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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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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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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6
추천수 :
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2.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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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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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4화

DUMMY

평소와 같은 아침, 정말 오랜만에 왼쪽 손목에 불이 들어왔다. 잔잔하게 울리는 진동과 함께.

곧바로 동생의 방을 찾아갔다. 동생 역시 팔찌에서 빛이 흘렀다.


“거기서 보자···”


각자 큐브가 이어주는 공간으로 들어왔다. 이제 제집처럼 편안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첫 번째 블랙 필드 이후로 이하루와의 만남도 처음이다. 문득 그녀는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성격으로 봤을 때, 나처럼 방구석에 박혀 있을 그런 사람은 아닌 걸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 눈을 떴다. 동생이 바로 옆에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뭐, 그냥 이렇게 보내진 건데. 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 마.”

“내 눈빛이 어때서···”

“···그냥 좀 좆같다?”

“정확하네?”


그리 말하며 동생이 가볍게 웃는다.

농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서 상처받을 수도 있다.

옛날과 참 많이 달라진 동생이지만, 나름대로 그런 매력이 존재했다.

여리고 맨날 오빠를 찾는 동생보단 자기 앞가림 잘하고 쌀쌀맞은 동생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 현성 씨! 오랜만이에요!”


이하루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녀가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이하루의 표정이 굳더니 나와 동생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세요?”

“아, 그 제···”


그 순간 옆구리를 찾아온 격통에 숨이 제대로 안 쉬어졌다.


“왜요, 우리 사이가 뭐, 그런 사이라도 될 까봐요?”

“그런 건 아니지만, 좀 행동이 지나치신 것 같아서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까지 싸늘하게 반응할 수 있는 건가.

옆에 있는 동생은 한술 더 뜬다.


“아, 그래서 그렇게 이 사람한테 꼬리치고 다닌 건가요?”

“···지금 뭐라 그러신 건가요?”

“그렇게 꼬리치고 다니신 건가라고 물었어요. 왜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요?”


두 사람 다 그만하라고 말려야 하는데 도통 끼어들 틈이 없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이 사람에 대해서···”


분노할 줄 알았던 이하루의 반응이 차갑게 식었다. 원래 그게 더 무서운 법이다.


“뭐라구요?”

“두 분이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저 사람의 표정을 보면··· 금방이라도 망가질 것 같았어요. 당신은 그런 걸 알기나 알까요? 공황장애···”


차갑게 돌아선 그녀가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동생을 한 번 흘깃 봤다.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여 준 뒤 그녀를 쫓아갔다.


“하루 씨···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뛰어서 잡아야 했다. 그녀가 눈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도무지 놔두고 갈 가 없었다. 조금만 건든다면 눈물샘이 터질 것 같아 보였다.


“뭐에요··· 저 사람은···”

“미안합니다. 제 동생입니다···”

“동생이요···?”


멋쩍게 웃음이 나온다.


“그렇습니다. 원래 저런 녀석이 아닌데, 제가 그 공황장애를 앓고 난 뒤로부터 저렇게 변해버렸네요. 원래는 예의도 바르고 착한 녀석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의사이시거나 그러신 건가요?”

“아니에요··· 그냥 심리학을 좋아하는 대학생일 뿐이에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아는 건 하루 씨 이름밖에 몰라서요.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를 구했다. 원래라면 동생이 직접 하는 게 맞지만, 지금 여길 데려온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거란 생각이 안 들었다.


“아니에요. 현성 씨가 사과할 일이 아닌걸요.”

“그보다 제가 공황장애를 갖고 있다는 게 놀랐습니다. 그냥 혼자 방구석에 박혀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 보통 자기가 정신질환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죠.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게 맞을 거예요.”


이제야 웃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래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유된 거 축하 드려요.”

“하루 씨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하루 씨의 말처럼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 상황에서 하루 씨의 따듯한 손길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음··· 잘 모르겠지만, 눈동자를 보면 상대를 정확히 가늠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아요. 틀림없이 현성 씨는 제 도움 없이도 수렁에서 빠져나왔을 거예요. 다만 제가 일찍 꺼내드린 것일 뿐입니다.”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지나친 억측이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동생이 블랙 필드로부터 위험에 빠졌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어떤 일 때문에 부른 걸까요?”


그녀가 말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알맞게 반응했다.


“글세요··· 갑자기 부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항상 큐브 안에 있던 세리아가 오늘은 먼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있는 일이니 사람들의 반응들이 제각각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일단 마음 맞는 저들끼리 팀을 꾸리고 함께 활동하는 듯했다. 나는 솔로 플레이를 선호하는 터라 정확히 보면 저런 단합이 더 올바른 판단이었다.


[여러분···]


세리아의 목소리다. 이번엔 모습을 드러낸 방법이 다르다. 화면 속에서 모습을 보여준 세리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세리아.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차원지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 소개가 늦은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이름을 밝히자 몇몇 사람들은 황당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전체적으로 대게 그런 반응이다.

생긴 것과 세리아라는 이름이 너무나 안 어울리기 때문이지 싶다.


[소개는 이만 마쳤고, 여러분들은 언제까지 혼자 싸울 수 없습니다. 현명하신 여러분들 중엔 이미 뜻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든 분도 계시고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앞서 여러분들은 마음 맞는 여러분들의 동료를 찾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파격적인 말에 소란이 더욱 커졌다. 강제적으로 파티를 꾸리라는 것이다. 이는 솔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혼자 균열을 막을 순 없습니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진 않았지만, 꼭 나를 겨냥하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항상 변수가 존재하고 그 변수를 통해 목숨이 오고 가는 상황 속에서 믿을 건 동료들 밖에 없습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셔서 여러분들과 마음 맞는 동료들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거기 손 드신 분 질문해 주셔도 됩니다.]

“자그마치 십만입니다. 어떻게 마음 맞는 사람을 모두 일일이 뒤져가며 찾을 수 있겠습니까?”

[주변을 잘 둘러보십시오. 저는 각자 여러분이 싸워온 사람들과 일부로 가깝게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각 스킬들을 종합하여 여러분들과 좋은 케미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배치시켰지요. 그걸로 답변이 되었습니까?]


아예 작정하고 이번 일을 만든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다.

일렁거리던 소란스러움이 파도가 되었다. 각자 동료를 모집하기 위해 이리저리 소리치고 다니니까, 시장 바닥이 따로 없다.


“민재 아저씨네요···”


그녀가 내 귓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순간 그녀의 입바람에 털이 쭈뼛쭈뼛 섰다. 눈앞에 이민재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좋냐?”


동생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언제 뒤쫓아 온 건지 어느새 내 뒤에 있었다.


“조, 좋기는···”

“반가워요. 저는 이하루라고 해요. 현성 씨의 동생분이라 들었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고 나발이고 저 녀석 옆에 얼씬도 거리지 마.”


동생이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둘의 차가운 눈빛을 더 마주한다면 싸움으로 번질 것 같다.


“다들 왜 이러는 거야···”


공황이라는 게 지금 다시 찾아올 것 같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열이 잔뜩 올라 김이 오르는 듯했다.


“얼씬도 거리지 말라뇨, 저희는 이미 블랙 필드까지 같이 다녀온 사인데.”

“······.”


동생이 그녀를 무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표정으로 동생의 눈빛을 가만히 흘릴 뿐이었다.


“너 자꾸 왜 그러는 건데.”

“···이거 놔! 나도 몰라!”


거칠게 내 손을 뿌리친 동생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동생을 뒤쫓으려 하였지만, 일단 혼자 있게 놔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급하게 쫓아가지는 않았다.


“······.”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쉬어진다. 얼굴을 쓸어보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 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죄송합니다. 자꾸만 이상하네요··· 3년 동안 말 한 번 안 섞다가 최근 들어서 조금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건데··· 본성은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니니 조금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잠시만···”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피로 이어진 감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 * *


바보 같은 놈이다. 처음부터 오빠를 지켜보았다. 처음 오빠가 큐브에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걱정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화면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오빠의 발작 증세··· 솔직하게 말해서 부끄러웠다. 저 사람이 내 오빠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솔직하게 부끄러웠다.

말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데도 왜인지 앞에만 서면 삐딱한 말투를 자기도 제어할 수 없었다.


“···거기서 혼자 뭐해.”

“어떻게 여기를 알고 찾아왔데···”

“너 어렸을 때부터 여기 오는 거 좋아했던 거 알고 있으니까. 같이 이어진 피로써 느껴지는 감이라는 게 있거든.”


오빠가 웃는다. 마치 예전처럼 돌아간 것 같다. 그렇게 자신감에 가득 찬 같은 나이 또래에 적수가 없었던 오빠.

자신은 그런 오빠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 오빠의 어깨는 그 어떤 사람보다 무거워 보였다.

그런 미소를 되찾았다는 게 기쁜데, 그 미소를 되찾아준 사람이 내가 아니라서 분한 감정인 건가··· 잘 모르겠다.


“뻥치네 기억도 못할 거면서···”

“거짓말 아니야. 너 여기서 공주님 목걸이 잃어버렸다고 밥도 안 먹고 밤새 찾았잖아. 덕분에 나도 그랬고.”


오빠의 말에 울퉁불퉁하게 깔린 흙바닥이 보인다.

그곳에 어린 남녀 둘이서 모래를 헤집는 것이 보였다.

눈을 씻고 봐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자신이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아주겠다고, 밤을 꼬박 새워서 찾아주었다.

자신은 지쳐 잠들었는데, 그걸 다음날 모래를 뒤져서 찾아낸 것이다.


“···기억하네.”

“당연히 기억하지···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거 때문에 손톱 다 빠졌는데.”

“···정말 그랬어?”

“그랬지. 너 알게 될까 봐 몰래 숨기고 살았지.”


시선이 오빠의 손으로 향한다. 많이 상한 손이 눈에 바로 보인다. 최근 들어 다시 도장을 다닌 다는 소식을 엄마한테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


“죽지 말라고···”

“···뭐라고?”


부끄러워 중얼거리니 잘 못 들은 것 같다.


“죽지 말라고···”


그보다 조금 더 크게 용기를 냈다. 왜 부끄러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떨군 내 머리 위로 따듯한 손길이 느껴진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난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이 차원도 행성도 반드시 지켜낼 거야. 누굴 위해서냐고 묻지 마. 그러니까. 어차피 너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녀석 아닌 거 알아. 말리진 않을 게 위험해지면, 반드시 연락해라···”


따듯한 손길이 떠났다. 고개를 들면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한동안 들지 못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오빠는 자리를 떠난 뒤였다.


“병신이 진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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