잉!
손 주위에 새끼 손가락보다 작은 은빛 물체가 연달아 나타났다.
"가라!"
그가 외치자 은빛 물체는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푹!
-푹!
-푹!
뱀 몸통 곳곳이 은빛 물체에 의해 연속으로 뚫리며 피를 콸콸 쏟아냈다.
흘러나온 피는 에메랄드 빛 수면과 섞이면서 묘한 색으로 변해갔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거대한 뱀의 몸짓에 동굴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연속된 은빛 물체의 공격을 받아 몸통이 갈기갈기 터져나갔다.
"주란, 부탁해."
[넵!]
피로 범벅이 되어 뼈까지 드러난 뱀 머리에서 하얀 빛이 뽑혀 나왔다.
그 빛은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의 이마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크윽!"
통증에 눈가를 찌푸리던 그는 잠시 후 안정을 찾았다.
그 사이 흰 빛이 뽑힌 뱀은 서서히 재로 흩어져 갔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다음은 어디지?"
[$#$@^&%!]
"Ok!"
그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수직 동굴 위로 치솟아 사라졌다.
* * *
빨간색과 파란색 막대가 화면 왼쪽으로 밀려가며 실시간 환율 차트를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걸 뭐 하러 봐요?]
"그냥."
오랜만에 방문한 서울이다.
그녀를 위해 떠난 여행이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판타지 소설처럼 마왕을 잡거나 천마를 죽일 생각이 없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쥔님.]
"응. 왜?"
[가야 해요.]
"꼭 가야 해?"
[흩어진 영혼 조각을 모아야 기억을 찾을 수 있어요.]
"그 방법 뿐이야?"
[네.]
나에게 최고 어쩌고 사기를 쳐서, 이 사단을 만든 저 꼬맹이는 날 다시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가자고 꼬신다.
전생인지 전인지 모르지만 지구에 돌아오자 마자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진정 나에게 소중했던 분들에게 보답했다.
물론 이 꼬맹이가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것은 틀림없다.
모든 것을 지 맘대로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처음 만난 순간 이름을 물어봤을 때,
절벽에서 떨어진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주란'이라는 끝 말만 들었다.
아무튼, 이 꼬맹이가 말한 것이 어쩌면 진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게는 김미영 팀장을 능가하는 사기꾼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그래, 가야겠지 하지만 그녀를 꼭 한번만 보고 가자."
[가까이 가면 안된 다니까요!]
"멀리서 한번만 볼께.'
[좋아요. 진짜 딱 한번만 보고 떠나는 거죠?]
"알았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
* * *
불안정한 그녀의 영혼 때문에 나는 교내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이세계에서 지구로 돌아오자 마자 찾아가 봤지만,
그녀는 내 눈을 마주치자 마자 쓰러져 버렸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떨어진 곳 2층에 예쁘장한 카페가 보였다.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밖을 내다보니, 넓은 창을 통해 정문이 잘 보였다.
[지금 나오네요.]
"응."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친구들과 발랄하게 웃으며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설레였다.
[이제 됐죠?]
"쫌만 더."
그녀의 뒷모습이 내 눈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가요.]
"그러자."
식어버린 커피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자 내 맘은 추억 속에 잠겼다.
나는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과 온전한 영혼을 위해 이세계로 다시 떠나야 한다.
그녀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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