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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10,695
추천수 :
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2.08 19:00
조회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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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003화

DUMMY

“자! 여러분들 이건 고블린이라 하는 몬스터입니다! 단일 개체로서는 형편없지만,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꽤나 무서운 몬스터이지요! 선택받으신 여러분들은 제가 드린 스킬과 무기를 활용하여 고블린은 죽이시면 됩니다!”


초록색의 괴물은 이빨을 번들거렸다. 자신이 전투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흥분에 찬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더 간단한 거 같네요.”

“···그래요?”

“네, 고블린은 정말 기초적인 몬스터예요 긴장만 늦추지 않는다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겁니다.”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그늘을 없앨 수 있었다.


“일단 제대로 지켜보도록 하죠.”

“알겠어요!”


우리는 이하루의 차례가 오기 전에 고블린과 전투하는 흐름을 지켜보았다.


“저기선 저렇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무조건 거리를 벌리세요. 근접전은 안 됩니다.”


첫 번째부터 네번째 사람까지는 쉽게 쉽게 상대하여 별로 말해줄 게 없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부터 어딘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잘못된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었다.


“눈을 감아서도 안 됩니다. 상대의 공격을 똑바로 보세요. 눈을 감게 되면 피할 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오오···”


그녀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병신 같은 새끼··· 지가 뭘 안다고 떠들어 대는 거야. 그럴 거면 네놈이 직접 나가지 그래 살만 뒤룩뒤룩 쪄가지고 검이나 휘두를 수 있겠냐?”

“······.”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반응이 늦는데, 옆에 있던 이하루의 반응은 칼 같았다.


“뭐라구요? 너무 심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날카롭게 톡 쏘아붙였다.


“사실이잖아? 안 그래?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놈이 저렇게 훈수질이나 두고 있으니 눈살 찌푸려지잖아. 그보다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내가 도와줄게 내 옆으로 와라···”

“···싫거든요?”


그녀가 표정을 와락 구기며 몸을 뒤로 뺐다. 고개를 다시 돌려 산만한 덩치의 중년 남성을 보았다.

그는 한껏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폭력에 맞서 폭력에 꺾여버린 피해자다.


“봐봐··· 저렇게 네가 욕이나 먹고 있는데, 너를 도와주기는커녕 몸을 저렇게 떨어서 지켜주기나 하겠어? 오빠가 지켜줄 테니까. 얼른 옆에 토깽이처럼 붙어있으라고.”


맞는 말이다.

내 몸을 지금 진동하듯 떠는 중이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 폭력에 대한 떨림이다.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나와 눈이 마주친 중년 남자가 더욱 짙은 미소를 보인다.


“어······.”


떨림이 잦아든다.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저런 상대한테 질 수 없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하루 씨···”


그 순간 이하루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내 손을 잡았던 그녀의 손이 떨어졌다. 투명해지니 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투명한 막 안에 들어간 채로 몸을 떠는 중이었다. 나한테 떨지 말라 했으면서···


“자! 마지막 열 번째입니다. 예상대로 적응력이 빠르시군요. 아홉 번째까지 한 명도 죽지 않고 왔습니다. 열 번째 과연 이하루 씨는 마지막까지 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시작되었다.

고블린들은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는 걸 눈치챘다.

초반의 기세가 중요한데, 이미 시작부터 어긋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하루가 고블린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매직 애로우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조준 실력이 처참했다. 사용하면 뭐 하나 맞출 수가 없었다. 고블린과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법 공격을 터무니없는 곳을 맞췄다.

그녀의 지척까지 다가온 세 마리···

그 순간 고블린이 도약했다. 그녀의 머리를 노린 공격, 그녀는 방패를 세워 다행히 공격을 막아냈다.


손에 땀이 난다. 그녀의 눈동자를 자세하게 보니 이미 의지가 꺾여있었다.

고블린의 눈빛은 나와 대치하던 중년 남성의 눈과 비슷했다.

그녀가 공격에 밀려 뒤로 나가떨어졌다. 방패를 놓쳤다. 이제 무방비상태인 그녀가 방어할 수단은 없다.


안된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저 녹색 괴물을 향해.

진한 미소로 저 경기를 즐겁다는 듯 방관하는 이 미친 게임을 중단하기 위해 하지만 바다 같은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야 말로 미친 짓이었다.


[스킬 ‘불굴의 의지(B)’를 발동합니다.]


의지를 불태웠다. 내 의지는 꺾여나가지 않았다.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취하면 된다. 지금껏 소리 내어 외친 적 없었다. 이젠 나의 목소리를 쥐어짤 때가 왔다.


“···멈춰! 멈춰 주십시오!”


10만 명의 인파. 그 목소리가 장내를 상당히 날카롭게 찔렀다.

수근 거리는 소리가 사라질 정도로 강력 했다. 내가 가진 스킬은 기적을 이뤄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경기는 멈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일인지 알 것 같군요.”


녹색 괴물이 흥이 깨져버려 입가에 그리고 있던 호선이 사라졌다.


“···경기를 멈춰 주십시오.”

“불가합니다.”


옆을 슬쩍 보니 투명한 막은 세상이 정지한 듯 그녀의 머리가 깨지기 일보 직전에 멈춰 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깨부숴야 그녀가 산다.


“···제가 그녀 대신 싸우겠습니다.”

“오호라···”


내 말에 반응이 있다. 사라졌던 웃음기도 조금씩 올라오는 게 보였다.


“저는 규칙을 어기는 것을 굉장히 싫습니다. 제가 경기를 중단하여 당신과 그녀를 바꾸는 것 또한 규칙을 어기는 것.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이 핵심이었다.


“당신이 이보다 더 어려운 상대를 상대한다고 하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더 어려운 상대라 하면, 얼마나 어려운 거지. 웃음이 난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대수라고.


“좋습니다.”

“당신의 제안을 받겠습니다. 이하루 씨와 윤현성 씨의 교체를 승낙합니다.”


나와 그녀가 있던 장소가 뒤바뀌었다.

어둡고 칙칙한 바둑판같던 바닥에서 흙먼지가 올라오는 땅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들어 내가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물결이 갈라진 것처럼 그녀가 가뿐 숨을 내쉬는 것이 보인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바꿔주었습니다. 당신이 상대해야 할 상대를 소개해 드리죠.”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고블린과는 전혀 다른 모습.

피부는 고블린의 색과 같았다.

하지만 근육의 정도라든지. 인간을 웃도는 키,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모습을 종합하여 볼 때 누군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크···”

“알고 계셨군요. 당신이 상대해야 할 몬스터는 바로 오크입니다. 부디 제가 드린 스킬과 무기를 조합하여 승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적인 말투부터 내가 살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은 아니다.

그냥 죽이기 위한 싸움처럼 보였다. 오크의 방망이를 쥔 팔 근육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면 마음껏 발버둥 쳐주겠다.

이런 몸상태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지··· 운동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까.

그런 잡생각을 집어치워야 한다. 눈앞에 상대에 집중하기에도 빠듯하다.


“아직 죽지 않았어.”


숨을 뱉었다.

오크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운이 따라주었다. 몸이 그래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감이 붙어 칼을 들어 오크를 공격했다. 공격이 들어갔다. 힘을 주어 더 깊숙이 칼날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오크의 근육에 가로막혔다.


“······!”


순간 당황하여 칼을 빼내려 하였지만, 그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뻐억-!

머리에서 느껴진 화끈한 충격에 시야가 잠시 암전 되었다.

어지러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쓰러진다면 죽는 것이다.


최대한 뒤로··· 최대한 뒤로 물러나야 한다. 시야가 돌아오지 않는다.

오크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뒤로 몸을 날렸다. 조금씩 밝아지는 시야 사이로 내가 서있던 자리에 방망이를 찍은 상태였다.

바닥이 움푹 파인 것을 보고 섬뜩함 마저 들었다.


오크가 다시 방망이를 손에 들고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완벽한 자신의 승리를 예감하며 웃는 낯짝이 마치 나를 괴롭히던 일진 시절 무리들과 같았다.


“거지 같네···”


검도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강해져서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그래서 싸운 것뿐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폭력에 맞선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건드린 일진이 대기업 회장의 손자였다.

무소불위한 기업의 힘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다.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유서에 적힌 강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때문에. 그날 나는 처음으로 폭력에 맞선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꺾이지 않는다.”


흐린 시야 사이로 혼자 있는 방패가 들어왔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다. 바닥을 기어서 그 방패를 주워 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온몸이 부서진 느낌이었지만, 내 감각은 이미 고통을 초월했다.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는 다시 한번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흥미롭군요.’


스킬 카드의 등급은 그저 등급일 뿐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개인마다 다르다.

녹색의 괴물은 10만 명의 어떤 스킬 카드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불굴의 의지라···’


그저 말장난일 뿐인, 스킬 카드였다. 보통 심신의 안정을 취하게 도와주고 심박수를 조금 낮춰주는 것으로 끝나는 카드인데.


‘다르다. 뭔가 많이 다르다···’


그건 그 경기를 지켜보던 10만 명의 인파가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야유가 가득하던 이곳에 숨죽여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조용하게 죽어갔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웃었다. 저 뒤뚱거리는 돼지가 한 방에 보내질 것이라고.

머리를 맞았을 때는 그걸 확신했다. 하지만 처절하게 기어가는 모습을 본 그들의 가슴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제발···”


이하루가 그 화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저렇게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때문이었다.

고블린과 마주하니 어쩔 수 없었다. 몸이 굳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살아줘요···”


그가 살기를 바란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하루는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신의 도움을 구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


[스킬 ‘불굴의 의지(B)’가 발동 중입니다.]


몸이 누군가 짓밟고 있는 것처럼 무겁다. 바닥을 기어가는데, 뒤쪽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직··· 아직이야···

문제는 오크가 공격하는 순간, 오크의 공격에 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턱-

발소리가 멈췄다. 오크는 그대로 방망이를 내리찍는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쩌엉-! 빠득-!

방패와 함께 팔이 부러졌다. 극심한 고통에도 내 눈은 오크의 목을 놓치지 않는다.


[공격을 쳐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은 꺼지지 않는 투혼으로 끝내 회심의 일격에 성공하였습니다.]

[오크가 비틀거립니다.]


내가 원한 건 찰나의 틈.

짧은 호흡과 함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간다.


[스킬 ‘베기(E)’를 시전 합니다.]


투박한 베기였다.

멋도 없었고 기교도 없었다.

그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마음이 가득 담긴 동작이었다.

검이 쭉 들어간다. 베는 감촉이 손끝으로 느껴지고 그 느낌에 더욱 힘을 준다.

텅- 덩그르르르-


“···내 승리다.”


팔이 축 처졌다. 검을 들어 올리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내 승리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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