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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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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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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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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6화

DUMMY

윤현성의 움직임을 본 사람들은 하나, 둘 그를 다른 시선으로 보았다.

10만 명 모두에게 좋든 나쁘든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모두 비웃기 바빴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자기 팔뚝에 피가 나올 때까지 긁는가 하며, 또 여자가 위험에 빠졌다고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모습까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었다.

솔직히 말해 10만 명의 사람들이 윤현성의 이름을 모른다고 생각 들지 않을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완벽합니다.”


녹색 괴물이 쓰러진 윤현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침착한 척하고 있었지만, 긴장이 풀려 동시에 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고맙습니다.”


윤현성이 괴물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자, 여러분들도 보셨다시피 이제 균열을 윤현성 씨가 보여준 것처럼 하시면 됩니다.”

“정체가 들켜도 상관없습니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물었다.


“상관은 없습니다만··· 들켜서 좋을 건 없겠죠. 이곳의 비밀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아마 여러분들은 인체 실험을 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건 제 생각이니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괴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다만 그 질문을 한 사람의 안색은 새파래지며 생각을 고쳐먹은 것 같았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재앙에 맞서게 될 용사들입니다. 모두 선전하시어, 모든 재앙의 균열을 막아내기를 바랍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겁니까?”


윤현성이 괴물의 등뒤에서 일어났다.


“그전 저도 정확히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현성 씨. 다만 길고 외로운 싸움이 될 겁니다. 당신의 눈빛을 보면 말이죠···”


괴물이 윤현성의 굳은 표정을 응시하다가 등을 돌린 뒤 걸었다.


“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역할은 여러분들에게 큐브를 전해드리고 이 일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 뿐입니다. 균열이 나타나는 것을 알리는 것 또한 큐브의 역할. 제가 모든 걸 알고 있지 않다는 걸 명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윤현성은 괴물이 날아오르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적당한 높이에 멈춰 섰다.


“오늘의 균열은 여기까지입니다. 큐브의 역할은 다양합니다. 여러분들의 커뮤니케이션과 또한 파티까지 맺을 수 있으니, 적절하게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다음 균열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친 뒤 사라졌다. 자욱한 연기도 없었고, 원래부터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대단한데! 무슨 움직임이 엄청나더군.”

“그러게 말이야. 정말 대단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칭찬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반응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윤현성은 피곤함을 느꼈다.


“현성 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떨군 그가 다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앞에 이하루가 울먹거리며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당황스러웠다.


“그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려 죄송했어요.”

“사과받을 일이 아닙니다. 하루 씨가 저를 이곳에서 구해주셨듯, 저 또한 목숨을 빚진 걸 구해드린 것뿐입니다. 저한테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는 떨리지 않았다. 이게 스킬의 효과 덕분인지 아니면 그녀의 따스한 손길이 스친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런가요···”


그녀가 가벼운 미소로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런 겁니다. 보셨듯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하루 씨도 약한 마음을 버리셔야 할 거예요. 죽지 않고 살아남고 싶다면.”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윤현성은 문을 타고 사라진 뒤였다.

아직 자기의 앞에 있던 남자의 온기가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방으로 돌아왔다.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이건 두려워 떠는 게 아니다.

전투를 마친 지금에도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가 빠르게 돌고 시야는 좁아진다.

죽음이라는 공포가 엄습하고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결과가 좋았다.

오크의 목을 꿰뚫었던 그 손이 아직도 그 느낌을 기억했다.


“어디 가니?”

“잠시 도장에 다녀오려구요.”

“지금 밖에 돌아다니려고? 오늘 사거리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뉴스에 대서특필이던데··· 위험해 아들.”

“괜찮아요. 어차피 그 나타난 괴물들은 누군가가 무찌르지 않았나요?”

“그건 그래도··· 그런 일이 또 발생할지도 모르잖니.”


눈을 슬쩍 돌려보니 뉴스에 내가 오크들과 싸웠던 일이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건의 당사자인 나도 이 사실을 믿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익숙해져야 한다. 균열이 낳은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은 많이 변할 것이다.

아니 이미 변해버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악몽과 같았다.

나도 아직 꿈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올게요.”

“그러면, 동생 하교하는 길에 같이 들어오는 게 좋겠다. 밤길이 위험하잖니.”

“알겠어요.”


이곳에서 도장까지는 꽤 먼 거리다.

적당히 뛰어가면 체력도 기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도장에 도착할 때쯤엔 티셔츠가 땀으로 젖었고 호흡도 굉장히 거칠었다.

심장이 뛰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현성이 왔구나. 그나저나 오늘 뉴스를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구나··· 벌써 난리도 아니다.”

“뉴스는 봤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더라구요.”


최상혁이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조작된 영상일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데, 인터뷰 영상을 보면 그들의 말이 가짜라고 생각 들진 않더구나. 그보다 너희 집 근처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은데, 어머니는 무사하시느냐?”

“어머니는 괜찮으십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래 오늘도 검을 쥐어보기 위해서 찾아왔느냐?”


그의 물음에 아직도 손의 감각이 그전 상황을 떠올렸다.


“오늘은 대련을 해볼까 합니다.”

“대련이라··· 준비는 되었느냐? 너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는···”

“진검으로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말을 끊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 새삼스레 무슨··· 아마 내 정신과 몸 상태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지금보다 더 괜찮을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맑다.


“그렇다면 알겠다. 대수야.”

“예, 스승님···”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큼지막하게 한 발짝 걸어 나왔다.

마치 태산이 움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한 걸음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네가 한 번 해볼 테 냐?”

“맡겨만 주시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래 한 번 가서 해보거라.”


이대수라 불린 남자는 스승에게 허리를 깊숙하게 숙인 뒤 나와 마주 섰다.


“윤현성이라 했지? 이대수라 한다.”

“윤현성입니다.”


짧게 대답했다. 긴 인사를 나눠봤자 서로 시간만 아까웠다.


“네가 참여했던 대회 영상을 본적 있다.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더군, 가감 없이 내게 보여주길 바란다.”


내 의중을 눈치챈 이대수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전투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서로 적당히 거리를 좁히고 검 끝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눈치 싸움의 시작이었다. 서로 어디를 공격할지 탐색한다.

그에게 빈틈이 보이는가, 그리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단단한 철옹성과 같은 검세를 가진 그를 향해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오랜만에 펼치는 실전에 긴장되었지만, 오크를 상대할 때 죽음의 틈을 넘나드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건 세발의 피였다.


“하압!”


먼저 기합을 내지른 이대수가 머리를 노렸다. 검을 세워 머리를 보호하고 있음에도 굳이 거기를 노렸다는 건, 자신이 있어서다.

노림수도 아니다. 상대를 반으로 갈라버리겠다는 태산 같은 의지가, 곧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칼날을 빗겼다. 공격을 막았음에도 손목이 저릿하다. 이대수는 그대로 빗겨내려 간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앞발을 밀면서 들어오며 그대로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뒤로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허리가 끊어졌을 것이다.


“대단한 담력이군, 어느 정도 확인하려는 것인데··· 역시 스승님이 인정한 남자 답구나.”


그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돌아갔다. 착- 감기는 소리와 함께 그가 손을 내밀었다.


“다시 한번 나를 소개하지. 나는 스승님의 직계 제자 이대수라고 한다. 스러져갔던 마지막 검객의 검을 엿볼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그의 검을 막았던 양손이 아직도 저릿하다. 엄청난 힘이다. 그가 보여준 힘이 전력이 아니라는 사실에 간담이 서늘했다.


“이쯤 되면 다시 한번 검을 잡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 내 친구이자, 네 아비도 그러기를 바랄 것이야. 현성아 너는 재능이 있는 아이다.”

“···검에 대한 미련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올라서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그런 힘은 아무런 의미 없는 힘이니까요.”


인간을 상대하는 힘으론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이계에서 오는 괴물들을 죽일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련을 그만두는 건 아니다. 검은 언제나 날카로워야 한다고 들었다.

마음의 검을 단련하지 않으면, 손에 쉰 검은 소용없다는 말이라고 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힘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내면의 힘이 강해야 한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사람 역시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한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군요···”

“그리우냐? 이 말은 그 친구가 내게 일러주었던 말이다. 나를 꺾으면서 했던 말이기도 하지. 그 당시의 나는 겉으로 내보일 수 있는 힘만 길렀던, 참수자와 같았다.”

“아버지는 무인답게 죽으신 겁니까?”

“아직도 아비가 원망스러우냐.”


그의 눈빛에 측은함이 담겨있었다. 눈빛으로만 말할 뿐 말로 위로하진 않았다.


“원망스럽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네 아비는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무인협회에서도 대쪽 같은 네 아비의 고집을 막을 수 없었지. 때로는 갈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내게 말해주었지만, 실상 그 녀석을 그렇지 않더구나.”


그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와 만나는 듯했다.


“아버지는 저 때문에 죽으신 겁니다···”

“그렇지 않다.”

“제가 그런 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제가 아버지를···”

“현성아!”


호통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생각 갖지 말거라. 네 아비 채윤이는 웃으면서 갔다. 마지막을 검사답게 갈 수 있었다고··· 아들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복수심만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가 나를 바라본다.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다. 복수심은 버리고 강해지라는 말.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복수심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만약 기회가 찾아온다면··· 실행하지 않을까.


“복수는··· 복수는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겉은 거짓을 내뱉고 있다.


“그래, 네가 그렇게 깨달았으면 된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 뭐, 생각나면 검을 들고 오너라 직접 가르침을 내려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바닥을 보자 도장을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문득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동생이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다. 서둘러 간다면 늦지 않을 것 같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두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해가 더 지기 전에 동생이 있는 학교로 달려갔다.

굉장히 큰 대학교, 동생에게 문자가 와있던 걸 몰랐다.

문자를 확인하니 딱히 내 도움은 필요 없었다. 이왕 젖은 거 차라리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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